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키르르르르-”
놈도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날 노려보고 있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타닥-!
땅을 박차고서 중심을 낮추며 놈의 발을 노렸다.
잽싼 몸놀림으로 괴물은 다리를 들었지만 그 틈을 타서 그대로 몸을 타고 올랐다.
“키륵!”
거칠게 몸을 움직여 날 떨어트리려는 놈의 털을 꽉 붙잡고서 머리를 내리쳤다.
꽈득-!
제법 살벌한 소리가 들렸지만 쉬지 않고 몇 번 더 내리쳤다.
쾅-!
하지만 놈은 그걸 버티고서 날뛰더니 날 기어코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내가 쉽사리 떨어지지 않으니까 아예 나무에다가 몸통 박치기를 한 것이다.
“후우.”
그래도 비틀거리는 꼴이 데미지가 아예 없진 않은 것 같다.
저놈은 고블린들이 숲의 재앙이라 부르는 괴물이다. 벼락 부족의 근방이 놈의 영역이라서 꼭 해치워야 했다.
그래서 괴물의 습성을 조사하고, 약점을 파악하고, 함정까지 짠 후에야 놈을 사냥하기로 결정했었다.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 결국 이렇게 직접 상대하게 됐지만.
“후읍!”
강하게 집중하며 몽둥이를 꽉 잡았다. 파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몽둥이에 전격이 맺혔다.
예전엔 ‘전격’의 힘을 오래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때 벼락을 맞은 이후로 변화가 생겼다.
‘뇌령’이라는 게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즉, 마나로 비유하면 마나통이 엄청 커졌다고 해야 하나?
뇌령이 2단계로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전투를 겪으며 그 효과를 똑똑히 체감하고 있다.
덕분에 이젠 어느 정도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에 부담이 없어졌다.
쾅-!
기습적으로 앞발을 내지른 괴물의 공격에 마주 몽둥이를 휘둘렀다. 체격차가 어마어마했지만 나도 밀리진 않았다.
부족 근방의 괴물들을 사냥하며 스텟은 더 올랐다.
이미 인간을 한참이나 초월한 힘은 물리법칙조차 무시했다.
“깨겡!”
파지직-
거기다 전격의 힘이 놈의 발을 타고 올라갔다. 괴물은 애처로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놈을 쓰러트릴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
오늘의 목표는 따로 있으니까.
꽈앙-!
다시 한 번 몸을 날려 놈의 발을 쳐 올린다. 이번엔 미처 피하지 못한 괴물의 발이 그대로 꺾인다.
카가각-!
괴물은 그 와중에도 다른 발을 휘둘렀지만 애꿎은 땅만 긁을 뿐이다.
쾅!
그사이에 난 놈의 턱을 쳐 올렸다. 괴물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휘청거린다.
간신히 균형을 잃지 않고 버텨 내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지금!”
그래서 외쳤다. 딱 좋은 타이밍이기에.
휙-
근처의 나무에서 작은 신형이 튀어 나온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괴물의 몸을 날렵하게 타 오른다.
콰직!
그러고서 목덜미 쪽에 지팡이를 박아 넣는다. 끝이 날카로운 원뿔 모양으로, 지팡이보다는 말뚝처럼 생긴 무기다.
그다음에는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난 괴물이 그를 방해하지 못하게 계속해서 공격했다.
괴물도 자신의 몸 위에 탄 것을 신경 쓰면서도 내 공격에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다.
우르릉-
점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려든다.
“벼락이여!”
그리고 긴 주문이 끝났다.
꽈르르릉-!
동시에 하늘에서 하얀 빛줄기가 내리꽂혔다. 정확히 지팡이에 도달한 벼락은 그대로 괴물의 몸을 감쌌다.
“잘했어.”
“아닙니다. 케륵.”
괴물에게 직격으로 벼락을 꽂아 넣은 케륵은 내 말에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우리는 여유롭게 괴물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괴물이 혹시나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다.
내가 알기론 저 주문은 맞히기도 힘들고 오래 걸리긴 하지만 꽤 쓸 만하거든.
쿠웅-.
“켈룩!”
괴물의 몸이 쓰러지며 흙먼지가 훅 피어올랐다.
옆에 있던 케륵은 연이어 기침을 하고 있다. 난 이미 소매로 입과 코를 막고 있었지만.
“께르르르르!”
“케르륵! 사아도오! 비여어라악신!”
주변에서는 고블린들이 어설픈 인간의 언어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다른 몬스터나 괴수들을 걱정해서 이렇게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이 주변의 우두머리인 놈을 물리쳤으니 주변에 서식하는 놈들은 감히 덤벼들 생각을 못 할 거다.
“사도님, 고생하셨습니다. 케륵.”
괴수는 고블린들이 부족을 향해 나르기 시작했고, 나도 부족으로 돌아가려는데 부족장이 나를 향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부족장 케륵.
케륵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이 ‘벼락의 아이’라고는 하는데.
나는 여전히 고블린 말은 하나도 구분 못 하겠다.
“너도 고생했어.”
케륵은 밝은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다. 참, 이제는 고블린이 대충 무슨 표정을 짓는 건지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며칠 동안 고블린만 봐서 그런지 어쩐지 점점 친숙하게 느껴진다.
‘고블린 부족이라.’
난 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내 영지에 대해 떠올렸다.
고블린 부족. 처음엔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이들이 나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그걸 이용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부정적인 기억이 많았으니까.
내가 처음 죽인 생명체가 고블린이다. 그리고 숲을 헤맬 때 상당히 많은 수의 고블린을 죽였다. 나도 그만큼 많이 고생해야 했고.
그래서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앙금이 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케륵.”
케륵은 나를 순진무구한 얼굴로 올려다봤다.
“후우, 아니다.”
반대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고블린 덕분이다.
사실 아직도 이 게임에 대한 여러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로그아웃은 안 되고, 도플갱어 이후로 다른 플레이어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통각을 비롯해 맛, 촉감, 시각, 청각 모두 비정상적일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데도 버틸 수 있는 건 고블린들 덕분이다.
특히 말이 통하는 상대가 하나라도 있으니.
고블린은 처음엔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서 딴생각이 들지 않게 해 주고, 지금은 나름 말동무가 되어 버팀목이 되고 있다.
‘참, 내가 생각하도 이상하긴 하네.’
정상은 아니다. 나도, 그리고 고블린들도.
내가 백여 마리나 되는 고블린을 살해한 것과 달리 놈들은 나에게 깊은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나는 고블린의 깊은 호의에 저도 모르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튼.’
그것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정도였다. 머리가 복잡해질 정도로.
부족에 돌아가면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한숨 자야겠다.
그렇게 부족을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저 앞에서 고블린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께르르르락. 께르르!”
“케륵. 침착하게 말해 봐라.”
고블린의 언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 눈앞에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벼락 부족이 습격을 받고 있습니다. 습격을 막아 내세요.]
“사도님! 오크가 부족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급변했다. 고블린들은 곧바로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난 먼저 앞으로 뛰어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바로 옆에 케륵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장 케륵은 주술사 역할도 겸하고 있기에 전투력은 뛰어나지만, 신체 능력은 일반 고블린과 같다.
“업혀라!”
“예? 케, 케륵 그게 무슨.”
“빨리 부족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몽둥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망설이는 케륵을 그냥 억지로 업은 후에 달리기 시작했다.
레벨 업하면서 늘어난 능력치에다가 벼락의 기운까지 운용하니 주변의 풍광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뒤따라오던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케르르르으으으으!”
“입 닫아! 혀 깨문다!”
등에 업힌 케륵이 소리를 지르는 걸 무시하고 더 속도를 올렸다.
눈앞으로 계속해서 갱신되는 알림 창에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울타리가 파괴됩니다.]
[주거 시설이 5% 파괴되었습니다.]
[부족원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거 시설이 10% 파괴되었습니다.]
[생산 시설이 10% 파괴되었습니다.]
으득- 하고 이빨을 갈았다. 아직 이들에게 깊은 정을 가진 것까진 아니었지만. 오크라는 놈들이 침범한 건 내 영지다.
모든 것을 제쳐 두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분노가 치솟았다. 영역이 파괴되어 제 기능을 잃으면 페널티가 얼마나 큰데.
기껏해야 하중(下中)인 발전도가 하하(下下)까지 격하될지도 모른다.
“께르르르르를!”
달리다 보니 저 멀리서 고블린 특유의 괴성이 들렸다.
부족에 거의 근접한 것이다. 적당히 접근한 후에 케륵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전투 준비 해.”
“케, 케륵. 알겠습니다.”
몽둥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케륵도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지팡이를 들었다.
부족에선 고블린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케륵도 그걸 듣고서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기에 바로 부족으로 뛰어 들어갔다.
파악-!
가장 먼저 보인 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물이었다.
갈색의 피부에 짐승의 거죽을 걸치고 있었는데, 안의 시설을 파괴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게 오크인가? 게임 내에서도 비슷한 생김새이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긴가민가했다.
여튼 부족 내에 있는 괴물은 저것밖에 없었다.
“크륵! 인가안!”
놈은 지체 없이 도끼를 들고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도 놈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팔은 뒤로 제친 상태로.
가까워지자 놈이 도끼를 휘두르는 걸 보고 바로 몸을 숙였다. 휘익-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도끼가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빠각-!
“꾸워어어!”
뒤로 제쳤던 팔을 올려쳤다. 몽둥이가 놈의 음경에 꽂힌다. 녀석은 도끼까지 놓치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망설임 없이 놈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통이 부셔졌다.
얼얼한 손을 주무르며 다시 다른 적을 찾았다.
“크르륵! 동료! 죽었다!”
다른 놈이 동료의 머리통이 날아간 걸 봤나 보다. 놈은 고블린을 내려치다가 멈추고 나한테 달려들었다.
훅- 하는 소리가 나며 오크가 도끼를 짧게 찔러 온다.
동료가 당하는 걸 봐서 그런지 놈은 큰 동작을 자제하고 신중하게 덤볐다.
몇 번이나 잔 공격이 오갔다. 다시 한 번 휘둘러지는 도끼. 아직 몇 놈이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도끼의 자루를 어깨로 받아 냈다.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몽둥이를 놈의 몸에 가져다 댔다.
파직-
몽둥이에서 시작된 전기가 놈의 몸을 파고 들었다.
멈칫하는 놈의 발목을 걷어차서 균형을 무너트리고 그대로 머리에다가 풀스윙을 날려 주었다.
두 마리째.
이번에는 바로 달려드는 놈이 없다.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침입한 오크는 대략 스무 마리 가까이 돼 보였다.
오크를 처음 보긴 하지만 상대해 본 결과 본래의 전력이라면 결코 당하지 않을 수였다.
사냥 때문에 부족 내에 전투원이 별로 없었던 게 치명적이었으리라.
“케르륵! 벼락!”
나와 같이 왔던 케륵은 저 뒤에서 주문을 계속 외우는가 싶더니 지팡이를 뻗는다.
콰과과과광-!
하늘에서 작은 먹구름 같은 게 모여든다 싶더니 한참 파괴를 일삼고 있던 오크 무리 위로 벼락이 쏟아졌다.
족히 세 마리는 넘는 놈들을 쓰러트리고 나서야 먹구름은 흩어졌다.
“케르윽… 뒤, 뒤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부족장은 그대로 픽 쓰러져 버렸다.
아까 전 괴물 때도 주술을 썼기에 한 번 더 쓰고 난 지금은 힘이 다했나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오크를 노려봤다.
“다 덤벼! 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