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시스템 퀘스트: 아직 안 죽은 신을 위하여]
“……뭔 퀘스트?”
세헌의 눈이 커졌다가 다시 가늘어졌다. 기가 막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강하라가 사라진 이후로 처음 듣는 시스템 메시지 생성음이었으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기가 차 그는 시스템 메시지를 치워 버렸다. 헌터도 아닌데, 여자 친구 덕분에 시스템 메시지를 치우는 방식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게 웃기고도 슬픈 점이었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텼다.
[시스템의 인과율이 제어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시스템 관리자에 의해 초기화 중…….]
[초기화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나보고 뭐 어쩌라는 겁니까.”
세헌은 식탁에 기대서서, 뻔뻔하게도 메시지를 출력 중인 시스템을 노려봤다.
시스템 관리자에 의해 초기화 중이라……. 혹시 그가 없는 곳에서 일이 그럭저럭 희망적으로 진행된 걸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정 사용자 ‘윤세헌’은 사용자 ‘강하라’가 채 끝내지 못한 퀘스트를 마저 완료해야 합니다.]
“강하라나 내놓으라고.”
그렇게 말하며 세헌은 시스템 창을 주먹으로 쿵, 하고 때렸다. 물론 시스템 창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웃기는 노릇이다. ‘죽은 신을 위하여’도 아니고, ‘아직 안 죽은 신을 위하여’는 뭔데. 지젝의 책을 읽어 보기는 했는지 물으려던 순간, 세헌은 멈칫했다.
[지정 사용자 ‘윤세헌’은 사용자 ‘강하라’의 임시 성좌가 될 수 있습니다. 쪼렙 ‘강하라’를 능수능란한 S급 헌터로 키워 보세요! 내가 만든 S급 헌터!]
[단, 페널티가 있습니다.]
[성좌의 언어는 시스템어로 변환되며 약간의 번역을 거칩니다.]
세헌은 코웃음 쳤다.
“페널티 좋아하시네.”
[…….]
“중대한 오류가 발생했는데 이딴 퀘스트나 내는 이유가 뭡니까. 강하라도 안 내놓고 이런 소리 하는 건 나 아니면 해결 못 하는 오류가 일어났다 이건데.”
기분 탓인지 시스템 창이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그 페널티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시스템 관리자가 열심히 초기화 진행 중…….]
“열심히 하든가 말든가. 사정도 제대로 안 알려 주고 이따위로 사람 협박하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입니까.”
그러니까, 하라와 달리 세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시스템 창 몇 개로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스템 창이 파르르 떨며 딱딱한 어조의 설명을 동반했다. 몇 가지 소통 오류 속에서 세헌은 자초지종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강하라 씨가 원래 ‘이동하실게요’ 스킬을 얻으려면 큐피트 정체를 밝혀야 했고.”
시스템 창이 끄덕끄덕했다. 가당찮은 그 움직임에 세헌은 코웃음 쳤다.
“근데 제가 그때 다른 것들을 사전 지급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보상이 대체됐다 이거죠.”
물론 문제의 ‘이동하실게요’ 스킬은 윤세헌의 눈물겨운 행보로 말미암아 ‘계약 연애’ 상태 이상이 해제되며 강하라가 획득한 상황이다.
[지정 사용자 ‘윤세헌’의 개입으로 사전 지급된 보상이 있는 만큼, 사용자 ‘강하라’는 퀘스트를 완수해야 합니다.]
세헌은 다시 시스템 창을 쿵 두들겼다. 자신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이렇게나 끌어낼 수 있다니, 대단한 노릇이라고 생각하며 세헌은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강하라랑 못 끝낸 계산 나랑 끝내자, 이거로군요.”
시스템 창이 격하게 끄덕거렸다.
강하라 덕에 저편에서 어찌어찌 균열의 괴물까지 처치하여서, 시스템 초기화가 가능해졌던 모양이다.
다만 채 끝내지 않은 퀘스트가 존재하는 상황.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해결되지 않은 퀘스트 때문에 초기화가 불가한 모양이다.
그러니 그 계산, 자리에 없는 강하라 대신 윤세헌이 대신 수습해 달란 뜻이다.
“내가 왜?”
[보상 부정 수급으로 지정 사용자 ‘윤세헌’에게 페널티가 부여될 수 있습니다.]
“부여하든가 말든가.”
강하라도 없는데, 뭘. 그렇게 말했지만 세헌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튼 막무가내긴 했지만, 시스템은 그에게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들고 있기도 했다.
바로 강하라 이름이다.
그러나 세헌은 일부러 시간을 두고 시스템을 노려봤다. 시스템도 염치가 있는지 강하라를 두고 협박하지는 않았다.
[인류의 미래가 지정 사용자 ‘윤세헌’에게 달려 있습니다. 퀘스트를 수락…….]
“안 할 건데?”
[수락하시겠습니…….]
“안 한다고.”
[수락 부탁드립니다.]
시스템이 부쩍 공손해졌다. 세헌은 눈을 부라렸다.
“강하라 데려다 놓으면 하겠습니다.”
[지정 사용자 ‘윤세헌’은 사용자 ‘강하라’의 임시 성좌가 될 수 있습니다. 퀘스트는 미니 게임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작고 귀여운 강하라를 짱 센 강하라로 만들어 보세요. 최애와의 만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얘긴지는 대화하다 보니 대강 짐작이 갔다.
남산 던전 안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임시 성좌 퀘스트를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큐피트가 알고 보니 본인이었다고 했던가…….
그는 한숨 쉬며 시스템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개수작에 넘어가는 것 같은데.”
하지만 강하라 이름 걸렸으니 어쩌겠나. 수락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강하라는 윤세헌에게만큼은 아주 훌륭한 인질이었다.
세헌은 [부디 수락을 부탁드립니다. Y/Y]라고 쓰여진 창의 ‘Y’ 부분을 주먹으로 쾅 두들겼다.
뽀지직. 참으로 시의적절한 효과음을 내며 시스템 창이 부서진 척 흔들거렸다.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시점을 조정합니다.]
시스템 창이 가로로 넓어지더니 그 크기를 엄청나게 키우기 시작했다.
이를 보며 세헌은 중얼거렸다.
“또 차원 이동 같은 거 시키면 평생 초기화고 나발이고 못 할 줄 아십시오.”
시스템 창이 움찔거렸다. 저 너머에 김성복 씨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도망 안 가고 책임은 지고 있는가 보다, 싶어지긴 했다.
[퀘스트 ‘사랑과 전쟁’ 완료 시점으로 조정합니다.]
[조정 완료.]
사랑과 전쟁? 저 우습지도 않은 이름은 뭐야?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시스템 창이 커다란 스크린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 세헌은 움찔하고 멈췄다.
강하라.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는 치렁치렁해서 땀 범벅에…….
“……꼴이 왜 저래?”
세헌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검고 끈적끈적한 뭔가를 뒤집어썼고, 옷에는 김치 국물 따위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위축되어 있는 데다가, 얼굴은 까칠했다. 그러면서 차 안에 앉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세헌은 그 상황이 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뭐야. 누가 강하라한테 저렇게 눈치를 줘? 심지어 저 몰골은 또 뭐고…….
“누구 눈치를 보는 거야?”
그때, 시스템이 그의 말에 응답하듯 화면 시점을 이동했다. 화면이 줌아웃되자, 세헌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탄식하고 싶어졌다.
강하라 옆에서 잔뜩 굳은 얼굴로 운전하는 건 다름 아닌 본인이었다.
세헌은 이게 언제인지 곧장 알아차렸다. 언양 자수정 던전이었다. 심지어 강하라가 웨어울프의 곁에서 자신을 구했던 때였다. 잊고 있었는데…….
그뿐인가.
“원래 위험할 때마다 그렇게 나섭니까?”
“……예?”
“여의도 던전에서도 그렇고요.”
화면 안의 하라가 멋쩍게 웃었다.
“그, 윤세헌 씨는 민간인이고…….”
“강하라 씨는 헌터다, 이거죠.”
화면 속에서 하라가 다시 슬그머니 세헌의 눈치를 봤다. 화면 속 윤세헌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세헌이 절로 ‘얼굴 펴!’ 하고 불호령 내리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참, 기분이 여러모로 좀 그렇군요.”
“죄송해요…….”
“……그게 강하라 씨가 죄송할 일입니까.”
세헌은 죽고 싶어졌다.
생명의 은인에게 말투 왜 저래…….
바야흐로, 여의도 공주- 그러니까 공포의 주둥아리 윤세헌이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강하라에게 죄송하다는 말 그만하라고 한 주제에, 사실 강하라에게 매번 죄송하다는 말 하게 만든 게 본인일 줄이야.
과거의 업보가 이런 건가. 세헌의 머리가 어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 속 세헌은 계속 떠들고 있었다.
“똥통에 빠지면 재수가 좋다고 하죠. 요새 광견병 주사 안 맞은 개한테 물리면 보상금을 받습니다. 근데 제가 강하라 씨랑 사귀어서 얻는 메리트는 뭡니까?”
“윤세헌 스폰서 설 돌면 아주 볼만하겠습니다.”
때마침 허공에서 시스템 창이 얄밉기 짝이 없는 메시지를 띄웠다.
[근데 제가 강하라 씨랑 새귀애새 앧는 메리트는 뭽니깨~]
보통 때였다면 아마 시스템 창을 때려 부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헌은 그보다는 화면 속의 제 목을 조르고 싶었다.
“당신 말마따나 공무수행이라고 치고, 협조하겠습니다.”
그 입.
다물라.
*
수치심 때문에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던 세헌이 회복한 건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아무튼 시스템은 아주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세헌을 동원해, 그에게 큐피트 노릇을 시켰기 때문이다.
화면 속의 그는, 세헌이 정신적 타격을 입든가 말든가 계속해서 지껄였다.
재앙의 주둥아리 같으니라고.
“‘하필 왜 나야?’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강하라 씨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윤세헌 진짜 별로로군요…….”
[성좌 ‘큐피트’가 곤욕스러워합니다. 야, 나 얘 별로야…….]
“강하라 씨는 왜 저딴 인간을 좋아해 주는 겁니까…….”
부처님인가. 아니면 재림예수인가. 세헌은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그 와중에 시스템은 신나게 라이브로 세헌의 말을 내보내 주고 있었다.
[이런 앤 줄 몰랐는데…….]
[성좌 ‘큐피트’가 사용자 ‘강하라’ 취향에 당황합니다.]
“제 취향 의심하지 마시죠!”
하지만 강하라는 강하라인지라, 화면 속 하라가 덜컥 놀라 큐피트 세헌의 말을 부정했다.
물론 상황상, 아마 강하라 씨도 당황해서 그랬겠지만…….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헌은 제 머리를 쥐어뜯던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럼에도 화면 속 세헌은 지금 ‘큐피트’가 된 세헌의 심정 따위는 아랑곳 않고 불행을 부르는 주둥이를 끝없이 놀렸다.
그래서 세헌은 ‘강하라 씨 제 취향 아닙니다.’라고 뻔뻔히 답하는 화면 속 제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다가, 결국 화면을 꺼 버렸다.
[성좌 ‘큐피트’가 도망쳤습니다!]
어떤 방송 사고가 나도 부동심을 잃지 않던 윤세헌이 과거의 자신 때문에 보기 좋게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