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세헌은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목숨은 지켜 주실 거라니까 제가 굉장히 든든하네요.”
“그…… 예…….”
겸연쩍어진 하라가 뺨을 긁었다. 쩌렁쩌렁하게 웃었던 걸 보면 참 인상 깊긴 했던 모양이다.
“율리 씨가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걔는 좀 속상해도 됩니다.”
세헌이 못 박았다.
그건 아닐걸? 하라는 어쩐지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이 율리 편을 드는 것도 그림이 이상해 고민하다가 툭 내뱉었다.
“그래도 뭐, 저희가 진짜 만나는 건 아니니까요…….”
“음.”
운전하던 세헌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소리 하면 성좌가 안 싫어합니까?”
“사실 좀 싫어하고 있어요, 지금도.”
하라가 허공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대답했다. 운전 중인 세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성좌는 하라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계약 이행은 성실히!]
“그래도 다르게 생각하면 핑계가 그럴싸해서 괜찮긴 할 겁니다.”
“네?”
허공에 잔뜩 뜬 시스템 메시지를 치우느라 여념이 없던 하라가 뒤늦게 돌아봤다.
밤길에 초록색 신호등이 스쳐 지나갔다. 세헌은 입가에 옅게 미소 띠고는 설명했다.
“오늘 같은 이벤트 던전뿐만 아니라 강하라 씨가 앞으로 투입될 던전을 생각하면, 사귄다는 핑계라도 있어야 같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저는 민간인이라 아무 던전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어…….”
하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2인 1조 던전 퀘스트 끝나도 도와주시게요?”
“제가 있어야 강하라 씨가 제대로 능력을 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출근은요?”
공영 방송사 앵커직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메인 뉴스를 진행한다 함은, 매일 같은 시간에 방송국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던전은 그렇게 시간 지켜 열리지 않는다. 이게 너무 큰 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라는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했다. 공무수행에 협조해 달라는 게 말이 쉽지.
“저는 어쨌든 당분간 다친 걸로 돼 있으니까요. 게다가.”
세헌이 어깨를 으쓱했다.
“팀 K 이름 하나면 제 출근도 빠지더군요. 대단하던데요, S급.”
“……죄송합니다…….”
“지금 와서 묻는 것도 웃기지만, 다큐에 저 일부러 섭외하신 거 맞지요?”
“죄송합니다…….”
하라는 정말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미 확신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그녀에게 확인한 세헌이 코웃음 쳤다. 그러니까, 시청률에 목맨 인간들은 아무튼 S급 헌터랑 엮였다고 하면 메인 앵커 정도야 얼마든지 내줄 거라 이 말이다.
“회사야 팀 K 취재할 수 있다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정 빼 줄 겁니다. 다만 헌터청 쪽이 문제이긴 한데-”
“아.”
“던전은 본래 민간인 출입 금지지만, 강하라 씨가 안고 있는 페널티를 윗분들은 이미 알고 계신 것 같고.”
정 서장의 행동만 봐도 뻔했다. 하라가 어깨를 움츠렸다.
“왜 강하라 씨 퀘스트가 대외비인지도 충분히 짐작됩니다. 저희 둘이 연애하는 게 S급 퀘스트라면 지나치게 화제가 되겠죠. 저는 원하지 않아도 전 국민에 의해 던전에 떠밀려 들어가야 할 테고요.”
강하라와 달리 이미 유명인인 세헌 쪽이 조금 더 미디어 생태에는 익숙했다. 그는 전 국민이 두 사람에게 연애하라고 압박하는 상상을 해 보고, 혀를 빼물고 싶은 심정이 됐다.
돌이켜 보면 차라리 지금 상황이 백만 배는 나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릅니다. 저희 둘이 연애하기 때문에 제가 진상이 된다는 시나리오 쪽이 조금 더 흥미진진하지만 관심도는 떨어지겠죠.”
“그런가요?”
“S급이라는 단어가 빠져 버리잖습니까.”
아. 하라가 입을 벌렸다. 세헌이 말을 이었다.
“전말을 다 아는 윗분들 말고, 다른 사람들 납득시킬 시나리오는 필요하다 이겁니다. 던전에서 목숨 구해 준 여자한테 반해서 사귀기로 했는데, 아무튼 애인이 그런 위험한 곳에 혼자 들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든가.”
“……진심이세요?”
“요즘은 그런 거 대중들이 좋아한다던데요.”
하라는 당황했다. 갑자기 달라진 세헌의 태도 때문이다.
기실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세헌은 꽤 협조적이긴 해도 성좌의 행동에 불만을 표출했었는데, 왜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하라 자신이 본의 아니게 세헌의 호감을 꽤 많이 샀다는 걸 그녀는 미처 몰랐다.
그래서 하라는 고심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윤세헌 씨 이미지는요……?”
“제 이미지가 어떤데요.”
그걸 말이라고 물으십니까……. 하라는 조금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공신력 있는 언론인 1위……?”
“그건 뉴스팀이 오보 한 번 하면 떨어지는 건데요.”
“……결, 결혼하고 싶은 남자……?”
“그거야말로 좀 그만 듣고 싶습니다.”
세헌이 혀를 찼다.
아. 싫은가 보다.
“뭐, 던전에 쫓아갈 정도로 극성으로 연애한다고들 하면 그런 소리들 그만하려나요.”
아, 그건 그렇지……. 아마 저 정도로 멀끔하고 훤칠하니 사방에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그런 소리가 불쾌할지도 모른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가려고 했다. 너무 완벽해도 피곤하다 이건가.
“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분 생기면 저희 관계가 방해되지 않을까요?”
세헌보다 성좌가 먼저 삐빅, 하고 호각을 불었다.
[성좌 ‘큐피트’가 이 이야기를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