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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1화 (11/170)

11화

오크 부족의 주술사. 그러고 보니 전투 중 주술사를 본 적이 없었다.

벼락 부족의 족장인 케륵이 주술사도 겸하는 것과 달리 오크는 족장과 주술사가 구분되어 있다.

오크 족장의 무력만큼이나 주술사의 주술도 위력적일 터. 그래서 상당히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전투 때 보지 못한 걸까?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신의 사도시여.”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군.”

“예, 부족하지만 의사소통에 문제없을 정도는 됩니다. 크룩.”

음, 케륵은 말할 때마다 케륵거리더니, 얘는 크룩이라고 하네.

주술사에게 혹시 이름이 크룩이냐고 묻자 별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날 쳐다봤다.

“제 이름은 $#^%입니다. 크룩.”

엄청 자랑스럽다는 듯 자기 이름을 말하는데, 솔직히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오크가 그냥 흥분했을 때 내지르는 함성이랑 비슷해 보였다.

“그래, 크룩. 너는 전투 중에 뭐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냥 크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크룩은 썩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내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저는 처음부터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왜지?”

그다지 자랑스러운 답변은 아닐 텐데 녀석은 가슴을 쫙 펴고서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어진 내 질문에 갑자기 넙죽 엎드렸다.

“저희도 벼락 신님을 믿겠습니다. 저희 부족을 받아 주십시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당황해 할 말을 잃었다.

옆의 케륵을 보자 녀석도 비슷해 보인다. 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자처해서 고블린에게 지배를 받겠다는 소린가?”

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자존심이 강한 오크가 고블린의 밑으로 수그리고 들어가겠다니.

하지만 크룩은 그 뜻이 아니라는 듯 인상을 굳혔다.

“아닙니다. 저는 고블린이 아니라 벼락 신의 사도이신 당신의 밑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얼마 전 고블린 부족을 습격했을 때 저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사도님을 보았었죠.”

녀석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관찰했습니다. 크룩. 그리고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절대 사도님에게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요.”

“흠, 족장은 별로 그런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저희 족장은 힘만 세고 무식한 놈이었습니다. 크룩. 제 말을 아예 무시하고, 심지어 절 가둬 놓기까지 했습니다.”

난 크룩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했다.

크룩의 속내는 뻔했다.

어차피 망한 거 고블린 밑으로 들어가기는 싫으니 차라리 내 밑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거다.

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보니 고블린들의 숭배를 받고 있고, 케륵도 나에게 공손하게 대한다지만 난 실질적으로 지배력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어도, 결정권이 내게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케륵. 사도님, 잠시 얘기 좀.”

그때 케륵이 내게 먼저 말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주술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벌리고 얘기를 나눴다.

“수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지?”

“당신이 벼락 신님의 사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의 지배자이시고요.”

케륵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 짧은 말 속에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케륵은 나를 단순히 상징뿐인 사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지배 권력자로 올릴 생각이다. 하다못해 인간도 자신이 가진 한 줌의 권력을 놓지 않고 싶어 하는데 케륵은 어떤 생각인 걸까.

내가 족장의 위에 선다면 그의 권력이 볼품없이 위축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저의 보잘것없는 권력은 사도님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신의 종으로서 사도님을 가까이 모시는 걸 바랄 뿐입니다.”

그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또한 오크와 오랫동안 반목을 해 오긴 했지만, 벼락 신님의 품 안으로 들어올 모든 새로운 자식들을 개인적인 원한으로 막을 순 없지요. 신께서도 그것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케륵.”

나는 케륵의 말을 듣고 멍해졌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정치적이었다.

그의 말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은 겨우 오크와 고블린 둘뿐이지만 언젠간 다른 종족도 포섭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는 나의 최측근으로서 행사할 권력이, 지금 고블린 부족의 족장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너의 뜻은 충분히 알겠다.”

우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오크 주술사에게로 향했다.

“크룩, 그대의 오크 부족을 벼락 신님의 밑으로 들어오는 걸 허락하겠다.”

“저, 정말입니까? 크룩.”

“그래, 자세한 얘기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나눠 보도록 하지.”

오크들의 처리는 그렇게 끝났다. 족장인 케륵과 나는 오크 부족에 남아서 뒤처리를 하고, 나머지 고블린들은 부족으로 돌아갔다.

케륵 말고도 똑똑한 고블린이 몇 있으니 그들이 알아서 부족을 정비하고 있을 거다.

나와 케륵, 그리고 크룩은 오크 부족에서 긴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 갔다.

가장 큰 골자는 종교에 대한 것. 그리고 각자의 지위였다.

모든 합의가 끝났을 때 고블린 부족과 오크 부족의 가운데에 모두를 불러들였다.

새롭게 바뀐 것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

“우리 ‘벼락’ 부족과 오크 부족은 오늘부터 하나가 될 것이다.”

난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부끄러워서 하기 싫었지만, 크룩과 케륵의 강한 권유에 떠밀려 올라온 자리다.

“부족의 이름은 그대로 ‘벼락’으로 하되, 앞으로 우리 부족은 하나의 종족이 아니라 모든 종족을 아우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공통점은 오직 하나. ‘벼락 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뿐!”

께르르르르르-!

크라아아아아-!

뒤에서부터 함성 소리가 퍼져 나왔다.

미리 케륵과 크룩이 손을 써서 내 말에 무조건 기쁜 함성을 지르라 명령해 둔 놈들이다.

곧 다른 오크와 고블린들도 그 함성에 휩쓸려 똑같이 기뻐하기 시작했다.

왜 기쁜지도 모르고 따라 하고 있는 놈들이 대부분일 거다.

“오크족 주술사 크룩! 그는 앞으로 벼락 부족 제사장의 지위를 가질 것이다!”

크라아아-!

오크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반면에 고블린들은 멍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연이어 말했다.

“그리고 고블린족 족장 케륵! 그는 앞으로 벼락 부족 대제사장으로서 부족원들과 모든 제사장을 지휘하는 자리를 맡을 것이다!”

께르르르르를-!

케르르륵-!

이번엔 아까 전보다 더 커진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직위를 설정할 때 솔직히 좀 망설여지긴 했다.

이제 겨우 두 부족을 합친 것뿐인데 대제사장이라거나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륵은 더 멀리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마경에는 수많은 부족이 있다고.

“그리고, 나 벼락 신의 사도인 이호진은!”

다시 한 번 내려앉은 정적에 심호흡을 하고서 크게 소리쳤다.

“벼락 부족의 족장의 자리에 오름을 선포한다!”

내가 말하자마자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오크도 고블린도 모두 크게 기뻐했다.

[신화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포인트가 오르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나는 슬쩍 그것을 보고서 준비해 두었던 것을 실행했다.

‘권능 사용.’

<벼락>

징벌의 벼락보다 훨씬 낮은 단계의 권능. 소모되는 포인트도 그리 크지 않지만 지금 상황엔 딱 적합하다.

꾸르르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인다. 그리고 곧.

콰광-!

한 줄기 벼락이 내 몸에 내리꽂힌다. 짜르르한 느낌이 전신에 감돈다. 뇌룡갑은 내게 닿은 뇌전의 기운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뇌전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뇌령의 기운이 성장합니다.]

남들에겐 자폭 공격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훌륭한 에너지 공급원. 게다가 남들에게 보이는 비쥬얼도 끝내준다.

“우리는 이제부터 벼락이다!”

아직도 온몸에는 전격이 튀는 상태로 크게 소리쳤다.

볼품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크게 함성으로 보답했다.

그렇게 부족 통합식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끝나고 나서는 모두들 술과 음식을 꺼내어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 * *

술은 원시적이기 짝이 없는 것으로 그 맛이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만 한 잔을 들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하아, 팔자에도 없는 짓을 하고 있네.”

술을 홀짝이면서 푸념을 내뱉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륵. 족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천막 안으로 들어온 케륵은 내게 예를 표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케륵. 저번에 말씀하셨던 걸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그의 말에 난 깜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케륵은 지팡이를 꽉 쥐고서 말했다.

“방금 전 갑자기 주술력이 크게 상승하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그 구슬을 다룰 수 있습니다.”

케륵의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젠가 때가 오리라 생각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으니까.

오크 부족을 통합하면서 케륵에게도 영향이 있었던 걸까?

난 바로 인벤토리에서 구슬을 꺼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케륵.”

구슬을 케륵에게 내밀었다. 케륵은 조심스럽게 구슬을 받아 들더니 내게 물었다.

“바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한쪽에 앉더니 구슬을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양손으로 쥐고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화악-

환한 기운이 케륵과 그의 지팡이를 감싼다.

그러더니 그의 앞에 있는 도플갱어의 구슬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키르르-”

고블린의 언어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주술의 한 종류인 것 같다.

그의 주술이 이어질수록 기운은 점차 구슬로 모여들었다. 기운은 퍼졌다가 다시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툭-

그리고 갑자기 기운이 사라지고 구슬은 바닥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온 구슬은 내 발치에서 우뚝 멈췄다.

“끝났습니다. 케륵.”

케륵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게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서 굳은 표정으로 구슬을 집어 들었다.

<탐색>

눈에 초록빛이 감돌고 구슬의 정보가 떠오른다.

[정제된 도플갱어의 구슬]

[정제 과정을 거친 도플갱어의 구슬. 사용 시 구슬에 있는 기억을 흡수할 수 있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케륵, 고생했어.”

“아닙니다. 케륵. 족장님께 도움이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케륵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걸 보고서 난 구슬을 꽉 쥐었다.

정제를 마쳤기에 부작용은 없을 거다. 며칠 동안 피곤하긴 하겠지만.

다만 망설임이 든다.

그때 가졌던 의문점들. 그것을 이제 확인할 수 있다.

분명히 좋은 일일 텐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후우.”

난 한숨을 내쉬고서 짧은 고민을 마치며 말했다.

“아이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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