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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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꾸 발생하는 언노운 게이트 때문에 김정아도 눈코 뜰 새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S급들은 평소 사람들의 주목도가 큰 만큼, 이런 재해에서 가장 먼저 여론의 폭격을 맞기 때문이다.
“으아! 잠 와!”
사흘째 잠을 못 잔 김정아는 눈이 벌게져 있었다. 평소 다혈질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화낼 기력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남편인 진경우가 토닥였다.
“자기야. 살살 해, 살살.”
“뭘 살살…… 아.”
저도 모르게 옆의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으스러트리고 있던 김정아가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진경우는 그녀의 손에서 나뭇가지를 슬쩍 빼앗아 나무에 도로 붙여 놨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섬유질 사이에서 진액이 흘러나오더니 엉겨 붙어 스스로 재생됐다. 진경우가 힐러 계열 헌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자기, 얼마 전에 실수하는 바람에 산림청에서 그렇잖아도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아니, 내가 일부러 그랬나. 나도 반성하고 있다고.”
얼마 전 던전 브레이크를 막다가 실수로 300년 된 은행나무에 불을 낸 김정아가 머쓱해했다. 진경우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문화재 훼손으로 혼쭐이 났을 것이다.
아무튼 두 사람은 갑자기 이 근방에서 잡힌 마석 반응을 찾기 위해 순찰 중이었다. 요즘 마구잡이로 발생 중인 언노운 게이트가 인위적으로 발생한다는 보고 때문이다.
김정아가 투덜거렸다.
“아니,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게이트를 만드는 거야? 돌았나.”
“저기 있는 미친놈들인 거 같은데.”
“게이트 만들어 봐야 뭐 좋은 일 있…… 뭐?”
진경우의 여상한 말투에 별생각 없이 대꾸하던 김정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진경우는 그런 김정아의 입부터 막고는 남은 손으로 숲 아래쪽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막 봄을 맞아 물이 잔뜩 오른 새순들 사이, 바위 아래에 수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이대가 다양한 걸 보니 일단 등산 모임은 아니고.”
“읍읍읍읍.”
“그래. 옷도 우중충한 걸 보니 등산 모임이 절대 아니다, 그치?”
“읍읍읍읍읍.”
“응. 손에 마석도 들고 있네. 자기야, 증거 잡아야 해서 휴대 전화로 전부 찍어야 하니까 소리 지르면 안 돼. 갑자기 때리는 것도 안 되고, 제압도 안 돼. 알겠지?”
“읍읍읍.”
“응, 자기 깡패 아닌 거 알아.”
김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경우는 곧장 김정아에게서 손을 떼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김정아는 그런 진경우를 못마땅하게 한 번 노려본 후 몸을 낮추고 수상한 이들 쪽을 관찰했다.
“저 새끼들, 싸우나?”
“그런 거 같지.”
인적 드문 산속. 길도 나 있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예측대로, 그들은 라농교 신자들이었다.
“나 이거 못 하겠어요.”
마석을 들고 있는 여자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혀를 찼다.
“아니, 미연 씨. 그럼 어떡하라고. 미연 씨 말고는 그거 되는 사람이 없잖아요.”
“천국 가기 싫어요?”
“하지만 꼭 죽는 거 같단 말이에요…….”
미연이라는 여자가 손을 덜덜 떨었다. 눈 밑은 퀭했고, 눈동자는 새카맣게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얼굴은 살이 다 내려 해골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는 혀를 쯧 찼다. 이거 아니어도 어차피 한 사흘 후에 죽을 거 같은 얼굴 하고 뭐가 저렇게 무섭다고 뻗댄담.
“가르침을 들었잖어. 몸은 여기에 남아도 영혼은 천국에 가는 거라고. 어? 최미연 씨.”
“그래요. 우리 모두 다 천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아들 좀 만나야 돼. 응? 미연 씨, 우리 좀 도와줘. 약발 떨어졌나 본데, 약 줄게.”
나이 먹은 여자가 남자의 말을 거들며 품에서 앰플 두어 개를 꺼냈다. 최미연은 손을 달달 떨며 그걸 받았지만, 눈알은 여전히 되록거리며 주변 눈치를 봤다.
“몸은 여기 남고 영혼만 천국 가는 거…… 그게 죽는 거잖아요.”
“아니, 미연 씨. 들어 봐.”
“나는 싫어요! 나는…… 그만둘래…….”
앰플을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남자가 혀를 찼다.
“하, 약쟁이 새끼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야, 어지간하면 좀 하라고. 돈 받았잖아!”
“돈 돌려, 돌려드릴게요.”
“돌려줄 돈은 있고?”
또 다른 이가 대꾸했다. 대여섯 명에게 둘러싸인 미연이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 구해 올게요. 네?”
하지만 사람들은 완강했다. 서로 눈짓하더니 ‘안 되겠다. 잡아.’ 하며 미연을 붙들었다.
미연이 발버둥 쳤지만 워낙 팔다리에 힘이 없는지라 소용없었다.
그 광경을 몰래 보고 있던 김정아와 진경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저게 뭐 하는 거지. 단순히 싸움 난 게 아닌 거 같은데…….”
“몰라. 뭘 먹이는데? 마석?”
“마석을 먹인다고? 그거 먹을 수 있는 거야?”
물론 마석은 사람이 먹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미연의 입에 마석을 강제로 집어넣고 있었다.
강제로 먹이면 먹을 수 있는 걸까. 애초에 소화가 불가능하지 않아? 진경우의 나사 하나 빠진 생각에 대한 대답은 다른 사람이 했다.
“그만둬.”
막 최미연의 입 안에 마석을 하나 더 쑤셔 넣던 사람들이 움찔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들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최근에 등장한 서울지청의 S급 헌터. 그러니까, 미디어에서 보던 환한 얼굴은 아닌.
“강하라다!”
“……그래. 그게 내 이름이기는 하지.”
놀라고 당황한 사람들 앞에 선 여자는 지나치게 무료해 보였다. 그녀는 기다란 빛의 기둥을 짚고 서 있었는데, 그 태도가 어찌나 태평한지, 마치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보였다.
“거기 천국 같은 건 없으니까 그만둬 줄래?”
“누, 누가 믿을 줄 알고! 정부의 끄나풀 따위!”
“야, 빨리 해!”
“응, 으응!”
최미연이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누군가가 화르륵, 하고 주위에 불을 붙였다. 물리적인 화력이 아니라, 헌터들이나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동시에 드드드드, 하고 주변이 진동했다.
강하라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지 말라고 했어.”
“야! 최미연! 빨리 하라고!”
뭣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미연을 구속하면서도 그녀의 오른팔만큼은 자유롭게 놔두었다. 그녀가 팔을 마구 휘저었다. 다음 순간, 허공 한가운데가 쩍, 하고 갈라졌다.
[게이트 생성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