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으흠. 그 시스템은 안 쓰는 게 가장 좋은 거지.”
본청장이 헛기침했다.
비상대응시스템. 기어이 국방부 장관까지는 해 먹고야 말겠다는, 본청장의 야심이 담긴 업적이었다.
물론 실무에는 하등 소용이 없어 재난청에서도 아무도 써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 박 차장은 웃으며 맞장구쳤다.
“네, 그래도 시스템이 있으니 한결 안심이 되네요. 그때야말로 본청장님이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걸 전 국민이 알게 될 거예요.”
“거, 누가 알아줬으면 해서 이 일 하는 게 아니잖나. 박 차장, 말조심하세요.”
“그럼요, 장관님. 어머, 제가 실수했네요.”
박 차장이 일부러 실수한 척 입을 가렸다. 본청장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말조심하라니까는.”
“네,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모르니 각 지청 긴급출동팀은 24시간 체제로 돌리시죠. 아무리 그래도 서울지청 협조 요청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으니 말이에요.”
물론 긴급출동팀에 가는 공문에는 꼭 꼭, 강하라와 서울지청 이름을 넣을 예정이다. 원망은 그쪽으로 돌려야 하니까.
본청장은 으흠, 하며 ‘그렇게 합시다. 박 차장이 내 마음을 아주 잘 알아. 맞춤옷 같다니까?’라고 만족스러운 티를 냈다.
몇 번 더 맞장구치던 박 차장은 ‘저는 혹시 모르니 세종시 방제 점검 한 번 더 돌리겠습니다.’ 하고 청장실을 나왔다.
보통 때였다면 비위 맞추기 어려운 본청장 때문에라도 한 번은 숨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박 차장은 청장실을 나와 문을 닫자마자 잽싸게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입은 찢어질 것처럼 환한 미소를 그린 채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뭐 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저 거기 연결 좀 해 주세요. 아시죠. 여러모로 후원해 드리고 싶은 게 많아서. 응. 알았어요. 아유, 알죠. 으응. 지원금 선정 꼭 해 드린다니까. 회장님이 어디 보통 도와주셨어야 말이지. 네.”
원래라면 메시지로 했겠지만, 기분이 좋아 일부러 통화를 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언노운 게이트 100개라니!’
박 차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기회’였다.
서울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기회.
한국에 언노운 게이트가 100개 열린다. 어디서 열리는가? 모른다. 어떻게 열리는가? 모른다.
그렇다면 박 차장은 그 퀘스트에 기꺼이 본인이 기여하기로 했다. 퀘스트가 그녀에게 ‘어디 한번 100개쯤 터트려 보라.’며 판을 깔아 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100개씩이나 열리는 게이트에 기함하겠지만, 박 차장에게는 그게 이은주 옷을 벗길 기회로만 보였다. 기가 막힌 사고방식이었다.
‘옷 벗고 물러나 보라지. 아니, 기왕이면 그 잘난 몸뚱어리 던전에 투신해서 죽으면 더 좋겠지. S급이면서 지청장이랍시고 엉덩이만 무거워져서는 늘 잘난 척이나 하고.’
사실 박 차장의 불만과 달리, 애초에 이 청장은 전투계 헌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전파가 통하지 않는 던전 특성상, 서울 지청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연락이 끊기면 여러모로 곤란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박 차장에게는 그것 또한 이 청장을 미워할 이유일 뿐이다.
간만에 찾아온 기회에 박 차장은 즐겁게 머리를 굴렸다. 잠실이 좋을까? 아니면 사람들 눈이 모이는 여의도에 한 번 더? 아니면…… 서울지청이 있는 광화문?
그게 좋겠다.
박 차장의 입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하. 세종대왕상이 게이트에 쪼개지면 그거 정말 볼만하겠어.’
불편한 구두를 신었는데도 걸음이 왜 이렇게 가벼운지. 본청 복도를 걸어가는 박 차장의 뒷모습은 날아갈 듯 행복해 보였다.
* * *
“결국 알아서 뛰라고 하시네요.”
하라의 팀에 내려온 명령을 하달한 건 래영이었다. 하라가 애써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서울지청에서 최대한 서포트해 주시긴 하겠대요…….”
이 청장이 하라의 퀘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보낸 협조 요청은 깡그리 무시당했다. 다행인 건 팀원들의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공직 사회가 그렇지. 기대도 안 했으니 아가씨도 너무 그러지 말어.”
팔짱 낀 정혁이 대꾸했다.
그럼에도 하라는 안절부절못했다.
“이 청장님이 서울 지역하고 경기도까지는 어떻게 해 보겠다 하시는데, 다른 곳은 원활하게 협조되진 않을 거라고 하세요. 본청장님이 괜히 불안감 조성한다고 비공식 요청도 금지시키셨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죠.”
“죄송해요…….”
“누나가 왜 죄송해요?”
복희의 물음에 하라는 눈알을 굴리다가 ‘다들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다. 세헌은 하라에게 자책하지 말라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불안해하는 하라를 보다 못한 권욱이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강하라 씨. 이 나라는 S급 헌터 하나 나오면 아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쪽쪽 빨아먹는 나라예요. 최대 효율, 최소 인력. 지금 당장은 다 망할 거 같아도 막상 현장 가면 어떻게든 다 됩니다. 이런 경우는 뭐 흔하다 못해 매일 있는 일인데 뭘 그렇게 죄송해해요?”
“그래도…….”
“걱정되면 앞으로 더 잘하든가. 뉴비 티 오지게 내네. 미안하다고 던전에서 얼 타면 그게 더 민폔 거 알죠? 그리고 지금 되게 자신 없어 보이는데, 그거 진짜 별로야. 팀 리더가 땅 파고 있으면 사기 저하밖에 더 돼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권욱이 잽싸게 뒤로 물러섰다. 뒤늦게 ‘뺙!’ 하고 권욱을 쪼려던 삐약이가 분하다는 듯이 부리를 허공에 부딪혔다.
“하하! 피했지롱!”
하라는 그런 권욱을 흘겨봤다.
“맞는 말을 정말 얄밉게 하시네요…….”
“저게 권욱 재주지…….”
“저 형, 어그로 전용 스킬도 있잖아요.”
팀 K였던 팀원들이 한마디씩 더 거들었다. 하라는 아하하, 하고 머쓱해했다.
* * *
권욱의 말은 며칠이 지나자 사실로 드러났다. 언노운 게이트가 막상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하자, 의외로 현장은 정말 잘 돌아갔던 것이다.
각 지청의 긴급출동팀도 있었고, 언노운 게이트 이슈 때문에 민간에서도 따로 방비하고 있던 덕이었다.
“서울지청 강하랍니다! 던전 저희가 공략할게요!”
그렇게 외치며 현장으로 가면 반겨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게이트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섯 개인가, 일곱 개쯤의 던전을 공략 완료했을 때는 ‘마석 있어도 터지는 언노운 게이트…… 불안한 시민들’ 같은 기사가 하나둘씩 뜨기 시작했다.
- 아 X바 이럴 거면 큰돈 들여서 마석 안 샀지
┗ 자영업자들 가뜩이나 힘든데 이게 나라냐
┗ 건물주세요?
- 탈조선합시다
┗ 뭐래 해외도 지금 터지고 있거든
- 이거 세계멸망 징조 아니냐 ㄷㄷ 세계멸망 이유 뭐일 거 같음? 해수면 상승 VS 언노운 게이트
- 언노운 게이트 이렇게 터지는데 농은 언제까지 롱 팀에 붙어있을 거임? 팀 K 재결합 소취
┗ 권욱빠는 권욱갤로
┗ 이은주도 생각이 있겠지
- 이거 사이비들이 터트린다는 소문 있던데
┗ 나도 들음
┗ 특정 종교 비방 자제요
┗ 라농교니?
- 니네 이 뉴스 봤어? ‘라농교 과격파, 언노운 게이트 범인?’
┗ 미친 실화냐
┗ 추측성 기사 가져와서 팩트인 양 쓰지 마
┗ 라농교니? 22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