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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9화 (9/170)

9화

크게 소리치니 놈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차분히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전투를 겪으며 광전사 능력은 온전히 내 통제 밑에 둘 수 있게 됐다.

더는 내가 아닌 것처럼 날뛰지 않는다는 뜻이다.

슈우욱-

시야가 붉게 변한다. 하지만 더 이상 미쳐 날뛰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더 폭력적이고, 능동적으로 싸울 뿐이다.

파지지지지직-!

온몸에서 푸른색의 전격을 내뿜으며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텅-! 맨 앞에 있는 놈의 도끼날을 피하고 그대로 자루를 쥔 손을 가격했다.

우득.

뼈가 으스러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놈은 도끼를 놓친다.

파지지지직-!

또한 전격은 놈의 몸을 파고들며 움직임을 제한한다.

내 본능이 최적의 공격, 회피 경로를 알려 준다.

나는 그것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인가아안!”

뒤에서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몸을 옆으로 살짝 트니 도끼가 내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다.

음경에 발차기 한 방. 다시 머리통.

파지지직!

“끄그그그극!”

그 와중에도 전격은 꾸준히 적의 몸을 파고 들어가며 틈을 만들어 준다.

온몸을 무기 삼아 휘둘렀다. 몸이 빨라질수록 오크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허물어진다.

나중에는 목숨을 끊지 않고 무력화시키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오크들은 위협적으로 쳐들어왔던 것이 무색하게 모두 무력화되었고, 뒤늦게 도착한 고블린의 본대에 그대로 쓸려 나갔다.

“케르르르르-!”

고블린들의 함성이 부족에 울려 퍼졌다. 피해가 제법 컸다. 승리했지만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

“후우. 부족장, 먼저 들어가서 좀 쉴게.”

“케륵. 알겠습니다. 제가 뒷정리를 할 테니 편히 쉬고 계시죠.”

“그래. 아, 그리고 씻을 물도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피에 가득 젖어 번들거리는 몽둥이. 말할 것도 없이 온몸에도 피를 뒤집어쓴 상태다.

전보다 더 경외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고블린들이 부담스러워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갔다.

[뚝배기 브레이커 업적 달성!]

[앞으로 치명상을 가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머리 부위에 대한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머리 부위에 대한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대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가 집요하게 머리를 노리던 이유였다.

과거 게임으로 즐길 때도 이 업적을 달성했던 적이 있었는데 꽤 쏠쏠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좀 여유를 되찾은 뒤로는 쭉 머리만 노리고 공격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달성한 거다.

“하아.”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난 한숨을 쉬며 영지 창을 열었다.

[벼락 부족]

[총원: 329명]

[영지 발전도: 하중(下中)]

[충성도: 96%]

발전도는 다행히 그대로. 하지만 총원이 21명이나 줄었다.

게다가 오크의 습격이 이게 끝은 아닐 터. 한 번 공격했으면 두 번 공격할 수도 있으니.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 도님. 끼르륵. 물입, 니다.”

그때 부족원 한 명이 물을 가득 담은 주머니를 가져다주었다. 시원한 물로 씻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헝겊으로 몽둥이에 묻은 핏자국까지 닦아 낸 다음 털썩 드러누웠다.

처음엔 검정색이던 몽둥이는 계속해서 피로 물들였기 때문인지 지금은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나 싸움이랑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잠깐 사이에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로그아웃할 수 있을까.”

항상 혼자 있을 때면 그런 고민에 휩싸이곤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 보려 애써도 잠깐일 뿐이다.

게임의 시스템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가끔씩 내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곤 하는 거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메시지가 뜰 때는 안도감이 든다.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탈출구처럼.

이런저런 상념을 이어 나가며 누워 있는데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몸을 일으켜 앉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륵. 접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천으로 만들어진 문을 들어 올리고 부족장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지?”

“피해 상황이나 케륵. 대응 방안 등을 말씀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흐음. 말해 봐.”

나는 케륵의 말을 들으며 그에 대해 생각했다. 본래 게임에선 고블린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게 나온다.

기본적으로 성정이 급하고, 쉽게 흥분하며, 무언가를 익히는 게 서투르다. 그리고 인간을 자주 습격하는 몬스터로 나온다.

하지만 케륵을 비롯한 이곳의 고블린들은 내가 아는 것과 많이 달랐다.

“…거주지의 사분지 일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성정이 생각보다 난폭하지도 않고 충성심이 깊었다.

특히 유별난 점은 신앙심이었는데. 이곳의 토속신앙인 ‘벼락 신’에 대한 신앙이 깊었다.

부족장이 내가 신의 사도라고 하자마자 다들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충성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바로 부족장인 ‘케륵’이었다.

“듣고 계십니까? 케륵.”

“아, 다 듣고 있다. 경비를 보던 고블린들이 거의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나.”

“케륵. 그렇습니다. 그래서 습격 상황을 알리는 게 늦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만큼이나 똑똑해 보이니. 특히 이 벼락 부족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면서부터는 놀라울 정도로 영민한 모습을 보였다.

내 바로 밑의 계급이다 보니 시스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걸까. 웬만한 인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오크의 습격이 재차 이루어질 거라 예상합니다.”

“습격이라.”

어느새 케륵의 긴 보고는 끝이 났다.

나는 고블린들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다시 현황에 대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우선 현재 피해 상황은 꽤 컸다. 아직 내 손에 죽은… 전투원의 인원 회복도 다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습격이다.

본래 이 고블린 부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오크 부족의 습격이라고 하는데 그것 때문인지 여러 시설들을 파괴해 놨다.

“다시 습격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우스운 일이지.”

“케륵. 그 말씀은…….”

만약 한 번 더 부족이 빈 상황에서 습격을 받으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몰라 몸을 사리고만 있으면 정상적으로 부족이 돌아갈 리가 없다.

“먼저 친다, 우리가.”

“하지만 정면으로 싸운다면 저희가 불리합니다. 케륵.”

“오크들의 수는 어느 정도지?”

“케륵. 전투원은 대략 백 정도 됩니다.”

고블린보다는 적은 수였다. 하지만 고블린이 여러 마리가 모여야 겨우 오크 하나를 상대할 수 있다.

전력비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불리하다.

특히 우리 부족에 케륵이 있는 것처럼, 오크 쪽에도 부족장이 있을 터.

“좋은 생각이 있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벼락 부족에는 나도 있으니까.

물론 지금의 내 전투력만으로 전황을 뒤엎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아껴 뒀던 게 있거든.”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한 수가 남아 있었다. 나는 손등의 인벤토리에서 아껴 둔 물건 두 가지를 꺼내 들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상자 둘. 그 위에는 이런 이름이 써져 있다.

[최고급 장비 상자]

바로 이번에 신화 포인트가 쌓여 전사 등급을 달성하며 얻은 아이템이다.

[상태 창]

이름: 이호진

레벨: 6

직업: 벼락 부족의 전사 / 벼락 신의 사도

힘: 70

속도: 68

기술: 69

체력: 70

의지: 69

특성: 뢰신(雷身)

스킬: 전격 방출 (Lv.2), 전투 보조, 탐색, 지도 작성

고유 스킬: 뇌령 (Lv.2)

[신화]

현재 등급: 전사

벼락 신의 사도(희귀)

벼락과 함께 부족에 나타난 신의 사도. 벼락 고블린 부족의 부족원들은 사도에 대해 그전보다 더 큰 경외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부족원들이 진심으로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힘과 속도가 상승합니다. 고블린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동시에 일으킵니다. 벼락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벼락 신의 권능으로 스킬 숙련이 빨라집니다.

-현재 신화 포인트: 51,100/52,000P

며칠 동안 부족 인근의 괴물들을 잡고 다녔다. 특히 얼마 전에 잡은 ‘숲의 재앙’은 화룡 정점.

VVIP 팩에서 얻은 각 50의 스텟 보너스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지난 전투들로 전격 방출과 뇌령이 한 단계씩 성장했다.

게다가 신화 포인트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그 결과 전사 등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게임의 승급 테크 트리는 모험가–골목대장–전사–족장–대족장–왕–황제 순이다.

골목대장으로 얻었던 보상은 바로 ‘일회용 소생 권능.’ 얼마 전 벼락 산에서 자동으로 사용됐던 아이템이다.

그리고 바로 이번에 전사 등급을 달성하며 신화 포인트를 보너스로 25,000P 더 얻었고, 최고급 장비 상자까지 얻은 것이다.

신화 포인트는 신화 포인트 ‘상점’이라는 것을 이용해 아이템을 사거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절대치는 승급을 하는 기준이 된다.

현재는 51,100/52,000P이다. 왼쪽의 것은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의 양.

오른쪽은 승급을 하는 기준이 되는 총 누적치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지.’

추가로 하나의 아이템을 더 꺼내 들었다. 지금 상황에 화룡정점이 되어 줄 물건을.

[행운의 물약]

[VVIP 팩 전용 아이템. 10초간 행운 스텟을 300 상승시켜 준다.]

이 게임에서는 돈만 있으면 랜덤 확률에 마음을 안 졸여도 되거든.

행운 스텟을 300이나 상승시켜 주는 물약. 이 게임에는 몇 가지 숨겨진 스텟이 있는데 행운도 그중 하나다.

타격 판정, 아이템 획득 등등. 여러 가지에 적용이 되는 스텟이기 때문에 그 어느 스텟보다 효용이 높다.

그런데 무려 스텟을 300이나 올려 준다니.

뽑기를 아직 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 흥분된다.

이 물약은 맨 처음 받았던 랜덤박스에서 나왔던 물건이다. 일부러 안 쓰고 아껴 두고 있었지.

“케륵? 무엇을 보시고 계시는 겁니까?”

“응? 이게 안 보여?”

갑작스러운 케륵의 말에 당황해서 앞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케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케륵.”

스윽- 하면서 케륵이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의 손이 그대로 상자를 통과하는 게 아닌가.

나는 놀라서 몇 가지 아이템을 더 꺼내서 확인한 후에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확률형 아이템, 추상적인 효과를 주는 아이템 등은 안 보이는 건가.’

이전에 다른 아이템들은 명확히 인식했었기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난 케륵에게 대충 얼버무리며 우선 그를 내보냈다.

그의 눈에는 혼자서 허공을 보며 흥분하는 것처럼 보일 것 아닌가.

혼자가 된 후에 나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다.

“좋아, 열어 볼까.”

난 한 손에 행운 물약을 손에 쥔 채로 상자를 바로 열 수 있게 자세를 취했다.

10초 내에 상자를 다 열어야 한다.

팡-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물약의 뚜껑을 열었다. 향긋한 냄새가 올라오는 물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지체 없이 두 상자를 깠다. 그 안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색이 뒤섞이고 있는 상자의 내용물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후우우우욱-

갑자기 빛이 잦아들며 안에서 청명한 공기가 퍼져 나왔다.

상자의 안에는 새까만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아공간의 일종인가.

긴장되는 마음으로 상자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손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렸다.

“화, 황금빛?”

손에 끌려 나오는 장비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손에 들려 나오는 건 짙은 흑색의 갑옷이었다.

주변에 황금빛의 빛이 어른거리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유일급 아이템!

아이템은 보통, 희귀, 유일, 전설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이 상자에서는 유일급이 최고 등급이었다.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바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뇌룡갑]

[유일]

[신수 ‘뇌룡’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아이템의 성능이 일부 제한되어 있다.]

[방어력 + 350]

[마법 저항력 + 100]

[전격 속성 친화력 200% 상승]

[35% 확률로 투사체 속성 공격 면역]

[전격 속성 피해 면역]

[숨겨진 조건 달성 시 추가 능력 개방]

입이 떡 벌어졌다. 아이템 설명부터 옵션까지 범상치 않은 구석이 없다.

보통은 한두 개 달려 있을 옵션이 다섯 개나 달려 있는 데다가 무려 ‘용종’의 비늘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나.

게임 내에서 용종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제일 낮은 급인 드레이크조차 전투력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용종의 비늘로 만든 갑옷은 부르는 게 값이다.

게다가 신수 뇌룡이라는 이름을 보면 고작 드레이크 정도도 아닐 것 같고. 그야말로 대박이다.

“게다가 이게 제한된 성능이라고?”

특정 조건이 맞으면 추가 능력이 개방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역대급 아이템이다.

난데없는 오크의 습격에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응?”

그런데 그때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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