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X의 시작
1.
“토끼굴….”
직접 눈으로 보자마자 생각난 것이었다. 까치발을 들고 팔을 위로 쭉 뻗으면 손끝이 천장에 닿았다. 지나가던 몇몇 사람이 그런 태주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인적이 드물 거로 생각했던 왕산 지하도는 생각보다 사람이 꽤 지나다녔다. 어둑한 천장의 불빛과 스산한 분위기는 그저 지어진 지 오래된 탓인 듯 보였다.
한 길로만 쭉 이어져 있는 터널을 천천히 걸었다. 함께 오기로 했던 연지호는 곁에 없었다. 홀로 둘둘 만 머플러에 코를 박으며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으, 추워.”
연지호가 자취를 감춘 지 한 달이 지난 날이었다.
일주일 전에 지호의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이 시간에 왕산 지하도로 갈 것이라고 하면, 솔직히 슬그머니 나올 줄 알았다. 함께 가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어둑한 터널을 5분 정도 걸은 뒤에야 멀찍이서 빛이 보였다. 생각보다 이 으스스한 지하도는 꽤 길었다. 밖으로 나오자 허름한 풍경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지하도에 들어갈 무렵과 정반대였다.
저쪽은 차도도 넓고 건물도 번쩍거리는데, 이쪽은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휴게소를 보는 느낌이다. 구멍가게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법한 허름한 슈퍼 앞에 섰다.
바깥에 나와 있는 낡은 온장고에서 캔 커피 하나를 꺼냈다. 마실 건 아니고 손난로용이다. 가지고 가서 계산대 앞에 서자 무심한 시선과 함께 툭 뱉은 말이 떨어졌다.
“천오백 원.”
“아, 잠시만요.”
태주는 곧장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짧게 고민하다가 오만 원권을 꺼냈다.
“그나저나 이 자리에서 장사하신 지 오래된 것 같네요?”
“뭐, 그렇지. 이십 년도 더 됐으니까. 잔돈 없어?”
“하하. 네, 이것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얼른 지갑을 닫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것밖에 없다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만 원짜리가 좀 모자라는데…. 천 원짜리로 줘도 되지?”
“그럼요.”
다행히 상황도 잘 따라 주었다. 노란 고무줄에 묶인 천 원짜리를 집어 든 가게 주인이 한 장 한 장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가만히 보며 태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십 년 전에도 여기에 지하도가 있었습니까? 저 지하도, 꽤 오래되어 보이는데. 낡고 어두워서 혼자 다니기 좀 무섭습니다.”
“여기 처음 왔나 봐?”
“네, 근처에서 약속이 있어서요.”
“처음 왔으면 그럴 만도 하지. 저건 나 여기서 장사하기 전부터 있었어. 저 반대편에 빌딩 서기 훨씬 전부터.”
“아, 역시 오래됐구나?”
“여긴 여름에 다녀도 으슬으슬해. 옛날에 여기서 그렇게나 자살을 했거든. 그때 죽은 것들이 귀신이 돼서 돌아다니는 건지, 원.”
“자살, 이요?”
“오 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나 저기나 죄다 판자촌이었잖아. 그런 동네가 어떻게 저만큼 번쩍번쩍해졌겠어.”
“….”
“막무가내로 들이밀고 다 쓸어 버린 거지. 저 빌딩들 전부 거기 살던 사람들 사체 위에 지어진 거야. 그때 집 잃고 오갈 데 없는 것들이 여기서 자살 많이 했지. 허구한 날 시체가 나오니까, 언제는 사람 죽여서 여기다 버리고 간 놈도 있었어.”
사람을 죽여서 여기다 버리고 간 놈. 염상훈 교도관을 이야기한다고 보기엔 좀 더 오래된 과거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태주가 미간을 접었다.
“살인 사건까지 있던 겁니까?”
“모르지, 뭐. 여기서 죽인 건지, 아니면 죽인 다음에 여기다 버린 건지. 범인 못 잡았어.”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나 죽었는데도 멀쩡히 개방하고 있네요?”
“어쩔 수 없지. 전철역이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생겼으니까. 역에서 저 빌딩 숲까지 걸어가려면 이리로 가는 수밖에 없어. 아니면 한참 돌아가야 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시체 버려진 때가 오 년 전인가, 육 년 전인가? 아무튼 그때 한 번 폐쇄가 됐었는데, 저기 재개발되고 나서부터 민원이 엄청나게 들어갔나 봐. 불편하니까 개방하라고. 그래도 출퇴근 시간 아니면 조용해. 술 취한 놈들이나 가끔 뻗어서 자지. 자, 여기 거스름돈.”
“아, 감사합니다.”
염상훈 교도관 사건에 관한 것도 듣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영 건진 게 없지는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토끼굴이라 불리던 그때가 그립지, 뭐. 그땐 토끼 같은 녀석들이 저기서 지구나 지켰는데.”
한탄하듯 늘어놓는 혼잣말에 내디딘 발이 삐끗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밖으로 나온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 까맣게 입을 벌린 지하도의 입구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아이들의 비밀기지였던 곳이 자살 명소가 되고, 사건의 현장이 되었다. 예전에 한 번 보고 말았던 스크랩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토끼굴에서 발견된 사체.
좁고 긴 터널 내부의 모습만 담긴 사진.
그때 분명, 사람만 한 토끼가 존재한다면 이런 터널 같은 굴에서 살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 기사 속의 장소가 이곳일지도 모르겠다. 연지호의 책 속에 껴 있던, 그 스크랩 기사 속의 장소.
태주는 그날 읽었던 기사의 내용을 조각조각 떠올려 보았다.
20대 알파 남성.
약물 중독.
살인 사건의 정황이 보여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부검을 통해 자살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혹시 연지호가 염상훈 교도관 사건에 의문을 가졌던 건, 이 토끼굴 사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같아서.
하지만 그 사건이 연지호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 * *
7.
-어, 알아봤는데 태주 네 말 대로 진짜 그런 사건이 있었더라? 기사도 크게 나지 않은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아는 사람 통해서 알았습니다.”
핸드폰을 고쳐 쥔 태주가 법원 로비에 들어섰다. 통화 상대는 국과수 행정지원과에서 일하는 혁주의 친구였다. 혁주와 함께 있던 걸 본 기억을 끄집어내 겨우 연락처를 얻은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방향을 찾다가 잠시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통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시신 부검 기록이 아직 있습니까?”
-기록은 아직 있지. 게다가 신원 미상이라 찾아보면 소지품이랑 유골까지 있을걸?
“정말입니까? 아니, 그 전에 신원 미상이라니요? 기사에서는 20대 알파 남성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부검 결과로 추정한 거지. 정확한 나이는 몰라. 몸이 불에 거의 다 탔거든.
“요즘엔 치아나 뭐 그런 걸로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근데 없더라고. 죽기 전에 고문이라도 당한 건지, 아니면 원래 없이 태어난 건지. 치아나 손톱, 발톱, 그런 건 흔적도 없었다고 나와 있어. 이제 보니까 여러모로 이상한 부분이 많네?
“그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은, 소지품은 뭡니까?”
-어, 잠깐만!
잠시 정적이 일더니 딸깍딸깍 마우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에 적힌 내용으로는 일단 섬유 조각이 있네. 그런데 이건 타다 만 옷인 것 같고…. 아! 오른쪽 허벅지에 고무 같은 게 눌어붙어 있었는데, 이거를 그래픽으로 어찌어찌 유추해 보니까 장난감 칼인 것 같다더라? 그 왜, 의사 놀이 세트 같은 데 든 거 있잖아. 생긴 게 딱 의료용 메스야.
“의료용 메스요? 그런 걸 가지고 노는 애도 있나?”
연지호처럼 전쟁터 의무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모를까, 다 큰 성인이 그런 건 왜 가지고 있었을까?
예상은 했지만 유용하다 싶은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답답한 기분을 애써 감췄다. 고맙단 인사를 마지막으로 통화를 끝낸 뒤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확실히 머리가 하나인 것과 두 개인 것의 차이는 크다. 연지호 이 인간은 언제쯤 돌아올까?
그동안 잘 지내고 있으라면서.
그 얼굴에 대고 한마디 하고 싶다. 당신이 없는데 어떻게 잘 지내냐고.
“나 심심하다. 빨리 좀 나타나라.”
연지호가 사라진 지도 어느덧 반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시든 기대였지만, 그래도 오늘은 오지 않을까. 시든 걸 다시 잘 살려서 끌어안았다. 소매를 살짝 걷어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옮겨간 시선이 법원 입구를 빤히 주시했다. 모르는 얼굴만 수없이 출입구를 지나쳤다. 그렇게 한참을 있을 때였다.
지이잉. 지잉. 지이이잉. 손에서 뗀 지 얼마나 됐다고, 핸드폰이 저 좀 만져달라는 듯 요란하게 운다. 태주는 귀찮은 기색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연락이 올 사람이야 뻔했다.
[XXXXXXXXXXXXXXXX]
[XXXXXXXXXXXXXXXXX]
[XXXXXXXXXXX]
“으휴, 남우주 이걸 진짜!”
이 녀석에게 허락된 전파가 아깝다. X만 남발한 메시지에 미간을 구겼다. 토독. 토독. 빠르게 패드를 두드려 답을 보냈다.
[아 알았어! 뭐가 또 먹고 싶어서 난린데?]
[한방 통닭 아니면 뼈찜]
[그러고 보니까 내일이 초복이네]
태주는 귀찮은 듯 굴면서도 한동안 우주와 장난을 주고받았다. 익숙한 구둣발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오셨어요?”
“태주 넌 엄마 차 타고 같이 가자니까.”
“공판 끝나면 교도소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무튼 시간 다 됐으니까 가요. 능글맞게 웃으며 팔 한 짝을 슬쩍 내밀었다. 내 아들이지만 참 밉다는 표정으로 바라본 결영이 새침하게 팔을 걸었다. 정답게 팔짱을 낀 모자는 전혀 정답지 않은 공간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참 무서워. 어떻게 영유아 시설만 골라서 불을 질러?”
“어리고 약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랬겠죠. 희재 처음 봤을 때 떠올리면 여전히 슬프고 화나요.”
해하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 상처가 낫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랜 수사 끝에 드디어 방화범이 잡힌 건데도 크게 기쁘지 않았다. 이미 다친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는, 반년 전 연지호를 무너지게 한 카페 화재 사건의 범인이기도 했다.
* * *
12.
[XXXXX]
[뭐가 먹고 싶은데?]
[유부초밥이랑 소주]
[좋네]
[9시 퇴근이니까 같이 먹자]
[퇴근하면 연락해]
톡톡 메시지를 보낸 태주가 차에서 내렸다. 온갖 종류의 꽃을 품에 한 아름 안은 채였다. 비번임에도 교도관 정복을 단정히 입고 그가 찾은 곳은 봉안당이었다.
금세 한 바퀴를 돈 계절은 벌써 겨울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한 움큼씩 하얀 입김이 입술 사이로 샜다. 고요한 봉안당 외관을 눈에 담은 뒤 그 뒤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태주는 낯익은 사진이 붙은 봉안 담과 그 앞에 선 중년의 부부를 번갈아 보았다. 아주 슬프고 괴로운 얼굴로 공판을 지켜보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불길 속에서 연지호가 허망한 얼굴로 끌어안고 있던 아이의 보호자였다.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이랑 같이 있던 분 맞죠? 법원에서도 뵈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던 시선을 느꼈는지, 몸을 돌린 부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태주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럴 땐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의 유골이 이곳에 있는 줄은 몰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죄책감 짙은 표정으로 땅만 보고 있을 때였다.
“교도관이신가 봐요?”
옷에 박힌 대한민국 교정 마크를 본 부부가 작게 미소 지었다. 잠시 아이를 봐도 되겠냐고 물은 태주가 그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깨에서 잘린 얼굴 사진뿐이지만, 한눈에 봐도 너무나 어리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그때 어떻게 해서든 벽을 뚫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아마 연지호는 이보다 더한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담 앞에 얌전히 놓인 해바라기를 보았다. 꽃을 잘 몰라도 이렇게 추운 겨울과 맞지 않다는 건 잘 알았다. 당연히 아이의 부모가 놓았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끔 이렇게 꽃이 놓여 있더라고요. 여름에는 겨울에 피는 꽃을 놓는 걸 보면 우리 아이가 덥거나 추울까 봐 신경 써 주나 봐요.”
조곤조곤 말을 늘어놓은 아이의 어머니가 시선을 내렸다. 그 높이가 왠지 아이의 머리끝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주는 순간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상하게 뻐근한 가슴에, 속으로 조용히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죽은 아이가 안타까워서?
“처음에는 그때 같이 있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놓은 건 줄 알았는데….”
아니. 그랬다면 심장이 이 정도로 요란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깊게 생각할 것 없이 답은 금방 나왔다.
“아무래도 그 의사 선생님인 것 같아요.”
연지호가, 이곳에 왔었다.
“그 의사 선생님이 아이 유골이 여기에 있는 걸 알고 있습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화재 사고 다음 날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장례식장에 찾아와서는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고개를 든 아이의 어머니가 태주를 보았다. 눈빛이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했다. 하지만 이 눈빛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는 걸 태주는 잘 알았다. 아이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아이 장례식 땐 경황이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했네요. 그때 보니까 그 의사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 같던데. 나중에 만나면 전해 줄래요?”
“….”
“선생님 잘못 아니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이, 끝까지 포기 안 해 줘서 고마워요.”
그가 꼭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할 이야기. 태주는 그 말을 꽉 잡고 놓치지 않을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이만 가 보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급하게 봉안당을 나섰다.
어쩌면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체 언제 왔을까? 1시간 전? 10분 전? 아주 찰나의 순간으로 엇갈린 거였으면 좋겠는데.
이미 몇 번이고 무너진 기대를 오늘도 주워 고쳤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그 기대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찾을 수가 없다.
꽃다발을 들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슬슬 한계였다.
1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이제는 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