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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22화 (22/170)
  • 22화

    갑자기 울려 퍼진 늑대의 울음소리는 곧 뒤이어 여러 번 들려왔다.

    “크어어어어엉!”

    그리고 다시 한 번 그곳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익숙한 괴수의 머리뼈였다.

    난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케륵에게 일러두었다.

    ‘펜릴이 곧 도착한다고 한다고 했으니 본래 합류 장소 부근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기습해. 혹시 너무 늦는다면 내가 먼저 연락할 테니, 케륵 너만이라도 권능을 쓰고.’

    후우우우우웅-!

    괴수의 머리뼈 주위로 붉은색의 핏물이 날아들며 거대한 몸체를 구성한다.

    꽈아아앙-!

    그렇게 펜릴과 거대 도마뱀이 적 본진에 착지했을 때, 그 밑에 있던 수많은 적이 그대로 압사 당했다.

    “이 개새끼! 이제 왔구나!”

    -반가우면서.

    놈은 딱 한마디를 내뱉고서 바로 트롤들 사이에서 날뛰었다.

    평소라면 싸가지 없다고 몇 대 때렸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크아아아아아-!”

    펜릴은 한 번 공격을 성공시킬 때마다 몸을 숨겼다가 다시 또 나타났다.

    그렇게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공격을 하니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이 녀석의 첫 데뷔전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예상보다 훨씬 위력적이야.’

    일대일로 놈을 이기긴 했지만, 그 커다란 덩치는 자기보다 훨씬 작고 약한 다수의 적들을 상대하기에 아주 유리했다.

    “크와아아아악!”

    게다가 케륵이 올라탄 도마뱀은 빠른 속도로 적진을 헤집었다.

    고통을 모르는 거대 도마뱀은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크룩! 돌진!”

    어느새 거대화가 풀린 크룩은 수세에 몰리던 병력을 지휘해 앞으로 돌진시켰고.

    “아우우우우-!”

    “께르르르!”

    “크라라아아아아-!”

    원군도 시기적절하게 나타났다.

    산등성이를 따라 고블린과 오크들도 수십이나 연달아 튀어나온다.

    보통의 늑대보다는 훨씬 커다란 늑대를 타고서.

    “족장님을 위하여!”

    “벼락 신을 위하여!”

    늑대를 탄 전사들은 빠른 기동력으로 외곽에 선 트롤들을 계속해서 치고 빠졌다.

    한가운데에선 거대 괴수가 날뛰고 있고, 옆에선 울프 라이더들이 찔러 온다.

    마지막으로 우리 본진까지 앞으로 진군하니.

    그야말로 트롤의 진형은 난장판이 됐다.

    아우우우우-!

    그때 저 앞에서 펜릴의 고통 섞인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앞을 보자 그의 몸에 주황빛이 도는 창이 꽂혀 있었다.

    “끼리릴아아아아아-!”

    그놈의 지긋지긋한 괴성.

    주술사가 가마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유리한 상황마다 꼬박꼬박 끼어들며 전황을 바꾸었던 놈이다.

    상황이 많이 불리해지니 직접 나서려나 보지?

    하지만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이미 전장은 유리한 상황. 굳이 방어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으니.

    기운을 바짝 끌어올리는 동시에 권능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떨어지는 벼락에 힘을 더했다.

    콰과가가가강-!

    내 기운에 증폭된 벼락이 그대로 트롤의 주술사가 있는 곳에 내리꽂혔다.

    콰직-!

    그가 막 몸을 일으키던 가마가 부서지고, 받치고 있던 트롤들은 까맣게 타서 쓰러졌다.

    하지만 놈은 온몸에서 연기를 뿜어 올리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콰앙-!

    “뇌룡 질주!”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트롤들이 커다란 충돌음을 내며 날아간다.

    내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상당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놈을 향해 질주했다.

    “키리리이이!”

    족장이 당황한 듯 손을 뻗자 그 앞으로 겹겹이 트롤들이 뭉쳐서 막았다.

    난 여전히 패시브로 기운을 유지한 채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파지지직-!

    한 번 트롤들의 몸에 닿을 때 마다 그 끝에서 전격이 튀어나왔다.

    카앙-!

    운 좋게 무기로 막은 놈도 전격에 감전된 채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온몸에서 전격을 뻗어 내며 앞을 막는 놈들을 날려 버렸다.

    “키르르아아아아아-!”

    주술사가 무언가 주술을 펼친다.

    그러자 주술사 옆에 있는 두 호위를 제외한 나머지 트롤 병사들에게 붉은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붉은 기운이 트롤 병사들의 몸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이내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것은 마치 광전사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콰아아아앙-!

    난 그걸 보며 지체 없이 바닥에 몽둥이를 내리쳤다.

    아까 전보다 훨씬 강력한 전격이 퍼져 나가 놈들을 감전시킨다.

    빠악-!

    놈들이 더 빨라지고 강해진 만큼 기운을 끌어올렸다.

    콰지지지직-!

    강해질 대로 강해진 기운은 한 놈이 맞을 때마다 여러 놈에게 동시에 퍼져 나간다.

    주술사가 무어라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보며 더욱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 놈의 머리를 부수고 나니 드디어 주술사와 두 호위 앞에 섰다.

    “키르윽!”

    하지만 하필 그때에 맞춰서 놈도 주술을 완성했다.

    “이런 미친…….”

    놈의 주술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술사 양쪽에 서 있던 놈들이 아까 전 크룩처럼 커지고 있었다.

    ‘거대화 주술.’

    저게 일개 주술사가 부릴 수 있는 건가?

    순식간에 거대한 몸체가 내 앞을 막아선다.

    놈들은 아군이 짓밟히는 건 신경 쓰지 않는지, 거칠게 몸을 움직여 날 공격해 왔다.

    꽈앙-!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족장님!”

    어느새 다시 몸을 키운 크룩.

    “케륵!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거대 도마뱀을 탄 케륵.

    둘은 무식하게 몸을 키운 두 명을 막아섰다.

    “저놈 도망갑니다!”

    도마뱀을 조종해 맞서 싸우고 있던 케륵이 소리쳤다.

    케륵의 말에 높이 떠올라 확인하니 트롤 주술사가 급하게 도망가는 게 보였다.

    -주인!

    그대로 몸을 날리려는데 어느새 다가온 펜릴이 나를 태웠다.

    “가자!”

    난 펜릴을 타고 빠르게 질주했다.

    주술사 놈은 그 와중에도 주술을 쓰고 있는 건지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펜릴이 땅을 박찰 때마다 그 거리는 훅훅 좁혀졌고, 마지막 순간 난 펜릴의 등을 박차 올랐다.

    “키르릅!”

    놈이 다시 지겨운 괴성을 내지르려 하기에 놈의 턱주가리에 몽둥이를 박아 넣어 줬다.

    이빨들이 우수수 허공으로 흩어지며 놈이 비틀거린다.

    가까이서 보니 덩치가 크긴 크다. 적어도 다른 트롤들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높이니.

    콰아앙-!

    하지만 그래 봤자다. 비틀거리는 놈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허공에 붕 뜬 놈을 따라가 머리통을 내리쳐 땅에 처박았다.

    “캬라락!”

    놈은 그 순간에도 기묘한 손놀림을 해 내게 뻗었다.

    ‘이건 또 무슨.’

    공격을 이어 가려는데 갑자기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놈의 주술에 얻어맞아 튕겨 나간 것이다.

    “뇌룡 질주!”

    그래서 바로 스킬을 썼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했지만 그 상태 그대로 공격을 날렸다.

    “끼라라아아악!”

    주술을 외우려던 놈의 팔이 그대로 부서졌다.

    아까 전 주술이 생각보다 강력했는지 다리가 떨려 왔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놈의 목을 붙잡고서 주먹으로 계속 내려쳤다.

    신체와 기운, 양쪽에서 한계가 찾아오고 있다.

    퍼엉!

    주술사는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주술을 날려 댔다.

    놈을 꽉 붙잡고 있었기에 튕겨나가진 않았지만 내 몸도 계속해서 데미지가 누적됐다.

    “물러나!”

    뒤에서 계속 끼어들 틈을 보고 있던 펜릴에게 크게 소리쳤다.

    ‘다른 이들이랑 같이 싸우면 피해가 더 커.’

    심지어 펜릴이라 할지라도 위험하다.

    놈의 주술은 하나하나가 막대한 위력을 품고 있었으니.

    뇌룡갑이 그 위력을 흩트리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미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득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를 꽉 깨물었다.

    게다가 병사들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커다란 규모의 주술을 곧잘 쓰던 놈이다.

    이렇게 일대일의 상황에서 끝장을 보는 게 맞다.

    ‘죽지만 않으면 돼.’

    그래. 죽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니까.

    파악- 놈의 몸뚱이에서 빨간 피가 흩날린다.

    계속해서 주먹으로 내리치던 와중 갑자기 놈의 몸에서 보라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파악!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서 몽둥이를 들었다.

    기운을 빠짐없이 끌어모아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주술사의 가슴팍이 터져 나가며 머리와 사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술사의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 내 발치에 닿는다.

    그리고 막대한 기운이 폭발했다.

    콰지지직-!

    전격과 기운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소름 끼치는 기세가 전방에서 뻗어 나왔고.

    쿠구구구궁-!

    전격은 보라색 기운과 만나 하늘을 꿰뚫을 듯이 뻗어 올라갔다.

    “아…….”

    찬찬히 흩어지는 전격의 기둥을 보며 난 탄성을 내뱉었다.

    ‘막아 냈다.’

    정체 모를 주술이 그대로 내 공격과 소멸한 것이 느껴졌다.

    그걸 깨닫고 나자 몸에 힘이 쭉 빠졌다.

    탁-

    빠르게 다가오는 지면을 손바닥으로 짚고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후들거리고, 속에선 신물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아마도 며칠 동안… 아니, 어쩌면 일주일간은 기운을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상점을 통해서 권능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내 몸에 깃든 기운은 쓸 수 없다니. 기분이 그리 좋진 않다.

    ‘상점에서 파는 기운 회복 포션도 안 먹히고.’

    아무래도 시간이 약인 듯했다.

    “후.”

    난 아까 전 발치로 굴러왔던 주술사의 머리를 들었다.

    “펜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펜릴이 내 외침에 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입으로 내 옷자락을 물어 위에 태워 주었다.

    난 펜릴을 타고서 빠르게 전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모두가 시야에 들어올 만큼 가까워졌을 때, 주술사의 머리를 모두에게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아우우우우우우-!

    “주술사는 죽었다-!”

    * * *

    전투가 끝나고 난 후엔 부상자들을 한데 모아 치유를 했다.

    치료를 받고도 거동이 불편한 자들은 늑대의 등 위에 나누어 태웠다.

    제대로 된 휴식은 트롤의 부족에 도착한 이후에나 취하기로 했다.

    지금 위치한 부족은 휴식을 취하기엔 터무니없이 작았으니까.

    전리품을 모두 정리해 둔 후, 포로로 잡은 트롤들을 앞세워서 그들의 부족을 향했다.

    늑대를 탄 전사들은 트롤들과 그 전에 사로잡았던 오크 포로들을 감시하며 맨 뒤에서 따라왔다.

    “거의 다 와 갑니다, 케륵.”

    케륵이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거의 이틀간의 강행군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부족원들은 몇 개의 부족을 연달아 함락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지쳐 보였다.

    그리고 나 또한 최악의 상태다.

    온몸이 떨려오고 시시때때로 몸 안에서 격통이 몰아치고 있다.

    그저 펜릴의 몸 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도 트롤들의 부족인 바람 부족에 도착할 때까지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이곳이군.”

    높다랗게 둘러 있는 울타리. 그리고 문으로 보이는 곳에는 트롤들이 서 있었다.

    부족이라는 말이 가소롭게 보일 정도로 커다란 규모였다.

    몇 번이나 증축을 거듭하고 있는 벼락 부족보다도 훨씬 컸다.

    난 트롤 포로들을 앞에 세워 두고 크게 외쳤다.

    “문을– 열어라!”

    말을 하자마자 다시 한 번 격통이 전신을 감쌌지만 아무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목소리에 트롤들이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게 보였다.

    “말해.”

    난 트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트롤들은 눈을 질끈 감더니 소리쳤다.

    “우리들은 패배했다!”

    “남은 건 우리뿐이다!”

    “문을 열어다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열심히 소리쳤다.

    애초에 대부분의 트롤들이 패색이 짙은데도 죽을 때까지 달려든 것에 비해, 이놈들은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남은 놈들이다.

    아무리 용맹한 종족이라도 개중 나약한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떼구르르르-

    그리고 잘린 주술사의 머리가 결정타였다.

    놈들은 혼비백산하여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끼기이이익-

    “너희들의 새로운 족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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