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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공무수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113)화 (113/223)

111화

* * *

‘……서져.’

빠드득.

‘……서지란 말이야……!’

빠득, 빠득.

벽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게 뭘까. 하라는 멀뚱멀뚱 그 광경을 바라봤다.

어둡고 짙푸른 색. 막 해가 진 밤하늘 아래, 어떤 여자가 뭔가를 부수고 있었다. 뭘 부수고 있는지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뭔가를 캐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벽을 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특이한 건 그녀가 들고 있는 도구였다. 동굴에서 뭔가를 캐려면 보통은 곡괭이를 사용한다. 벽을 때리려면 보통은 거대한 해머를 쓰겠지.

하지만 그녀가 손에 쥔 것은 빛을 내고 있었고, 게다가 일직선이었다. 마치…….

‘오.’

하라는 다음 순간 감탄했다.

‘복희 씨가 만든 간지대박검 같네.’

얼마나 이름을 유치하고도 직설적으로 지었는지 꿈속에서도 기억이 났다. 간지대박검이라니. 하라는 그 이름을 떠올리고는 킥킥 웃었다.

어라.

꿈?

‘제발 부서져……!’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하라가 멈칫한 순간, 여자가 주저앉았다.

하라는 저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던지고 이제 주먹으로 벽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깟 거! 이깟 게……!’

그녀가 절규하는 모습은 거의 우는 것 같기도 했다.

하라는 이게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보다 못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강하라가 제게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흐느꼈다. 하라는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짚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그러나 그녀는 하라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계속 울었다.

가까이서 보니 행색도 지저분했다. 긴 머리카락은 대체 뭐에 뜯어 먹혔는지 온통 쥐가 파먹은 양 지저분하게 짧아져 있었다. 옷은 먼지와 핏자국, 체액 따위로 가득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모든 게 그녀의 피가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는 상처 자국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어라.

하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원래 길었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지?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차피 이건 꿈이다. 그러니까 알 수도 있지.

‘저기, 찬 데서 이러면 내일 되게 고생할 거예요. 일단 눈물부터 닦고…….’

그래서 하라는 다시 그녀를 흔들었다. 그때였다. 주저앉아 손에 얼굴을 묻고 울던 그녀가 하, 하고 낮게 웃었다.

‘……우습네.’

‘네?’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어.’

다음 순간 하라는 숨을 들이켰다. 고개를 들고 하라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여자의 얼굴이 너무나 익숙해서였다.

이쪽을 향해 치켜뜬 독기 어린 눈. 눈물로 지저분하게 얼룩진 뺨. 퉁퉁 부은 얼굴과 잔뜩 날이 선 표정.

이 얼굴을 내가 어디서 봤지?

‘너나 잘해.’

‘어, 저기…… 저희 혹시 아는 사이인가요?’

‘아는 사이냐고?’

상대는 하라를 보고 그렇게 묻더니, 날카롭고 높은 소리로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이나 웃은 그녀는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훔치더니 이쪽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너랑 아는 사이냐고? 그걸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요?’

‘멍청한 게.’

아니, 그렇잖아. 이 주변에는 당신하고 나밖에 없어요.

하라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상대방에게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그녀는 눈을 훔친 뒤 빠르게 일어섰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줍자마자 능숙하게 빛을 뽑아냈다. 츠즈즛, 소리를 내며 흰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

하라가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그 검을 바라봤다.

만약에 상대방이 그렇게 낯선 표정을 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하라는 조금 더 일찍 깨달았을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이, 자신이 매일 거울 안에서 보던 그 얼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강하라.’

‘……네?’

넋 놓고 있다가 되묻는 저의 뺨을, 하라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가 가볍게 톡톡 쳤다.

‘방심하지 마.’

‘……왜요? 6.25 일어날까 봐요?’

얼빠진 농담을 던졌으나, 상대방은 웃지도 않고 저를 가만히 응시했다.

눈을 가늘게 뜬 그 모습은, 저거 봐. 저런 표정은 나는 해 본 적도 없어.

저런 얼굴이니까 내가 내 얼굴인 줄도 몰랐지!

‘그렇게 멍청하게 굴다간 다 뺏길걸.’

‘……뭘요?’

‘전부 다.’

‘……누구한테요?’

와. 진짜 얼간이 같다. 몇 번이나 물으면서도 하라는 속으로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한테? 뭘? 죄송하지만 제 얼굴 하셨으면 말씀도 공무원처럼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공무원의 기본은 육하원칙이란 말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가 당신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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