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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2화 (12/170)

12화

도플갱어의 구슬을 사용하기 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이 아이템을 사용하면 어떤 식으로 기억을 보게 되는 걸까?

게임에서라면 평범하게 동영상이 재생됐을 거다. 아니면 퀘스트 일지나 신화 창이 갱신되거나.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그런 방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끈-

“으윽!”

갑자기 두통이 확 밀려왔다. 입을 열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거대한 기억의 홍수가 날 덮쳤다.

* * *

“너는 맨날 게임만 해서 어떻게 되려고 그러니?”

“노는 거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제가 취업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해요?”

“취업이 안 되면 알바라도 좀 해! 그렇게 집에만 박혀 있지 말고!”

한 남자와 여자가 보인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그리고 그녀의 잔소리에 질려 하는 청년.

내가 봤던 도플갱어가 뒤집어쓰고 있던 그 모습이었다.

‘원래 저렇게 생겼었구나.’

이렇게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도플갱어가 들어가 있을 땐 기괴한 느낌이 더 강했는데, 지금은 그저 평범한 청년일 뿐이다.

저게 원래 저 청년의 모습이겠지.

“아, 제가 알아서 할게요!”

쾅-

남자는 나가기 직전까지 잔소리를 하는 여자에게 소리치고서 문을 세게 닫았다.

그리고 나에겐 그런 남자의 감정이 흘러들어 왔다.

‘그놈의 잔소리.’

사실 방금 전까지도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 어머니가 뭐라고 하는 걸 이해 못 하지는 않았다.

알바라도 하라는 건 집안 사정 때문보다는 맨날 집에만 있는 자신이 답답해서 그럴 터.

“후우.”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도 게임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던 청년.

어떤 게임을 하든 랭커가 되는 일이 부기지수였다.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었지만 운이 좋지 않아 가입했던 팀이 공중분해 돼서 지금은 그저 백수의 신세.

여기까지가 흘러들어 온 남자에 대한 정보다.

난 지금의 상황에 전율했다. 내 시야는 공중에 떠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속마음이 궁금하다고 생각하자 바로 속내가 들린 것이다.

사내에 대한 모든 것이 느껴졌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사내에게 집중했다.

“하아.”

사내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 맨날 하던 것처럼 구인 사이트를 확인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알바 사이트를 켰다.

‘이건 좀 별로고, 이것도 좀 그런데.’

딱히 알바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청년은 알바라도 해 볼까 하던 마음이 빠르게 식어 갔다.

대부분이 힘들어 보이거나 조건이 별로였다.

“어?”

그런데 그때 청년의 눈에 어떤 글이 확 들어왔다.

[게임 베타테스터. 자세한 조건은…….]

청년은 밝아진 표정으로 글을 확인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지원 신청을 넣어 두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그는 곧 잠이 들었고, 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수많은 기억이 지나갔다.

체감 상으로는 고작 몇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런데 벌써 몇 주가 지나갔어.’

기묘한 시간의 흐름이다.

내가 느끼는 것과 별개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그렇다고 무언가 생략되는 것도 없었다.

밥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봤다.

그런데도 몇 달의 시간이 내겐 고작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이 기억에 휩쓸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남의 기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기보단 엄청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어느 날.

청년은 지원 신청을 넣었던 알바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고작 알바일 뿐인데도 청년은 뿌듯한 심정을 느끼며 그날을 기다렸다.

“반갑습니다.”

그렇게 그날이 되었을 때 바로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더 리얼>

내가 지금 있는 곳. 이 게임의 이름.

청년이 그런 명패가 붙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게 보인다.

시큰둥하게 지난 기억을 보고 있던 나도 순식간에 몰입했다.

그를 맞이한 건 인상 좋아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청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에, 할 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건을 건네주었다.

“집에 캡슐은 있다고 하셨죠?”

“아… 예.”

“방금 말했던 대로 자택에서 이걸 꽂아 넣고 플레이하시면 됩니다.”

“결과 보고는 어떻게……?”

“따로 안 하셔도 되요. 모니터링 요원이 따로 확인할 겁니다.”

청년은 약간 불안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사무실에는 오직 남자 한 명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풍경은 아니었다.

마치 유령 회사처럼. 오직 남자 한 명만 의자에 앉아 그를 상대하고 있다.

띠링-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급여는 말씀했던 대로 일부를 선 입금 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이 일이니만큼 보수를 조금이라도 미리 드리는 게 일에 집중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남자는 계약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예.”

기억속의 청년은 입금된 금액에 홀리고, 이어진 전문적인 계약 사항에 홀린 듯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섰을 때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뒤돌아서서 남자에게 질문했다.

“저 말고도 테스터가 많이 있나요?”

“아, 테스터요?”

남자는 청년의 질문에 잠시 웃는 낯 그대로 멈칫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남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많은 테스터분들이 있습니다. 지원자분처럼 알바로 고용되신 분도 있고, 조건이 맞아 저희가 따로 권유 드린 분들도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청년은 머뭇거리다가 딱히 할 말이 없어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 * *

<게임이 설치되었습니다>

계약 상의 기입되어 있는 날이 되었을 때 청년은 캡슐에 들어갔다.

그 이후는 나와 같았다. 똑같이 퀘스트를 수행하고, 숲을 헤맸다.

“하필 마경이네.”

그리고 남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머무르는 장소가 어딘지 알아챘다.

나도 그것을 보면서 이 숲이 ‘마경’이라는 것에 대해 더욱 확신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드디어 그 시점이 왔다.

“저게 뭐지……?”

회백색의 꾸물거리는 생명체. 난 한눈에 그것이 도플갱어의 동체인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에 가까이 접근했다.

작은 단검을 들고 접근하긴 했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덥썩-

“으아아아악!”

회백색의 생명체는 남자의 머리에 덥썩 들러붙었다.

남자는 단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전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후우우우우욱-

그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남자의 생각이 끊기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채운다.

바로 도플갱어의 기억이었다.

‘어떻게?’

그리고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플레이어. 더 리얼. 게임? 나는. 나는 몬스터. 살려 줘. 누구? 엄마. 지겨워. 잔소리. 랭커.

남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고, 지루해하고.

심각한 오류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도플갱어의 말에서 전부터 찜찜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확연히 다가왔다.

도플갱어는 남자의 게임 속 기억뿐만이 아니라 ‘현실’의 기억까지 흡수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임 속의 몬스터가 현실을 인식하다니. 그것도 개인의 사생활까지.

그 와중에도 장면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일부러 흔적을 남기며 날 유인하는 장면.

나를 또 다른 ‘플레이어’라고 인식하는 도플갱어.

나를 새로운 숙주로 삼겠다는 생각.

그리고 도플갱어의 소멸까지.

뚝-

[아이템의 사용이 끝났습니다.]

“허억!”

눈이 번쩍 떠졌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손으로 온몸을 더듬거리다가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몇 달간의 기억을 보았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세 가지.

-남자는 꽤나 고액의 돈을 받고 테스트에 임했다는 것.

-그는 유료 아이템 지원 같은 건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앞선 두 가지보다 더욱 중요한 정보.

“도플갱어가 현실의 기억까지 가져간 것.”

비정상적이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몸이 떨렸다.

애써 외면하고 외면해 온 사실이 날 무겁게 짓눌렀다.

‘이건 정말 게임일까?’

도플갱어가 현실의 기억까지 흡수한 것. 그래, 오류일 수도 있다.

통각 설정이 MAX로 되어 있는 것. 그것도 오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로그아웃이 안 되는 것은? 그것도 오류일까?

그리고 앞선 두 가지도 과연 오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게임이 아니면 뭐지?’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면 지금 이건 뭐란 말인가.

결코 결론을 낼 수 없는 답이었다.

게임의 개발자가 사이코여서 사람들을 게임 속에 강제로 가뒀다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비현실적이었다.

요새도 가끔씩 꿈을 꾼다.

‘일어나면 병원에 있는 거지. 장기간 로그아웃이 안 돼서 구조 신호가 보내져서 구출되고.’

그런 내용의 꿈이다. 난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짙은 어둠이 날 덮친다.

“그리고 깨면 이 빌어먹을 곳이고.”

마음이 너무 착잡하다. 두서없는 생각에 머리가 띵- 하고 울릴 지경이다.

“다른 플레이어는 어디 있을까.”

풀리지 않을 의문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 *

고민은 며칠 동안 이어졌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무언가를 단정 짓기에는 단서가 너무나도 부족했으니까.

“후우.”

한숨을 내쉬고서 허공에 떠 있는 로그아웃 버튼을 다시 눌러 보았다.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로그아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틈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클릭해 보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언젠가 로그아웃을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게임 클리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나아가야 하는 걸까.

“빌어먹을.”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땅만 걷어차다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케륵. 오셨습니까.”

“응, 작업은 어때?”

지금 마을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이주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옮길 것이 별로 없기에 생각보다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기존에 고블린과 오크 부족은 그렇게 멀지도 않았지만, 한 부족이라고 보기에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아예 오크 부족의 근처에 고블린 부족의 터를 새로 잡기로 했다.

“아마도 몇 시간 내에 끝날 것 같습니다. 케륵.”

“알았어. 조금만 더 고생해 줘.”

나는 케륵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이번엔 오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오크들은 이번에 고블린 족과 함께 습격했을 때 손상된 것들을 복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내가 사용한 권능인 벼락 때문에 무너진 것이기 때문에 솔직히 좀 찔리기도 한다.

“크룩. 오셨습니까.”

이곳에서는 주술사였던 크룩이 재건을 지휘하고 있었다.

아까 케륵에게 했던 것처럼 진행 상황을 물어보고 격려해 주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이곳저곳 구경을 하면서 부족원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데 주력했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가끔씩 이렇게 신화 포인트를 수급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이렇게 조금씩 들어오는 포인트도 꽤 쏠쏠하다.

생각보다 작업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고, 저녁쯤에는 대략적으로 작업이 끝나 갔다.

“케륵, 크룩. 부족원들을 모두 가운데에 공터로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케륵.”

“예. 크룩.”

나는 먼저 내가 말한 공터로 걸어갔다. 새로 이주한 고블린 부족과 오크 부족 사이엔 커다란 원형의 공터가 있었다.

내가 일부러 비워 두라고 한 공간이다.

곧 부족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다 모였을 때 두 명 다 내게 와서 보고를 했다.

“모두 도착했습니다. 케륵.”

“오크도 모두 모였습니다. 크룩!”

“그래, 둘 다 이쪽에 서 있어.”

둘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들을 양옆에 세웠다.

오크 부족과 고블린 부족을 합치니 인원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

숫기가 없어 장기자랑 한번 해 본 적 없는데.

이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아니 몬스터들 앞에서 말을 하고 있다니.

묘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다시 앞을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한 부족의 이름을 쓰게 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발음한다. 모두에게 잘 들리도록.

“우리를 이어 준 것은 바로 벼락 신의 뜻.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시간! 해가 벼락 산의 꼭대기에 걸렸을 때 우리는 기도를 드린다!”

내가 말을 한 것을 케륵과 크룩이 각각 자신들의 부족의 언어로 번역해 주었다.

처음 다들 모아 놓고 연설을 했을 때는 신화 포인트를 이용해서 자동 번역을 했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도! 벼락 신! 키르르르!”

“벼락 신! 벼락 신! 크루루우-!”

다들 크게 함성을 터드리더니 곧 일제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 눈앞으로 장관이 펼쳐졌다.

정말 끝내준다.

[신화 포인트 상승합니다]

[신화 포인트 상승합니다]

[신화 포인트 상승합니다]

.

.

.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상이 아니었다.

바로 내 눈앞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메시지를 보고 느낀 생각이었다.

다들 진심을 다해서 기도를 하는 건지 들어오는 포인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더니, 딱 끝나는 순간 화룡정점을 찍었다.

[신도들이 첫 번째로 정식 기도를 올렸습니다.]

[신화 포인트 100,000P를 달성했습니다.]

그야말로 대량 포인트 쾌척! 그리고 기쁜 메시지는 연이어 펼쳐졌다.

[단결된 기도의 힘!]

[정식 부족으로 승격할 요건을 한 가지 충족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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