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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7화 (17/170)
  • 17화

    부족으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올 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타 부족들을 확인하고, 펜릴이 말한 괴수들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쉽지는 않겠어.’

    지금까지 벼락 부족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가 있다면.’

    이번 여정에서 타 플레이어의 흔적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슬슬 외연을 넓혀 나가야 한다.

    망설임에 갇혀 시기를 놓치면 다른 이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으니까.

    아직도 가끔씩 도플갱어에게 먹힌 플레이어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난 결코 죽지 않을 거야.’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저 앞에 있는 부족의 전경에 집중했다.

    지금 내가 눈에 담은 정보들이 모두 소중한 자산이 될 거다.

    휘익-!

    확인을 모두 끝내고선 다시 펜릴을 타고 내달렸다.

    마지막에는 거의 쉬지 않고 움직였던 것 같다.

    가끔씩 구슬을 통해 케륵과 크룩에게 연락하는 것 빼곤 쉬는 시간도 없이 움직였으니.

    ‘쉬는 건 부족에 도착해서 편히 쉬자.’

    안 그래도 슬슬 도착할 것 같은데.

    부족원들이 크게 반겨 주려나? 왠지 유치한 기대감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무너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족에 도착했을 때엔 모든 건물이 텅텅 비어 있었다.

    당황해서 케륵이나 크룩에게 연락할 생각도 못하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끄라라라라라라!”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발견했다.

    “크라아아악!”

    고블린과 오크들이 뒤섞여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잔뜩 흥분한 듯한 괴성이 울려 퍼지고, 그만큼 내 표정은 일그러졌다.

    “이게 뭐하는 짓- 이- 냐!”

    난 고함을 내지르며 펜릴과 함께 빈 공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쾅!

    땅이 크게 진동했다.

    크르르!

    녀석도 내 맘을 아는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블린과 오크들이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난다. 어쩐지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부족원들은 멀리 거리를 벌려라! 그리고 케륵과 크룩! 당장 이 앞으로 오도록!”

    분노에 가득 찬 음성으로 둘을 불렀다.

    곧 각 진영의 맨 뒤에서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헐레벌떡 내 앞으로 뛰어왔다.

    펜릴이 이를 드러내며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쳐다보았다.

    “오셨습니까! 족장님! 케륵.”

    “고생하셨습니다! 크룩.”

    둘은 공손하게 몸을 조아렸다. 난 그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거냐. 설마 내가 없는 사이에 다투기라도 한 것인가?”

    말투도 내 감정만큼이나 날이 서 있었다.

    케륵은 그런 내 모습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닙니다! 케륵. 저희가 어찌 감히. 저희는 단순히 훈련을 하고 있던 것뿐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크룩.”

    순간적으로 케륵의 말에 맥이 빠졌다.

    훈련이라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두려운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부족원들.

    그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있긴 하지만 눈에 띄는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처음 오크와 고블린이 양쪽에 편을 나누어 마주 서 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종족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 섞여 있다.

    딱 봐도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난 한숨을 쉬고서 다시 둘에게 말했다.

    “신전으로 가서 마저 얘기하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부족원들에게까지 대화가 들리지는 않겠지만 난 그들을 데리고 신전으로 갔다.

    부족원들은 둘의 지시 하에 뿔뿔이 흩어졌다.

    * * *

    “그래, 그게 훈련을 하고 있던 거라고?”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둘을 향해 물었다.

    크룩은 아예 주눅 든 모양새였고, 케륵은 비교적 침착한 태도로 내 말에 입을 열었다.

    누가 오크고 누가 고블린인지. 왠지 뒤바뀐 듯한 태도다.

    “케륵. 그렇습니다. 처음엔 족장님이 지시한 대로 기본적인 대련만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사냥을 비롯한 전투는 여럿이 무리를 이뤄 수행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련뿐만 아니라 소규모 전투, 나아가 오늘은 대규모 전투 훈련을 새로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후, 그래. 훈련 방법은 너 혼자 고안한 건가?”

    “아닙니다. 케륵. 저번에 족장님이 훈련에 대한 것을 말해 주셨던 걸 기억해 두었다가 크룩과 함께 상의하여 방법을 만들어 봤습니다. 족장님께 미리 허락을 구하고 시행했어야 하는 건데…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가 대족장이라 하나 부족은 혼자 이끄는 것이 아니니. 이미 좋은 방법이 있으면 시행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여럿이 진행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었다.”

    다만 쪽팔림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게 문제지.

    난 고블린과 오크들이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바로 눈이 뒤집혔었으니까.

    훈련이라기엔 너무 실감 나게 싸우고 있어서 깜빡 속았다.

    “다만 다음부터는 무슨 일을 시행하려 하는지 보고는 하도록.”

    “알겠습니다. 케륵.”

    “저, 저도 알겠습니다. 크룩.”

    그렇게 그 이야기는 끝내고, 내가 탐사를 나가면서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된 것은 오며 가며 봐 왔던 부족들에 대한 것이었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부족을 더욱 키울 생각이었기에, 이들에게도 미리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케륵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신전의 바깥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 늑대는 어떻게 길들인 것입니까? 케륵. 생김새도 그렇고 기세도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케륵.”

    “특히 행동으로 봐서는 이지를 갖춘 종으로 보입니다. 크룩.”

    둘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난 사실을 말하려다 멈칫했다.

    왠지 몽둥이로 후드려 패서 복종시켰다는 건 좀 없어 보이지 않나.

    난 고민을 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신께서 내리셨다.”

    “케르르륵?”

    케륵은 당황했는지 고블린어로 이야기를 했다. 난 험험 기침을 하고서 다시 말했다.

    “신께서 최근 신도들의 신앙심이 나날이 늘어 가는 것이 흡족하다고 하시더군. 그래서 우리를 위해 신수, 펜릴을 내려 주신 거네.”

    둘은 벙 찐 얼굴로 신전의 밖에 서 있는 펜릴을 다시 봤다.

    내가 처음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그 모습이 범상치 않기는 했다.

    아름다운 윤기가 도는 은빛 털에, 고고한 자태는 신수라는 이름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둘은 저도 모르게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케륵. 벼락 신님의 보살핌이 지극하심에 감격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 크룩. 벼락 신님은 대단하십니다. 크룩.”

    …케륵의 말솜씨는 정말 규격 외다.

    아무리 내 밑으로 들어온 후 성장의 혜택을 보았다고는 하나, 고블린이 이렇게 똑똑할 수가 있나?

    반면에 크룩은 허술한 말솜씨로 눈치를 보며 옆에서 거들 뿐이었다.

    “부족원들에게 신수 펜릴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모두들 기뻐할 것입니다. 케륵.”

    “그래.”

    난 슬슬 신수의 이야기를 끊고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둘이 고안한 훈련의 방법도 뛰어나나, 앞으로는 더욱더 체계적으로 훈련을 할 거다.”

    “케륵. 알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준비를 할 때가 왔다.”

    “무엇을 말입니까? 크룩.”

    난 둘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전쟁의 준비를.”

    * * *

    습한 기운이 모두의 몸을 짓눌렀다.

    이곳 마경은 기이할 정도로 그 기후가 제각각이다.

    벼락 부족의 공기가 그래도 제법 쾌청한 것에 비해서 이곳은 몸을 짓누른단 느낌이 들 정도로 습했다.

    그곳에 오크와 고블린들이 몸을 바짝 엎드리고 있었다.

    몸에는 진흙을 발라 냄새를 최대한 지우고, 그 위로는 풀을 덮은 상태였다.

    그들은 숨을 죽인 채로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쿠웅-

    얼마나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부터 진동이 점점 커져 왔다.

    그것을 보며 오크는 눈을 빛냈다. 긴 기다림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쿠웅-

    푸스스-

    저 뒤의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주황색과 빨간색이 알록달록하게 섞인 도마뱀이었다.

    몸체가 어찌나 거대한지 펜릴보다도 커 보였다.

    오크와 고블린들은 놈의 모습에도 겁먹지 않고 그저 때를 기다렸다.

    그 큼직한 몸을 움직여 놈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위치는 정확히 그들의 앞이었다. 몇 차례 정찰을 통해서 녀석의 이동 경로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쿠웅-

    그리고 드디어 놈의 앞다리가 그들을 지나쳤다.

    이어서 뒷다리가 들리기 전 오크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크라아아아아!”

    오크들은 커다란 함성을 내지르며 줄을 번쩍 들었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도 똑같이 오크들이 일어났고, 줄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도마뱀은 뒷다리를 들었다가 그대로 줄에 걸렸다.

    “끄우으웅?”

    놈은 신음 소리를 내며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케르르라라라라!”

    이어서 오크의 옆에 계속 엎드려 있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부족의 비법을 따라 제조한 독침을 발사했다.

    많은 침들이 거대 도마뱀의 거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하지만 제 목표를 이룬 몇 개의 독침은 도마뱀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끄우어어어어엉-!”

    놈은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놈은 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늑대가 놈의 목덜미를 거칠게 물어뜯었으니까.

    꽈앙-

    도마뱀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짓눌렸다. 펜릴은 양발로 도마뱀의 몸에 압박을 가하며 거칠게 목을 물어뜯었다.

    덩치 차이가 났기에 도마뱀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펜릴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크라라아아아!”

    하지만 놈은 끈질기게 한번 물은 것을 놓지 않았다.

    거대한 괴수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가 숲을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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