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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20화 (20/170)

20화

얼핏 보면 검정색으로 보일 정도로 짙고 탁한 붉은색의 몸체.

꾸웅!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지축이 울린다.

케륵이 사제로서 각성한 능력으로 만들어 낸 괴물.

괴수의 머리뼈와 피로 불러온 저것은 네크로맨시의 일종이다.

복잡한 준비 절차와 막대한 재료비가 들어갔지만, 저것을 보고 있으면 그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

“저게 무슨!”

오크 주술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케륵은 어느새 고개를 높이 치켜든 도마뱀의 머리 위에 올라 타 있었다.

지팡이를 죽 앞으로 뻗고서 오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놈을 집어삼켜라! 케륵!”

케륵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도마뱀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꽈앙!

오크 주술사는 필사적으로 땅을 융기시키며 막아서려 했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콰아앙-!

자신의 몸보다 작은 장애물은 그대로 부수면서 돌진했으니까.

가끔 부수기 힘들어 보이는 것은 네 발을 거침없이 놀리며 수월하게 타 넘었다,

“막아라!”

주술사는 뒤늦게 오크들을 불러 도마뱀을 막아 세웠다.

끄워어어어엉-!

하지만 그 명령이 무색하게 도마뱀은 오크들을 짓밟고, 걷어차고, 씹어 내뱉었다.

가끔 상처를 입더라도 도마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놈은 이미 죽은 몸.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그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괴수였으니.

“겁쟁이 자식! 케륵. 계속 도망가는 거냐!”

주술사는 도마뱀을 피해 계속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케륵은 분노에 차 소리쳤지만 주술사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주술사는 대꾸할 여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안색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고, 지팡이를 든 팔은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주술의 남용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 부작용일 거다.

“흐음.”

난 전장을 살피며 팔짱을 꼈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전황은 유리했다.

“크르아아아! 이것밖에 안 되는 거냐!”

“건방진 자식-!”

쾅-!

크룩은 여전히 족장과 막상막하로 겨루고 있었다.

족장과 주술사, 두 축이 모두 묶인 대지 부족의 오크들은 별다른 지시를 받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반면에 대지 부족과 다르게 우리 벼락 부족은 곳곳에서 크룩과 케륵이 키운 예비 사제들이 지휘를 맡고 있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겠는데.’

약간 허탈한 감정이 느껴졌다.

만반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아무런 위험이 없을 줄은 몰랐다.

‘특히 저 주술사.’

오크 주술사는 분명 강력한 주술을 사용하긴 했다.

하지만 케륵이 도마뱀을 소환한 이후론 별다른 반격도 못 하고 피하기에 급급하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그래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보단 났지. 내 생각보다 우리 부족의 전력이 강한 건가.

“감히, 감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계속 도망 다니던 주술사가 우뚝 멈춰선 게 보였다.

아까 전보다 더 만신창이인 모습이다.

언제 상처를 입은 건지 몰라도 어깻죽지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한껏 높게 솟은 흙기둥 위에 서 있지만 오히려 더 처량하게 보일 뿐이다.

“이제 슬슬 끝날 때가 되지 않았나? 케륵.”

케륵은 도마뱀의 머리 위에 서서 놈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기둥을 무너트릴 수 있을 테지만 또 도망갈까 봐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놈의 기세가 확 변했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놈의 몸 주위로 강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쿠구구구구-!

땅이 강하게 진동한다.

흙기둥 주변의 땅이 막무가내로 치솟는다.

난 당장이라도 뛰어들고자 하는 충동에 휩싸였지만, 그걸 막아 세운 건 바로 케륵의 눈빛이었다.

오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륵.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콰과과과과-!

그사이에도 주술사의 주변으론 땅이 거침없이 치솟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의 지각 변동이었다.

“벼락의 숨결!”

하지만 주술사의 마지막 수보다 케륵의 대응이 더욱 빨랐다.

주술사의 강대한 기운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던 케륵의 주술.

사위가 하얗게 변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을 불사르는 하얗고 푸른 빛.

도마뱀의 쩍 벌어진 입에서 쏟아져 나온 벼락이 주술사에게 작렬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든 오크와 고블린들은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봤다.

콰직-!

그 정적은 크룩이 대지 족장의 머리통을 둘로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됐다.

크르라아아아!

케르르르륵!

무기를 떨구며 항복을 한 대지 부족원들을 보며 모든 이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주술사는 뼛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벼락에 불탔다.

케륵이 마지막에 가한 공격은 나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비록 나에게 어느 정도 힘을 빌린 것이라 하나.

저 정도의 위력이 내게 쏟아진다면 나도 아무런 피해 없이 막긴 힘들 것 같다.

케륵은 모든 힘을 쏟아부은 듯 다른 부족원들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고.

크룩은 대지 족장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 다른 이들과 같이 함성을 지르는 게 보였다.

‘충분히 할 수 있다.’

첫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우리는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대지 부족 이후로 고전을 한 적조차 없었고, 가는 길엔 승리만이 이어졌다.

내가 나설 필요조차 없는 전장이 대부분이었으니.

연속된 승리로 부족원들의 사기는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어금니가 두텁게 나 있는 오크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뒤처리를 하도록.”

“크룩, 알겠습니다.”

크룩에게 그들의 처우를 결정하게 하고서 뒤돌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케륵.”

임시로 설치된 막사로 향하는 내게 케륵이 다가와 부드러운 천을 건넸다.

이 또한 이번 정벌에서 얻은 전리품이다.

정복한 고블린 부족 중 천을 짜는 기술이 굉장히 뛰어난 곳이 있었다.

그들은 싸우기도 전에 항복했고, 지금은 부족에 합류해 그들의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

“이번이 몇 번째 부족이지?”

“네 번째 부족입니다, 케륵.”

네 번째.

대지 부족 이 후로 세 부족을 더 함락시켰다.

첫 전투에서도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이후의 전투는 더욱 압도적이었다.

기본 병력의 질부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벼락 부족의 전투원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포인트 상점을 이용해 몇 번이나 강화의 축복을 내려 줬기에.

‘지금은 고블린 두 마리가 보통의 오크를 쉽게 상대할 정도.’

처음 오크 몇 마리에 부족이 침입을 당해 큰 피해를 입은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크라아아아-!”

끝까지 반항하는 몇몇 오크들을 제압하는 우리 부족원들.

오크의 성장세도 고블린만큼이나 훌륭했다.

벼락 부족의 오크와 다른 부족의 오크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체격이 월등하게 차이 나는 게 보일 정도.

앞서 있었던 전투들은 거의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 줬다.

아마 소문이 퍼질수록 먼저 항복해 오는 부족들이 늘어날 거다.

“슬슬 그곳에 가까워졌군.”

“케륵, 그렇습니다. 이틀만 움직이면 도착하겠지요.”

이번 전쟁의 종착지.

그 부족의 전력을 떠올리면 앞서 상대했던 부족들과의 전투는 몸풀기에 불과하다.

‘곧 부딪히겠군.’

그래도 며칠 동안 이어져 온 전쟁에도 부족원들이 사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숲에서 치루는 전쟁은 그 피로도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컸다.

대규모로 막사를 세울 공간도 없거니와 이동만 해도 피로가 쌓인다.

또한 기본 전략을 속전속결로 정했기에 휴식 시간도 거의 없었다.

‘펜릴이 제시간에 와야 할 텐데.’

정복한 부족에는 병력을 조금씩 나눠 놓고 왔다. 그리고 적지만 사상자도 있었고.

그랬기에 처음 출발했을 때에 비해선 병력이 적었다.

다음에 상대해야 할 적을 생각하면 지금의 병력으로는 아슬아슬하다.

그렇기 때문에 펜릴이 올 때까지는 우선 대기하기로 했다.

방금 전 통신한 바로는 곧 도착한다고 했다.

“후우.”

전쟁이라곤 게임으로나 해 봤지, 이렇게 직접 지휘를 해 본 적은 없다.

지휘가 이렇게 힘든 건 줄 알았으면 직접 몸을 쓰며 싸우는 게 차라리 낫지.

“족장님!”

그때 갑자기 고블린 한 마리가 급하게 뛰어왔다.

바닥에 구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지저분했고,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무슨 일이냐? 케륵.”

옆에 있던 케륵이 먼저 나서서 물었다.

“저, 적의 기습입니다! 바로 근처까지 와 있습니다!”

“뭐라고?”

난 깜짝 놀라 그를 다그쳤다.

그는 자신이 정찰조의 일원이라고 했다.

“정찰을 마치고 본대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빈 공간에서 대군이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조원들이 목숨을 바쳐서 자신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 말을 한 그는 절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람, 바람 부족이었습니다!”

바람 부족.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본래 다음 목표가 바로 그들이었으니.

“놈들이 확실하냐? 분명 놈들의 부족은 이틀은 넘게 걸릴 거리일 텐데?”

“확실합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족장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바로 전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케륵, 잠시 적들의 진군을 늦추고 오겠다. 빨리 진형을 갖추어라!”

난 그렇게 말하고서 바로 스킬을 써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하얗게 변했던 시야가 확 트이며 아래가 훤히 보였다. 하지만 적의 병력은 보이지 않았다.

<탐색>

그렇기에 스킬을 사용해 눈과 귀에 덧씌웠다.

몇 번이나 단계를 높인 스킬은 이런 식으로도 응용이 가능했다.

두두두-!

기운이 제대로 작용하자 소리가 먼저 들렸다.

땅을 울리는 소리.

그리고 저 멀리 무언가가 무리를 이루어 달리고 있는 게 보였다.

공중에 떴던 몸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지면서 놈들의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제기랄.”

분명히 놈들이었다. 어마어마한 수의 대군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기겁할 만한 일은 놈들의 주변을 두르고 있는 기운이었다.

병력 전체를 아우르는 푸른색의 기운.

‘대규모의 주술?’

기가 질릴 정도의 규모다.

주술의 수준을 보면 아예 상대도 못 할 정도로 고등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주술사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소리군.’

오크 부족을 함락시키는 동안에도 놈들은 계속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저 결계 때문에 정찰조의 눈에도 걸리지 않았고.

‘적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곳이 마경인 걸 알면서도 적의 힘을 함부로 재단해 버렸다.

‘제기랄.’

뼈아픈 실수이지만 우선은 지금 상황의 대처 방안을 먼저 생각했다.

자책해 봤자 변하는 건 없을 테니.

다시 한 번 스킬을 사용해 몸을 띄우고서 권능을 연달아 사용했다.

포인트를 이용해 구입한 징벌의 벼락들이 놈들을 향해 내리꽂힌다.

콰과과광-!

벼락이 무수하게 쏟아졌다. 처음엔 효력을 발휘하는 듯 보였다.

군데군데 쓰러지는 놈들이 꽤 보였으니까.

챠르르르-

하지만 갑자기 다른 기운이 놈들의 위로 떠오르더니 벼락을 사방으로 흩트려 버렸다.

‘저놈!’

본능적으로 기운의 발원지를 찾아냈다.

거대한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녀석.

“키아아아아아-!”

놈이 무어라 소리친다.

멀리 떨어져 있어 그저 괴성으로만 들리는 말소리.

하지만 그에 따라 놈들의 몸놀림이 기민해졌다.

‘족장.’

특별히 치장이 화려한 놈. 놈은 몇몇 트롤들이 지고 있는 가마에 올라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놈이 지팡이를 들어 무언가 소리칠 때마다 주황색의 빛이 퍼진다.

그 빛은 트롤들을 회복시키고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몇 번 더 사용해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뿌득- 하고 이가 갈렸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후우.”

벼락과 그 상위인 징벌의 벼락까진 어느 정도 살 만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강력한 권능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초반에는 대부분 건설, 식료품, 성장 등의 ‘운영’ 항목에 중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권능을 마음대로 사용하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포인트가 필요하다.

“케륵! 너는 일전에 말해 두었던 계획을 실행해!”

“알겠습니다!”

케륵은 뒤에 따로 대기하던 몇몇 부족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상황이 어그러졌다고 해도 실행할 것은 해야 한다.

케륵이 빠지면 초기의 피해는 커질 테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게 맞다.

‘너무 늦지만 않으면 돼.’

그렇게 속으로 되새기며 불안함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크룩, 빨리빨리 움직여!”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하는 크룩을 보다가 어느 정도 진형이 갖춰진 후 외쳤다.

“방패 조! 전원 방패 들어!”

둥, 둥, 둥-

거친 북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쪽이 아니라 바로 저 맞은편에서.

두두두-

뒤이어 들리는 건 거친 발소리. 앞의 능선을 따라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내 발소리의 정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멧돼지와 비슷하지만 어금니가 훨씬 길고 더욱 커다란 덩치를 한 맹수.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괴물들. 바로 바람 부족의 선봉들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들을 이어 등장한 것은 오크보다 몇 배나 큰 키의 거인들.

내 덩치만 한 방망이를 들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후우우-

뜨거운 열기를 담은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후읍.”

그리고 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느새 능선에는 적군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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