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 *
하라는 엄마에게 전화한 것을 전화 신호음이 가자마자 후회했다. 끊을까, 했지만 현숙 씨가 곧장 받아 버리는 통에 그럴 수도 없었다.
현숙은 하라가 예상한 대로 잔소리를 잔뜩 늘어놨다. 늘 똑같은 패턴. 똑같은 레퍼토리.
아마 예전의 하라였다면 그걸 다 듣고 마지막에는 죄송해요, 도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하라는 그러지 않았다.
- 너 행동 조심해. 알겠어? 여자가 남자 하나 잘못 만나 가지고 인생 말아먹는 경우를 엄마가 한두 번 본 줄 알아? S급이라고 아무나 막 들이대는 놈들 만났다가…….
그 얘길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 말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심은 무슨 조심. 조심할 행동 한 적도 없거든요. 그리고 인생 말아먹긴.
‘그 남자가 저 때문에 인생 말아먹고 있다고요.’
물론 윤세헌이 들으면 또 또 또, 하고 잔소리를 한바탕 시전할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S급이라고 아무나 막 들이대…….
들이…….
“아악!”
쾅. 하라는 그대로 이마를 들이박았다. 와지직 소리를 내며 캐비닛이 우그러졌다.
현재 하라가 있는 곳은 팀 K가 쓰던, 상암 던전 근처의 수련실이었다. 당연히 캐비닛도 하라의 물건이 아니었다. 하라는 당황했다.
“무슨 캐비닛이 이렇게 약해. 종잇장 같네.”
갑자기 S급에게 들이박힌 캐비닛이 들으면 억울할 소리였다. 하지만 캐비닛에게는 지성이 없었으며, 따라서 항의하지 못했다.
하라는 아주 자연스럽게 캐비닛을 열어 우그러진 면을 폈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캐비닛을 편다는 말도 안 되는 일, 그걸 S급이 해냅니다.
“정 서장님이 괜한 일 하셨네…….”
정 서장이 별도로 하라의 가족을 만나러 갔단 이야기는 이미 들은 차였다. 대충 가족의 반응은 전해 들었고, 하라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여 하라도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남동생은 예외였다.
“강하다, 진짜 그거 군대라도 다녀와야 정신을 차리지…….”
군필자들이 할 법한 말을 중얼거리며 하라는 코를 찡그렸다. 하라가 강하다의 헛짓거리를 용서한 역사는 꽤 오래됐다.
“하지만 이번엔 선 넘었지.”
돈 천만 원. 지금이야 하라에게 그 돈이 그렇게 크진 않다.
하지만 권욱이 선심 쓰듯 건네줬던 그 돈을 받은 게 여전히 마음 한쪽에 콕콕 걸렸다. 진작 돌려줬어야 하는데. 그 때문에 권욱에게 슬슬 끌려다니다 용까지 잡은 게 아닌가.
“물론 용이야 어쩌다 잘 잡긴 했지만…….”
그러나 그날 다쳤던 기억은 아직도 끔찍했다. 지옥용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사람이 가장 괴롭게 죽는 게 타 죽는 거라더니, 팔 한쪽 태워 보니 무슨 소린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해가 가기 전에 권욱 씨부터 해결해야겠네…….”
물론 하라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하라는 자신의 상태를 살펴봤다.
[사용자: 강하라 (특성: 돌덕)]
등급: S
타이틀: 비정한 개구쟁이(민첩+1), 진실에 접근한 자(재주+5), 한 방에 성좌 곁으로(체력+2), 드래곤 슬레이어(체력+50)
현재 사용 중인 타이틀: 드래곤 슬레이어
사용 가능한 특수 상태: 버서커
*상태 이상: 계약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