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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2화 (2/170)

2화

“키이이익!”

고블린은 달려들다 말고 휙 옆으로 빠졌다.

놈은 자세를 다 잡으면서도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쉽사리 달려들지 않는 것만 봐도 놈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놈의 망설임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키익!”

고블린의 괴성.

녀석은 마음을 다잡은 듯 이내 다시 나에게 손톱을 앞세워 슬금슬금 다가왔다.

“키에에엑!”

가까이 접근한 고블린이 별안간 기성과 함께 높게 뛰어올랐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파지지지직!

내 팔의 궤적을 따라서 푸른 전격이 튀어 올랐다.

고블린은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틀었다.

“끼엑!”

하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놈은 곧 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난 바로 놈에게 달려들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이상해.’

코끝에 불쾌한 탄 냄새가 스친다.

고블린은 감전이 됐는지 몸을 덜덜 떨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난 그런 놈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이렇게 사실적인 반응이라니?

이건 게임이다.

몬스터를 죽여서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는 그런 게임.

현실감. 물론 좋다.

가상현실 게임인데 몬스터가 허수아비면 무슨 재미이겠는가.

그래도.

저렇게 겁에 질린 모습이라니?

‘악취미야.’

보면서 동정심이라도 느끼라는 건가?

쉬익-!

캉-!

나는 혼란을 느끼면서도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으로 팔을 뻗었다.

어느 순간 녀석의 입에는 대롱이 들려 있었다.

독침을 발사할 것인가.

“후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전방을 노려보았다.

전투 중에 한눈 팔 여유는 없다. 하물며 첫 전투인데.

아무리 고블린이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하압!”

나는 녀석에게 달려들면서 검을 뻗었다.

놈은 다시 한 번 피하려 했지만.

파지지지직!

검을 따라서 전격이 쭉 퍼져 나갔다. 이번엔 확실하게 적중했다.

“끼에에에엑!”

고블린의 몸에 전격이 파고들고, 녀석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난 그 틈을 노려 검을 녀석의 몸통에 다시 찔렀다.

푸우욱-!

검극이 고블린의 뼈와 뼈 사이,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손끝에 소름 끼치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난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렸다.

묵직한 느낌과 함께 고블린의 몸이 딸려 온다. 그걸 보며 강하게 발을 뻗었다.

뻐억!

“켁, 케에…….”

허공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던 놈이 발길질에 멀리 튕겨 나간다.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르고 구르던 놈은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춰 섰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지체할 수 없이 떨려 왔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녀석에게 다가가 검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파지지직-!

전격이 다시 한 번 고블린의 몸을 파고들었다.

부르르-

고블린은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하고 몸을 떨더니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녀석의 몸 주위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아, 하악.”

그 일련의 행동이 끝난 후에야 내 몸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멈추어 섰다.

챙그랑.

검을 놓쳤다.

고블린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녀석의 손톱은 날카로웠고, 녀석이 할퀸 팔뚝은 여전히 아려왔다.

그보다 큰 고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니 죽였다.

“우웨에엑!”

살을 파고들던 감각.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핏방울.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과 마지막 숨이 빠져나갈 때의 고블린의 몸부림.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윽…….”

온몸이 욱신거리고 토기가 계속 치솟았다.

어느 순간 몸을 감싸고 있던 전격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뭔가 이상해.’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단순히 징그러운 것을 봐서 그런 건 아니다.

슬래쉬 무비, 고어 게임. 이런 것을 본다고 구역질이 나고 몸이 떨린 적은 없었으니까.

정신적인 문제보다는 신체적인 문제가 더 큰 것 같다.

방금 전 갑자기 내 몸을 감쌌던 전격. 그것 덕분에 고블린을 해치우긴 했지만… 그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강력한 힘이긴 했다. 난 고작 1레벨밖에 안 되는데도 그 정도 위력이라니.

“우욱.”

애초에 속에 든 것도 없었지만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한 다음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끄윽.”

바닥을 짚다가 뒤늦게 팔의 상처를 기억해 냈다.

아직도 팔에선 피가 몽글몽글 솟아오르고 있다.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더 깊었다.

고통이 강하게 치민다.

“시발… 개 같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벤토리를 열어 가방을 꺼냈다.

마법이 걸려 있어 가방은 바깥보다 안이 더 넓다. 단번에 물건을 찾기가 어려웠다.

덥석-

구석에서 선홍빛의 물건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집어 들었다.

달칵-

바로 뚜껑을 열었다.

달큰한 향이 올라온다. 바로 상처가 난 부위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뚝에는 선명하게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선 바로 처치를 해야 했다.

게임이라도 질병이나 감염 같은 상태 이상들이 있으니까.

나는 유리병을 기울여 상처에 액체를 부었다.

치이익-

“끄읍!”

확 밀려오는 고통에 유리병을 놓칠 뻔했지만 정신을 붙들고 한쪽에다가 내려놓았다.

액체와 닿은 상처 부위에서는 하얀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흐으으…….”

고통이 점차 줄어들고 아릿한 통증만 남았을 때엔 팔뚝은 흔적도 없이 매끈해져 있었다. 바로 포션의 효과였다.

이어서 포션을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가 삼켰다. 몸이 빠른 속도로 진정되어 간다.

그다음에야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닫아서 인벤토리에 등록해 뒀다.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도록.

[첫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다음 임무가 시작되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세요.]

잠깐 쉬고 있자니 금세 임무를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다음 임무라니.

“메뉴.”

난 헛웃음을 흘리며 메뉴를 열었다. 사실감, 그래픽, 전투. 그래, 잘 만들기는 했다.

이제까지 했던 어떤 게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이 게임은 제정신이 아니다. 게임 속에서 다쳤다고 진짜로 아프다니.

게다가 피 냄새는 또 어떤가? 고블린의 시체에서 올라오는 혈향은 너무도 지독했다.

“후우.”

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곧 바로 로그아웃 버튼을 클릭했다. 나가서 좀 누워 있어야…….

[튜토리얼이 종료될 때까지 로그아웃을 할 수 없습니다.]

“뭐?”

메시지를 애써 무시하며 몇 번이나 로그아웃 버튼을 클릭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같은 알림만 뜰 뿐이다.

“이런 씨발!”

카앙-

손에 든 검을 땅바닥에 던져 버리고서 다시 주저앉았다.

난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고블린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휘이이이이-

바람이 분다.

맨 처음 느꼈던 청량감은 더는 없다. 그저 비릿한 혈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칠 뿐.

부스럭-

힘없이 가방에 손을 뻗어 뒤적거렸다. 물을 꺼내 조금 마시고 나서 다른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보호 결계…….’

사용했을 때 몬스터나 짐승의 침입을 막아 주는 아이템이다. 이걸 쓰면 이런 숲의 한복판이라도 안전할 수 있다.

‘우선… 걷자.’

하지만 계속 여기 있기는 싫었다. 안전하다는 걸 알아도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블린의 시체에서 계속 불쾌한 냄새가 피어오르기도 하고.

가방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던졌던 검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려다가 문득 고블린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퀭하게 부릅뜬 눈동자와 흉하게 헤집어진 몸뚱이.

어쩐지 마음이 복잡했다.

“후우.”

난 고개를 한차례 젓고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은 생각보다 더 울창했다. 이동하면서도 어디 한 곳을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히 살폈다.

언제 위험한 게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팍-!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획 돌리니 토끼같이 생긴 게 지나가는 게 보였다.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 지나가려는데 그쪽에 무언가가 보였다.

조심스레 풀숲을 가르고 그곳으로 걸어가 보니 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이 보였다.

사람 한 명은 충분히 들어갈 크기였다

나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조금만 들어갔는데도 생각보다 커다란 공간이 보였다.

킁킁-

옛날에 다큐멘터리에서 짐승, 그것도 육식 짐승이 사는 동굴은 누린내가 굉장히 심하다고 했다.

그걸 보고서 따라 해 본 건데.

이 동굴에서도 누린내가 나긴 했지만 이게 심한 건지 옅은 건지 헷갈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뒤, 어쩔 수 없이 검을 꽉 쥐고서 조용히 안으로 걸어갔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계속해서 안으로 걸어가다 보니 금방 막다른 길이 나왔다. 다행히 생각보다 동굴은 깊지 않았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안쪽에 주저앉았다.

“보호 결계 작동.”

앉자마자 바로 아이템을 꺼내 사용했다. 구슬 모양의 아이템에서 푸른색의 빛이 퍼져 나갔다.

[반경 5M에 걸쳐 보호 결계가 설치되었습니다.]

떠오른 메시지에 난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아예 벽에 기댔다.

안전한 곳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이렇게 가만히 쉬고 있으면 되나?

첫 번째 임무가 있었으니 두 번째 임무도 있을 텐데.

빨리 튜토리얼을 끝내고 로그아웃을 하고 싶은데, 야속하게도 알림 창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상태 창.”

고민을 하다가 상태 창을 켰다. 남은 튜토리얼을 위해서라도 현재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상태 창]

이름: 이호진

레벨: 2

계급: 무

힘: 12

속도: 10

기술: 10

체력: 11

의지: 12

특성: 뢰신(雷身)

스킬: 전격 방출, 전투 보조, 탐색, 지도 작성

고유 스킬: 뇌령(雷領)

내 상태창을 지긋이 살펴보았다.

우선 스텟.

본래 캐릭터의 기본 스텟은 10이다. 거기에 레벨 업을 해서 일정 수치가 오른 것 같다.

“뢰신(雷身).”

그다음으로는 특성을 보았다. 손을 움직여서 클릭해 보니 자세한 설명이 떠올랐다.

[뢰신(雷身)]

[전설]

[전격의 속성이 깃든 몸. 체내에 강력한 에너지원인 ‘뇌령’을 생성한다. ‘전격 방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무려 전설 등급의 특성이었다.

VVIP유저를 위한 단 하나뿐인 특성이라더니.

아까 전 직접 사용해 본 나는 명확히 느꼈었다. 이건 사기 특성이라고.

1레벨인 캐릭터로도 이 정도 위력이면 나중에는 어떨지 감이 안 잡힌다.

게다가 등급도 최고 단계에서 바로 밑 단계이고.

확인해 보니 ‘뇌령’은 일종의 단전 혹은 서클과 비슷한 개념인 듯했다.

그 힘을 ‘전격 방출’이라는 스킬을 통해 외부로 방출할 수 있는 거다.

[뇌령(雷領)]

[Lv.1]

[모든 전격의 기운을 통솔하는 근원.]

설명은 담백하지만 아주 아주 좋은 특성이다.

하지만.

‘그럼 뭐 해.’

탐탁지 않다.

사용자가 원할 때 로그아웃도 못 하는 게임인데 좋은 특성이래 봤자 무슨 소용인가.

로그아웃만 하면 전화해서 욕설을 퍼부어 버릴 거다.

“쯧.”

나는 혀를 차며 다음 내용을 확인했다.

‘전투 보조. 그나마 이게 있어서 다행이었군.’

캐릭터가 좀 더 잘, 원활하게 싸우도록 도와주는 스킬.

평소엔 패시브 형태로 말 그대로 ‘보조’의 역할을 하며, 액티브로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더욱 뛰어난 효용을 보인다.

아까 전 살기를 뿜어내는 고블린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마지막에는 몸을 꿰뚫기까지 한 것에는 이 스킬이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 덕분에 수월하게 싸울 수 있었다.

‘조금 소름 끼치는 느낌이긴 했지만…….’

살을 파고드는 감각과 살과 거죽이 타며 피어올랐던 매캐한 연기는 굉장히 불쾌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산 건가…….”

만약 아예 아무것도 없는 맨 몸이었다면 시작하자마자 고블린한테 죽었을지도.

“아!”

문득 상태 창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가 생각났다.

VVIP 고객 특전과 성장 팩.

두 가지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걸 잊고 있었다.

분명 고객 특전엔 ‘특성’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고 했었다.

난 인벤토리를 뒤져 곧장 그것들을 꺼내 들었다.

화악-

아까 전처럼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내용물이 드러났다.

[‘기본 스텟 추가 부여’와 ‘칭호 지급’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응.”

대답을 하자 몸이 푸른빛에 감싸였다. 그리고 몸이 근질거리더니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크읍.”

근육이 혼자서 움직이며 자리를 잡는다. 피부는 누가 잡아당기고 쥐어짜는 것 같았다.

스텟이 갑자기 많이 올라서 이러는 건가? 레벨 업을 할 때는 느끼지 못한 것 같은데.

“하아.”

그 과정이 모두 끝났을 때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상태 창을 다시 확인했다.

스텟이 각각 무려 50씩이나 올라 있었다. 레벨 업을 수없이 해야 올릴 수 있는 스텟이 그냥 생긴 것이다.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튜토리얼은 어디까지나 게임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것.

전투와 관련된 임무에서는 플레이어의 전투력에 따라 상대에게도 보정이 가해진다.

이번과 같은 임무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소리다.

그래도 튜토리얼이 끝나면 큰 위력을 발휘하겠지.

그리고 칭호.

[재신]

-돈에 관련된 모든 일에 능력치와 행운이 상승한다. 모든 거래에 손해를 볼 확률이 줄어든다. 모든 상인들이 호감을 가지고 대한다.

재신이라. 이거 지금 돈 많이 썼었다고 달아 준 칭호인가.

묘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좋은 것이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거래를 할 일은 많아질 테니. 특히 상인들도 자주 볼 테고.

‘물론 내가 이 게임을 계속할 경우의 얘기지만.’

어쩐지 지금은 조금 질린 느낌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식으로 게임을 만든 건지.

투욱-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이어 아이템 두 개가 앞에 떨어졌다.

서버 유일 무기 및 방어구.

특전 중 하나다.

겉보기에는 흔하게 생긴 검은색의 뭉툭한 나무 몽둥이와 동그란 구슬이었다.

집어 들어 탐색 스킬을 사용하니 아이템의 정보가 떠올랐다.

[이호진–무기]

[전설]

[검은색의 몽둥이. 재료는 알 수 없다. 다른 무구와 동화되는 특성이 있다.]

[성장 아이템]

[아이템 흡수를 통해 특성 개방]

[이호진–방어구]

[전설]

[검은색의 구슬. 흡수한 방어구와 같은 모습으로 변형된다.]

[성장 아이템]

[아이템 흡수를 통해 특성 개방]

둘 다 성장 아이템이다.

검은 구슬을 슬쩍 흉갑에 가져다 대 보니 스르륵 녹아 들면서 자신과 같은 색깔로 바꾼다.

몽둥이도 마찬가지였다. 검에 갖다 대니 검이 몽둥이로 빨려 들어갔다.

확인해 보니 각각 공격력과 방어력 옵션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아이템을 계속 바꿔 나갈 테니 성장형으로 챙겨 준 것 같다.

‘배려가 너무 세심해서 눈물이 나네.’

이런 배려 생각할 시간에 로그아웃이나 아무 때나 하게 해 주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난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바닥에 죽 늘어놓았다.

‘언제 임무가 시작될지 몰라.’

게임 속인데도 피로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잠을 자긴 해야 할 텐데, 아무 준비 없이 잤다간 갑자기 임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만약 이 동굴 안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면.’

나는 가늘게 뜬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임무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이런 좁은 공간에서 임무가 시작된다면?

‘준비할 게 많지.’

아무 준비도 안 하면 그게 바보다. 고블린 때야 갑작스럽게 시작된 임무 탓에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하고 부딪쳤었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물건 몇 개를 활용해 지금 가진 수를 적절하게 쓸 만한 환경을 조성해 놨다.

“후우.”

준비를 끝내자마자 급격히 눈이 무거워진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침낭을 꺼내 들었다.

“우선 자자.”

나는 침낭에 파고들고서 눈을 감았다.

* * *

부스럭-

침낭 안에 웅크려 있던 나는 눈을 떴다.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임무]

[생존의 자격]

곧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글자가 떠올랐다. 난 눈을 깜빡거리다가 몸을 세우고 난 후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생존의 자격?”

몇 번 혀를 굴려 발음하니 머리가 좀 돌아가기 시작한다.

생존의 자격. 분명 이런 오지 환경에서는 자주 나오는 임무였다. 그리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임무이기도 했고.

난 슥 주변을 둘러본 후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임무 때는 당황해서 그런 거지, 내가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다.

“어디 한번 와 봐라.”

내가 쉽게 당해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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