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공무수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111)화 (111/223)

109화

* * *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이용권’.

하라에게 그것을 넘겨받은 복희는 심사숙고한 후 말했다.

“저 이거 지금 쓸래요.”

고작 10초 생각해 놓고 그게 심사숙고인가 싶었지만, 복희는 당당했다.

“제가 10초나 생각이라는 걸 하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아요?”

예, 뭐 그렇군요.

아무튼 복희가 그 이용권을 사용한 것은 통일로 던전 공략 날 아침이었다. 강하라가 권욱을 붙들어 온, 바로 그날.

권욱은 강하라 이하 이래영을 비롯해 유민호며 복희까지 둘러앉은 자리에서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제가 왜 그랬는지 털어놨다.

“박 차장이 시켰어.”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 아니, 여기서 박 차장이 왜 나와!”

“……헌터가 싫어서?”

권욱은 자신과 박 차장이 얽히게 된 역사를 간결히 털어놨다.

“나 처음 던전에서 나오고 바로 컨택해 왔어. 그때는 내가 서울지청 가게 될 줄도 몰랐고, 막 S급 돼서 넋 놓고 있었거든. 그래서 잘해 주길래 좋은 사람인가 보다 했지.”

“바보야? 잘해 주면 좋은 사람이게?”

“하하.”

처음 권욱을 직접적으로 담당하게 된 사람은 정유진이었다. 마포지서 호랑이라고 불리던 정유진은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 때문에 고위급 헌터들의 멘토 노릇도 했더랬다.

박 차장은 정유진에 비하면 권욱에게는 별로 존재감도 없었다.

하지만 박 차장이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건 권욱과 정유진의 사이가 벌어진 후였다.

“사이는 왜 벌어졌는데요?”

“그걸 내가 꼭 말해야 되나? 뭐, 복희 너도 학교 다닐 때 모든 선생님하고 사이가 좋진 않았을 거 아냐.”

“저 학교 안 다녔는데요.”

“아.”

아무튼 본청 차장인 박영희와 권욱은 그전에는 1년에 한 번, 활동 보고 때나 만나는 사이였다.

하지만 정유진과 사이가 틀어진 권욱은 제게 접근해 온 박영희를 보고 그쪽 노선을 타는 게 낫겠다 싶어졌다.

“아니……. 라인이니 노선이니 하는 거 좋아하는 인간들 꼭 하나씩 있던데, 그게 내 구팀장이라니. 그딴 걸 꼭 타야 돼?”

“래영아.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데, 세상은 돈과 권력이 전부야.”

“언니, 나 권욱 한 대만 때리면 안 돼요?”

“아니, 들어 봐. 혼자 잘났다고 이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더라니까. 이건 강하라 씨도 마음에 새겨 둬야 해요. 지금 당장은 S급 돼서 즐겁겠지만…….”

“요 입, 요 입!”

래영에게 입을 얻어맞으면서 권욱은 마저 털어놨다.

아이돌 시절 권욱은 나름대로 능력치가 괜찮은 멤버였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적당히 잘 췄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게 분명 있었다고, 권욱은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며 하라 눈치를 요리조리 보는 것이 아무래도 동정심이라도 유발하려고 했던 모양이나, 안타깝게도 강하라는 잠이 모자라 하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년에 걸쳐 권욱은 박 차장의 끄나풀 노릇을 하게 되었다. 박 차장이 던져 주는 달콤함이 컸던 것이다.

‘우리 욱이, 아이돌 출신이니까 재난청 아이돌 할까?’ 하며 대대적으로 밀어준다거나, 뒤로 빼돌린 부산물을 권욱에게 먼저 준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사실 극히 작은 부분이다. 권욱을 가장 크게 만족시킨 건, 어쨌든 그 스스로가 재난청의 중심축 중 하나라는 기분이었다.

“KIBUN 말이죠.”

“KIBUN의 영역은 이성이 안 통하긴 하는데…….”

“고작 그거 때문에?”

“래영아, 네가 듣보돌로 한 4년 살다 보면 그렇게 돼.”

“야. 난 일반인으로 20년 넘게 살았거든?”

다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

박 차장과 깊은 관계가 되며…….

“잠깐, 난 그 아줌마랑 이상한 관계는 아니니까 그런 말은 좀 아닌 거 같아.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뇌물과 배임과 횡령만으로 얽힌 관계라고.”

“미친놈 아냐, 이거. 그게 순수하냐?”

아무튼 박 차장을 점점 더 알게 되며 권욱은 박 차장 안의 이유 모를 증오를 포착했다. 고위급 헌터들에게 박 차장이 가진 경멸과 증오. 권욱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측해 봤다.

“서울지청장한테 열등감 있는 거 같던데.”

“고작 그걸로요?”

“고작 그거라니. 히틀러가 미대에만 붙었어도 2차 세계 대전은 없었다고.”

아무튼 박 청장은 점점 알 수 없는 일들을 권욱에게 부탁했다. 권욱은 별생각 없이 그 일들을 들어줬다.

자신이 박 차장과 너무 깊이 얽혔다는 걸 알게 된 건, 그가 구해다 준 마석들이 울산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데 쓰였다는 걸 알게 된 후다.

“울산 던전 브레이크가 박 차장이 일으킨 거라고요?”

“응. 몇 년 전에 일어난 그거.”

“개인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게 가능해요?”

권욱은 그 말에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그렇다. 상암동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게 바로 그였다. 모두들 당황스러운 기색이 됐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얻는 건 뭔데요?”

“몰라. 나라 망하는 거?”

“나라 망하면 공무원들이 제일 먼저 망하는데…….”

“그래도 상관없나 보지, 뭐.”

침묵이 자리했다. 한참 후에야 하라가 물었다.

“이거 청문회에서 말할 거예요?”

“미쳤어요? 말해 봤자 나만 X되지. 박 차장 그 아줌마, 꼬리 얼마나 잘 자르는지 모르지?”

그러더니 권욱은 불쌍한 척, 주먹을 쥐고 얼굴 밑에 가져다 댔다.

“선생님, 이번 일 저랑 실수로 무마하기로 한 거 잊어버리면 욱이 섭행.”

“요 입!”

래영이 잽싸게 때리거나 말거나.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강하라 씨한테 붙기로 한 거 알면 박 차장이 기를 쓰고 하라 씨 쳐 낼 거야.”

“하지만 하라 누나는 S급인데?”

거기에는 한참 동안 말 없던 유민호가 대신 답했다.

“지금 특수 교도소 들어가 있는 한주형이 박 차장 작품이잖아.”

한주형. 교도소에 있는 S급의 이름이었다.

그를 떠올리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뜻밖에 분위기를 쇄신한 건 복희였다.

“하! 영웅의 길에는 빌런이 있기 마련이지……. 어쩐지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미있다 했어.”

“재미없는 걸 잘못 말한 거 아니냐?”

“아- 아니야. 재미있다고.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짱복희님이 나서야겠군.”

턱 아래 엄지손가락과 검지를 펴서 괸 복희는 그렇잖아도 하라가 래영과 양주에 다녀올 동안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이용권’을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거 원래는 일회성인데, 잘하면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뭔데요? 신이라도 만나야 하나요?”

[성좌 ‘큐피트’가 신이 그렇게 쉽게 만나지겠냐?며 하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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