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어차피 이 여자와 성좌 계약 퀘스트를 수행하기로 한 순간부터 세헌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기로 한 참이었다.
다만 역시, 12시간 안에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면 3개의 대교가 전면 통제된다는 건 어이가 없었다.
논리적이긴 했다.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면 게이트가 생성될 테고, 퀘스트 보상을 보면 A급 던전이다.
던전 부산물을 전부 뽑아내지 않으면 던전을 닫지 않는 정부의 성향상, 아마 여의도로 연결되는 대교 3개는 당분간 통제될 게 당연하다. 내년 연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몇 달은 통제되겠지.
세헌은 한강 주차장을 휘적휘적 걸어가며 전화했다.
- 아이고, 윤 앵커. 오랜만이에요.
“예, 선생님. 건강하셨죠?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 요트, 아직 한강에 있습니까.”
- 있지. 그런데 왜?
오랫동안 윤 의원의 집사 역할을 해 왔던 관리인 김 씨가 세헌의 전화에 반색하면서도 물었다.
세헌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핑계를 골랐다.
“밤섬에 취재가 있습니다. 급해서요.”
- 그래? 그거 선착장에 맡겨 놨어요. 열쇠 달라고 해. 근데 그거 몰 사람이 없어서 어쩌나.
“제가 면허 있잖아요. 오래되긴 했는데 괜찮을 겁니다.”
- 아이구, 그래도 참. 미리 말해 줬으면 사람 보내 줬을 건데…….
김 씨가 안타까워했다. 세헌이 윤 의원의 신세를 지는 것을 꺼리는지라, 이런 일이 드물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부모 자식 간의 연은 천륜’이라며 늘 윤 의원과 좋게 좋게 잘 지내라고 말하는 김 씨였지만, 세헌은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김 씨가 그에게는 오히려 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잘 쓰고 가져다 놓겠습니다.”
- 그래요. 건강하지?
“예. 건강합니다.”
다치지 말고, 종종 양평에도 와요.
양평에 있는 별장을 관리하고 있는 김 씨의 당부를 끝으로 전화를 끊자, 어느덧 요트 선착장 앞이었다.
“김성현 씨 이름으로 되어 있는 요트 부탁합니다.”
“아, 여기요.”
선착장에 김 씨 이름을 대자, 직원이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요트의 열쇠와 요트 선착장 출입증을 주었다.
옆에서 얌전히 따라오고 있던 하라가 뭐라 묻지도 않았는데, 세헌은 먼저 입을 열었다.
“현직 국회 의원이 여의도에 요트 가지고 있다는 게 소문나면 좋은 먹잇감이 되니까요.”
“아…….”
“오리배는 몰라도 요트가 잠깐 정박하는 건 괜찮을 겁니다. 밤섬에는 관리인들도 드나드니까요. 한강 경찰대에는 제가 전화해 두죠.”
방송사 기자라는 명함이 쓸모 있는 건지, 윤세헌이 그저 발이 넓은 건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무튼 세헌은 깔끔하게 상황 정리를 끝냈다.
그 모습에 하라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심지어 요트 면허도 있다니.
세헌이 정장 재킷을 벗은 후 요트에 덮인 천을 걷고 시동을 걸었다. 그 와중에 의자 밑에서 구명조끼도 꺼내 하라에게 건넸다.
쿠르릉, 모터가 시동 소리를 내며 한강 가운데로 갈 때에서야 하라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익숙해 보이세요.”
“마지막으로 운전한 게 중학생 때라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능숙하게 요트를 몰아 밤섬 쪽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출입 금지긴 하지만 관리는 필요하기에 밤섬에도 선착장은 있었다. 세헌은 선착장에 요트를 대고 나서, 발판을 연결했다.
긴 다리로 먼저 올라간 세헌의 손을 잡는데 요트가 출렁, 하고 흔들려 하라는 균형을 잃을 뻔했다.
“조심.”
하지만 무심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꽉 잡는 세헌 덕에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감사…….”
감사하다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세헌은 요트를 선착장에 묶으러 돌아섰다. 하라는 머쓱해졌지만 곧 이럴 때가 아닌 걸 깨닫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길 한가운데에, 작은 퀘스트 마크와 함께 허공에 떠 있는 균열이 보였다.
“저기네요.”
[성좌 이벤트 퀘스트: 한강 밤섬에 던전이 생기면 마포지서 관할일까요, 영등포지서 관할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