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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24화 (24/170)

24화

“야! 괜찮냐?”

누군가의 목소리.

“누구?”

“뭐? 야! 그새 친구 얼굴도 까먹었냐?”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러자 내 앞에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멍하니 그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이다.

불현 듯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영훈아.”

최영훈. 친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하얀 공간이 보인다.

“여긴 어디야?”

“어디긴. 병원이지. 너 며칠 동안 게임하느라 캡슐에서 안 나왔다며? 얌마. 나이 처먹고 게임하다 구급차 타면 안 부끄럽냐?”

멍하니 친구의 말을 듣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병원이라고?”

덥석 친구의 어깨를 붙잡고 윽박지르듯이 물었다.

친구는 별 희한한 놈을 다 본다는 듯 날 본다.

“그래, 인마! 아직 정신 덜 깼나 보네. 너희 어머님도 얼마나 걱정하신지 알아?”

“어, 엄마? 엄마는 어딨어? 그나저나 진짜 여기가 병원이라고? 내가 게임에서 나온 거야?”

“어머님은 잠깐 요 앞에 식사하시러 가셨어. 그리고 언제까지 게임 타령이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게임에서 나왔다.

그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이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그렇게 나오고 싶어 별짓을 다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아, 아냐.”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휑한 눈으로 내 손을 내려다 봤다.

끼익-

그때 문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 어머님 오셨어요!”

영훈이가 고개를 넙죽 숙여 인사한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렁였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가족.

생각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 일부러 잊으려 했던 그 단어가 내 가슴을 울렸다.

철벅.

몸을 일으키지도, 않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결정하지 못한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철벅.

철벅.

“엄마……?”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리운 그 얼굴이 아니었다.

철벅.

이제야 귓가에 울리던 소리를 똑바로 인식했다.

물기를 머금은 발소리.

휘이이이-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

고개를 숙였던 내 친구는 그대로 굳어 있다.

그리고 문으로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그 발소리만이 계속 내 귓가를 울렸다.

철벅. 철벅. 철벅.

그리고 난 눈을 떴다.

* * *

“아.”

온몸이 축축하다.

손으로 눈가를 슥 닦고서 앞을 보았다.

“깨, 깼다! 케르르.”

“어떻게, 어떻게 하지?”

작은 창을 들고 있는 고블린들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는 게 보인다.

나도 그것 중 하나에 누워 있었나 보다. 몸이 축축한 걸 보면.

귓가를 울리던 그 발소리는 저 고블린들이 낸 거고.

“우선 사로잡자! 키륵!”

“마, 맞아! 잡자!”

놈들은 내가 멍하니 있자 그사이에 저들끼리 결론을 내렸다.

창날을 내게 겨누고서 천천히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손을 꽉 그러모았다.

파직-

‘응?’

기운을 끌어 올려 놈들에게 겁을 주려던 내 행동은 순식간에 무산됐다.

손끝에 아주 잠깐 전격이 튀어 올랐다 그대로 흩어진 것이다.

지끈.

갑자기 머리가 울렸다.

난 금세 내 몸 상태를 깨달았다.

‘기운… 아직 안 돌아왔구나.’

무리한 기운의 운용으로 인한 부작용.

아직도 힘이 회복이 안 된 거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면 정전기만 못 하다.

심지어 몸도 쓰레기고.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키륵?”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놈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난 놈들에게 보이지 않게 조절하며 기운을 사용해 봤다.

단순히 기운을 발출하는 것만으론 놈들을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여 놈들을 처리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고.

“키르르-”

점점 놈들이 가까워진다.

찰박-

그때 놈들이 물웅덩이에 발을 디디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난 그걸 보자마자 번뜩 든 생각에 빠르게 달려갔다.

“키릭?”

놈들이 당황해하는 걸 보며 바로 물웅덩이에 손을 넣었다.

콰지지지직-!

온 기운을 끌어 올려 전격을 뿜어냈다.

그러자 물을 타고 퍼져 나간 전격이 순식간에 놈들을 감쌌다.

내 몸에도 파직 전격이 튀었지만 애초에 전기 내성이 강해서 그런지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키기기기기긱!”

두 놈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아마 바로 깨어나지 못할 거다.

몸이 천근만근 늘어졌다.

“후우.”

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이야.”

계속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구슬.’

가슴팍을 더듬었다.

몸 상태가 극히 안 좋다. 어딘진 몰라도 당장 부족으로 돌아가야…….

“어?”

하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가슴팍을 풀어 헤치고 안을 봤지만 보이는 건 그저 맨살뿐.

‘인벤토리는?’

평소 하던 것처럼 손등에 손바닥을 겹치고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것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상태 창도. 신화 창도. 상점도. 아무것도 반응이 없었다.

그저 메시지 하나만이 눈앞에 떠올랐다.

[최소 조건을 충족하여 시스템이 업데이트됩니다.]

‘업데이트?’

최소 조건은 뭐고 업데이트는 뭐란 말인가.

평소와 달리 그것에 대해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지금 가장 심각한 건 내 상태였으니까.

현재 나는 시스템과 기운 둘 다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몸 상태는 고블린 하나 못 잡을 정도로 안 좋고.

거기다가 있는 아이템이라곤.

‘흉갑마저 없군.’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갑옷마저 보이지 않았다.

‘하.’

있는 거라곤 고작 고블린이 떨어뜨린 이 조잡한 창뿐.

분노와 무력감이 어지럽게 얽혀 든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한 행동은 창대를 땅바닥에 대어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분명…….”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곰곰이 떠올려 보니 제단 위에서 공물을 바치던 순간이 떠오른다.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치더니 그게 나를 맞췄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이런 숲의 한복판.’

어쩐지 과거의 한 지점이 생각났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두 번이나 겪을 줄은 몰랐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으윽.”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데 통증이 다시 올라왔다.

창대를 지팡이 삼아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파도 기절한 고블린을 옆에 두고 쉴 수는 없으니까.

몇 번이나 고블린을 죽일까 말까 고민했지만.

‘몸에 전격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어.’

당장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둘을 죽이는 게 오히려 더욱 마음에 걸렸다.

일전에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벼락 부족이 자신의 동족을 살해했단 이유로 죽일 듯이 추격해 왔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어쩐지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왜인지는 몰라도 저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후우.”

난 복잡한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서 다른 생각을 했다.

‘기운만 사용할 수 있으면.’

이미 여기가 어딘지 쯤은 확인했을 거다. 주변에 있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살펴보기만 하면 되니.

하지만 지금의 만신창이인 몸 상태로는 나무는커녕 걷는 것도 힘들었다.

“후욱.”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걸었다.

계속해서 경사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단순히 지형이 울퉁불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작은 산 같은 건 아닐까.

“아!”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동굴 하나가 보였다.

몸을 질질 끌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깊숙이 들어가 몸을 뉘였다.

“하. 이게 뭔 상황이야.”

가만히 누워 있으니 아까 전의 상황이 생각났다.

친구와 부모님을 꿈에서 봤을 땐 기뻤던 것 같다.

하지만 깨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이 꿈으로 나타났던 걸까?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안 쑤시는 데가 없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깨달았다.

다른 이들을 만나며 잠잠해졌던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다시 도진 것 같다고.

몸이 아파서 그런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예민하게 느껴졌다.

아예 눈을 감고서 생각했다. 부족에 대한 것을.

“내가 없어졌다는 건 모두 봤겠지…….”

제단의 꼭대기에서 갑자기 사라졌으니 모를 리가 없을 거다.

벼락까지 맞아 가며 사라졌으니까.

그저 케륵이 잘 수습했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믿음직한 부하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크룩도 의외로 진심을 다해 나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 주긴 하지만…….

믿음직하다기엔 뭔가 부족하다.

약간 부족하지만 착한 친구? 그런 느낌이다.

‘케륵.’

반면에 케륵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지.

게임 속에서 그저 초보자 몹 취급이나 했던 고블린이었는데.

지금엔 내가 가장 믿는 부하이자 동료가 되었으니.

그래도 얼마 없는 인연을 떠올리자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적어도 처음 떨어졌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아니란 게 느껴져서.

“읏챠.”

그들을 생각하다 보니 약간 기운이 나서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안 좋은 몸, 감기라도 들까 싶어 바깥으로 나가 바닥에 떨어진 이파리를 잔뜩 집어 왔다.

몇 번이나 오가며 이파리를 잔뜩 깔고 그 위에 누웠다.

이거 하나 옮겼다고 몸이 더 아파 왔지만 그래도 푹신한 곳에 눕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 * *

크르르르…….

문득 잠이 깬 건 무언가의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난 그대로 눈을 감고서 귀를 기울였다.

탁. 타닥.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손가락을 슬쩍 펴자 손끝에 뭔가가 걸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창대를 꽉 쥐었다.

“크르르르릉”

소리가 굉장히 가까이서 났다.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것 같다.

툭-

무언가가 내 발을 툭 쳤다.

난 숨도 참고서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내 옆으로 도는 게 느껴졌다.

눈을 살짝 뜨니 회색빛의 짙은 털이 보였다.

동물인 것 같긴 한데 무슨 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놈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게 주둥이를 가까이 들이미는 게 보였다.

푸욱-!

난 지체 없이 창을 들어 놈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어서 그 위에 올라타 놈을 눌렀다.

“케에에엥!”

퍽!

비명을 내지르는 놈의 머리를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부서지는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놈의 붉은 피도.

목 부분이 아예 부서져서 분리된 창 촉을 들고서 놈의 머리를 쉬지 않고 가격했다.

우직!

“케에엑.”

한 손으론 놈의 목을 조르며 내리찍길 여러 차례.

아예 쓰러진 채로 몸을 부들대던 놈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헉. 허억.”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창촉을 쥔 채로 벽에 기대앉았다.

“후으으.”

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솔직히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싸웠던 건 오랜만이지만 이미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다만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격렬한 움직임에 의한 통증 때문이었다.

난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당신이 왜 족장입니까?’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까? 쿠룩.’

‘우리 족장은 이미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키룩. 뭘 믿고 당신이 족장이라고 하는 겁니까?’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고블린과 오크들이 날 둘러싸고 있었다.

너희들의 족장이라고. 내가 돌아왔다고. 열심히 소리치는데도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난 계속해서 나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날 비웃으며 점점 멀어져 갔다.

* * *

“흐읍!”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주변을 둘러보자 여전히 난 동굴 속이었다.

옆에는 내가 목숨을 끊었던 짐승이 쓰러져 있었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악몽을 꿨네.”

꿈이라도 좋은 걸 꾸면 덧나나. 쯧 혀를 차며 몸을 살짝 일으켰다.

동굴 안에는 피비린내가 강렬했다.

다른 짐승이나 괴수가 이 냄새를 맡고 올 수도 있다. 아무래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난 한숨을 쉬고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콰지직-

손아귀에 기운을 끌어모았다가 다시 흩트렸다.

아직은 아주 미약한 수준이지만.

기운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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