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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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 같은 던전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본래 던전이라는 곳들이 다 그렇다. 동굴형이라면 보통 생각하는 동굴보다는 수십 배는 꼬인 길이고, 삼림형이라면 보통 생각하는 숲보다 수십 배는 깊고 음침하다.
하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곳은 기존의 던전보다 오히려 단순했다. 그 이유는 그야말로 ‘터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던전 안의 몬스터들은 딱 두 가지 갈래로 나뉘게 된다.
던전 곳곳의 균열 사이로 이동해 ‘현실 세계’로 빠져나가는 몬스터가 첫 번째 갈래다. 균열을 타고 나가 인간들을 잡아먹고 죽이든가, 아니면 균열 근방에 진 치고 균열에 빨려든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서다.
물론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던전 밖으로 나가지 않는 몬스터들도 있다. 주로 E급에서 F급의 약한 몬스터들이다.
왜냐하면 던전 밖의 환경은 미지수인 데다, 나가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F급쯤 되면, 머리만 잘 굴리면 일반인의 힘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니까.
어째서 몬스터들이 그 정도의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아무튼 중요한 건, 윤세헌이 바로 그 덕분에 살아났다는 것이다.
세헌은 진땀을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바닥을 손가락으로 벅벅 긁은 것은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다만 뭐라도 움켜잡고 싶어서 한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거친 흙바닥에 세헌의 손끝이 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헌은 바닥을 계속해서 할퀴고 있었다.
세헌이 정신을 차린 건 조금 전이었다. 불과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가 패닉에 빠지기는 충분했다.
어디서 빛이 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은은하게 주위를 비추는 주홍색 불빛, 그리고 거기에 비춰져 보이는 동굴. 흙바닥과 축축한 벽, 그리고 가루가 부서져 내리는 천장과 군데군데 희미하게 죽죽 뻗어 있는 균열의 잔금들.
그의 소년 시절을 온통 지배한, 어떤 풍경과 완벽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순간, 세헌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불길도 뚫고 들어온 안이 이런 풍경일 줄은, 정말로 상상도 못 했다. 차라리 상암 던전처럼 용암이 들끓거나 하는 풍경이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헌은 뒤로 나자빠졌다. 몸을 제대로 추수를 수도 없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그 메마른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을 떼고 싶은데, 뗄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아,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수없이 진행한 정신과 상담을 떠올렸다. 거기에 더해 그의 입을 열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의사들이 했던 말을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는 그곳이 아니다. 흙바닥 따위는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불길은 무섭지 않다.
“여기는 그곳이 아니다…….”
그때였다.
“꽤액.”
타오르는 뭔가가 시야 저편에서 그에게 다가왔다. 그것이 내는 소리가 지나치게 낯익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헌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발로 걷어찼다.
“꽥!”
퍽, 데구르르…….
뒤늦게야 세헌은 정신을 차렸다. 그의 발에 차여 저 앞까지 날아가 데굴데굴 구르는 것은, 다름 아닌 삐약이였다.
세헌은 당황해 저도 모르게 사과했다.
“미, 미안……?”
뒷말이 의문형인 건, 삐약이가 낯익으면서도 낯선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입으로 내는 소리는 분명 세헌이 아는 삐약이인데, 모양은 그가 아는 삐약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구루룩…….”
삐약이가 뒤늦게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구슬프게 울었다. 왜 날 발로 찼어, 하는 슬픔과 원망이 담긴 울음 같았다.
세헌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삐약이의 눈이 반짝였다.
“삐약!”
하지만 다음 순간, 반갑게 날아오는 삐약이를 보고 세헌은 흠칫하고 피해 버렸다.
날다 말고 바닥에 잘못 착륙한 삐약이가 항의하듯이 ‘구욱!’ 하고 울었다.
세헌은, 그러니까 저게 정말로 삐약이가 맞다면 삐약이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저 존재가 그가 아는 삐약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삐약이의 전신은 너무나 생생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기도 달랐다. 눈앞에 있는 삐약이의 크기는, 다 큰 거위만 했다. 분명 조그마한 청둥오리 정도였는데, 언제 저렇게 컸지?
사실 모체인 거트루드의 크기를 생각하면 저것도 아마 다 자랐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워낙 낯선 모습인지라 세헌으로선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삐약이는 꾹꾹거리며 세헌의 주변을 어정어정 걸어 맴돌기 시작했다. 세헌이 자신을 겁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삐약이인 거냐, 너.”
“구룩구룩.”
불타오르는 삐약이가 노래하듯 대답했다. 세헌은 눈에 힘을 주고 그것을 주시했다.
깃털도 불꽃, 몸통도 불꽃이다. 부리는 새카맣게 탄 숯처럼 보이지만 아주 단단해 보였다. 물론 발톱도 마찬가지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 삐약이가 나와 같이 차원을 건너며…… 뭔가로 변한 건가.’
잘 기르던 펫이 갑자기 던전에서 진화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주로 세계 면에서. 한국에선 보기 힘든 뉴스였다, 이 말이다.
하지만 추측을 뒷받침할 뭔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세헌은 문득, 이럴 때 강하라가 가장 먼저 허공을 매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곧장 시스템 창을 불러냈다. 그리고 곧 그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사조(이름: 삐약이)]
등급: S
던전의 불 속에서 다시 태어난 거트루드의 새끼.
특이사항: 알 속에 있었을 때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인지, 조금 맛이 간 것 같다.
체?력:? 34
민?첩:? 53
근?력:? 23
재?주:? 1
마?력:? 99
행?운:? 7
[스킬명]
- 부활 (0/3)
등급 S?
세헌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아는 삐약이와는 등급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불속에서 다시 태어나다니, 이게 가능한 건가?
세헌은 당황한 눈으로 삐약이를 내려다봤다. 그 재질만 다를 뿐이지, 자세히 보니 겉모습은 그가 아는 삐약이와 거의 비슷했다. 아니, 같았다.
“……네가 정말 삐약이라고?”
세헌은 삐약이에게 손을 내밀려다가 지레 움츠렸다. 그는 아직도 불꽃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삐약이는 그런 세헌을 보더니 두어 번 갸웃하다가 냉큼 그의 손에 포르르 날아 앉았다.
세헌이 움찔했다가 다음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불사조가 당신을 부모로 인식합니다.]
[불사조의 깃털에 상처 입지 않습니다.]
[부가 효과: 상태 이상(공포) 제거]
[공포가 사라집니다.]
[불사조와의 애착 관계로 인해 자신감이 솟아납니다.]
[불사조와의 애착 관계로 인해 행운이 상승합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삐약이가 제 손에 앉자마자 심장을 쥐어짜는 듯하던 압박감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계속해서 식은땀이 나던 손바닥도, 축축하던 등도 괜찮아졌다. 연신 뛰던 가슴도 차츰 안정되어 갔다.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라도, 세헌은 자신이 느끼던 공포가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세헌으로서는 정말로, 살며 처음 느껴 보는 안정감이었다.
이런 건가.
세헌은 그제야 하라나 권욱 같은 이들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들 장난 같은 게임형 메시지를 보며, ‘이런 비현실적인 거나 보고 사니 그렇게 위험한 일에도 서슴없이 뛰어드는구나.’ 하고 생각한 게 바로 조금 전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느끼는 안정감과 편안함은 그가 살면서 느껴 본 감정 중 가장 긍정적인 것이었다. 아니, 황홀하다고 할까. 놀라울 정도의 고양감도 차올랐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네가 가져다준 효과냐.”
삐약이가 머리를 가볍게 세헌의 손에 비볐다.
세헌은 쓰게 웃었다. 불꽃은 전혀 뜨겁지 않았다. 발로 걷어찬 게 미안할 정도였다.
“삐약.”
“그 고생을 하며 널 부화시킨 보람은 있구나.”
세헌은 작게 속삭이며 삐약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루에 5시간씩 알의 곁에 있어야 한다며 알람이 뜨는 바람에, 심지어 상암 던전까지 끼고 간 알이다. 그 고생을 생각하면 이 정도 효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삐약이는 세헌이 저를 쓰다듬는 손길을 만끽하며 즐겁게 우짖었다.
불길인 줄 알고 무서워 걷어찼던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 삐약이는 그저 주홍색 광원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부터 희미하게 주변을 비추던 불빛도 삐약이 덕분인 듯했다.
“삐약, 삐약!”
“순하기까지 하군.”
동시에 매일 삐약이와 티격태격하던 권욱이 생각나 세헌은 이마를 찌푸렸다.
“아무래도 둘의 상성이 안 맞는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권욱이 성격 파탄이었던 건가…….”
권욱이 들으면 ‘아, 형!’ 하고 기가 막혀 할 소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층 여유를 되찾은 세헌은 삐약이를 쓰다듬으며 시스템 창을 켰다.
[던전]
등급: D (상태 이상: 던전 브레이크)
제한 인원: 없음
환경 분류: 지하, 동굴, 흙
몬스터 출현 유형: 곤충, 포유류, 절지동물, 화염형…….
퀘스트: 노말(0) 히든(1) 사이드(0)
[퀘스트 정보를 보시겠습니까? Y/N]
그가 보고 있는 건, 하라 또한 보았던 던전 정보창이었다.
세헌의 이마가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