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내가 맨 처음 숲을 헤맬 때부터 생각한 주제였다.
도대체 이곳은 어딜까?
대륙에 있는 숲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보니 정확하게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우선 계속 헤매면서 후보지를 대충 세 개 이내로 좁히긴 했지만.
‘멜번 숲은 아니야.’
엘프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멜번 숲.
처음엔 울창한 풀과 나무를 보고 그곳부터 떠올랐지만 곧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긴 몬스터가 너무 많아.’
엘프가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멜번 숲에는 몬스터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엘프들이 공격할 수도 있어서 위험한 건 매한가지지만.
‘보르헤르 숲도 아니고.’
나무가 너무 빽빽해서 어둡기까지 한 숲이다.
보르헤르와도 비슷하지만…….
‘거긴 높은 산이 거의 없어.’
그곳은 대부분이 평지다.
있어 봤자 작은 언덕뿐. 반면에 여긴 저 앞에도 높은 산이 하나 있지 않은가.
‘아마도 벼락 숲, 볼렌 대수림 그리고 마경.’
머릿속으로 떠오른 후보들. 그곳들의 공통점은 넓은 숲, 많은 몬스터, 그리고 무엇보다.
‘저런 현상이 있는 곳은 그 세 군데밖에 없지.’
콰르르릉-!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친다. 그것도 저 앞의 산의 정상에만 집중적으로.
굉장히 이상한 기상 현상이다.
그리고 저것이 바로 세 군데의 공통점이었다. 비현실적인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곳들.
불이 붙은 채로 계속 타고 있는 나무, 한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숲, 전격을 띠는 풀 등등.
모두 다 마력이 과하게 밀집된 곳에 일어나는 괴현상들이다.
‘마경만 아니면 되는데.’
세 후보 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장소를 떠올리면서 계속 걸었다.
마경에서 생성되면 차라리 자살하고 새로 캐릭터 만들라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콰릉-!
또 한 번 천둥소리가 들린다. 또 한 번 번쩍이는 빛줄기.
멀리서 보고만 있어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장소를 향해 난 걷고 있다.
‘그놈의 신화가 뭐라고.’
이 숲에서 지금까지 마주친 건 전부 몬스터뿐이다.
놈들을 이용해서 신화를 쌓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뜬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차라리 기약 없는 몬스터 사냥보다는 목적지를 정해 두고 가고 있는 것이다.
‘저런 데는 가까이 가기만 해도 뭔가 생기니까.’
보통 특이한 자연현상이 있는 곳은 근처에서 보기만 해도 관련된 신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웬만하면 나무 위에서 결계를 설치해 두고, 혹여나 고블린이 또 찾아오지 않도록 어설프게나마 흔적을 지웠다.
그런데 그렇게 걷기를 며칠. 다른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건?”
바닥에 남은 흔적을 자세히 보기 위해 아예 쪼그려 앉았다.
시간이 좀 지난 듯 희미해져 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신발 자국?”
슬쩍 발을 들어서 바닥에 남은 자국과 비교해 봤다.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기본으로 신은 신발의 밑창과 동일한 모양의 자국이었다.
‘플레이어!’
플레이어들에게 지급되는 보급용 신발의 흔적.
혹시 몰라 지도까지 확인했지만 내가 남긴 자국은 아니었다. 지도는 딱 지금의 위치까지만 표시돼 있으니까.
며칠 동안 그저 짜증만 가득했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 거지 같은 숲에 나 말고도 인간이 있다니.
그 사람도 아직 튜토리얼 중일까? 내가 느꼈던 이상한 점을 똑같이 느꼈을까? 이 근처에 있는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남아 있는 발자국이 초록빛으로 점점이 빛난다.
조심스레 그것을 따라 걸었다.
생각보다 이동 속도가 빠르지 않은지 갈수록 발자국은 또렷했다.
얼마 안 있으면 따라잡을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부스스-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요 근래에 무척이나 익숙해진 소리이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몽둥이를 잡으며 소리가 난 반대편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몬스터인가?
부스스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몸을 숨긴 앞쪽의 풀숲이 흔들렸다.
‘포위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해서 사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나를 포위해서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이다.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부스럭.
쉬익-!
지체 없이 허리춤에 매어 놓은 단검을 던졌다.
“키엑-!”
비명 소리. 그것도 익숙한 것의 비명 소리다. 바로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콱-
풀숲에 고블린 한 마리가 어깨에 단검을 맞고 끙끙대는 게 보인다. 바로 놈의 목을 휘어잡고 바닥으로 내려찍었다.
“킥!”
놈이 비명 소리를 내기도 전에 발로 머리를 찍었다.
파각-
제법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마지막까지 힘을 주어 놈의 머리통을 우그러트렸다.
뻐억-!
그리고 바로 근처에서 난 소리 쪽으로 뛰어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손끝에 느껴지는 둔한 울림.
어깨를 얻어맞아 비명을 지르려는 놈의 머리를 또 날려 버린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적어도 열을 넘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가까이 있는 놈들은 적었다.
놈들이 숨어 있던 풀숲으로 달려들자 고블린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로 모인다.
어차피 나를 잡으려고 몰려들었을 테니 싸움을 피할 순 없다.
지금까지 상대해 본 적 없는 많은 수였지만 망설임 없이 또 한 놈의 골통을 깨부쉈다.
“끼에에엑!”
처음으로 한 놈이 비명을 질렀다. 고블린이 움직여서 머리가 아니라 어깨를 때린 탓이다.
놈의 몸을 발로 걷어차 날리고 더욱 빨리 움직였다.
흩어져 있는 놈들이 모두 모이기 전에 최대한 수를 줄여야 한다.
“케르르를!”
그때 갑자기 위에서 고블린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듯했다.
바로 몸을 틀 만한 여유가 없다.
‘전격!’
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전격이 피어오르고, 고블린이 휘두른 몽둥이가 몸에 닿는 순간 전격이 그것을 타고 올랐다.
콰지직!
“케에에에엑!”
고블린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몽둥이에 맞은 어깨가 욱신거리긴 하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퍼석!
나는 바로 녀석의 머리를 짓밟았다.
“와라. 이것들아.”
콰츠즈즈즈-
어차피 이미 사용한 김에 전격을 전신에 두르며 주변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아니다. 이대로 놈이 물러가면 좋을 텐데…….
“잠깐!”
그때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도 멈추고,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사람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한눈을 팔았다는 걸 깨닫고 고블린을 노려봤지만 놈들은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누구냐!”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고블린들은 나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아까 전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순식간에 뭉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고블린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몸에 나름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있는 놈이었다.
나는 놈이 이 고블린들의 대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륵. 내가 말했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한 게 고블린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고블린이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나?
“학살자이시여. 케륵. 우리는 당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소.”
고블린의 말에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놈을 봤다.
“무슨 개수작이냐.”
몽둥이를 다잡았다.
처음엔 사람 말을 한다는 것에 놀라긴 했지만 게임 속에서도 말을 할 수 있는 놈들이 있긴 했다.
부족의 주술사나 족장. 또는 일찍이 인간 사회에 섞여서 살았던 놈들. 저놈의 차림새를 보면 주술사 또는 족장이겠지.
“케륵. 말한 대로입니다. 저는 작은 부족의 부족장입니다. 저희 부족은 더는 학살자님을 상대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미 많은 전투원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 키륵, 피해가 꽤나 막심합니다.”
내가 적의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놈은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원하는 게 뭐지?”
녀석의 의중이 뭔지 파악하기 위해 반응을 살폈지만 놈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케륵. 앞으로 먼저 공격할 일은 전혀 없을 거라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 찾아온 것뿐입니다.”
“나도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 굳이 너희들을 죽일 생각은 없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 고블린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면 나에게도 이득이었다.
고블린 한 마리의 힘은 약해도, 여러 마리가 덤벼들면 제법 위협적이기도 하고, 계속된 전투로 포션 또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케륵.”
놈은 몸을 깊이 숙여 보이더니 순식간에 고블린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나는 놈들이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주변을 경계하고 나서야 놈들이 정말로 돌아갔다는 걸 깨달았다.
“하아.”
순식간에 몸에 힘이 빠졌다. 놈들은 동료들의 시체까지 들고서 아예 가 버렸다.
‘몬스터 AI가 이렇게 높았나.’
전작에서도 이런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장비를 정비하고서 걷기 시작했다.
‘아, 흔적.’
주변에 고블린들이 몰려들면서 낸 발자국 때문에 플레이어의 발자국이 사라져 버렸다.
탐색 스킬도 이제 겨우 3레벨.
지워져 버린 흔적까지 쫓아갈 만한 능력은 없다.
짜증 나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산을 목적지로 삼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족장이 말한 게 사실이었는지 산을 향해 가면서 고블린을 마주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간혹 마주쳐도 고블린들은 나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에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 줄 뿐이었다.
“케륵!”
걷는 와중에 또 한 마리의 고블린과 마주쳤다.
놈은 손에 토끼를 들고 있었는데, 나를 보곤 놀라더니 고개를 깊이 숙여 보이고선 그대로 토끼를 놓고 도망갔다.
“야! 이거 가져가!”
뒤늦게 소리쳐 봤지만 고블린은 이미 흔적도 없었다. 난 어이없어 하면서 그 토끼를 주워 들었다.
‘놓고 간 거니까…….’
왠지 민망한 기분을 느끼며 그것을 가방에 집어넣었는데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첫 공물을 획득했습니다. 신화가 쓰여집니다.]
‘뭐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경우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바로 신화 창을 열었다.
[신화]
벼락 고블린 부족의 저승사자.
-고블린들의 학살자로 악명이 높던 남자는 ‘벼락’ 고블린 부족의 전투원의 절반을 말 그대로 파괴했습니다.
부족장은 이러다간 부족이 그대로 와해될 거라는 걱정에 남자와 대화를 통해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부족원들은 부족장에 의해 남자가 토착 신앙에 나오는 ‘벼락 신’의 사자라고 세뇌되었습니다.
고블린들이 잘못된 행동이나 벌을 지었을 때 처벌을 하러 오는 파괴자. 그것이 고블린들이 인식하는 남자의 정체입니다.
부족원들도 남자의 몸에서 푸른색의 전격을 보았기에, 마음속 깊이 그를 신의 사도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고블린들에게 신화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힘과 속도가 상승합니다. 고블린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동시에 일으킵니다. 벼락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신화 포인트: 200P
“이게 뭐야…….”
처음 그것을 본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런 게 신화라고? 아니, 신의 사자는 또 뭔데.
잠깐 신화가 생겼으면…….
[세 번째 임무를 완료했습니다.]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아.
튜토리얼이 끝났다고?
허탈감과 기쁨.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치솟았다. 걸음까지 멈추고서 멍하니 저 멀리 산을 봤다.
산을 갈 필요가 없네?
너무 갑작스런 일에 신화 창과 메시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분명히 튜토리얼은 끝났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다가 메뉴 창을 열었다.
‘드디어 쉴 수 있는 건가.’
그렇게 기다려 왔던 순간이지만 엄청 기쁘다기보다는 내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저 힘없이 손을 들어서 종료 창을 눌렀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 개 같은 새끼들아!”
나를 농락하듯 반투명한 메시지가 허공에 떠 있다.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로그아웃은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