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고블린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바로 무슨 소리냐고 되묻고 싶은 걸 참고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족장은 자신이 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나를 보고 있다.
‘함정인가?’
놈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생각은 없다.
다만 함정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날 해칠 생각이었다면 아까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무력화됐을 때 숨통을 끊는 게 편했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다. 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에겐 무어라 말씀하셨지?”
일부러 ‘난 이미 알고 있지만 너희에겐 뭐라고 말했냐’라는 뉘앙스로 말했다.
고블린은 한번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저희 부족에 자신의 전사를 보낼 것이라 했습니다. 케륵. 그리고 그를 따라서 부족의 번영을 이룩하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음, 예상은 했지만 개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벼락 신’이라는 놈이 누군지도 모른다.
전작에서는 ‘신’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이벤트 때 볼 수 있는 GM의 아바타를 뜻했었다.
이번엔 무언가 변화가 있는 걸까?
고블린 족장이 하는 말로 봐서는 원시적인 신앙의 한 형태인 것 같은데……. 얘들도 뭐 약 같은 걸 빨고 환상이라도 보는 걸까?
‘하지만 그냥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내가 실제로 이 부족에 오게 됐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가장 큰 의문이 그것이다.
내가 애초에 이 부족으로 향하고 있었다거나, 올 계획이었거나 하면 모를까.
내가 번개를 맞으리란 것도, 번개를 맞고 이곳으로 이동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애초에 이곳이 왜 안전한 장소인지도 모르겠고.’
아이템의 효능이라면 분명히 위급한 상황에서 안전지대로 이동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시스템 상으로 고블린 부족을 안전하다고 보증한 것이다.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이들이 무조건 나에게 해를 끼칠 일이 없다는 얘긴데.
‘아! 설마?’
“날 믿나?”
“케륵! 그렇습니다!”
계속 케륵거리고 있는 고블린은 눈을 반짝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스템 상으로 이들에게 그 ‘계시’라는 게 내려간 게 아닐까?
딱히 내게 확실하게 안전한 장소라고 할 만한 게 없으니.
시스템의 보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이곳을 안전하게 바꾸었다던가.
‘벼락 신의 이름을 빌려서 말이지.’
어쩐지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겠지만, 지금으로썬 확실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
“잠깐 밖에 나가 봐도 되겠나?”
“그러시지요. 케륵.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에게 허락을 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사도님에게 허락을 구해야지요.”
“그래.”
여전히 부담스러운 족장의 태도를 뒤로하고 그대로 입구를 가린 가죽을 거뒀다.
“윽.”
계속 어두운 곳에 있어서 그런지 밝은 빛에 순간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내 천천히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앞을 지나던 고블린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키르르-”
놈은 깜짝 놀라 바로 내 앞에 몸을 바짝 엎드리더니 이상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케르르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십 마리나 되는 고블린들이 나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몸을 바짝 엎드렸다.
나를 중심으로 엎드려 있는 그들을 보고서 나도 굳어 버렸다.
[새로운 영지 ‘고블린 부족’을 복속시켰습니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 *
고블린들은 내게 내내 호의적이었다.
족장을 제외한 다른 고블린들은 인간의 언어를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행동에서 항상 공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키륵-! 키르르!”
“…이건 무슨 뜻이지?”
“사도님을 위해서 토끼의 피를 가져왔다는군요. 케륵. 체력 증진에 아주 좋은 물건이지요.”
난 고블린 하나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는 걸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고블린의 손에는 가죽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엔 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들어 있다.
<탐색>
[정제된 토끼의 피]
[정제된 토끼의 피다. 토끼의 피를 베이스로 하여 몇 가지 약초를 넣어 정제한 물건이다. 체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 다만 굉장히 역하고 비린 향이 난다.]
“으음, 고맙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케륵.”
족장은 앞의 고블린에게 뭐라고 고블린어로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표정이 확 밝아지더니 나에게 몇 번이나 더 절하고서 돌아갔다.
“이만 들어가시지요. 케륵.”
“그래.”
나오려는 한숨을 참고서 내 천막으로 향했다.
내 옆에 걷는 족장 말고도 뒤에는 산더미 같은 물건을 들고 있는 고블린 두 명이 있다.
…처음 시작은 바로 어제였다. 고블린 하나가 나에게 쭈뼛거리며 와서는 웬 약초 같은 걸 주었다.
탐색 스킬로 확인해 보니 무려 영구적으로 스텟을 올려 주는 물건이었다.
난 굉장히 기뻐했고, 그에게 칭찬을 했다.
‘그 이후로 계속 이 상태고.’
거의 하루 종일 고블린들의 선물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다 내려놓으면 돼.”
그래서 결과물이 이것이다. 천막 한쪽에 정말 무수한 아이템들이 쌓여 있다.
대부분이 약초나 동물의 가죽, 피, 뼈 같은 것이다.
적어도 나중에 아이템을 제작할 때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아무거나 꺼내 쓰면 될 테니까.
‘대장장이가 없는 건 아쉽지만.’
다만 이 부족엔 이렇다 할 장인이 없다. 고블린들의 손재주가 나쁘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뭐, 얘기를 들어보면 몬스터들 중 대장장이가 있는 것 같긴 하니 급한 문제는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도 충분히 좋은 물건이니.
“케륵만 남고 나머진 내보내.”
난 족장의 이름을 부르며 나머지는 내보냈다. 그러고서 인벤토리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느낀 건 이들을 제법 믿을 만하다는 거였다.
우선 시스템 상으로도 이 ‘벼락 부족’은 내 밑으로 복속되었다.
‘영지 창’
[벼락 부족]
[총원: 350명]
[영지 발전도: 하중(下中)]
[충성도: 95%]
아직 발전도가 낮아서 영지창도 굉장히 초라하지만 적어도 ‘충성도’는 확인할 수 있다.
95%의 충성도면 딱히 나를 상전으로 모시는 것에 불만이 없다는 소리다.
이 정도까지 확인을 했으니 이제 가장 급한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때마침 케륵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게 무엇인지 아나?”
“케륵. 한번 봐 보겠습니다.”
우윳빛으로 탁한 색의 구슬을 받은 케륵은 그걸 유심히 보았다.
“신비로운 물건이군요. 케륵. 안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정제를 거치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직 제 실력으로는 힘들겠군요. 케륵.”
그의 말을 들으며 기대감을 느끼던 나는 마지막에 케륵이 낙담한 표정을 지을 때 똑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도플갱어의 구슬. 그 안에는 숙주와 도플갱어 자신의 기억이 들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얻었다고 해서 그 기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술사’나 ‘마법사’가 그것을 아이템화 시키고 난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케륵도 이 벼락 부족의 족장이자 주술사였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부족인가 보다.
“어쩔 수 없지.”
“케륵. 비록 지금은 안 되지만 조금만 더 제 성취가 올라간다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당황해하며 말했다.
어쩐지 그 모습을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슬쩍 웃었다.
‘아니, 아니지.’
그러고서 다시 정색을 했다. 고블린을 보고 귀엽다니. 내가 미쳤지.
“그럼 우선 성취를 올리는 게 우선이겠군.”
“그, 그렇지요. 케륵.”
난 케륵을 보면서 생각했다. 도플갱어의 구슬을 해결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지만 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던 게 있었다.
부족, 많은 수의 전투원.
나 혼자서도 이들의 기습을 격퇴하긴 했었지만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위험에 빠졌을 때도 있었고.
그리고 내 목표는 이 게임에서 나가는 것. 그걸 위해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신화를 쌓고.’ 그걸 위해서 ‘레벨 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해 봤을 때 지금 해야 할 것은?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획을 수립했다.
과거 게임에서의 기억을 되살린다. 오글거리는 명칭이었지만 나는 ‘카이저’로서 이 상황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한참 동안 턱을 쓰다듬다가 곧 고개를 번쩍 들었다.
최선의 공략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본격적으로 일 한번 해 보자.”
“케륵?”
발전도가 낮은 영지에서 손쉽게 등급을 올리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사냥과 침략.
* * *
“크르르르.”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
그 거대한 덩치를 받치고 있어야 해서일까. 괴수의 팔은 터질 듯한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머리는 개와 닮았는데, 그 몸을 보면 개보다는 신화 속에 나오는 켈베로스와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슉-!
바람 소리가 나더니 괴물이 움찔 몸을 떨었다.
괴수는 머리를 틀어 자신의 팔을 봤다. 그곳에는 나무 송곳 같은 게 박혀 있었다.
“크륵?”
슉, 슈슉-!
갑자기 풀숲에서 몇 개나 되는 나무 송곳이 괴수의 팔과 다리에 꽂혔다.
그리고 초록 머리가 그 사이에서 튀어나오더니 괴수를 향해 괴성을 내질렀다.
“케르르르륵!”
괴수는 그 흉악한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더니 커다란 포효성을 내질렀다.
주변에 있던 모든 새와 짐승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록 머리는 한 번 더 괴성을 지르며 괴수를 약 올렸다.
“크아아아아!”
탁-!
괴수는 망설임 없이 다리를 박찼다.
아예 몸을 수그리고서 팔까지 사용해 사족 보행을 하기 시작하더니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풀숲으로 뛰어든 괴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전까지 그를 약 올리던 초록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께르르르!”
그때 저 멀리서 또 그 초록 머리가 보였다.
괴수는 다시 한 번 그쪽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얄밉게도 초록 머리는 계속해서 몸을 숨기며 그를 유인했다.
그가 거의 잡을 때쯤이면 순식간에 사라져, 그의 발톱은 번번이 허공만 갈랐다.
“크라아아아!”
괴수는 더 흥분하며 속도를 높였다. 께르르르. 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난쟁이들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며.
놈들은 잡힐 듯 말 듯 계속해서 괴수를 유인했고, 괴수는 그에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께르륵!”
다시 한 번 나뭇가지 사이로 난쟁이의 대가리가 보였다.
괴수는 바로 달려들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계속해서 놓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달려들자고 충동질하는 괴수의 머릿속에서 오랜만에 복잡한 사고가 시작됐다.
곧 괴수는 포착할 수 있었다. 저 앞의 풀숲에서 초록 난쟁이의 머리가 다시 튀어나오는 것을.
‘카라라라?’
그리고 방금 전 나뭇가지 사이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놀리던 난쟁이가 다른 곳으로 몸을 날리는 것을.
“카라라라라라!”
괴수는 기쁨에 찬 포효성을 내지르며 옆으로 몸을 던졌다. 난쟁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괴수의 눈을 피해서 몸을 빼던 난쟁이는 흉악한 괴수가 덮쳐 오는 것을 보며 그대로 굳혔다.
눈앞의 것밖에 못 보며 멍청하기로 유명한 괴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치 못하는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저 높은 나뭇가지에서 무언가가 뛰어 올랐다.
빠악-!
괴수의 머리통을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내려친다.
그것은 검은 빛을 띠는 몽둥이였고, 얼마 전부터는 고블린들에게 신성시되는 물건이기도 했다.
파지직-
몽둥이에서는 전기가 튀어 올랐고, 괴수의 머리에서부터 몸까지도 그 전기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괴수의 머리통을 내리친 사내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괴수의 앞에 서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덤벼, 개 대가리야.”
“깨게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