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공무수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33)화 (33/223)

32화

“재밌네.”

정말로 재미있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입가만 슬며시 올라갔을 뿐, 박 차장의 눈은 웃지 않았다.

시선은 한 점 남은 회를 또다시 미나리에 돌돌 마는 제 젓가락에 고정돼 있었지만, 그녀가 그 너머의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권욱은 잘 알고 있었다.

“연애를 시키는 성좌라……. 유치한 코미디 프로그램 같다, 얘.”

“제가 그 코미디 프로그램처럼 살고 있는데요, 뭐.”

“어우, 욱이는 멋지게 살고 있지. 왜 그런 소리를 해.”

손사래를 치던 박 차장이 문득 픽 웃음을 터트렸다.

“하필 그게 또 윤세헌 씨야? 어유, 너무 웃긴다. 나 지금 웃음 터졌잖아.”

“하나도 안 웃기신 거 같은데.”

“아냐. 윤 의원님 아들이야, 또 그게. 윤 의원님은 공무원 며느리 볼 생각 없으실 텐데.”

윤 의원. 윤세헌의 아버지인 보수당 의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필 박 차장과 친한 의원이기도 했다. 박 차장의 ‘재밌다.’, ‘웃긴다.’는 말은 늘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권욱은 말없이 젓가락을 놀렸다. 권욱이 S급 헌터가 된 지도 10년.

그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어려운 게 박 차장이었다. 겉으로야 웃으며 치대지만, 박 차장만큼 속내를 알 수 없는 상사가 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유진이가 그렇게 기를 쓰고 징계 위원회에서 모르겠다고 뻗댔구나. 난 또 정유진이 이은주하고 뭐 맘 상한 거 있나 했네.”

정유진, 이은주. 전부 던전 투입조 출신이다.

태생부터 E급이라 차장 이상으로는 넘보지 못하는 실무진 박 차장과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헌터청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S급부터 C급까지 망라하는 던전 투입과. 그리고 그 이하의 민생 지원과.

던전에 투입되는 고위급 헌터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인센티브를 나눠 먹는 민생 지원과를 쓰레기들이라고 경멸했고, 낮은 등급의 헌터들은 자신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하면서도 고위급 헌터들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박 차장은 그 열등감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위급 헌터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정유진이 요즘 안 어울리게 자꾸 좋은 상사 노릇 하려고 드네. 그럴 거면 지 때문에 목숨 날린 애들 무덤이나 가서 절 좀 하고 오든가.”

자리에 없는 마포지서장을 향해 박 차장은 냉소를 날렸다. 그러면서도 권욱을 향해 또다시 가볍게 메뉴판을 밀어 주었다.

“욱이 이 시간에 와서 배고플 텐데 회 깔짝거리지 말고 복국이나 먹고 가. 여기 복국 맛있잖아. 난 밤새면 여기 복국밖에 안 들어가더라.”

“또 밤새셨어요?”

“말도 마. 우리 청장님 나가기 전에 건수 하나 만들려고 난리도 아니시잖아. 장관 못 해서 난리다.”

박 차장은 부드럽게 컬이 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이마를 찌푸렸다.

어느 본청장이나 다음 목표가 장관이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아침 9시에 국회니 청와대니 출근한 헌터청장이 오후 6시 넘어 세종으로 돌아와 실무진들을 들들 볶아 대는 건 워낙 유명했다. 본인이 국방부 장관 한 번은 꼭 해 보겠다나, 뭐라나.

“욱이야, 이렇게 실무가 힘들다, 응? 느이들은 던전 투입만 힘든 줄 알지? 이 나이에 무슨 고생이야. 죽겠어, 아주.”

“전 안 그래요. 차장님 힘드신 거 내가 더 잘 아는데요, 뭐.”

박 차장이 피식 웃었다.

“사고 안 치고 착하게 살 거야?”

“네.”

“그러면 안 되지, 욱아.”

넙죽 대답했던 권욱이 멈칫했다. 박 차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고 한 번 쳐. 거하게 쳐. 그래야 뭘 해도 해. 이 나라는 그런 나라야. 가만히 조용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 알겠어?”

“내가 사고 치면 박 차장님 싫어하실 거잖아요.”

“아닌데. 난 사고 치는 사람 좋아해, 욱아.”

박 차장의 화장기 없는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 웃음이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이런 사람인 줄 몰랐던 것도 아니다.

“나중에 그 강하라라는 아가씨 한번 보자. 내가 중신 한번 서야겠다.”

맞아, 너 가다가 내 차 트렁크에서 도넛 좀 들고 가. 우리 비서 남편이 코앞에서 도넛 장사하잖아. 맨날 도넛 가지고 오는데 난 아주 물려 죽겠다. 도넛 10개 갖고는 청탁 금지법에 걸리지도 않아…….

박 차장이 사는 이야기를 줄줄 말했다. 권욱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야 도넛 좋아하죠. 택시 타고 가면서 먹어야겠네요.”

“그래, 다이어트한다고 막 굶지 말고. 그 도넛 너 다 먹어. 마른 거 봐라.”

“체중 관리해야죠. 저 살찌면 홍보 동영상 뷰수가 얼마가 떨어지는데.”

박 차장이 권욱의 빨간 머리카락을 만져 보다가 질색을 했다.

“아유, 뷰수 걱정하기 전에 머리부터 어떻게 해라. 너는 머리가 이게 뭐니, 지저분하게. 머릿결 다 상했다.”

권욱이 실실 웃었다.

“우리 엄마 같네, 차장님.”

“얘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 나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엄마는 무슨.”

그렇게 말하며 박 차장은 휴대 전화를 들어 연락처를 뒤졌다.

권욱은 박 차장을 힐끗 보다가 직원 호출벨을 눌렀다. 딩동, 하는 소리가 울리고 잠시 후 직원이 문을 드륵 열고 들어왔다.

“저 복국 하나 주세요.”

“네.”

문이 닫히자마자 박 차장이 든 휴대 전화 너머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박 차장.’ 하는 말에 박 차장은 입으로만 웃는 소리를 내며 전화에 열중했다.

“응, 윤 의원님. 저예요. 잘 지내시지? 새벽에 주무실까 싶었는데 전화를 받으시네. 요새…….”

복국이 나오고, 권욱이 수저를 들어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통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박 차장은 통화하면서도 손만 내저어 그를 보냈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박 차장의 비서가 주차장까지 동행해 차 트렁크를 열어 주었다. 가지런한 도넛 상자.

권욱은 그 상자를 받아 택시에 탔다.

“서울 상암동이요.”

‘어유, 멀리 가시네.’ 하는 말을 대충 흘리고 상자를 슬쩍 열어 봤다. 안에는 도넛이 아니라 마석 몇 개가 희미하게 빛을 내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권욱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상자를 닫았다.

“사고 한 번 쳐. 거하게 쳐.”

“나중에 그 강하라라는 아가씨 한번 보자.”

본론은 그것일 터였다.

택시가 시내를 지나 고속 도로로 접어들었다. 세종에서 나가는 고속 도로는 고작 2차선이었다. 드나드는 길도 좁은 이 도시에, 조만간 또 와야 할 것임을 권욱은 의심하지 않았다.

* * *

한국의 S급 헌터는 총 8명.

개중에 1명은 서울지청장인 이은주고, 2명은 의무 근속 기간인 20년이 끝나자마자 튀어 나가 길드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S급 헌터가 속한 던전 투입조는 한국에 고작 5팀에 불과했다.

그 5팀 중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팀 K다. 젊은 고위급 헌터들이 많기도 했고, 권욱을 필두로 모인 덕에 미디어 노출도도 높았다.

하지만 그 유명도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다. 공무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SNS를 하는 멤버는 복희 한 명뿐이었다.

자연스럽게 팀 K의 팬들은 대부분 복희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복희는 이른바 ‘관종’이라서 올리는 사진이 꽤 많았고, 가끔은 권욱의 사진도 올려 줬다.

한데 오늘 올라온 사진에 권욱의 팬은 좀 짜증이 났다.

[@bokheethegenius 팀 K의 새 멤버 개봉박두ㅎㅎ 아 참 시즌그리팅도 기대해 주세옇ㅎㅎ]

*시즌 그리팅: 연예인들이 연말에 발매하는 각종 굿즈 모음집

뭐야 여자야?

┗손이 빼박 여잔데

┗지금 팀 K에 누가 새로 들어올 이유가 있나?

사진 속에는 하얀 손전등 같은 것을 쥐고 있는 손, 그리고 그 손을 배경으로 시즌 그리팅 샘플과 함께 브이하고 있는 복희가 찍혀 있었다.

12월에 나올 달력과 관련 굿즈들을 홍보하려는 의도겠지만, 팬들이 궁금해하는 건 팀 K의 새로운 멤버였다.

통상적으로 고위급 헌터들의 명단이야말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팬들은 그 사이에 누가 들어갈지 추측해 댔다.

사진 속에 찍힌 손을 보면 젊은 여자. 그러나 고위급 헌터 중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소속팀이 있는데.

애초에 지금 팀 K 노가다 중 아니냐? 웬 새 멤버?

┗누구 하나 나가려나 보지

┗제주도행 비행기에서 김진형이랑 가족 목격담 떴던데 김진형 드뎌 탈퇴함?

관종복희 어디 가겠냐? 어차피 금방 까일 거 걍 사진 올려 주지

┗가성비 챙기느라 참 바쁘다 그리팅 홍보도 해야 되고 멤버도 예고해야 되고

팀 K 방송국이랑 뭐 찍나 봄 우리 언니가 방송국 스탭인데 출장 간댔음

┗증거짤이요

┗지인발 루머 그만 좀

커뮤니티에서도 궁금증이 만발했다. 대부분은 복희가 달랑 사진 한 장만 올린 것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면서도, 새 멤버 영입이 뭔가 다른 콘텐츠의 시작이길 바라고들 있었다.

아무튼 최근 팀 K는 계속 상암동에서 노가다만 하느라 제대로 된 동영상 업로드가 멈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든 아니든 유잼이면 좋겠다. 권욱 화보만 보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권욱의 팬은 휴대 전화를 껐다.

* * *

“마이크 좀 채워 주세요!”

“여기요!”

언양의 폐광산 근처.

일제 강점기 때 자수정이 엄청나게 나왔다는 동굴 앞은 현재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는 폐허가 됐다. 심지어 던전이 열리고 나서는 그나마 지나다니던 인원도 통제해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겨울을 코앞에 둔 오늘, 이 폐광산 앞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라를 비롯한 팀 K의 다큐 촬영 때문이었다.

“긴장했어요?”

권욱이 하라에게 툭 농담을 건넸다. 옷깃에 달린 작은 마이크를 만져 보며 신기해하던 하라가 흠칫했다.

“아, 예. 아무래도…….”

“긴장 풀어요. 열심히 연습했잖아요.”

“아하하하…….”

하라가 애써 웃었다. 특훈이라고 부르고, 하라만 개고생한다고 읽는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S급이되 S급이 아닌 강하라는 권욱이 없는 동안 팀 K의 래영과 함께 훈련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법밖에 훈련 못 했는걸요…….”

“원래 던전에선 그게 제일 중요해요.”

순간 이동이 특기인 래영은 하라의 스탯을 보더니 민첩에 주목했다. 고작 3인 민첩과 1인 행운. ‘이래서는 D급 던전에 들어가도 순식간에 죽겠는데.’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래영은 하라에게 달리기부터 시켰다.

솔직히 무기를 받고 멋지게 휘두르는 법이나 배울 줄 알았던 하라로서는 당황스러운 노릇이었다. 본의 아니게 일주일 내내 줄달음질만 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스킬은 오픈 못 했죠?”

“네. 어쩌다 보니…….”

“아니에요. 예상했어요.”

권욱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최종 목표는 퀘스트 달성이니까요.”

퀘스트 달성, 하며 권욱의 눈길이 닿은 곳은 저쪽 방송팀이었다.

방송팀은 현재 언양 게이트 근처에 차를 대 놓고 조명을 테스트 중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문제의 남자가 있었다.

윤세헌.

하라 또한 힐끗 그쪽을 쳐다봤다. 세헌은 대략의 흐름이 적힌 대본을 체크하며 화장을 수정받고 있었다.

“남자도 화장을 하는구나…….”

“무슨 소리예요. 나도 했잖아요.”

권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가리켰다. 하라는 피식 웃으며 권욱을 밀었다.

“권욱 헌터님은 아이돌이잖아요.”

“어라. 삽시간에 직업 뺏긴 사람 됐다, 나. 저 헌턴데요?”

“아, 지금은 물론 헌터지만…….”

하라가 우물쭈물했다.

권욱은 농담이라며 손사래 쳤다. 그러고는 작게 귓속말했다.

“아무튼 어지간하면 이번에 잘됐으면 좋겠어요.”

“잘되긴요…….”

하라는 벌게진 얼굴로 손에 쥔 것을 내려다봤다. 세헌의 손에 들린 것과 같은 대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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