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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5화 (15/170)
  • 15화

    이번에는 바람을 느끼기 전에, 땅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놈이 나를 향해 질주해 오고 있다. 이미 한 번 타깃이 된 이상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다.

    은신 스킬을 가진 데다가 그 기본형이 ‘늑대’이니 도망가더라도 끈질기게 따라올 게 분명했다.

    후우우웅-

    아까 전처럼 바람이 훅 불어왔다.

    이번엔 단순히 피하려 들지 않고 옆에 있는 나무를 타고 올랐다.

    타악-

    나무를 박차고 공중으로 떠오른 순간.

    콰아악-!

    놈이 허공에서 나타나며 내가 오르던 나무를 할퀸다.

    바로 아래 놈이 있다.

    몽둥이를 꺼내 들며 기운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검은색이던 몽둥이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기운이 모였을 때 놈을 향해 내려쳤다.

    뻐어어억-!

    “대가리!”

    머리와 몽둥이가 부딪힌 거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놈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스킬로 강화된 공격력과 뚝배기 브레이커 업적, 두 가지의 보정을 받은 일격이다.

    체급 차를 생각하더라도 위협적인 공격이었을 거다.

    놈은 크게 휘청거리더니 이내 몸을 크게 흔들어 나를 떨쳐 냈다.

    빠악-!

    나는 떨어지면서도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가 닿기 전에 놈은 사라졌지만 공격은 분명히 먹혔다.

    타악-

    늑대 특유의 누린내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멀리 피하진 않은 것 같다.

    아마도 빈틈을 봐서 다시 공격해 올 생각인가 본데…….

    부스럭.

    그때 바로 오른쪽에서 소리가 났다. 난 반사적으로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퍽-!

    몸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허공을 날았다.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 늑대가 다시 달려드는 게 보인다.

    몸을 비틀어 재차 공격해 오는 늑대의 발톱을 피하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놈의 공격이 내 허벅지를 깊게 베었다.

    “크흡.”

    허벅지에 난 상처를 손으로 막았다. 화끈거리는 고통이 올라온다.

    영약하게도 놈은 그사이에 또 몸을 숨겼다.

    계속해서 은신을 이용해 기습을 가하고 있으니 이대로는 놈의 공격에 휘둘리기만 할 텐데.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기에 시간을 오래 끌수록 내가 불리하다.

    “끄으으으읍.”

    우선 전격의 기운을 끌어올려 상처를 지져 버렸다.

    전투와 관련된 특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데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였지만 곧 정신을 차리며 생각했다.

    ‘놈이 공격해 오는 것을 기다리기만 해선 안 돼.’

    은신을 쓰고 있는 놈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놈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포인트 상점 창 오픈.’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상점 창을 열었다.

    최대한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걸 들키지 않게 연기를 하며 빠르게 목록을 훑었다.

    ‘이거다!’

    다행히 적절한 아이템이 보였다. 바로 그것을 구매했다.

    후욱-!

    놈이 다시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공격해 왔다.

    허벅지의 통증 때문에 위험했지만 가까스로 놈의 공격을 피했다.

    바닥을 뒹굴면서도 놈이 거리를 벌리기 전에 재빠르게 아이템을 사용했다.

    <활력의 오오라>

    손끝에서 뻗어나간 녹색의 빛이 놈의 몸을 감싼다.

    대상에게 활력을 돋워 주는 오오라다. 공격용도 아니고, 본래는 아군에게 사용하는 권능이다.

    효과가 약해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지만…….

    ‘찾았다.’

    지금 이 순간에는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놈이 다시 몸을 숨겼는데도 녹색의 오오라는 여전히 일정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뇌룡 질주>

    번쩍거리는 시야. 한 줄기 벼락으로 화한 몸이 빠르게 내리꽂힌다.

    바로 늑대의 머리 위로.

    망설임 없이 놈의 털을 한 손으로 꽉 쥐며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재미 좀 봤지?”

    이제 나도 재미 좀 보자.

    콰앙-!

    몽둥이가 놈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이 개자식!”

    “끄우어어어어어-!”

    놈의 울음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몽둥이를 내리쳤다.

    또다시 거칠게 몸을 흔들며 나를 떨어트리려 했지만 난 이미 놈의 털을 꼭 붙들고 있었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냐.’

    쾅! 뻐억-!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손아귀에 강한 반탄력이 느껴졌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깨에에엥!

    그런데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머리만 노리던 것을 멈추고 몸을 고루고루 패기 시작했다.

    네임드라 그런지 피통이 큰가 보다.

    그 와중에도 능력을 써서 몸을 빼려는 건지 몸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그래 봤자 손맛은 그대로지만.

    “깨개엥-!”

    계속해서 몽둥이를 내리치자 놈이 어느 순간 단말마를 내뱉더니 푹 쓰러져 버렸다.

    뻐억-!

    난 그것을 보고도 멈추지 않고 몽둥이를 계속 내려쳤다.

    아까 전보다 더 골고루 강한 힘을 실어서 내리쳤다.

    놈은 완전히 몸을 축 늘어트리고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순간 놈이 다시 눈을 번쩍 떴다.

    -그마안-!

    머릿속으로 강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난 그때에서야 몽둥이를 휘두르는 걸 멈췄다.

    “네가 말한 거냐?”

    -그렇다, 인간.

    “인간?”

    나는 다시 몽둥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놈이 바로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인, 인간님!

    “호진 님이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녀석은 놀랍게도 말을 할 줄 아는 놈이었다.

    그것도 머리에서 머리로 곧바로.

    나야 좋은 일이다. 말이 통한다는 건 더 효과적으로 협박할 수 있다는 소리이니.

    “그래서 왜?”

    -살려 주십시오.

    “내가 왜?

    놈은 눈을 또르르 굴리더니 내가 다시 몽둥이를 들어 올리려는 기색을 보이자 급하게 말했다.

    -저, 저는 희귀한 약초가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보물로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몬스터나 인간들이 쓰던 물건들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예?

    난 씩 웃으며 말했다.

    “그냥 눈 마주친 걸로 죽이려고 해 놓고 그런 걸로 퉁 치겠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그럼.

    난 당황한 듯한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놈을 살폈다.

    바닥을 뒹굴며 빛이 좀 바래긴 했지만 꽤 있어 보이는 은빛 털. 생긴 건 상당히 기품 있게 생겼다.

    전투 능력도 좋고, 이런 덩치에 은신 능력은 정말 사기다.

    특히 대인전에 있어선 그 능력이 더 빛을 발할 거다.

    그리고 위에 올라타 놈을 내리치다 보니 생각보다 승차감이 괜찮고.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뭐든 말만 해 주십시오.

    녀석은 아예 몸을 바짝 엎드려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늑대라서 자존심이 세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하는 짓을 보면 그냥 개가 따로 없다.

    곧 꼬리도 흔들 기세인데?

    “내 펫 해라.”

    -펫? 그게 무엇입니까?

    난 곧바로 펫 계약 창을 띄웠다. 이 게임엔 바로 펫 시스템도 있는 것이다.

    한번 계약을 맺으면 지능이 있는 놈이라도 절대 나에게 반항할 수 없다.

    이놈처럼 지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겐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창이 뜬다.

    놈은 눈앞에 나타난 글자를 보더니 곧 표정이 일그러졌다.

    “계약서다. 읽어 봐.”

    게임 내의 몬스터나 NPC라도 이런 종류의 메시지 창은 읽을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인식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 굴리지 말고.”

    이놈, 분명히 간이고 쓸개고 빼 줄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딴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이 상황만 벗어나면 어떻게든 복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지금도 내 눈치를 슬쩍슬쩍 보고 있다.

    “귀찮은데 그냥 죽일까?”

    다시 몽둥이를 높게 들자 놈은 몸을 움찔 떨었다.

    나한테 고루고루 얻어맞았으니 지금은 도망갈 힘도 없을 거다. 내가 놔줄 생각도 없고.

    곧 놈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하겠습니다! 계약!

    화악-

    [새로운 펫이 등록되었습니다.]

    놈의 말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계약이 성립됐다.

    [펫의 이름을 정해 주세요.]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정해 줘야 하는구나.

    으음. 녀석을 다시 보다 보니 곧 이름 하나가 생각났다.

    “펜릴. 네 이름은 앞으로 펜릴이다.”

    -저, 저에겐 바람의 갈퀴라는 훌륭한 이름이…….

    “펜릴아, 이름 마음에 들지?

    슬쩍 몽둥이를 들어 보인다. 바람의 어쩌고는 너무 길고 부르기 불편하니까.

    -저에게 어울리는 멋있는 이름입니다. 감사합니다.

    놈은 알아서 내게 복종했다. 난 그것을 보면서 다시 새롭게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최초로 펫을 등록하였습니다.]

    [VVIP 팩 특전으로 펫 아이템 꾸러미가 주어집니다.]

    오! 이건 예상 못 한 건데. 구성품에서 미처 확인 못 했던 거다.

    난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템을 확인했다.

    “끝내주네.”

    -예?

    “너 말고.”

    아이템 구성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대부분이 지금 상황에 유용한 것들이다.

    난 우선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이템 사용.’

    화악-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빛이 놈에게로 흡수됐다.

    녀석의 몸이 순식간에 처음 봤을 때처럼 회복되었다.

    펫 회복제다. 아마 모든 상처가 없어졌을 거다. 놈도 놀랐는지 몸을 휘휘 움직여 보인다.

    “이제 안 아프지? 바쁘니까 출발하자.”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몸을 획 움직여서 나에게 입을 벌렸다.

    시커먼 아가리가 내 머리 바로 위로 다가와 있었다.

    난 헛웃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앉아.”

    깨갱!

    갑자기 놈이 획 낮아졌다. 그 와중에 혀를 깨문 건지 비명을 내지른다.

    펫은 계약된 이후부터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할 수밖에 없다. 강제로 그렇게 되니까.

    시간을 더 투자해서 놈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굴렸다.

    “이제 가 볼까?”

    -네! 빨리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립니다!

    “오버하지 말고.”

    -저의 주인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항상 진심입니다!

    난 픽 웃었다. 빡세게 굴려 줬더니 아주 난리가 났다.

    안 그래도 슬슬 출발할 생각이었기에 아이템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펫 전용 안장.]

    [펫 전용 안장. 탑승자의 승차감을 높여 준다.]

    [승마 스킬을 두 단계 올려 준다.]

    펫 아이템 꾸러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아이템 사용.’

    손에 들려 있던 물건이 빛으로 화해 펜릴의 몸을 감싼다.

    이내 놈의 몸 위에 딱 적당한 크기의 안장이 생겼다.

    “읏차.”

    훌쩍 놈의 몸 위로 뛰어 올랐다. 안장에 앉으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편안했다.

    “역시 돈이 최고야.”

    VVIP 어쩌고로 유료 아이템을 받지 않았더라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다.

    꼭 이 안장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의 내 생활 전반에서 말이다.

    ‘결국 병 주고 약 주고지만.’

    애초에 내가 고생하는 이유가 게임사 놈들 때문이니 퍽 고마운 마음은 안 들지만 말이다.

    “가자!”

    -옙!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 버리고 힘차게 외쳤다.

    파앙-!

    내 외침을 따라 펜릴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놈의 속도는 내가 기운을 써서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나 혼자 기운을 써 가며 움직였더라면 며칠은 걸릴 거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다 왔습니다.

    펜릴이 멈춰 서며 내게 말했다. 난 그의 몸 위에서 일어나 저 앞을 내다봤다.

    그곳엔 흔적이 있었다.

    펜릴보다 열 배는 넘는 크기로 보이는 괴수의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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