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딱 봐도 미친 여자다. 미연이 뭘 내밀었어도 태연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연의 손에 쥐인 게 마석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한 손에 있는 건…….
“아줌마, 이거 알죠.”
미연의 눈이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박 차장은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 저녁 늦게 야외 주차장까지 혼자 걸어온 것을 대단히 후회 중이었다. 빌어먹을!
차원의 불씨. 박 차장도 저게 뭔지 알았다. 알고말고. 돈뿐만 아니라 던전 피해자 단체를 가장한 라농교에 제가 직접 후원 물품들 속에 묻어 보낸 물건이었으니까.
가끔 던전에서 떨어지는 저 아이템의 정보는 불명이었다. 그렇기에 정부 창고에서 수십 개가 먼지만 뒤집어쓰고 썩어 가고 있던 걸, 박 차장이 빼돌린 것이었다.
‘김 회장! 일 처리를 왜 이따위로 하는 거야!’
매번 박 차장은 여차하면 모든 일에서 발을 빼기 위해 그 어떤 일도 직접 진행하려 들지 않았다. 항상 남의 손을 거쳤으며, 피해자 단체 관련 일은 김 회장이 모두 처리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난 거지?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행동하면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누가 봐도 미친 게 분명한 비렁뱅이였다. 박 차장은 뒤늦게야 애써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선생님, 제 이름은 그런 이름도 아니고요. 그건…… 알죠. 마석이네요.”
“…….”
“제가 재난청 공무원인데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요. 그런데 혹시 재난청에 마석을 판매 신청하러 오신 거라면 내일 아침에 다시 재난청 마석관리과로 가시겠어요?”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느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미연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박 차장을 관찰할 뿐이었다.
“전 퇴근길이라서요. 죄송하지만 민원실에 내일 가시면…….”
“……공무원증 보여 줘요.”
“예?”
“공무원증요. 박영희 아니라면서요.”
미친 여자 주제에 왜 이런 데에서 이성적인데? 박 차장은 벌컥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그녀가 망설이자, 미연이 손을 내밀며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박 차장은 저도 모르게 물러서려다가 덜컥, 제 차에 가로막혀 멈췄다.
“저 정말 모릅니다. 공무원증도 지금 없고…….”
“재난청 건물에서 나오는 거 봤는걸.”
그러니까, 박 차장이 보기에 미연은 머리가 돌아 버린 여자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 약을 하지 않은 미연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미연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집안 식구 죽은 사람 명단 뽑아내고, 돈 주고. 그거 아줌마 맞죠.”
“아니라니깐!”
소리 지른 박 차장이 재빠르게 가방을 뒤졌다. 경찰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연은 박 차장에게 곧장 덤볐다. 박 차장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든 가방으로 미연을 후려쳤다. 미연이 악,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바깥을 떠돌아다니며 비쩍 마른 미연은 종이 인형 같았다. 박 차장은 나가떨어진 미연을 보며 간신히 진정했다.
그럼 그렇지. 제깟 게 감히. 그러고는 뒤늦게, 제 차 문이 열려 있다는 걸 깨닫고 후다닥 차에 타자마자 문을 잠갔다.
“미친, 미친. 김 회장 어딨어.”
그렇게 중얼대며 박 차장은 시동을 걸었다. 일단 자리를 빠져나가 전화로 따질 셈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제 차를 가로막은 미친년 때문에 절로 욕이 나왔다.
“저게 진짜.”
“못 가!”
미연은 엉금엉금 기어 박 차장의 차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트린 마석을 주웠다.
분명히 저 여자가 박영희가 맞다. 인터넷에서 봤다. 그런데 발뺌한다? 분명히 뒤가 구린 사람일 것이다.
화르륵…….
미연의 손에서 불이 타올랐다.
[‘차원의 불씨’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