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라농 우타이타니가 던전 너머의 세계를 보고 온 건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이다.
세계 곳곳에 열리는 던전들에 관해 그 어떤 정보 기관도, 어떤 나라의 정부도 확실한 답을 얻은 곳은 없다.
게이트는 어느 날 갑자기 열리는 것이었으며, 던전은 재앙이었으니까. 해일, 지진, 폭설 따위와 같은 레벨의 자연재해로만 취급됐을 뿐.
그나마 마석을 박은 곳에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낸 인류는, 댐을 이용해 홍수를 막듯 마석으로 던전을 막는 식의 대처만 계속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개중의 하나가 라농 우타이타니였다. 인류 최초의 S급.
라농은 던전의 하늘 위로 끝없이 날아 올라가면 보이는 여러 개의 지구에 의문을 가졌다. 더불어 던전의 바닷속으로 아무리 들어가도 보이지 않는 바닥.
<바다요……?>
<방어막을 칠 수 있는 S급 헌터를 동원해 던전의 바다를 탐사한 기록이 남아 있지.>
비바가 답했다.
미공략 던전이 언젠가 브레이크를 일으킨다는 시간 제한만 없었어도, 어쩌면 인류는 던전 안에서 로켓을 쏘아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도, 자원도 부족했기에 던전의 바다를 탐사했다.
그리고 인류가 마주한 건 아득한 심연이었다.
던전의 바다에는 바닥이 없었다. 대신 그곳을 탐사한 헌터는 ‘진실에 접근한 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졌고, 여러 헌터들은 진실과 관련한 타이틀을 얻어 냈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 세계가 평행 지구인지, 아니면 그 너머에 다른 우주나 세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라농 우타이타니는 평행 지구를 주장하고 있죠.>
라농은 던전 너머에서 자신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천국이라고도 말했다.
이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믿기 힘들었다.
그러다 던전을 연구하는 일부 연구자들은 의문을 느꼈다.
그렇다면 던전은, 어쩌면 천국으로 넘어가기 위한 시험대가 아닐까.
<……여기서 갑자기 종교로 빠진다고요?>
<인간은 나약하니까요.>
잠자코 듣고 있던 세헌이 첨언했다.
<외부에 알리기는 위험했겠군요. 잘못하면 헌터들만이 선택받은 자라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될 테니까요.>
<정확합니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한 번만 일어나도 종말론이 들고일어나는 세상이다.
던전 너머의 세계가 천국이라면, 헌터들은 천국으로 넘어가기 위한 능력을 선물받은 자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기존의 국가 질서 따위는 우습게 무너트릴 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까지 되나요…….>
<던전과 헌터가 없었다면 다들 안 믿었을 겁니다.>
세헌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유리겔라가 TV에 나와 수저를 구부리는 것 정도가 고작해야 인류의 ‘초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어떻습니까.>
<…….>
<하라 씨가 만약 100년 전에 하늘을 날았다면, 지금쯤 하라 씨의 이름을 딴 국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라는 입을 닫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라농이 보았다고 진술한 것들은 여러 가지지만 하나같이 공통적인 게 있어. 우리 지구와 똑같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지. 라농은 결국 거기에 매몰돼서 던전 너머의 세계에 지나치게 탐닉하고야 말았지.>
결국 연구자들은 라농을 막았다. 던전에 들어간 라농이 공략보다는 던전 너머로 넘어가는 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에 강력히 항의한 라농은 테러 범죄까지 계획하다가 발각됐다. 그리고 끝내 온갖 권한을 다 빼앗긴 채 던전에 접근 금지당했다.
<그럼 같은 걸 접했던 다른 헌터들은…… 어째서 라농을 따라가지 않은 거죠?>
이 청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천국 같은 게 있든가 말든가…… 라는 거지.>
하라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이 청장이 다시 덧붙였다.
<우리나라만 해도 S급 헌터로 각성하면 이민 간다는 사람들이 한 트럭은 될 거야. 하지만 막상 S급 헌터로 각성한 사람들 중에 해외로 이민 간 사람이 몇이나 되지?>
<……아.>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환생이나 재탄생을 입버릇처럼 바라곤 한다. ‘이번 생은 망했으니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자.’ 하는 건 우스갯소리 중에서도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
하지만 막상 진짜로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버튼이 눈앞에 생긴다면, 그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스스로 영위해 온 인생에, 사랑하는 것 한두 가지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그 천국은 확실한 것도 아니죠.>
세헌이 덧붙였다.
적어도 ‘진실’ 타이틀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위급 헌터거나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권력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본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놓기 어려운 법.
<무엇보다 온갖 몬스터를 물리치고 가야 하는 천국? 글쎄…….>
<확실하지도 않은 유토피아에 넘어갈 만큼 절실한 사람들이 아니란 얘기군요.>
<호기심 넘치는 재력가들이 몇 번 본인 말고 다른 사람들을 넘어가게 해 볼까, 하고 시도했지만->
각국의 정부가 일치단결해 막았다.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 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천국이 절실한 사람들은…….>
<……라농의 신자가 됐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하라 말고 또 다른 강하라의 존재였다.
<그러면 저와 비슷한 그 사람은…….>
<나는 어쩌면 그게 라농과 같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
턱을 괴고 있던 비바가 말을 이었다.
<라농이 던전 너머의 세계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났다면, 그럼 그 세계의 강하라도 여기 넘어올 수 있지 않겠어?>
<근데 그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친구야. 우린 손에서 빛을 뿜어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하라가 입을 닫았다. 비바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알고는 있으라는 얘기야. 사실 제일 좋은 건 내가 아시안 얼굴을 구별 못 해서 이런 해프닝을 만들었다-로 끝나는 거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하라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 그 하라…… 음……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한 기분이네요. 아무튼 그 강하라 씨의 목적은 뭘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 내가 본 건 그냥 던전 공략하고 사라지는 모습이었거든.>
한국에서도 그랬다. 또 다른 하라로 간주되는 그 사람은, 그저 빠른 시간 내에 던전을 공략하고 사라졌다. 비바를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그 어떤 힌트도 없이.
<그쪽도 S급은 확실해 보이니까, 작정하고 찾으려 한대도 잘 안 될 거야.>
<그렇군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죠.>
하라는 불안하게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이 청장을 바라봤다. 하라와 시선이 마주친 이 청장은 무릎에 손을 포개 얹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성실하고도 당연하게요.>
세헌이 답했다.
하라는 그런 세헌을 신기하게 올려다봤다. S급 헌터인 자신도 이렇게 불안한데, 어째서 이 사람은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그 태연함이 부럽고, 조금은 의지가 됐다.
해서 하라는 세헌의 말을 따라 하며 되뇌었다.
<성실하고도 당연하게…….>
성실하고도, 당연하게.
* * *
래영이 고함쳤다.
“성실하고 당연하게 온 게 왜 율리 콘서트냐고!”
와아아아……. 함성과 커다란 사운드가 섞였다. 당연하게도 래영의 말은 하라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
하라는 ‘으응? 래영아, 뭐라고?’ 하고 큰 소리로 물으며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물론 그 손에는 율리 응원봉이 쥐여 있었다.
래영은 어처구니없어하다가, 다시 하라에게 소리 질렀다.
“차라리 나가서 E급 던전 하나 공략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겠다!”
“아이, 무슨 소리야, 래영아!”
하라가 환히 웃으며 무대를 가리켰다.
“나랑 어젯밤에 같이 세트리스트 공부하고 뮤직비디오도 챙겨 봤으면서!”
그러고는 래영이 바닥에 두었던 응원봉을 다시 주워 손에 꼬옥 쥐여 주었다. 그리고 비장하게 말했다.
“세트리스트 보니까 다음 곡 블루투스로 응원봉 색깔도 바꿔 준대! 이거 꼭 들고 있어야 돼!”
래영이 아득한 얼굴을 했다. 언니랑 괜히 말 놨어……. 존댓말 하면서 계속 말 못 놨으면 이 언니가 여기 오자고 안 했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하라는 다시 결연한 표정으로 무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비춰지며 VCR이 빛났다. 하라가 행복한 표정으로 양손에 응원봉을 꼭 쥐었다.
봄꽃 피는 4월. 하라가 가장 고대하던 일정인, 율리의 콘서트.
자리는 1열 앞 특등석.
그렇다. 1열도 아니고 무려 특등석이다. 율리가 콘서트를 다시 개최하면서 끼워 넣은 두 자리였다.
평소였다면 팬들이 마구 반발했겠지만, 두 사람의 뒤에 앉아 있는 1열 팬들은 완전 납득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라 아니었으면 개최도 못 했을 콘서트 아닌가.
이를 방증하듯 하라 주변에는 선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팬들이 하라를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들이었다.
“근데 왜 나까지 여기 있어야 되냐고!”
거기에 대한 대답은 율리가 대신했다. 막 무대 의상을 갈아입고 다시 나오던 율리가 래영 쪽을 보더니 웃으며 키스를 날렸던 것이다.
하라가 환히 웃었다.
“율리가 잘 왔대잖아!”
물론 이래영한테는 ‘ㅋ’ 하는 비웃음으로밖에 안 보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