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공무수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168)화 (168/223)

166화

* * *

하라는 생각했다.

“곰팡이 냄새…….”

근방에서 담요를 털던 래영이 이마를 찌푸린 뒤에야, 하라는 깨달았다.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에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으앗, 그게, 그게 아니고요.”

“거 되게 미안하게 됐네.”

담요는 딱 봐도 해지고 오래돼 보였다. 래영은 한숨 쉬며 담요 여러 개를 바위에 널고는 말했다.

“이 근처에 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사막 지대라서 빨래도 어렵고 급수도 어려워서 다들 참고 있다고요. 일부러 안 씻는 건 아니야.”

“……죄송해요…….”

“사정 모르니 어쩔 수 없지.”

“근데 담요 때문에 그런 건 아닌데…….”

하라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래영이 눈썹을 들어 올리자 하라는 옆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막이라 그렇겠지만 다들 너무 우울해 보여서요.”

“뭐, 그건 사막이라서뿐만은 아니고. 5년 전에 다들 가족이나 친구 하나씩은 잃어서 그렇지.”

래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하라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바위 협곡에서도 가장 높은 바위 위에 올라와 있었다.

세헌이 하라의 수갑을 풀어 준 건 어제저녁이었다.

“아무튼 네가 여기서 수상한 짓을 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겠어. 그러니 밥값이라도 해.”

무슨 소리야, 했더니 천막 밖에서 기다리던 권욱이 대신 설명해 주었다.

밥값이라.

고개를 드니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 다 내려다보였다. 쨍하니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 때문에 그림자 안에 필사적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그걸 보고 저도 모르게 곰팡이 냄새 난다 생각했는데, 하필 근처의 래영이 들을 줄은.

“좀 즐거운 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

“뭐, 전쟁터에서도 아이는 태어난다고들 하니까. 그래도 그렇게 칙칙하지만은 않긴 해.”

“저기, 여기는 아이돌 같은 거 없어요?”

하라의 물음에 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돌?”

“가수 같은 거요.”

“아, 가수. 그런 건 있긴 한데 여기는 없지.”

아무리 삭막한 곳이라고 해도, 본래 인간은 모이면 여가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그러니 아이돌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한 게 어제였다.

물론 수갑 풀어 주는 윤세헌에게 그런 걸 물어볼 수는 없어서 일단 가만히 있긴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가수는 있긴 한 모양이었다.

“안전지대에는 있어. 근데 여기선 뭐 그럴 수가 있나.”

사람 소리를 듣고 오는 괴물 때문에 가수가 있어도 노래는 함부로 못 부른다고 래영은 설명했다. 애당초 그럴 만한 환경도 아니고.

“왜, 노래 부르고 싶어?”

그럴 리가. 하라의 마음은 전혀 다른 콩밭에 있었다.

‘우리 율리 여기서도 예쁘겠지…….’

양손을 턱에 괴고 여기서도 예쁠 신율리를 상상해 봤다. 평행 세계의 율리……. 완전 짱 예쁘겠지!

그때였다.

“야! 담요 누가 그따위로 털으래!”

하라의 귀가 쫑긋 섰다. 누군가가 탁탁탁, 뛰어오며 이쪽에 고함치는 소리.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래영은 ‘아-’ 하고 짜증 섞인 신음을 내뱉더니 ‘신그또 왔네.’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안 봐도 뻔했다. 이건!

“신그또는 무슨! 나한텐 이래영 네가 신그또거든?”

그랬다.

허리에 양손을 짚은 신율리가 거기 서 있었다. 눈은 세모꼴을 하고, 당당하게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래영에게 잔소리를 하는 율리!

사막이라 그런지 먼지투성이의 티셔츠에, 다 닳은 청바지를 입고, 지저분한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흡사…….

“대박적……. 데저트 뮤비 VR인 줄…….”

하라는 양손을 입 앞에 모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율리와 래영은 계속 티격태격했다.

“담요를 거기서 털면 먼지가 이쪽에 다 오잖아! 기침하다가 고개 들어 보니까 네가 담요 털고 있는 게 보이는데 내 어이가 다 털렸다!”

“아,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럴 수도 있어! 다른 방향으로 털면 되잖아!”

“또…….”

“너 지금 ‘또 지X이야.’ 이러려고 했지!!!”

“알면 됐네.”

“야!”

마구 악을 쓰던 율리가 문득 이쪽을 힐끗 보고 ‘으음?’ 하더니, 방금 전의 찌푸린 얼굴은 거짓말인 양 활짝 웃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이 상큼했다.

“아, 죄송해요! 놀라셨죠!”

“아뇨? 아, 물론 놀라기는 했는데 율리 씨가 고함 질러서 놀란 건 아니고요, 이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데…….”

하라의 지나치게 빠른 대답에 율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 이름 쟤가 말해 줬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치. 내가 널 말한다면 신그또라고 불렀겠지.”

“저게 진짜!”

하라가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저기, 신그또가 뭐예요?”

“아.”

래영이 픽 웃으며 답했다.

“신율리 별명이요. 쟤만 보면 나오는 세 마디. 신발, 왜 저래. 그럴 수도 있지. 또 지X이야.”

“…….”

그러니까, 평행 세계는 상당히 많은 결이 일치하긴 했다…….

하라가 얼떨떨해하는 사이 율리가 다시 말을 붙였다.

“언니,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 아침에 식사할 때 안 보이시던데?”

“아, 그게 제가 정신없었는지 너무 늦게까지 자서요…….”

하라가 머쓱하게 뺨을 긁었다. 정확히는 안경 때문에 늦게까지 잤다.

버블슬라임이 삼킨 안경은 돌아오지 않았고, 하라는 지금 세헌이 대강 비품 상자에서 꺼내 준 주인 모르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남의 안경인지라 시력이 안 맞아서, 어질어질한 기분 때문에 어젯밤에 늦게까지 잠을 못 이뤘다.

일종의 캠프처럼 운영되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단체로 시간을 맞추는 건 당연했으니, 늦게 일어난 하라는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였다.

“어머, 웬일이니, 저한테 말씀하시지. 제가 식사 당번인데. 언니, 남은 거라도 지금 갖다 드릴까요?”

옆에서 래영이 코웃음 쳤다.

“착한 척하기는.”

“난 원래 착하거든? 그리고 네가 인정머리 없는 거지! 언니한테 밥 먹었느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야, 스무 살 넘으면 자기 밥은 자기가 챙기는 거야. 그리고 나도 굶었거든?”

“넌 원래 맨날 굶잖아! 너도 따라와! 밥 먹어!”

“아, 귀찮아.”

“잔말 말고 안 따라와?”

“간다, 가.”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라도 머뭇거리다가 그 뒤를 따랐다.

래영을 밀며 걸어가던 율리가 아, 하며 뒤에 있는 하라를 돌아봤다.

“언니, 그리고 제가 되게 좋아했어요. 그거 아세요? 다들 언니가 죽었다고 했지만 전 믿었거든요! 언니가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요!”

하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맨 앞에 있던 래영이 입 모양만으로 ‘윤세헌이 말 안 했어.’ 하고 율리에게는 보이지 않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윤세헌은 캠프 내의 사람들에게, 강하라가 다른 지구의 사람이란 걸 설명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근데 그래도 되나. 본래 여기 있던 강하라 씨는 좀…… 쿨한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금방 들키지 않을까?

하라가 고민하는 사이 율리가 쾌활하게 말했다.

“제가 언니 팬이었거든요!”

“어, 팬이요?”

하라는 얼떨떨해졌다. 하지만 율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었다.

“저 언니 방송에 나올 때마다 챙겨 들었어요! 라디오로요!”

미쳤나 봐, 대박. 평행 세계 최고. 곰팡이 취소. 율리야, 네가 내 햇살이다. 유아마이썬샤인. 이렇게 햇살 쨍쨍하니까 다들 바위틈에 살아도 아무렇지 않군요? 그쵸?

래영이 들으면 얼굴을 찡그릴 주접을 하라가 혼자 속으로 떨며 내려갈 때였다.

“저기요! 강하라 씨!”

권욱이었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 때문에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그가 손을 흔들며 저편에서 하라를 불렀다.

“지금 시간 있죠? 좀 도와줘요!”

* * *

17지구가 이 모양 이 꼴로 망한 것의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아무튼 박영희였다. 사람들은 대충 5년 전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 전 지구가 사막화된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좀 달랐다.

안전지대의 수장 집단이었던 박영희는, 본래는 보통 사람에 가까운 낮은 등급의 각성자였다. 하지만 성좌들에 의해 이 지구의 사람들이 일제히 각성했을 때, 그녀도 각성했다. S급으로.

그러나 거기 만족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

성좌들이 시스템의 설계자를 찾으러 왔다고 하자 박영희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누구인지 모를 설계자가 나타나 모든 능력을 시스템으로 가시화했을 때 그 욕심을 드러냈다.

‘성좌들도 시스템에 스스로를 묶었다지. 그러면, 시스템 설계자를 설득하면 성좌들을 턱으로 부릴 수도 있을 거 아냐.’

아마 그 성격에 성좌가 제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구는 게 마음에 안 들었겠지.

하지만 박영희의 성좌 역시 첫 번째 지구의 본인이었다. 그리고 남 위에 군림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같았다.

결과적으로 그 둘은 사사건건 부딪혔으나, 한 가지 사안에 관해서는 합의했다.

시스템 설계자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17지구의 인류 중 누가 시스템 설계자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성좌들은 17지구의 각성자들에게 시스템 설계를 일제히 요청했고, 설계자로 나선 이는 시스템 설계를 마치자마자 제 신상을 가장 먼저 감췄다.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현명한 대처였다.

시스템 설계자를 찾지 못한 박영희가, 때마침 열린 S급 사막 던전을 인질로 삼아 설계자를 소환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설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러 마지막의 마지막에 들어간 강하라가 사망했고…….

“요 모양 요 꼴이라 이거군요.”

하라가 마른세수를 했다.

모래에 묻힌 벙커를 코앞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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