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 *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은 총 두 명이었다.
“저희는 스튜디오 구경 중이었어요…….”
사정은 간단했다. 최수경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여자애는, 학교 수행 평가를 위해 방송국 스태프인 엄마에게 부탁해 친구까지 데려왔다가 이 사달이 났다고 했다.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 아이들은 뭔지도 모르고 휘말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라와 세헌처럼, 던전 한가운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들이 떨어진 곳은 커다란 나무 옆이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라는 여자애들은 작은 몸집을 겨우겨우 나무뿌리 틈 사이로 구겨 넣었다.
“어어엉. 몬스터가 올까 봐 숨도 못 쉬고, 으어어엉.”
침착하게 사정을 설명하다 결국 수경이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희연이라는 여자애도 마찬가지였다.
“야…… 울지 마…….”
‘울지 마, 어?’ 하다가 말고 결국 자신도 북받쳤는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아마 자신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크게 위안됐기 때문일 테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여자아이들은 저마다 하라와 세헌에게 와 안겨 울었다. 하라는 제게 안긴 수경을 쩔쩔매며 안아 주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응? 울지 마, 괜찮아.”
하지만 세헌은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냉정했다.
“울지 마세요. 몬스터들이 듣고 몰려옵니다.”
제 어깨까지 겨우 오는 자그마한 여자애한테도 존댓말을 써 주면서, 전혀 달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 말에 세헌의 허리를 붙들고 울던 희연이 눈이 새빨개진 채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라는 이마를 약간 찌푸렸다.
하지만 세헌에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세헌의 말이 맞았다. 사사삭……. 숲속에서 이쪽을 향해 번득이는 노란 눈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E급이나 F급, 아직까지는 잡스러운 곤충형 마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곧 동물형 마수들도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 하죠? 모두를 다 안고 날진 못하는데.”
“안전지대까지 많이 멉니까?”
“아뇨, 여기서 멀진 않아요.”
결국 아이들을 먼저 옮겨다 놓기로 했다.
세헌과 닿아 있지 않으면 힘이 본래대로 돌아가기에, 하라는 제게 안긴 수경의 무게를 가늠해 봤다. 초등학교를 지난해에 졸업한 수경은 하라와 키가 비슷하긴 했지만, 용을 쓰면 업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세헌이 아이 하나와 함께 남아 있는 동안 하라는 후다닥 수경을 안고 안전지대로 향했다.
다행히 안전지대는 꽤 넓었다. 아이도 안전지대를 보고 안심했다. 공무원들이 매 학기 학교에서 시행하는 ‘던전 고립 시 행동 수칙 안전 교육’ 따위가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희연도 날랐다. 일련의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있을 세헌이 걱정됐는데, 다행히 세헌도 무사했다. 행운이 따르는 모양이었다.
다만 작은 곤충형 마수들을 쫓느라 애를 먹은 듯했다.
“토끼만 한 바퀴벌레라니.”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안전지대에 넷이 다시 모이자 겨우 마음이 풀린 아이들이 입을 모았다.
“저희도 그거랑 싸웠어요.”
“싸웠어? 너희들이?”
“나무 틈으로 자꾸 기어 들어와서…….”
세상에. 숨어 있는데 자꾸 기어 들어오는 바퀴벌레라니, S급 마수만큼 끔찍했다. 모두 진저리를 쳤다.
그 와중에 숲속에서 커다란 늑대형 마수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네 사람이 저도 모르게 얼어 눈치를 봤지만, 여긴 안전지대였다. 늑대형 마수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멀어져 갔다.
그제야 정말로 안심한 네 사람이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라는 안전지대 근방에서 장작이 될 만한 것을 조금 주워 모았다. 낙엽은 젖어 있어서 쓸 수 없었으나 거기까지 바랄 순 없었다.
“그래도 둘이 잘 버텼네.”
꼬박꼬박 존댓말하던 세헌에게 아이들이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한 모양이었다. 하라를 제외한 사람들은 안전지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세헌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둘을 맡고 있었다.
하라는 종종걸음치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우린 어른 둘이도 애먹었는데.”
“그게…….”
눈치를 보던 수경이 입을 열었다.
“한 명 더 있었어요.”
“……뭐?”
하라가 멈칫했다. 세헌도 놀라 아이들을 돌아봤다. 희연이 눈알을 데굴거리다가 눈물을 쏟았다.
“서연이 어떡해…….”
수경이 데려온 친구들은 처음부터 둘이었다. 희연과 서연.
던전에 처음 떨어졌을 때, 또래들보다 훨씬 침착한 서연은 우는 둘을 달래고 숨을 곳부터 찾았다.
“얘들아, 괜찮아. 여기 숨자.”
나무 틈을 발견한 것도 서연이었고, 그 안으로 수경과 희연을 집어넣은 것도 서연이었다.
그리고 서연도 막 나무 틈으로 숨으려는 순간.
‘끼에에에!’
커다란 독수리인지 뭔지 모를 새 같은 것이 날아들어 서연을 채 갔다.
아이들은 뒤늦게 나무 틈에서 뛰어나왔으나 소용없었다. 서연은 이미 저 하늘로 날아간 뒤였다.
그제야 아이들의 땟국물 가득한 얼굴이 다시 보였다. 나무 틈 안에서 하루 종일 입을 틀어막고 울었을 여자애들의 얼굴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하라는 마른세수를 했다. 세헌은 허, 하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이들은 서연이 어떡해, 어떡해 하고 울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애가 어떻게 됐을지, 어려도 다 알기 때문일 테다.
* * *
안전지대에는 작은 연못도 하나 있었다. 하지만 딱 봐도 먹을 수 있는 물은 아니었다. 연못 안에 들어찬 물은 새까맣게 썩은 데다가 꿀럭꿀럭, 이상한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냄새가 그나마 덜 풍긴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저거 마시면 안 돼, 알지?”
“네…….”
한참 울었던 아이들은 퉁퉁 부은 얼굴로 나란히 답했다.
하라는 장작을 모아 쌓으며 한숨 쉬었다. 장작이라고는 해도 마른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모은 것이라 볼품은 없었다.
“비상용 키트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헌터들이 던전으로 들어갈 때면 꼭 소지하는 것이었다. 안에는 생존에 필요한 게 다 있었다. 장작이 이렇게 절실해질 줄이야.
“헌터 마켓은 던전에서 안 열리죠?”
“네.”
세헌의 물음에 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 나뭇가지 주변을 다졌다. 여자애들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하라가 하는 걸 지켜봤다.
하라는 애들을 향해 씩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인벤토리.”
와르르. 아까 토끼 사체에서 얻은 것들이 쏟아졌다. 애들의 눈이 커졌다. 아마 허공에서 떨어진 걸로만 보였을 것이다.
세헌이 그런 그녀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본래 시스템 창에서 편하게 꺼낼 수 있지만, 애들의 주의를 끌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거 봐. 언니가 아까 토끼 잡았다?”
“우와.”
[육식 토끼의 고기]
맛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