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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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헌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잠깐 주변을 휘 둘러봤다.
저녁을 넘어 밤으로 가는 시간. 밝은 휴게소 불빛에 차들이 어른어른했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후미져서 어두웠고, 근처에서는 피곤에 찌든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얼마나 담배들을 피우는지 연기가 이쪽까지 바람에 실려 왔다.
그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세헌의 눈이 문득 강하라에게로 닿았다. 매캐한 담배 연기는 맡아지지도 않는지 하라는 세헌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헌은 손을 뻗어 강하라 근처의 연기를 흩어 버렸다. 그 바람에 움찔했던 하라가 아, 하고 연기가 오는 쪽을 힐끔 봤다.
세헌은 거둔 손을 다시 주머니에 꽂았다. 웃기는군. 살면서 애인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서 사귀니 마니 하는 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행색은 지저분하고, 분위기라고는 요만큼도 없이 시끄럽게 차들이 지나다니는 휴게소.
하지만 그게 오히려 세헌의 머리를 차분하게 했다. 멋진 레스토랑, 아름다운 야경, 혹은 묘한 분위기 따위가 섞이지 않은 상황 그 자체.
“뭐 하나만 약속 받읍시다.”
“어, 네. 두 개도 괜찮아요!”
“제가 무슨 소리를 할 줄 알고.”
세헌은 하라를 내려다봤다.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 하나만은 그래도 맑았다. 난감한 빛을 띠고 있긴 했지만, 그건 아마 세헌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까 봐 걱정해서일 테다.
“이런 연애도 유효합니까?”
“……성좌가 인정해 주는지 물어보시는 거죠?”
“예.”
“잠시만요.”
대뜸 된다고 고개를 끄덕여도 될 텐데, 이럴 때는 참 솔직하긴 했다.
강하라는 허공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번에는 세헌의 눈에도 분명하게 보이는 흰 빛이 한 번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괜찮대요. 하지만 편법이기는 해서, 제약이나 추가 퀘스트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약간 기가 죽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애당초 성좌라는 것들이 제멋대로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좋습니다.”
“……어어.”
세헌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다만 제가 약속받고 싶은 건 신뢰입니다.”
“앗, 선생님. 저 신용 등급 괜찮아요. 공무원이라 대출도 잘 나온다구요!”
“그 뜻이 아니라.”
세헌이 하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안경 너머의 새카맣고 커다란 눈동자. 이렇게 보니 제법 눈이 컸다. 시력이 정말 나쁜가 싶기도 했다.
“연애라는 건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입니다. 그렇죠?”
“어어, 그렇죠.”
“저한테 앞으로 거짓말하지 마세요.”
하라의 눈이 흔들렸다. 그에 세헌은 고개를 가볍게 기울였다.
“싫으시면 협조고 뭐고 없습니다.”
“아아, 아뇨! 안 싫어요! 너무 놀라서요.”
손을 마구 내저은 여자가 다시 외쳤다.
“저 거짓말 안 해요! 제 통장 잔고도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제가 그쪽 통장 잔고 봐서 뭐 한다고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세헌은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이 여자랑 연애인지 나발인지를 해야 한다는 상황이 아직도 와닿지는 않았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여자를 보다가, 문득 그녀의 머리카락에 묻어 있는 것이 신경이 쓰여 손을 뻗었다.
강하라가 움찔하든가 말든가, 이마와 머리카락 경계에 있는 말라붙은 피딱지를 떼 주었다. 피딱지는 손가락 끝에서 부스러졌다.
그 손을 잠시 들여다보던 세헌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여자에게 이런 식으로 만나자고 말하는 게 처음이라 망설이며 시간을 끌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당신 말마따나 공무수행이라고 치고, 협조하겠습니다.”
“……세상에. 선생님, 감사합니다.”
물론 사귀자는 말에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두 손을 모아 깍지 끼며 기도하듯 감격하는 저 여자도 정상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이 상황 자체가 정상이 아니긴 했다. 세헌은 쓰게 웃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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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퀘스트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