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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5화 (5/170)

5화

몇 번을 클릭해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은 그저 기계적으로 로그아웃 불가 메시지만 띄울 뿐.

“이게 말이 돼?”

게임이 로그아웃이 안 되다니.

튜토리얼이 끝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지금까지 버텨 왔다.

몬스터들에게 쫓기는 초조함도,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통증도, 며칠 동안 혹사된 몸이 욱신거리는 것도 참았다.

곧 로그아웃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가자마자 게임사에 정식으로 항의를 할 생각을 하면서.

털썩-

방금 전 수많은 고블린에게 둘러싸였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절망감이 전신을 감쌌다.

마음 한편에 숨어 있던 불안함이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캡슐에 있는 내 몸은 괜찮을까? 우선 나가면 어떻게든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미뤄 뒀던 걱정이다.

벌써 게임 내에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본래라면 사용자가 장시간 동안 접속해 있을 경우, 캡슐이 신체를 주기적으로 체크해 영양이나 생리 현상의 문제가 발견될 경우 강제로 접속을 차단한다.

반면에 지금의 나는 문제가 발생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게임 속에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게임은 엄연히 ‘온라인’ 게임이라는 거다. 클리어라니? 온라인 게임에 엔딩이 있던가?

만약 엔딩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게임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때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게임의 클리어는 최종 등급까지 승급을 완료한 경우를 기준으로 합니다.]

[가장 먼저 승급을 완료해 보세요! 최초 최종 등급을 달성한 유저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상: 소원 성취]

하.

클리어 목표가 만렙이라는 말인가?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씨발!”

전작에서도 만렙, 아니 최종 등급을 달성하는 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몬스터를 잡는다고 승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조건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몇 달, 어쩌면 몇 년이 넘는 시간을 이 게임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몸이 멀쩡할 리가…….

화악-

그때 갑자기 시야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 빛이 정확히 내 눈앞에 덧씌워진 것임을 알아챘다.

탐색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된 것이다.

본래 액티브로만 쓰는 이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될 경우는…….

반짝-

무언가 유의미한 흔적을 찾았을 때뿐이다.

방금 전 미처 보지 못했던 위치에 사람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찍혀 있는 게 보였다.

고블린들의 발자국에 놓쳤던 그 흔적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레이어라면 나랑 비슷한 상황일 거야.’

진행 정도가 다르더라도 적어도 이 게임이 비정상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서 단지 지금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쫓아가자.’

모든 걱정을 잠시 미루고 발자국을 쫓았다.

마치 땅에 새겨진 발자국이 당장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다급한 마음으로.

마음 한구석에선 이것 또한 현실도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탐색>

연이어 스킬을 사용해 가며 그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 * *

“후우.”

확 높아진 경사를 보며 숨을 훅 내뱉었다.

예상보다 추적은 길어졌다.

고블린들은 그 이후로도 가끔씩 나에게 토끼나 짐승, 과일, 물 같은 걸 가져다 바쳤다.

처음엔 경계해서 바로 섭취하지 않았지만 아이템의 설명 창에 독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고는 조금씩 먹게 됐다.

덕분에 먹을 거나 마실 물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없어졌고, 내 이동 속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따라잡았단 말이지.”

이젠 제법 익숙해진 혼잣말을 내뱉으며 나무에 기대앉았다. 탐색 스킬의 사용 시간이 막 끝난 참이었다.

쿨 타임이 도는 동안은 휴식이다. 며칠 동안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벼락 부족이 의식을 진행 중입니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이놈의 고블린 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도 신화 포인트가 계속 불어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신화를 획득한 것부터, 가만히만 있어도 신화 포인트가 늘어나는 것까지 모두 좋은 일이다.

다만 고블린들한테 숭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좀 기분이 묘하다.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싸운 존재가 고블린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고블린의 머리통도 깨부수었다.

게다가 포션을 아끼려고 작은 상처는 치료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나뭇가지 위에서 불편하게 잠들었던 밤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그런데 내가 고블린들에게 숭배를 받는다라…….

“후.”

언제까지 근본도 없는 숭배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신화는 어차피 추후에 바뀔 수도 있고.

“그나저나 도대체 이동 속도가 얼마나 빠른 거야.”

처음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발자국이 갈수록 선명해졌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며칠 내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쉴 틈 없이 걸었는데도 따라잡지 못했다.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은 기분이다.

후두둑-

“비가 오네.”

산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발자국은 처음 내가 목적지로 삼았던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지금은 거의 정상까지 근접해 있는 상태다.

‘뭔가 이상해.’

그리고 추적을 하는 사이에 속에선 의심이 싹 트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분명히 탐색 스킬의 결과로 봐서는 이미 따라잡아도 한참 전에 따라잡아야 했다.

하지만 발자국은 일부러 나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듯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흔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우거진 풀숲을 지날 때 느꼈던 시선까지.

‘포기해야 하나.’

처음엔 그저 나를 경계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혼자 있었을 사람이 낯선 이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곤 생각 안 했으니까.

나도 처음엔 그저 반가웠던 것과 달리 지금은 다른 플레이어도 비슷한 상황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했으니.

“발자국이 지워지겠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높은 스텟 덕분에 빗속에 높은 경사를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발자국이 산의 정상을 향해 쭉 이어진 걸 확인했다는 거다.

꽈르르릉-

맑은 하늘일 때도 난데없이 내려치던 벼락은, 날씨가 흐려지기까지 하자 더욱 위협적으로 자주 내려치고 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나.’

지금까지 쫓아온 것과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리라는 기대감을 접는 게 아쉬웠지만 결국 결정을 내렸다.

지금 상황에서 저런 곳으로 다가가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 가지다.

비를 막아 주던 나무 아래에서 나와 지금까지와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푸욱-

비에 젖은 땅을 거침없이 밟으며 산을 내려갔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깨알같이 알림이 뜬다.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질척한 바닥 탓에 자주 미끄러져 생각한 것보다 이동 속도가 느렸다.

조심히 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길한 감각이 느껴졌다.

휙-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옆으로 날렸다. 무슨 의도가 있기보다는 탐색 스킬보다 더 자주 사용했던 전투 보조 스킬의 영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몇 번이나 반복했었던 행동이 반사적으로 나온 거다.

이를 테면… 고블린이 숨어서 독침을 쏘는 기습을 했을 때처럼.

파악-!

그리고 내가 본래 서 있던 쪽의 나무에 화살이 꽂혔다.

고블린들이 사용하곤 했던 조잡한 나무 화살과 달리 쇠 촉이 달려 있는 제대로 된 화살이었다.

푸스슥-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하고 바로 풀숲으로 파고들었다.

피잉-!

다시 한 번 화살이 날아들어 내 근처를 스쳐 지나간다.

‘전투 본능.’

위협을 느끼며 바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름 전투가 익숙해졌다지만 아직 스킬을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천양지차니까.

팍!

큰 돌멩이 두 개를 집어 들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한 바퀴 크게 굴렀다.

피잉!

화살이 둘 중 더 컸던 돌멩이를 날렸던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조잡한 술수였지만 녀석에겐 먹혀들었다.

연이어 화살이 몇 발 더 날아왔지만 내 근처로 오는 건 거의 없었다. 내 위치를 놓친 거다.

‘어떻게 하지?’

뛰쳐나가 공격하기엔 화살의 위력이 만만치 않다.

전투 본능도 직접적인 전투 상황이 아닐 땐 그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무슨 생각이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에 있던 발자국은 오롯이 하나뿐이었다.

지금까지 봐 온 몬스터 중에 활을 잘 쏘는 놈들은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는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누군지는 짐작이 갔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근처의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피잉!

내가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화살이 날아든다.

예측을 하고 쏜 것인지 제법 위협적인 곡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공격도 있었다.

몸을 숙이며 아슬아슬하게 피하고서 순간적으로 살짝 몸을 띄워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했다.

팍-!

나무에 화살이 꽂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방금 전 본 것을 떠올렸다.

‘플레이어다.’

직접 눈으로 본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얼굴은 이상한 가면을 써서 보지 못했지만 체격이나 옷차림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본래 전작에서도 PK범은 없지 않았다. 그쪽으로만 파고드는 미친놈들도 많았고.

날 죽이기로 작정한 걸로 보이니 나도 반격해야 마땅하지만.

‘저 사람도 나처럼 통각 설정이 이상할까?’

그렇다면 어떤 생각으로 나를 공격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인벤토리.’

그런 의문과 별개로 나도 행동을 개시했다. 인벤토리에 넣어 둔 물건 하나를 꺼냈다.

고블린이 사용하는 대롱이다.

그들에게 공물을 받을 때 포함되어 있던 물건이다.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많이 사용해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혼자서 연습은 해 봤다.

기본적으로 스텟이 높으니 명중률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애써 자신감을 불어 넣으며 행동을 개시했다.

파악-!

일부러 몸을 살짝 내밀어 화살을 유도한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걸 보면서 꺼낸 물건을 입에 물어 훅 불었다.

“크윽!”

곧이어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퍽!

순간적으로 비명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화살이 소매를 길게 찢으며 상처를 냈지만 행동을 멈추진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맞았을 거라 확신했다.

놈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높은 스텟과 스킬이 명중률을 보정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속으로 셋을 세었다.

푸스스-!

풀잎이 몸을 스치는 걸 느끼며 몸을 깊게 숙인 채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핑-! 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지만 이전과 다르게 화살의 위력이 현저히 줄어 있었다.

“씨발!”

낯선 남자의 욕설이 귀에 꽂혔다. 손에 들려 있던 물건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왼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양손으로 쥐어 잡는다.

남자가 크게 당황해하는 몸짓이 보인다. 아마 몸이 둔해졌겠지.

몽둥이를 위쪽으로 들어 올리자 그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빠각-!

“크아악!”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다리를 부여잡으며 옆으로 굴렀다.

아파하는 것과 별개로 기민한 행동이었다.

정강이에 이어 머리를 가격하려던 내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다.

콰가각-!

빠르게 따라잡아 몽둥이를 내리쳤지만 그도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검을 빼어 들어 막아 냈다.

빡!

그리고 난 신경 쓰지 않고 무릎을 놈의 안면에 꽂았다.

무릎에 잠깐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쉽게 가면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다시 몽둥이를 들어 검을 든 손을 내리치려던 순간 놈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난 널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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