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심 큰소리치긴 했지만 아예 긴장감이 안 드는 건 아니었다.
난 슬쩍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당장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밖에 없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동굴 내부에 울린다.
몽둥이를 쥐고 정면을 경계하는 이 순간이 마치 천년만년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닥-!
무언가가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린다.
타닥, 탁!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다. 여러 마리가 다가오고 있다.
곧 그것들이 동굴 내부로 진입한 것인지, 흙바닥을 박차던 소리가 동굴의 돌바닥을 밟는 둔탁한 소리로 바뀐다.
모닥불에 의해 불빛이 비춰지는 벽면에 무언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커다란 귀와 높게 뛰어오르는 듯한 동작.
“토끼?”
토끼다. 그것도 열 마리나 된다.
정체를 확인하고서 나는 몽둥이의 손잡이를 더욱 꽉 쥐었다.
“케에엥-!”
가장 앞에 있던 놈이 이상한 괴음을 내지르면서 크게 뛰어오른다. 그 빠르기도, 뛰어오르는 높이도 일반적인 토끼와는 궤를 달리한다.
치지지직-!
“끼에에엑!”
가장 앞서서 달려들던 놈이 허공에 붙잡혀 비명을 지른다.
잠들기 전 설치해 뒀던 결계다.
사실 말이 토끼지, 일반적인 토끼 생김새와는 확연히 다르다. 결계에 붙잡힌 놈의 눈은 빨간색으로 살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이빨 또한 초식 동물보단 육식 동물에 가깝다.
발톱도 날카롭게 자라 있고. 웬만한 육식 동물보다 더 흉악하게 생긴 모양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 결계가 웬만한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 주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어디까지나 이놈들은 퀘스트 몹. 임무가 진행되어야 하니 곧 이 결계는 풀릴 거다.
[임무 진행을 위해 단계적으로 결계를 해제합니다.]
츠즈즈즈-!
예상대로 메시지가 떴다.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하게 결계가 약해진 게 보인다.
임무가 시작되자마자 결계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플레이어에게 준비를 할 시간을 주려고 한 거겠지.
‘전투 보조!’
점차 희미해지는 결계를 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후읍.”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 들었다.
액티브로 사용을 하니 패시브로 적용되는 효과보다 확실히 강했다.
난 긴장감이 가시는 걸 느끼며 동굴의 바닥과 토끼들을 번갈아 보았다.
파직!
곧 결계가 풀렸다.
“끼에에엑!”
이어서 결계에 잡혀 있던 토끼가 땅에 떨어졌다가 다시 튀어 오른다.
후욱-!
발을 단단히 땅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살짝 기울였던 몸을 다시 비튼다.
쥐어 짜인 허리에서 그대로 팔까지 힘을 전달되며 몽둥이에 온전히 그 위력을 싣는다.
뻐어억-!
“키에에엑!”
토끼가 그대로 반으로 접히며 튕겨나가 벽에 처박힌다. 손끝에 불쾌한 감촉이 느껴졌지만, 고블린 때처럼 과하게 긴장이 되진 않았다.
이 또한 스킬의 효과겠지.
“키아아!”
한 마리 더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빠악!
난 바로 왼발을 크게 내디디며 오른발을 튕겨 올렸다.
발차기에 얻어맞은 토끼는 벽에 부딪혀 축 늘어졌다.
훙!
“두 마리.”
전투 본능.
그것은 검술, 권법, 궁술 이런 전투 종류의 스킬을 익히지 않고도 일정 부분 보정을 해 주는 스킬이다.
특히나 이런 초반일수록 위력을 발휘하는데, 대부분의 상태 이상에 저항하는 효능을 가지며, 캐릭터의 전투 능력을 상승시켜 준다.
‘그게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건지는 처음 알았지만.’
상태 이상에 저항한다. 그 뜻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다.
토끼를 때리고, 차고, 뼈를 부수면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징그럽다는 생각도 안 들고.
“카아앙!”
푸욱-!
“크윽.”
토끼의 앞니가 팔뚝을 꿰뚫는다. 살점이 송두리째 뜯기는 느낌이다.
그대로 팔에 힘이 쭉 빠지며 몽둥이를 놓칠 뻔했다. 하지만 당장 팔을 물고 있는 이놈보다 다른 놈들이 문제다.
다른 토끼들이 빈틈을 노리며 언제라도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텁-
몽둥이를 반대쪽 손으로 잡았다.
꽈앙-!
그리고 팔을 물고 있는 토끼를 냅다 벽에다가 처박는다. 그 사이에 낀 토끼가 납작하게 변한다.
“끼이이…….”
한쪽 손은 사용 불가. 그나마 스텟이 대폭 상승해서 다행이다. 한쪽 손을 사용 못 해도 어느 정도 전투는 가능할 테니.
‘임무 보정만 없었어도…….’
사실 본래 나와 저 토끼의 스텟 차이를 생각하면 손쉽게 끝나야 정상이다. 압도적인 내 승리로.
하지만 임무, 특히 튜토리얼의 경우엔 상호 간에 격차가 클 경우에는 어느 정도 보정이 적용된다.
보통은 플레이어가 버프를 받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나보다 스텟이 낮은 토끼가 버프를 받게 된 거다.
‘망할 게임.’
“끼아아아아-!”
퍽!
연이어 뛰어든 놈을 발로 쳐 올린다.
빠악-!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바닥에 있는 한 놈을 몽둥이의 끝으로 내리찍었다.
스킬의 유도에 따른 몸놀림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급작스레 상승한 스텟에 몸뚱이가 적응해 가고 있는 건가?
꽝!
“끽!”
벽을 타고 사각에서 공격하려던 토끼를 찍어 버린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난 그대로 몽둥이를 놓아 버렸다.
터엉-
덥석!
그리고 반대쪽에서 뛰어 오른 놈의 몸통을 꽉 붙들었다.
몽둥이를 휘두를 각이 안 나와서 아예 맨손으로 잡은 거다.
칵- 카각!
토끼가 톱니 같은 이빨로 자기를 잡고 있는 손을 물려고 한다. 짤막한 놈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허리까지 꺾어 가며 그대로 놈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몽둥이를 다시 붙잡았다. 토끼는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아, 하아.”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는다면 좋겠지만, 과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미리 준비해 둔 게 있으니까.
결계는 완전히 풀렸고, 마침 토끼도 기절한 놈들을 포함해 모두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나는 첫 전투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몸을 타고 흐르던 강렬한 전격의 느낌을.
찰박-
내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바닥에 흥건한 물이 살짝 튀어 올랐다.
그래. 거창한 준비는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키이?”
토키까 붉은 눈으로 달려들 낌새를 보였다. 난 지체 없이 손바닥을 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축축한 물웅덩이에 손이 완전히 잠긴다.
고블린의 전투 때 느낀 바로는 전격의 기운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긴 힘들었다.
잠시 사용한 것만으로도 몸에 과부하가 왔었으니까.
하지만 딱 한 번 사용하는 거라면?
‘전격!’
파직-!
몸 어딘가에서 전격이 튀어 오른다.
“으아아아아!”
순간적으로 가슴께에서 둔중한 진동이 느껴지고, 온몸으로 푸른색의 전격이 퍼져 나갔다.
파지지지지지직-!
이내 전격은 물웅덩이를 따라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끼이이이익-!”
모든 토끼의 몸을 전격이 파고든다.
토끼가 다 범위 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걸 기다리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결실은 달콤했다.
“하아, 후.”
이내 동굴에 남은 건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와, 한때 살아 움직였었던 토끼의 사체들뿐이었다.
동굴 안에 수증기와 탄내가 가득했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주저앉아서 쉬고 싶지만.
“개판이네.”
새카맣게 타 버린 토끼의 사체들. 그 사체들에서 흘러나온 불순물에 탁해진 물웅덩이.
동굴 바닥을 보니 앉고 싶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두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임무의 보상으로 생수와 토끼 육포가 주어집니다.]
임무의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개고생을 한 것에 비해서 보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이 임무의 목적이 그거니까.
오지에 떨어져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플레이어를 위해 준비된 임무.
정작 생존 팩을 가지고 시작한 나에겐 별 쓸모 없는 임무였지만.
난 아이템들을 그대로 인벤토리에 넣고서 다른 것을 꺼냈다.
“크읍.”
포션과 생수 한 병.
전투가 끝나고 나니 참아 왔던 고통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참이었다. 고블린을 상대했을 때보다 더 깊은 상처다.
물로 살짝 씻어 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고, 포션을 사용했을 땐 그대로 팔뚝을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이렇게 통각 수치가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게임이 아니라 내 캡슐이 문제가 아닐까?
‘다른 게임 할 때는 멀쩡했는데.’
하지만 저번에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캡슐의 통각 수치는 법적으로 일정 퍼센트 이상을 넘기지 못하게 정해져 있는 만큼 쉽게 고장 나는 일도 없었다.
초기에 락이 풀려서 통증을 100% 느꼈던 사람이 사망했던 일이 있은 후로 더욱 강화되었고.
“후우.”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여전히 얼얼한 통증은 남아 있지만.
만약 현실이었으면 크게 흉이 질 만한 상처였는데.
‘게임은 게임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눈앞에 다른 창이 떠올랐다.
[세 번째 임무.]
[신화의 기초를 쌓으시오.]
역시. 세 번째 임무는 그대로다.
그 전의 임무들이 유동적인 것에 비해서 세 번째는 항상 똑같다.
지금 내 상태 창의 맨 아래의 신화 창엔 ‘없음’이라는 두 글자만 적혀 있다.
신화라는 것은 이 게임의 근간이다. 기본적으로 기사든, 귀족이든 어떤 직업을 하든 신화라는 건 필요하다.
기사가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공주를 구해도 그건 신화로 분류된다. 상인이 기적 같은 수익을 올려도 그건 신화로 분류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직업을 얻기 위해서도 신화가 필요하다.
아무런 신화를 쌓지 못하고 직업을 얻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무직인 신세인 것이다.
이곳에서 무직이라는 건 최하위 계층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니 어떤 직업이든 얻어야 한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신화가 없으면 아예 성장이 불가하니.’
심지어 레벨마저도 신화가 일정 수치를 넘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화라는 것은 다른 게임의 ‘전직’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에 따라서 직업이 나뉘기도 하고, 레벨의 제한이 풀리니까.
뭐, 세세한 부분으로 파고들면 아예 다른 개념이지만.
“나가야지.”
결계를 해제해서 다시 가방에 넣었다. 내구도가 조금 닳긴 했겠지만 아직은 쓸 만할 거다.
이 동굴에서 다시 결계를 치고 쉬어도 되지만… 환경도 환경일뿐더러 피 냄새를 맡고 더 많은 몬스터나 짐승들이 찾아올 거다.
천년만년 여기 살 거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찾아온 놈들이 결계 주변에 진이라도 친다면 곤란하니.
그렇게 짐을 꼼꼼히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 * *
며칠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숲속에 있다.
“후우.”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나는 지금 어느 나뭇가지 위에 안전 결계를 쳐 두고서 누워 있다.
“죽겠네.”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지 꽤 오래됐다.
“키이이익!”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내 밑에 있다. 괴성을 내지르면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놈들.
바로 고블린들이다.
내가 단단히 쥐고 있는 몽둥이에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바로 저놈들의 피다.
놈들은 기본적으로 아인종에 속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지능이 있다. 그게 내가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이유이다.
도대체 며칠 동안 이러고 있는 건지.
저번에는 녀석을 수십이나 베어 넘기다가 ‘광전사’라는 특성까지 생성됐었다.
굉장히 얻는 조건이 까다로운 특성인데, 나는 최근 그걸 얻을 만큼이나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싸우고, 또 싸워야 했었다.
‘끈질긴 놈들.’
고블린은 내가 동굴을 빠져나와서 새로운 거처를 찾기도 전에 나를 쫓기 시작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아마도 동족이 살해당한 것을 보고 흔적을 쫓아왔던 거겠지.
나야 뭐, 흔적까지 지워야 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놈들은 쉽게 나를 찾았을 거다.
“케에에에에!”
그때 나무 밑을 어슬렁거리던 고블린들이 어딘가로 뛰어간다.
난 그것을 주의 깊게 보다가 완전히 갔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려왔다.
턱-
땅을 밟자마자 바로 고블린이 사라진 방향과 반대로 움직였다.
나무에 오르기 전 일부러 먼 곳에 흔적을 남겨 놨다. 그다음에는 나무를 타고서 이동했고.
놈들에게 계속 쫓기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몇 번이나 놈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몽둥이를 꽉 쥔 채로 풀숲을 헤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는 주제를 떠올렸다.
‘이 숲은 도대체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