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Prologue
“오빠, 저 오랜만에 왔어요.”
“아, 진짜요? 그러게요. 오랜만이다.”
“네, 저 자랑할 거 있어요.”
“아, 진짜요. 말해 봐요.”
“저 이번 모의고사 올 1등급 떴어요.”
“와, 진짜요. 축하해요.”
“네, 그래서 저 이제 못 와요.”
“아, 진…… 뭐요? 왜요?”
주변이 소란했다. 한여름의 쇼핑몰 광장 한가운데.
땀 뻘뻘 흘리면서 100명도 안 되는 팬들에게 사인하던 듣보 아이돌 멤버가 눈을 부릅떴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펴 보이던 강하라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뷔 4년 차. 오만 컨셉 다 해 봐도 뜨지를 못한 이 오빠가 기가 죽어 썩은 동태 눈깔이 된 지는 한참이 됐다.
앨범 1장만 사도 팬싸 당첨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팬도 얼마 안 남아 팬싸 물이 고이다 못해 졸인 물이라는 뜻이고, 팬이 오빠 앞에서 용비어천가에 사미인곡까지 종류별로 불러 젖히고도 시간이 남아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동태 눈깔 뜨고 ‘아진짜요.’만 반복하던 오빠가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또 ‘아진짜요.’ 하고 넘길 줄 알았다.
근데 왜냐고 묻다니.
조금 놀라웠지만 강하라는 곧 평온해졌다. 자신이 누군가. 모의고사 올 1등급. 언어 만점. 다시 말해 지문의 함의를 완벽하게 파악한단 뜻이다.
‘우리 우기 오빠, 나 환승했을까 봐 놀랐구나.’
하라는 작게 웃으며 끼고 있던 뿔테 안경을 치켜올렸다.
땀 때문에 안경이 다시 미끄러져 내려가자, 오빠는 동그란 눈으로 하라를 보면서도 소매 끝으로 하라의 콧등을 닦아 줬다.
다행히도 하라가 모시는 오빠는 그 듣보 그룹 중에서도 비인기 멤버였다. 빠순이 땀 좀 닦아 줘 봐야 크게 입소문 탈 일은 없었다.
“왜요? 왜 못 와요?”
“그게요, 저 이제 고3이라서요.”
아이돌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진짜요.”
“네. 그래서 엄마가 한국대 법대 붙으면 그때 다시 팬싸 가랬어요.”
“아진짜요.”
보통은 가수가 팬 나이까지 꿰고 있진 않다. 하지만 오빠는 듣보고, 강하라는 한 줌 팬 중에서도 졸인 물이다.
하여, 아진짜요맨은 대충 강하라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열여덟.
가사 외울 땐 안 돌아가던 오빠 머리가 핑핑 돌아가며 눈앞의 팬이 귀환할 때를 계산했다.
지금은 8월. 말인즉슨 이듬해 11월에 수능 치고 12월에 결과받고 대학 합격증 받는 건 내후년 1월. 약 1년 6개월 동안은 빠순이 활동 금지.
1년 6개월이면 강산이 바뀌고, 듣보 아이돌 그룹이 해체를 하고도 남는 세월이다.
아진짜요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렇게 또 팬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구나.
그러든가 말든가 뒤에 선 매니저가 냉랭하고 성의 없이 말했다.
“이동하실게요-”
망돌 매니저다운 싸늘한 처사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하라는 랩을 했다.
“오빠사실제가오늘도엄마몰래왔거든요수능끝나자마자올게요아셨죠네?!”
아진짜요맨은 그래도 상도덕이 있는 아이돌이었다. 그는 옆으로 게걸음 치고 있던 하라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꼭 법대 붙어야 돼요. 알았죠? 그래서 저 보러 와요. 약속. 모의고사 성적표는 제가 보관했다 그때 돌려줄게요.”
헐, 오빠. 하라의 눈이 제 모의고사 성적표를 챙기는 오빠를 보고 하트로 물들었다. 그 와중에도 오빠에게 손가락을 바로 걸기 저어되어, 손바닥을 허벅지에 마구 쓱쓱 문질렀다. 우리 우기 오빠 손에 내 손바닥 땀을 묻힐 순 없지.
하지만 하라가 손을 걸기도 전에 매니저가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이동하실게요-”
“아이, 형. 잠깐만요.”
아진짜요맨은 살살 웃으며 매니저를 밀어내고 기어이 강하라 손에 손가락을 걸었다.
“또 봐요.”
그래서 또 볼 수 있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원래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는 복선이 있기 마련이고, 강하라의 경우는 ‘엄마 몰래 왔다.’는 말이 복선이 됐다.
그날 하필 그 쇼핑몰에 C급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민간 상업 시설인 쇼핑몰에 게이트가 열린 이유를, 쇼핑몰 사장은 뉴스 인터뷰에서 간결하게 축약했다.
[아, 대한민국에서 소방법 다 지키는 건물주가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