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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4화 (14/170)

14화

“자세히 말해 봐.”

“그, 그. 흰색의 거대한 뱀이었습니다. 그놈이 오크 부족 하나를 덮치는 걸 봤습니다.”

마경의 가장 외곽 지역을 맡아서 정찰하고 온 고블린.

그는 천천히 설명했다.

다른 부족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크 부족 옆을 지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웬 거대한 흰 뱀이 오크 부족에 다가가는 걸 봤다고 했다.

“그 오크들은 그 뱀을 ‘이무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뱀 하나에 부족 하나가 통째로 당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제가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결코 심상치 않은 일이다.

우리 부족도 몇 번 거대 괴수를 사냥해 본 적이 있다.

보통 괴수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나 그게 몬스터 부족 하나를 없애 버릴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로 강한 놈들이 많으면 애초에 오크니 부족이니 하는 몬스터들이 부족을 이루지도 못할 테고.

‘모여 있으면 그 족족 잡아먹힐 테니까.’

난 굳은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다가 생각했다.

“본래 내일 내가 정찰을 떠나기로 했었지.”

“안 됩니다!”

케륵이 날 굳은 표정으로 보았지만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찰대원을 보냈다간 피해가 클 수도 있어. 어차피 가기로 했던 거 내가 겸사겸사 확인하고 올게.”

“하지만.”

“날 못 믿는 건가?”

내 농담조의 말에 케륵은 머뭇거리며 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진 않은 모습이다.

잠깐 동안 그 모습을 보다가 난 벌떡 일어났다. 바로 술동이를 놔둔 곳에 가 잔 두 개에 술을 가득 담아 왔다.

“자!”

그리고 케륵에게 다가가 그에게 잔을 주며 어깨동무했다.

그는 엉겁결에 내가 내민 잔을 받아 들었다.

“다 같이 한잔하지!”

그러고서 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치자 옆에서 불쑥 누군가 튀어나왔다.

“오, 크룩! 알겠습니다!”

크룩이었다.

얼굴을 보니 이미 살짝 취한 것 같다.

이 자식은 지금 말해 줘도 별 소용 없을 것 같다.

“대족장님을 위하여! 건배!”

“건배!”

다 같이 잔을 부딪쳤다. 독한 술이 목으로 넘어간다.

일부러 케륵, 그리고 크룩과 함께 연거푸 잔을 부딪쳤다.

그러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케륵! 족장님! 저희한테에에엔. 케르르루르르! 케르륵!”

그리고 결국 케륵은 취했다.

만취한 케륵은 인간 말과 고블린 어를 섞어 가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토를 몇 번이나 하더니, 다른 고블린들에 의해 부축되어 본인의 숙소로 갔다.

“하.”

항상 복잡한 머릿속.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악몽.

평소엔 잘 마시는 술을 연거푸 들이마신 건 술기운을 빌려 그걸 조금이나마 잊고 싶어서였다.

떠나기 바로 전날인데 괜히 어색한 분위기로 있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도.’

어쩐지 씁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에 대해서.

난장판이지만 한껏 흥이 오른 광경을 지켜보며 나도 술을 홀짝였다.

* * *

“케륵. 족장님. 조심해서, 으욱. 다, 다녀오십시오.”

“크룩! 부족은 저희들에게 맡기고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부족원들에겐 비밀로 했기 때문에 케륵과 크룩 둘만 나를 배웅했다.

여전히 숙취가 남은 듯 헛구역질을 하는 케륵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 다녀올게. 아, 그리고 이거 받아.”

난 케륵과 크룩 둘에게 작은 구슬을 꺼내서 하나씩 건넸다.

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보자 나도 구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통신구 같은 거야. 이 구슬을 쥐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고 강하게 생각하면.”

[일대일 통신구]

[한 쌍으로 이루어진 구슬. 사용을 하였을 때 상대방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다.]

구슬을 쥐고 속으로 케륵을 강하게 떠올렸다. 그러자 나와 케륵의 구슬에서 환한 빛이 들어왔다.

“이렇게 빛이 들어오고, 먼 거리에 있어도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오오! 대단합니다! 크룩!”

“시, 신기한 물건이군요. 케륵.”

육성으로 하는 말과 구슬에서 나오는 말이 겹쳐 들렸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이걸로 말해. 나도 가끔 생각나면 연락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둘은 동시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 외에도 여러 당부의 말을 나누고 정말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럼 잘 있어라. 케륵도 잘 지내고, 크룩도 잘 지내.”

내 마지막 인사에 케륵과 크룩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바로 내가 각각 오크과 고블린어로 말을 했기 때문이다.

[1급 몬스터 언어 알약]

바로 큰맘 먹고 지른 이 알약 덕분이다.

아무래도 일일이 둘의 통역에만 의지하다 보니 불편해서 어제 이것저것 사면서 같이 구입했다.

“케르륵르르!”

“크러러어어!”

둘도 각자 종족의 언어로 말을 했다. 그렇게 배웅을 받으며 정말 길에 올랐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고 떠나 볼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바로 지도였다.

“이 방향인가?”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도가 움직임을 따라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하얀색의 점도 그것을 따라 움직인다.

바로 게임 상에서 ‘미니맵’과 같은 기능을 하는 지도다.

지도 제작 스킬로 만든 것과 다르게 이건 직접 들고 봐야 한다.

언뜻 들으면 더 불편한 거 아닌가 하겠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어휴, 이거 없었으면 생고생 할 뻔했네.”

난 빽빽하게 주변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처음엔 고블린이나 오크들에게 지도를 작성시키고 참고하려 했었지만 그들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렇다고 내 스킬만 믿고 움직이기엔 가 보지 않은 지역은 전혀 표시되지 않으니.

반면에 이건 마경 내에서도 이 근방의 지역들은 모두 표시가 되어 있다.

[마경 제 0-2구역 지도]

신화 포인트 상점은 사용자의 성장에 따라 품목이 조금씩 업데이트되는데, 이것도 얼마 전 생긴 거였다.

내가 이곳이 ‘마경’이라는 걸 확신한 후에 생긴 아이템.

나중에 내 ‘지도 제작’ 스킬이 더 성장한다면 이 아이템을 아예 내 미니맵에 합칠 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지도를 보면서 대충 방향을 정해 둔 후에 속에서부터 기운을 끌어올렸다.

온몸이 파지직거리는 뇌령의 기운에 휩싸인다.

후우우우웅-

거친 기운이 주변에 훅 바람을 불러온다.

뇌룡 질주 스킬은 두 가지 방식으로 발현이 가능하다.

단거리 순간이동 기능. 이것은 따로 스킬의 이름을 말해서 발동시키는 액티브 스킬이다.

반면에 지금 사용하는 것은 패시브의 형태.

뇌령의 기운을 한번 끌어올려 적용하면 기운이 모두 소모되기 전까진 계속해서 유지된다.

오크 족장을 상대할 때 그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던 게 액티브였고, 전투 도중에 내내 기운을 두르고 있었던 건 바로 패시브였다.

파악-!

주변 풍광이 순식간에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순간 이동보단 못하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다.

강화된 신체로 달릴 때가 경차라면, 지금 느끼는 기분은 마치 최고급 스포츠카에 탑승한 상태다.

후웅-

특히 평지가 아닌 이런 숲에서는 그 속도가 더욱 두드러진다.

장애물이 보일 때마다 알아서 몸이 회피하며 정말 벼락과도 같이 움직인다.

부족원들의 앞에서 일부러 근엄한 척해야 하던 족장으로서의 나를 벗어던지고, 이 순간에는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다.

쐐에에엑-

스킬을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한 건, 기운이 전부 떨어진 후였다.

“음, 조금 벗어났나?”

제대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신나게 달리다 보니 원래의 경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신화 포인트를 소모해서 기운을 좀 더 빨리 회복할 수도 있었지만, 방향도 바로 잡을 겸 그냥 걷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뭐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한참 걷던 도중이었다.

지도를 봐 가며 걷고 있었는데 새롭게 나타난 지역에 검정색의 점이 한 개 찍혀 있었다.

“검은 점은…….”

하얀색 점은 나. 초록색의 점은 아군. 그리고 빨간색의 점은 일반적인 적의 표식이다.

그럼 검은색의 점은…….

“네임드 몬스터인데?”

네임드 몬스터.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라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강하거나 특별한 몬스터를 지칭하는 이름.

굳이 몬스터가 아니라도 인간 세계에서의 ‘장군’, ‘유명한 기사’, ‘마법사’ 등도 이에 해당됐다.

생각해 보니 그 유명한 마경인데 네임드 몬스터가 없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마경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기에 어떤 네임드 몬스터가 있는지는 잘 몰랐다.

“어떻게 할까.”

검은색 점은 이동 경로에서는 좀 떨어져 있긴 했다.

또 당장 내가 상대할 수 있나 없나 확신이 서지도 않고.

오크와 고블린들 사이에선 압도적인 전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그 둘이 초보자용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초보 몹들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마경이다 보니 일반적인 초보자 몹보다는 강했지만 틀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고.

내가 처음 떨어진 곳이 고블린이 꽉 잡고 있던 영역인 데다가 빨리 나에게 항복을 선언해서 그렇지, 다른 몬스터를 만났거나 고블린들이 처음부터 수십 마리가 덤볐다면 나도 힘들었을 거다.

아무리 VVIP 팩이 적용된 상태라도.

“흐음.”

반면에 네임드 몬스터는 아무리 약한 놈이라도 꽤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가 보자!”

네임드는 잡기 힘든 만큼 그 보상도 크다.

그렇다고 바로 잡으러 가는 건 아니고 우선 멀리서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아이템도 하나 있고.

방향을 틀어서 검은색 점이 찍힌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부스럭-

“거의 다 왔는데.”

다시 지도를 살펴봤다. 검은색 점과 거의 근접해 있었다. 하지만 울창한 숲 때문인지 시야가 꽉 막혀 있다.

파지직-

기운을 끌어올려 높은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갔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검은 점이 위치한 방향을 살펴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늑대?’

은빛의 갈기가 인상적인 늑대를.

외양은 내가 알고 있는 늑대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엄청 큰데?’

그 크기가 집채만 했다. 크기로 따지면 고블린 부족 근처에 서식하던 괴수보다 컸다.

놈은 숲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녀석을 보고 있으니 거리가 꽤 먼 데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크기가 큰 것 빼고는 특이한 점은 안 보였지만 저 크기에 몸통 박치기만 당해도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특히 몸놀림이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날렵해 보였다.

‘아쉽지만 다음에 부족원과 함께 잡으러 오는 게…….’

아쉬운 마음을 정리하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놈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쪽을 봤다.

‘설마?’

먼 거리임에도 덩치 때문인지 놈의 코가 벌름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아예 펄쩍 뛰어올라 나무를 밟아 가며 무섭게 뛰어오기 시작한다.

고민할 틈도 없이 나는 바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뇌룡 질ㅈ……!’

콰앙-!

목적지를 설정하기도 전에 내 몸이 하늘을 날았다.

순식간이었다.

속도는 빠르지만 아직까진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놈의 모습이 사라졌다.

당황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내가 올라타 있던 나무가 획 꺾였고, 난 그대로 튕겨 나간 거다.

<뇌룡 질주>

우선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바로 스킬을 완성시켰다.

콰광-!

“크윽.”

시야가 번쩍이더니 내가 정한 곳으로 벼락과 함께 이동했다.

아마 놈도 내가 어디 있는지 바로 알아챘을 거다. 이 스킬은 다 좋은데 그 이펙트가 굉장히 화려했으니까.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는 좋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후웅-

한껏 경계심을 끌어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훅 불어왔다.

생각할 것도 없이 스킬을 두른 채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갑자기 불쑥 거대한 늑대의 형상이 나타나더니 내가 원래 있던 자리의 나무를 날려 버렸다.

쾅-!

다시 한 번 펄쩍 뛰어 올라 공격해 오는 놈을 피했다.

<뇌룡 질주>

스킬을 사용해서 다시 거리를 벌렸다. 최대한 거리를 벌린 상태로 생각을 하기 위해서.

“제기랄, 은신 스킬을…….”

땅바닥에 내려앉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늑대는 은신 스킬을 가진 게 분명했다.

네임드 몬스터들 중엔 가끔 스킬을 가진 놈들이 있다.

은신은 그중에서도 까다로운 걸로 유명한 특성이었다.

한낮에도 바로 앞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불쑥 튀어나와서 공격을 하면 막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덩치가 커서 그런지 가까이 왔을 때 그 기척이 확실히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쿠웅-!

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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