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요
탁탁탁탁. 소내에 울리는 구둣발 소리가 살벌하기 그지없다. 주먹을 꽉 쥔 심 교도가 이내 억누른 화를 터뜨리듯 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구실에 도착한 그는 문을 벌컥 열었다.
“김 주임님! 이게 말이 됩니까?”
“알아. 그래도 말이 되니까 일어난 일인 걸 어떡해. 호들갑 떨지 말고 앉아. 이것 좀 마시고 진정해.”
김 주임이 오렌지주스를 테이블에 놓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심각한 심 교도와 달리 그의 얼굴엔 그다지 걱정이 없어 보였다. 한가하게 TV나 보고 앉았다.
-이번 화재 사건 또한 영유아 시설만 노리는 연쇄 방화범의 소행으로 보여….
그것도 태주가 연루된 화재 사건 뉴스를 마치 남 일 보듯 보고 있었다. 심 교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진짜! 김 주임님!”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일단 뛰어오느라 타는 목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병뚜껑을 거칠게 연 심 교도가 단숨에 주스를 들이켰다. 순식간에 내용물을 비우고, 빈 병을 탕 소리가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한숨 돌린 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니, 지금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6239 다른 소로 보내 주세요! 소장님한테 가서 말씀 좀 해 주시라고요!”
“소장님 오늘 법무부 가셨다.”
“그럼 보안 과장님한테라도 말 좀 해 봐요.”
“아, 둘이 같이 갔지! 소장님이 거기 혼자 갔겠냐?”
“아니, 혼자 가면 되지! 왜 둘이 가요? 다 큰 어른이?”
“아오! 위에서 둘 다 불렀으니까 둘이 같이 갔지! 넌 왜 생각을 자꾸 하다 말아? 다 큰 어른이!”
이렇게 멍청한데, 어떻게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된 거야? 하여간 너랑 오는 국가 차원에서 뇌 검사를 좀 해 봐야 돼. 으휴, 징글징글들.
결국 참다못한 김 주임이 언성을 높였다. 바보를 연달아 상대한 탓에 피로와 두통이 밀려들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불평하듯 말을 이었다.
“아우, 왜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너희가 난리야. 오 분 전에는 오 교도가 와서 한바탕 난리 치더니.”
“당사자가 가만히 있으니까 그 측근이 대신 난리를 쳐 주는 거죠.”
“나도 그 측근이다, 인마.”
“그러니까 주임님도 제 편에 서서 6239를 보내 버리는 데 힘써야죠. 주임님은 남 부장님이 걱정도 안 되세요?”
“너랑 오보다 믿음직한데 뭔 걱정을 해? 너희가 제일 걱정이야, 이놈들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을 꺼내자 그제야 심 교도의 흥분이 잠잠해진다. 조금 전 오 교도가 한바탕 난리를 쳤을 때도 이쯤에서 잠잠해졌다. 하여간 둘이 똑같다고 생각하며, 김 주임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우, 피곤해. 내일은 소장님 오시니까 내일 내가 얘기할게. 오늘만 견뎌라, 엉?”
“진짜죠?”
“또 여차하면 CRPT도 있잖아. 그리고 남 부장은 오히려 이 상황이 더 좋대.”
“남 부장님은 위험 불감증이잖아요. 서스펜스가 삶의 기본 베이스인 줄 알아.”
그런데 주임님, 주스 하나 더 꺼내 먹어도 돼요? 테이블 밑으로 쑥 들어간 심 교도가 박스를 뒤적였다. 따로 아껴 놓은 느낌이 팍팍 드는 알로에 주스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으휴.”
초록색의 병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 김 주임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운 녀석들.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비닐을 뜯고 뚜껑까지 열어 주었다.
“그거 다 마시면 수용동 한 바퀴 돌고 와.”
“네에.”
그랬더니 홀짝홀짝 찔끔찔끔 마시며 시간을 끈다. 그 모습이 정겹고 얄미워서 한 대만 때릴까 진지하게 고민할 때였다.
“그런데요, 주임님.”
“또, 뭐.”
“6239요. 진짜 괜찮을까요?”
“괜찮겠지. 남 부장이 이 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요.”
심 교도의 얼굴에 다시 근심이 드리워졌다. 그는 반쯤 남은 음료를 내려놓았다. 뚜껑을 덮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번에 들어온 6239, 남 부장님 배에 칼 꽂은 그놈이잖아요.”
* * *
한편, 직장 동료들의 걱정을 알 리 없는 태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소내를 휘젓는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알파 수용동 앞에 선 그는 목에 건 카드를 잠금장치에 가져다 대었다. 덜컹. 잠긴 철문이 열렸다.
“삼십 분 후에 일과 종료입니다! 슬슬 점호 준비하세요!”
큰소리로 외치며 상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발걸음이 거침없는 걸 봐서 목적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오! 남 부장!”
상층 방에서 생활하는 몇몇 수용자가 창가에 달라붙었다. 이 또한 교도소에선 종종 있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툭툭 던지는 투정을 유연하게 받아친 태주는 7번 방 앞에서 멈춰 섰다.
창살과 창살 사이, 그 끝으로 시선을 쭉 밀고 들어가 구석을 보았다. 한 남자가 멍한 얼굴로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가만히 보다가 잠금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6239. 면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뱉자 멍한 시선이 움직였다. 느리게 태주의 시선과 맞닿았다.
* * *
“면회를 매번 거절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는 방법도 있었네요.”
빈 교육실. 두 사람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태주는 그의 앞에 미지근한 커피를 놓아 주었다. 6239의 시선이 짧게 닿았다.
하지만 단지 그뿐, 마시라고 준 것이 뻔함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태주는 배 위에 손을 얹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칼로 찔렀던 그 자리다.
그렇게나 잡히길 기다렸던 약국 강도 사건의 범인. 당연히 궁금한 것이 많다. 하지만 태주는 그에게 아무 질문도 건네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지 않을 것을 알아서였다.
검거된 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진술서를 작성할 때도 고개만 끄덕인 탓에 피해자인 태주가 그에게 변호사를 붙여 주기까지 했다. 실력 좋은 변호사가 붙으면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고, 면회도 번번이 거절했다.
그러니 이감으로 얻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어떤 화제를 꺼내야 이 남자가 작은 동요라도 할까?
팔짱을 낀 태주가 눈을 옆으로 굴렸다. 바닥 타일 무늬를 별 의미 없이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떠오른 것이 있는데, 그게 영 내키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괴로운 얼굴로 잠시 고민했다. 이내 모든 감정을 지우고 6239를 향해 입을 열었다.
“딸이 많이 아픕니까?”
움찔. 내키지 않는 만큼 내뱉은 화제는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지만, 이 정도의 동요면 말 없이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6239가 징역을 사는 동안 딸은 누가 돌봅니까? 다른 보호자가 있습니까?”
“….”
“여전히 입을 다무시겠다면 제가 직접 찾아보고요.”
그 말에 6239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냥 꺼내는 이야기가 아니란 걸 눈치챈 것이다.
“왜 그 억제제여야 했습니까? 그 약을 어디에 쓴 거죠?”
“….”
“좋습니다. 다음 면담은 제가 6239의 딸을 찾은 후에 하죠.”
이만 돌아갈까요? 더는 회유도, 설득도 없다. 태주는 가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육실 문을 열고 6239가 먼저 나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부딪치고 있을 터였다. 태주는 잠시 그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한참 뒤, 드디어 적막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내 딸을 찾으면,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건가요?”
한 번쯤 경험해 본 것처럼 두려움이 잔뜩 낀 눈빛. 표정이 제어가 안 되는 듯 얼굴 근육이 움찔움찔 떨린다. 태주는 느슨하게 벽에 몸을 기대며 정복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제가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할 겁니다. 선물이랑 용돈도 줄 거고요. 그리고 가끔은 우리 희재랑도 놀아 달라고 할 겁니다. 희재와 성격이 잘 안 맞으면 하는 수 없고요.”
“그게 다인가요?”
“더 바라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 내가 아이였을 땐 뭘 하는 게 가장 좋았더라?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태주가 능청스레 중얼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슬쩍 6239를 보자, 맥이 풀린 듯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재소자들이 매번 깡패네, 양아치네. 요구하는 거 안 들어 준다고 욕해서 그러지, 이래 보여도 저 공무원입니다. 설마 제가 아이를 인질 삼아 협박하겠습니까? 6239 퇴소 때까지 신경 써서 살펴 줄 생각입니다. 6239의 목소리가, 저한테는 그 정도의 가치니까요.”
“….”
“그럼 가죠. 일과 종료 시각 지났습니다.”
시간을 확인한 태주가 바로 섰다. 자리에서 일어난 6239가 더듬더듬 그의 뒤를 따랐다.
제 1사동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다른 교도관을 마주칠 때만 잠깐씩 정적이 사라졌다.
덜컹. 알파 수용동의 문이 열렸다. 점호 후의 수용동은 고요했다. 상층 7번 방 앞에 선 태주가 몸을 돌려 6239를 마주했다.
“입을 열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지 면담 신청하세요.”
기다리겠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이른 시일 내에 입을 열라며 닦달하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6239의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6239는 철창 너머를 흘끗 보았다. 다들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다시 태주를 보았다.
언제 잠금을 해제했는지 거실 문이 열려 있었다. 이대로 들어가려던 그는 이내 마음을 바꾸고 입을 열었다.
“양지원, 그 사람을 찾아보세요.”
“예?”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옹알이와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발음 또한 정확하지 않았다.
미간을 접은 태주가 귀를 기울였다. 6239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교사님.”
“….”
“반드시 그 억제제여야만 했던 이유는.”
“….”
“그 억제제가 아니면 안 되는 알파와 오메가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 억제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요?”
특정 억제제만 복용 가능한 알파와 오메가라는 건가?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그런 건 들어 본 적도 없다. 질병을 앓는 환자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말의 문맥상 그런 부류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대체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게다가 ‘양지원’이라면 분명….
“제가 왜 하필 양지원 그 사람의 가게를 택했을까요?”
태주를 지나친 6239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태연하게 문까지 닫은 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누웠다.
‘그때 그 현장에서 진짜 피해자는 교사님뿐이었어요.’
곁을 스칠 때 아주 작게 흘리고 간 말이었다. 몇 번이나 그의 말을 곱씹은 태주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 * *
삑삑삑삑삑삑. 삐리리릭. 캐비닛 앞에 선 태주가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갑갑한 넥타이부터 벗어 던진 뒤, 셔츠 단추를 거침없이 풀다 멈칫했다.
…진짜 피해자는 나뿐이었다.
그렇다면 양지원이 앓고 있다는 후유증은? 그건 진짜일까?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닐 확률이 높다. 직접 본 상황에만 너무 의존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게 큰 실수였다.
숨어 지낼 정도로 겁이 많은 사람이, 낯선 남자를 만나 일을 의뢰할 리가 없는데. 특히 정정택 씨 같은, 첫인상이 끝내주게 무서운 사람에겐 더욱더.
“아, 꼭 이렇게 한 번씩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니까?”
작게 한탄하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 전원을 켜 근무 중에 온 연락이 있는지 확인했다. 남 회장의 잔소리를 전하는 형의 메시지와 쓸데없이 ‘X’만 남발한 여동생의 메시지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다.
두 달이 지나도록 기다리고 있는 연락은 여전히 없다.
이제는 머리보다 손이 더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툭 건드렸다. 화면이 바뀌며 통화연결음이 약하게 들렸다.
연락처는 사라지지 않은 그대로인데, 아무리 걸어도 듣고 싶은 목소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엔 이번에도 허무하게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연좌천, 연도망, 연멍청이, 연겁쟁이….
연지호.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 인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당장 그가 옮긴 병원으로 찾아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오늘도 참는다. 연지호를 믿기로 약속했으니까.
던져두었던 넥타이를 다시 집어 잘 정돈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 얌전히 놓는데, 구석에 하얀 종잇조각 같은 것이 낀 게 보인다.
손을 뻗어 끄집어냈다. 지호의 명함이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넥타이를 놓고 명함을 챙겼다. 예전 같았으면 소중히 모셨겠지만, 지금은 그저 미운 인간의 명함이라 대충 반으로 접었다. 하지만 반으로 접기 무섭게 다시 펼쳤다.
“뭐지?”
…뭐지? 이런 건 없었는데?
그대로 명함을 뒤집었다. 정중앙에 새겨진 혜성대 병원 로고 위에, 본 적 없는 글씨가 쓰여 있다. 태주는 그 글자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눌러 쓴 볼펜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요]
“하여튼 손기술도 좋아.”
이건 또 언제 가져가서, 언제 적어 넣었대? 작게 웃으며 다시 캐비닛 구석으로 툭 던졌다. 그동안 잘 지내라니. 대체 여기에 나오는 ‘그동안’의 기간은 언제까지란 말인가. 연지호답지 않게 불친절하다.
“진짜 너무하네.”
웃고 있던 얼굴이 금세 흐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표정을 정돈했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똑바로 들고 캐비닛 문을 닫았다.
삐리리릭. 잠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1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