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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공무수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77)화 (77/223)

75화

하지만 강하라에게는 그의 웃음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 듯했다.

“울어도 안 봐드리려고 했는데, 아직 견디실 만한가 봐요.”

실실 웃는 얼굴이 그렇게 보였나 보지. 나 지금 딱 죽을 거 같은데. 하지만 권욱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주섬주섬 일어나 앉았다.

하라는 손을 뻗어 권욱의 틀어막힌 입속 구속구를 빼냈다.

제대로 침 삼키기도 힘들었던 입 안이 뻐근하게 닫혔지만, 권욱은 고맙다는 말 대신 턱을 들어 올렸다.

“안 보여요? 저 눈물 고인 거.”

“…….”

“반가워서 막 눈물이 나는데.”

진심이지만 강하라에게는 그리 들리지 않을 테다.

래영이 하라의 뒤를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권욱을 향한 눈초리가 매서웠다.

권욱은 실실 웃으며 래영을 바라봤다.

“래영아, 오빠 서운해. 이렇게 금방 강하라 씨한테 붙는 거야?”

“미친놈이.”

래영이 욕을 뱉었다. 하지만 하라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자 래영은 입을 닫았다. 하라는 권욱 쪽을 지그시 바라봤다.

한때 그녀는 권욱의 웃는 모습을 좋아했다. 물론 처음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얼굴이었지만, 그다음 이유는 태도였다.

원래 아이돌 그룹이라는 게 언제 잘될지 모른다고는 하지만, 망할 그룹은 뚜껑만 열어 보면 금방 안다고 하지 않던가.

권욱이 속했던 그룹 만돌린은 뚜껑을 열자마자 망했다. 정확히는 뚜껑이 열렸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무대에서 권욱은 늘 웃고 있었다. 3년, 4년이 지나고 나서는 약간 넋 나간 것처럼 웃긴 했지만, 그래도 하라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웃음을 잃지 않는 권욱을 좋아했다.

그게 10년 지난 지금 와서 기만으로 느껴질 줄은 정말 몰랐지만.

‘이래서 3D는 덕질하는 거 아니라는 말이 생겼나.’

아무튼 지금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 없는 이야기다. 양주 구치소에 추억팔이 팬싸를 하러 온 것도 아닐진대.

하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왜 그러셨어요?”

“……피고인 진술밖에 안 되니까 안 물어보겠다면서요.”

“저도 안 물어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이은주 청장은 권욱을 하라에게 일임했다. 여러모로 권욱이 공식적인 징계나 구속 처분받는 건 모양새가 안 좋은 탓이다. 하라가 권욱에게 걸어 놓은 지옥용의 속박 스킬 때문도 있었다.

하여 이 청장은 하라에게 몇 가지를 부탁했다. 지금의 질문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권욱은 살살 눈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거 대답해 주면 나 풀어 줘요?”

“미친놈아.”

발끈한 건 래영이었다. 래영 역시 권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사실 팀 K는 철저하게 사무적으로 돌아가는 팀이었다. 권욱의 기질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는 돈독하고 친분이 짙은 팀처럼 보였지만, 권욱은 철저하게 제 사생활과 던전 공략을 구분 지었다.

“우리 공과 사를 구분합시다. 아시죠? 이런 팀이 오래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던전 공략 시기가 아니라면 권욱은 팀 K가 바깥에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팀원들도 그게 권욱의 스타일이려니 하며 관심을 거뒀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자며. 네 공은 던전 뽀개는 거냐?”

권욱이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야! 권욱!”

“오빠한테 말 잘 깐다, 우리 래영이.”

“언양에서부터 이상하게 굴더니. 아니, 너 그 전부터 이상했어. 저번에도…….”

권욱은 래영의 말을 자르듯 답했다.

“래영이 나한테 관심 많네. 나 좋아해?”

“미쳤냐?”

래영이 발끈하는 와중에도 하라는 놀랍도록 무표정했다. 권욱은 문득 불안해졌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강하라의 안경 속 눈동자가 너무나 고요했기 때문이다.

“안경 바꿨네요, 강하라 씨.”

“래영 씨.”

그러나 하라는 권욱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휴대 전화를 꺼내며 래영에게 말 걸었다.

“이 근처에 갈비 맛있는 집 있대요.”

“……언니?”

“아, 제가 갈비 사 드릴까 하고…… 싫어요?”

“갈비요? 갑자기요?”

“고기는 원래 갑자기 먹는 게 맛있댔어요.”

래영은 얼떨떨해하다가 권욱을 곁눈질했다. 권욱도 눈을 가늘게 뜨며 이쪽을 가늠하고 있었다.

오로지 하라만이 여상했다. 그녀는 한술 더 떠 래영의 손을 깍지 껴 잡으며 돌아섰다.

“혹시 모르는 위치로도 순간 이동 가능해요?”

“어, 그건 조금 힘든데…….”

“그러면 택시 타고 가야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그녀가 뒤돌아 손을 뻗었다. 권욱의 입 안에 구속구가 다시 채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어, 어어어. 권욱은 얼결에 그걸 받아 물고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하라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래영과 방을 나가 문을 쿵, 닫았다.

삐리릭, 문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돋았다.

‘설마, 곧 돌아오겠지.’

권욱은 문만 노려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신은 S급 헌터였다. 매일매일 인력난에 시달리는 재난청에서 이대로 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인 것이다. 게다가 연예인급의 인기를 구가하는 자신을 함부로…….

함부로.

이런 미친. 낭패감이 권욱을 덮쳤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하라는 정말로 가 버렸다. 감쪽같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아니, 다시 오기는 하나? 권욱은 이를 악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구속구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또,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거야.

물론 강하라가 알 바는 아니었다.

* * *

“언니, 이래도 돼요?”

지글지글 구워지는 양념 갈비를 내려다보다가 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 집게를 들고 돼지고기를 뒤집고 있던 하라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럼요, 저 고기 잘 구워요. 래영 씨는 드시기만 하세요. 저 많이 도와줬잖아요.”

‘다년간의 회식으로 다져진 실력이라고요. 마포지서 마석관리과에서 제가 고기 제일 잘 구워요!’ 하며 집게를 딱딱 부딪쳐 보이는 하라를 보고 래영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알아요. 왜 그냥 나왔는지 궁금한 거죠?”

하라가 배시시 웃자 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는 돼지갈비 조각에서 양념 탄 부분을 가위로 살짝 잘라 낸 후 래영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래영이 물끄러미 고기를 보다가 양배추채와 같이 입에 집어넣었다. 달짝지근하니 맛이 좋았다.

“맛있죠.”

“네…….”

“그대로 계속 물어봤자 영원히 말 안 하고 헛소리나 하면서 우리 약 올릴 거 같아서요.”

아. 확실히 그건 그럴 법했다. 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욱이 원래 제 일에 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 성격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마저 헛소리를 늘어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근데 언니, 권욱한테 속박 스킬 쓰지 않았어요? 그거 이용하면 됐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난 게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래영 또한 하라가 권욱에게 지옥용의 속박 스킬을 사용한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 스킬에 구속된 권욱은 한참이나 경련하다가,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제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어떤 스킬을 썼는지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들은 서울지청장은 그를 두말할 것 없이 양주 구치소로 보내 버렸다. 다른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하라는 래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런데 그 속박 스킬은 굳이 사용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왜인지 물어봐도 돼요?”

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라는 익은 고기를 불판 끝에 밀어 두고, 래영의 접시 위에 고기 두어 점을 더 올려 준 다음에야 젓가락을 들었다. 맛있는 집이라더니 진짜 맛있기는 했다.

고기 한 점을 천천히 씹어 삼키며 하라는 자신의 스킬창을 바라봤다.

-지옥용의 속박 S (사용 중) (숙련도 25/100)

상대의 사지를 속박하는 지옥용의 스킬.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으며, 속박이 성공한 후에는 스킬 사용을 중지할 때까지 지속된다.

피속박자는 속박자에게 굴종한다. 속박자의 명령을 거부하는 순간 피속박자의 사지가 불타올라 재가 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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