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공무수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41)화 (41/223)

40화

하라는 자초지종을 침착하게 설명했지만 세헌은 몇 번씩 되물어야 했다. 졸음운전 쉼터를 찾아 달리면서도 몇 번이고 하라 쪽을 돌아봤다.

하라는 그런 세헌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저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시스템 창이라도 보여 드릴 수 있으면 보여 드리고 싶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가 막히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거짓말을 할 거라면 좀 더 그럴듯한 핑계를 댔겠지.

세헌은 현실이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다이내믹하며, 거짓말쟁이들은 늘 현실에 가깝게 말을 꾸며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간의 일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에야말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강하라의 이상하던 태도, 그리고 큰소리로 여자 친구 있냐고 물어보던 정 서장.

정유진 서장에 관해서는 윤세헌도 잘 알고 있었다. 마포지서 호랑이. 가끔 어이없는 짓을 하긴 하지만 남들 앞에서 무례하게 구는 일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소문나기 딱 좋은 소리를 하다니.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면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아까까지는 그게 강하라가 제게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거늘.

게다가 자신의 손을 잡아 달라던 강하라에도 생각이 미쳤다. 처음 다큐를 찍을 때는 가볍게 팔 길이만 한 검신을 뽑아내던 그녀가, 제 손을 잡자마자 만들어 낸 하늘을 가를 만큼 커다란 궤적.

처음 휘말린 여의도 던전에서 그와 접촉해 있어야 스킬을 쓸 수 있다던 말도 생각났다. 그래서 손을 잡아 달라고 했던 건가.

굳이 자신을 지목해 다큐멘터리 리포터로 써먹는 팀 K의 처사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다, 그러니까 강하라를 S급으로 완전히 각성시키기 위한 헌터청의 큰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이빨이 들어맞았다.

졸음운전 쉼터보다 휴게소가 먼저 나왔다. 세헌은 곧장 휴게소로 차를 몰아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휴게소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휴게소의 후미진 곳에 차를 세운 세헌은 곧장 차 문을 열고 나와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하라도 조수석에서 나와 쭈뼛거리며 그의 옆에 섰다.

“그러니까, 제가 강하라 씨와 연애를 해야 강하라 씨가 완전한 S급으로 각성한다, 이 말이죠.”

“네.”

“웃기는 일 다 보겠네…….”

혼잣말에 하라가 제 눈치를 봤다. 세헌은 따지듯 물었다.

“그러면 제가 강하라 씨랑 헤어지면 그 S급 취소겠네요?”

“그건 또 아니라는데…….”

“이런 어이없는 조건이 어딨습니까?”

“……여기 있네요?”

황당해하는 자신의 말에 하라는 민망해하면서도 또박또박 대꾸는 잘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샐쭉한 눈치였다.

세헌은 푸르르, 하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겠지. 이 여자도 황당하겠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었다. 제일 황당해할 사람이야말로 눈앞의 강하라였다.

“아니, 사랑의 신이라면서요?”

“그러게요…….”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연애가 그렇게 막, 연애 감정도 없는 둘이 대뜸 사귀자 해서 되는 건 아닌…….”

그렇게 말하다가 세헌은 멈칫했다. 소개팅이나 선으로 만나 연애 잘하고 결혼까지 골인하는 사람들은 그럼 뭔가 싶어져서였다. 그렇게 연애하는 사람들이 없진 않지. 하지만…….

“저기, 앵커님. 그러니까 제 말을 한번 들어 봐 주세요.”

때마침 강하라가 입을 열었다. 세헌은 넋을 놓고 허공을 보며 답했다.

“말씀하시죠…….”

“제가 사실 그 던전에서 나온 후에 이 성좌랑 부대껴 보니까요. 이 성좌가 좀 미친 건 분명하거든요?”

“…….”

세헌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돌려 하라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말해도 되나.

하지만 강하라는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을 보며 신경질 내고 있었다.

“아, 그럼 그쪽이 안 미쳤어요?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며! 아님 제가 미쳤나 보죠! 성좌님 때문에!”

“…….”

아무튼 둘 중에 하난 미친 게 맞는 거 같기도 했다. 아님 내가 미쳤든가.

세헌은 안 놀라겠다고 단언했던 얼마 전의 말을 취소하고 싶어졌다. 세상에 놀랄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참으로 거만했구나…….

그사이 여자는 숨을 가다듬더니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세헌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그러니까, 공무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저랑 잠깐 사귀는 흉내라도 내 보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그러다가 하라는 다시 허공을 보고 ‘아오! 왜요!’ 하고 발을 굴렀다. 그러고는 방금 전보다 확연히 벌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그게 아니고. 그냥 저랑…… 사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의식이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보다.

성좌가 있는 헌터들의 주변인들은, 그들이 마치 조현병 환자처럼 느껴진다더니 세헌도 그랬다. 세헌은 넋이 나간 채 하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라는 그런 세헌을 보더니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도 알아요. 윤 앵커님도 황당하시죠. 그런데 저도 황당해요…….”

“…….”

“근데 이게요.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일도 생기는 거잖아요. 똥통에 빠지거나, 미친개한테 물리거나, 뭐 그런…….”

전 살면서 똥통에 빠진 적도, 개한테 물린 적도 없는데요. 그렇게 반박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동정심이 들었다. 자신이랑 사귀는 것을 두고 똥통이나 광견병에 비유하고 있는 이 여자도 참 어지간히 죽고 싶은 심정이겠다 싶어서였다.

얼마나 창피한지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진 그녀의 모습에 가엾어지기까지 했다.

‘이게 혹시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그 와중에 냉정하게 자기 객관화를 해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그는 고개를 내젓고는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래서 제가 얻는 건 뭡니까?”

“예?”

“똥통에 빠지면 재수가 좋다고 하죠. 요새 광견병 주사 안 맞은 개한테 물리면 보상금을 받습니다. 근데 제가 강하라 씨랑 사귀어서 얻는 메리트는 뭡니까?”

하라의 눈이 흔들렸다.

“제가 강하라 씨랑 사귄다 칩시다. 강하라 씨는 S급이 되겠죠. 능력도 좋아지고, 신세도 펴겠네요. 아까 제작진들이 권욱 씨 실수에도 결국 싫은 소리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거 보셨죠. 권욱 씨는 여의도에 빌딩도 하나 있다더군요. S급이 되면 얻는 게 그렇게 많다고들 합니다.”

“…….”

“근데 제가 얻는 건 뭡니까?”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 듯, 강하라는 눈치를 보긴 했지만 당황하진 않은 듯했다.

“제가…….”

눈알을 굴리던 하라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돈이라도 드릴까요…….”

“저 먹고 살 정도로는 법니다.”

“아, 알죠. 앵커님 금수저신 거…….”

금수저. 그 무신경한 단어에 조금 짜증이 났다.

“……제가 집이 잘사는 게 아니라도, 보통 사귀는 여자에게 돈을 받는 걸 연애라 부르진 않죠.”

“아, 그건 그러네요…….”

“윤세헌 스폰서 설 돌면 아주 볼만하겠습니다.”

괜스레 삐뚤어져서 빈정거리자, 그런 건 생각 안 해 봤는지 하라의 눈이 황망해졌다.

기가 막힌 건 세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자를 탓할 수도 없었기에 세헌은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카만 하늘. 휴게소의 불빛 때문에 별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원망스러웠다.

성좌라니.

취재하면서 종종 짓궂은 퀘스트를 내는 성좌들이 있다는 건 보고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좌를 가진 헌터들이야 워낙 저 먼 하늘의 별 같은 존재라, 한 번도 성좌가 제 인생에 개입하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성좌를 만나 2차 각성을 하는 꿈을 흔히들 꾼다지만, 판타지 영화조차 안 보는 그다. 세헌은 아주 현실에 충실한 타입이라 그런 허무맹랑한 일에는 관심도 없었다.

이거 혹시 방송사 몰래카메라, 그런 건 아니겠지. 그게 세헌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허무맹랑함이었다.

그는 제 차에 기대 마른세수를 하다가, 문득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휴게소의 불빛에 비친 난감한 얼굴에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말이 떠올랐다.

“대신 어디서 이상한 거 끌고 이 집안에 들어오지만 말아라.”

“하다못해 뭐라도 도움 되는 여자를 만나라 이거야.”

“던전에서 웬 나부랭이 같은 거랑 얽혀 가지고, 쯧. 나랏일에도 급이 있는 거다.”

제 아비의 말. 그리고 박 차장이라는 이름.

세헌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또 다른 그림이 천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박영희 차장. 강하라를 S급으로 만들기 위해 여념 없을 헌터청.

아마 박 차장이 윤 의원에게 뭔가 언질이라도 넣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윤 의원은 아마 그게 못마땅했을 것이다.

“혹시 박영희 차장 알고 있습니까?”

“예?”

하라가 눈을 껌벅였다.

“그게 누군데요?”

세헌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본청 차장 이름을 몰라?

모르는 척하는 건가 싶었으나 그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정말 강하라가 모른 척을 하는 거라면, 이름은 안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예 헌터청에서 강하라에게도 말 안 하고 아예 거국적으로 움직였다, 이 말이지.

점점 일그러지는 이마를 문질렀다. 설마 이 상황도 지금 헌터청에서 만든 건가. 실실 웃던 권욱의 얼굴도 떠올랐다. 하지만 세헌은 거기까지 의심하지는 않기로 했다.

“윤세헌 씨, 제 손 잡아요!”

웨어울프가 튀어나왔을 때 그녀를 감싼 건 제 선택이었다. 그런 것까지 헌터청에서 계산할 수는 없을 테다. 개수작일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저를 제치고 일어서던 강하라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안전지대에서 조금만 버티면 모두 구조될 텐데…….”

“모두는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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