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누구세요?”
하라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물어 놓고 자신이 더 당황했다. 상대가 방송국 스태프면 어쩌려고?
하지만 곧, 마석관리과 공무원인 하라는 깨달았다. 본래 어딜 가나 마석은 그 위험성 때문에 2인 1조로 설치하거나 보수한다. 한 명이 실수로 마석을 잘못 들어냈다가 그 자리에 균열이 생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녀는 재빠르게 상대를 관찰했다. 한쪽 바닥에는 커다란 펜치가 기대어 있었다. 누가 봐도 마석 거치대를 인위적으로 잘라 낸 모습. 그리고 손에 엉거주춤 든 마석…….
하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자, 잠깐만. 그쪽, 어디서 왔어?”
“어디서 왔냐뇨.”
어디서 오긴, 17지구에서 왔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무래도 저쪽 또한 하라가 수상한 사람이긴 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진짜 ‘강하라’인 척하는 게 나으려나? 그런데 경찰 오면 또 신분 조회해야 되고…….
‘아니, 생각해 보니 뭐 어차피 균열 때문에 다 빠개질 거니까 상관없잖아?’
하라는 빠르게 마음을 바꿨다. 자신이 강하라인 척하기로.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내가 강하라 맞는데……. 17지구부터 자꾸 강하라가 여럿이라 스스로도 헛갈릴 지경이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쨌든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저 마포지서에서 나왔는데요.”
“……뭐?”
하라는 뻔뻔하게 그다음 말도 읊으려고 했다. ‘마포지서 마석관리과에서 나왔습니다~ 아이고, 여기는 원래 영등포구 관할인데 어쩌다 보니…….’ 같은 소리를 하려던 찰나였다.
당황하리라 생각했던 상대가 뜻밖에 화색을 띠었다.
“뭐야. 그쪽도 같은 처지구만.”
같은 처지는 또 뭐야? 하라가 이마를 찡그리자 상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야. 박 차장 얘기 듣고 나온 거 아냐?”
……여기서 또 그 이름이 나온다고? 하라는 기가 막혔다.
“……박영희 차장요?”
“그렇지, 그렇지. 잘됐네. 이거 혼자 하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리 좀 와 봐. 하이고, 못 살아. 사람 보낸다더니, 뭐 이렇게 젊은 아가씨를 보냈대?
그가 지껄이는 말을 듣던 하라는 대강의 경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뻔하고도, 진부한 일.
그러니까.
‘안 죄송합니다, 드라마국 여러분. 저는 십새끼가 아니었군요……?’
박영희 차장이 오만 곳에서 온갖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하라도 알았다. 그런데 여의도도 박영희 차장 짓이었어?
누군가 일부러 꾸미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생각했고, 그 십새끼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던 하라마저 틀리게 하는 대단함!
하라는 17지구의 하라가 좀 이해될 것 같기도 했다. 오만 지구를 다 건너다니면서 이 꼴을 봤다면, 박영희 이름 세 글자만 봐도 이가 갈리는 게 당연했다.
참고로 17지구에서 박영희가 저지른 짓도 만만찮았는데, 권욱은 그녀가 했던 짓을 3박 4일 떠벌려도 모자라다고 했었다.
하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보다가 환히 웃었다.
“잠깐만 나와 보세요.”
“뭐? 지금 시간 없는데…….”
“얼른요.”
상대가 엉거주춤 본래 거치대에 마석을 내려놨다.
그가 마석을 내려놓자마자 하라는 곧장 허리춤에서 마탄의 사수를 꺼냈다. 그리고, 상대가 당황하든 말든 출력을 최대로 높인 후 마석을 그대로 쏴 버렸다.
퍽.
당연하지만 S급 마석은 바로 박살이 났다. 그야말로 초전박살. 와장창, 하고 마석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상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하다. S급 마석이니, 아마 상대가 받은 지시 중에는 그 마석을 잘 빼서 들고 오라는 것도 있었을 테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물건 아닌가.
하지만 하라로서는 S급 마석이든 뭐든 박영희 손에 넘어가는 걸 눈 뜨고 볼 이유가 없었다.
“이봐! 야, 이거를 왜…… 너 뭐야?!”
“뭘 뭐예요.”
하라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때였다.
[하나님부처님알라신또그리스로마신, 아무튼 세상 모든 신 여러분,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 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