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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웃을 수밖에 없는 (11/29)

10. 웃을 수밖에 없는

“뭐? 혼수상태?”

주차를 마친 태주가 놀란 눈으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거치대에 꽂아 둔 핸드폰에서 혁주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나쁜 짓만 골라 하더니 벌 받은 거지. 한쪽 다리는 완전히 절단했대. 개방성 골절인데 감염이 심해서 뼈가 괴사했다더라. 운이 좋아서 일어난다고 해도 제대로 못 걸을 거야.

“나랑 만나고 나서 그렇게 됐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근데 내가 호텔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네 약점 잡아서 고소 못 하게 하려고 사람이라도 붙였나 보지, 뭐.

“그런가?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 나 이제 교도소 들어가 봐야 된다. 나중에 또 연락할게.”

-그래, 어머니한테도 좀 연락하고. 그리고 위험한 일은 좀 피해 다녀라! 어?

“어어, 알았어.”

건성으로 대답한 태주가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가족들은 늘 약속이라도 한 듯 뒤에 가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사건, 사고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나.”

가방과 코트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핸드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새 메시지 표시도 없는 메시지 창이 켜졌다 꺼지길 반복했다.

며칠째 염상훈 교도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 * *

“남 부장님! 아, 남 부장! 야, 이, 남 부장 새끼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1사동을 가득 메웠다. 각 방에 있던 재소자들이 창가를 기웃거리며 소음의 근원을 찾았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뻔했다. 3274가 있는 2번 방이었다.

“아, 남 부장! 애 죽는다고! 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남자는 3274와 같은 방을 쓰는 재소자였다. 평소에도 조카를 대하듯 아기를 소중히 여겼던 탓에 3274만큼이나 애가 타 있었다. 그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태주를 부를 때였다.

“야! 남 부….”

“갑니다! 갑니다! 다 왔어요!”

헐레벌떡 오메가 수용동의 문을 연 태주가 넥타이를 매며 뛰어왔다. 퇴근 직전, 탈의실 앞에서 희미하게 울린 외침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휴, 왜 이제 와요! 내가 몇 번을 불렀는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심 교도님이랑 독고 부장님은요? 오늘 당직인데 안 왔습니까?”

“5번 방 애들이 상한 크림빵 먹고 탈 났잖아요. 죽겠다고 난리 쳐서 의무실 갔어요. 아니, 그보다 우리 아기 좀 어떻게 해 봐요! 이러다 죽겠어!”

열이 많이 난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눈이 돌아간 채로 덜덜 떠는 아이와 차마 아이를 건드리지도 못하는 3274의 모습이 보였다. 태주는 빠르게 아이부터 살폈다.

“고열 때문에 경련이 일어난 겁니다. 아이가 이렇게 몸을 떤 지 얼마나 됐습니까?”

“어, 그게…. 7분! 7분 정도 된 것 같아요! 남 교사님, 우리 아이 어떡해요?”

“경련이 5분 이상 지속되면 좋지 않습니다. 바로 외부 진료 나가야겠습니다. 의무실 선생님이 살펴보긴 어려울 겁니다.”

태주는 아이 옷의 단추를 전부 푼 뒤,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아이를 감쌌다. 다행히 아기가 아직 토를 하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를 안은 태주가 신발을 신고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려는데 벌떡 일어난 3274가 눈물 젖은 얼굴로 애원했다.

“남 교사님,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그 간절한 마음을 누가 모를까. 같은 방을 쓰는 재소자들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들어 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안 되는 거 아시잖습니까.”

태주는 어렵게 고개를 저었다. 애써 무거운 마음과 얼굴에 드리워진 감정을 지웠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이 상태는 다른 교도관 통해서 전하겠습니다.”

애초에 이곳은 안타깝단 이유로 선의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 *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의무실에서 원격 진료를 받았다. 역시나 소아 환자 경험이 없는 의무사무관은 끙끙대며 애를 먹었다.

“아오, 정신 사나우니까 5번 방 것들은 그냥 약 먹이고 보내요! 외부 진료 나갈 건 절대 아니야. 그래서, 아기 태어난 지 몇 개월 됐다고?”

“아직 백일 조금 못 된 걸로 압니다.”

“어휴, 큰일이네. 백일 전엔 열만 나도 병원 가야 돼요. 자칫하면 패혈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요. 구급차 대기하는 대로 얼른 병원 가요. 소아청소년과니까 혜성대 병원밖에 없네.”

서둘러 뭔가를 바쁘게 적던 그가 동료 의무사무관을 깨웠다.

“야, 야, 야. 네가 병원까지 따라갔다 와. 잠도 좀 깰 겸.”

“엉? …어엉. 내가 다녀올게. 가시죠, 남 부장님.”

침을 닦으며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영 미덥지 못한 의무사무관이었다. 태주의 얼굴에 잠시 걱정이 어렸다. 낯이 익지 않은 걸 보니 이번에 새로 뽑은 의무사무관 같다. 그의 이름표로 시선을 옮겼다.

박차영. 힘차고 멋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박 선생님.”

* * *

“제가 원래는 여명대 병원에서 알아주는 써전이었는데요. 병원 비리 폭로했다가 잘리고 의무사무관 된 거잖아요.”

“아, 네. 훌륭하십니다.”

힘차고 멋있다는 거 취소. 거, 되게 말 많으시네.

무성의하게 대꾸한 태주가 아이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주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아이를 향해 있었다. 환경이 그리 썩 좋지 않은 교도소 생활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닐까, 괜스레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속으로 연신 아이에게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때였다.

“어어어?”

갑자기 구급차가 휘청거렸다. 성인 남성이 속절없이 기울어질 정도로 운전이 험해졌다. 태주는 얼른 아이를 안아 들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뒤에 차가 바짝 따라붙으면서 위협합니다! 다들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대체 어떤 차가 간 크게 구급차 주변에서 위협 운전을 하는 건지. 창문을 내다보니 트럭 한 대가 당장이라도 박을 것처럼 바짝 붙어 있다.

모두 긴장을 삼긴 채 바짝 붙어오는 트럭을 주시했다. 숨 막히는 분위기가 전해진 건지,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어어, 그래, 괜찮아요. 미안합니다. 나 때문에 불안했죠?”

얼른 신경을 다시 아이에게 돌리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이 일, 저 일이 겹쳐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까지 진동하기 시작했다.

태주는 순간 밀려드는 짜증을 누르며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화면을 마주하기 무섭게 마음이 사그라졌다.

아, 맞다.

퇴근하면 바로 병원으로 갈 테니 만나자고 해 놓고. 9시가 다 되어 갈 때까지 연락 없이 이러고 있었다. 곧장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태주 씨, 어디에요? 병원 도착했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소에서 돌보는 아이가 좀 아파서 지금 구급차…. 어어?”

그때였다. 갑자기 구급차가 확 방향을 틀면서 가드레일을 박았다. 흔들리는 차에 핸드폰을 놓치고 여기저기 부딪쳤다. 양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집힐 것처럼 한쪽으로 잠시 쏠렸지만, 다행히 차량이 전복되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태주는 급히 아이부터 살폈다. 점퍼에 감싸 온몸으로 막은 덕인지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

뻐근한 목을 천천히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이고, 뒤고, 다들 사고로 인한 고통에 끙끙거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차영부터 살폈다.

“선생님. 박차영 선생님? 괜찮습니까?”

“으으, 팔을 못 움직이겠어요.”

“상처가 심합니다. 어디에 긁힌 것 같아요.”

아이를 베드에 잠시 내려놓은 뒤 수납장을 뒤져 붕대를 꺼냈다. 급한 대로 둘둘 감아 출혈부터 막았다. 식은땀을 뻘뻘 흘린 차영은 팔다리를 하나씩 움직여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 그 트럭이랑 부딪친 건가?”

“아뇨, 피하려다가 가드레일에 부딪친 것 같습니다.”

응급구조사들까지 챙긴 뒤, 태주는 다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차에서 내려 상황을 확인하려는데, 시트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다.

-태주 씨. 태주 씨? 무슨 일이에요? 괜찮은 거예요?

손을 뻗어 얼른 핸드폰을 주웠다. 산산조각이 난 액정에선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아, 선생님? 전 괜찮습니다. 가는 도중에 차 사고가 나서요.”

-거기가 어디예요? 많이 다쳤어요?

“저보다는 아이가 지금 열성 경련으로 힘들어합니다. 빨리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데, 구급차 좀 불러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 핸드폰은 화면이 아예 나가서요.”

태주는 차에서 내렸다. 일단 위치를 알아야 구급차를 부를 수 있던 탓이다. 차의 상태를 대충 눈으로 훑은 뒤, 표지판을 찾기 위해 몸을 돌릴 때였다.

“그러니까 여기가….”

말을 잇던 태주가 순간 숨을 집어삼켰다. 말도 안 되는 눈앞의 상황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충격이 깃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서, 선생님….”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4중 추돌 사고입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량이 깨지고 구겨져 있었다. 울부짖는 사람과 의식을 잃은 사람, 그리고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다들 괴로움에 울고, 아파하고….

피를 흘린다.

소름 끼치는 이명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졌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명치에서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 * *

“태주 씨. 태주 씨?”

핸드폰을 꽉 붙잡은 지호는 몇 번이나 태주를 불렀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소리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뚝, 통화가 끊겼다.

“태주 씨, 받아요. 제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신호만 갈 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단 그곳의 위치부터 알아야 뭐라도 할 텐데, 답답하기만 하다.

어디일까.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태주.

“야, 연 교수! 연 교수!”

그런데 하필이면 이럴 때 일이 겹친다.

엘리베이터에서 튕기듯 밖으로 나온 박 교수가 스테이션으로 달려왔다. 응급 환자인가 싶어 쳐다보는데, 다짜고짜 손목을 붙잡는다. 그렇게 지호를 이끈 박 교수는 무작정 병원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응급 환자 들어온 거 아니에요?”

“아니야. 지금 그보다 더한 게 너 잡겠다고 난리지.”

“누구요? 센터장이요?”

“오늘 당직은 내가 대신 할 테니까, 연 교수는 일단 퇴근해.”

“하아….”

자꾸만 꼬이는 일에 한숨이 터진다. 이번엔 또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을 잡지 못해 안달인 걸까.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 건데요. 저 지금 못 가요.”

“못 가도 가. 너 며칠 전에 HIV 환자 수술 들어갔다며. 그거 때문에 내일 수술 예정이었던 지화 건설 회장이 병실 뒤집어엎었어. 그 더러운 손으로 자기 수술하는 거냐면서 센터장한테 아주 난리 난리 개나리를 피우는데, 어휴….”

“그래요? 다른 교수님 이름으로 들어갔는데도 그게 그새 들켰어요? 아쉬워라.”

“아쉬워라?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아무튼 며칠 동안은 센터장 눈에 띄지 마. 너 찾는다고 아주 눈이 이글이글해. 오늘은 일단 퇴근해. 알았어?”

“알았어요. 갈 테니까 그 전에 잠깐만요. 가운에 크록스 차림으로 갈 순 없잖아요.”

걸음을 멈춘 지호가 생각에 잠겼다. 그를 이끌고 걷던 박 교수의 몸이 휘청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고 바로 서서 방향을 돌렸다.

“뭐야? 옷 갈아입고 가는 거 아니야? 뭘 그렇게 우뚝 섰어?”

“잠시만요. 잠시만. 생각 좀 하고요.”

옷 갈아입으러 가는데 무슨 생각씩이나 하나? 지호를 보는 박 교수의 눈빛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또 무슨 꿍꿍이로 버티는 건가 싶은 마음에 다시 입을 열 때였다.

“그 근방에 이 시간까지 소아를 다룰 수 있는 병원은 우리 병원뿐이에요. 아마 구급차를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났을 거예요.”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난데없는 소리에 박 교수의 미간이 구겨졌다. 갑자기 미친 거냐며 슬쩍 경계까지 했다. 지호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그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태주 씨가 소아 환자 이송 중에 사고가 난 것 같아요. 4중 추돌 사고요.”

“뭐? 4중 추돌 사고? 어디서 났는데?”

“모르겠어요. 그 전에 전화가 끊겨서. 지금부터 거길 찾아야죠. 교도소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빠른 경로가….”

“무슨 수로 찾으려고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도로라도 다 뒤지게?”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응급실에서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사람들한테 발견되기 쉬운 장소는 아닐 거예요. 번화가나 차가 많이 다니는 길만 빼도 꽤 많이 좁혀져요.”

그리고 교도소 근처도. 사고가 났다면 쉽게 발견될 테니까 여기까지 제외하면, 남는 건 하나다.

“39번 국도요. 그쪽으로 경찰이랑 구급차 불러 주세요.”

먼저 가 있겠다며 지호가 차를 가지러 뛰어갔다. 미간을 좁힌 박 교수가 39번 국도의 위치를 떠올렸다.

“39번 국도? 거기가 어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났는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지호의 뒤를 따라 뛰었다.

“야, 인마! 39번 국도가 얼마나 긴데!”

“길지 않아요! 여기서 경기 남부 교도소까지 가는 경로만 살피면 되잖아요! 길어야 10분이에요! 제가 먼저 가서 찾으면 정확한 위치 보내 드릴 테니까 어서요!”

답지 않게 보챈 지호가 조금 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도 아까운지 비상구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혹시 몰라, 태주에게 계속 전화를 걸면서였다.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통화 버튼을 누를 때 즈음이었을까. 드디어 통화 연결음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렸다.

“태주 씨. 태주 씨예요?”

-선생님….

* * *

“남 부장님. 어이, 남 부장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손길에 정신이 들었다. 차영이 미간을 좁힌 채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정신 차려요! 뭐 하는 거예요? 아이 떨어질 뻔했잖아요!”

“아, 네! 죄송합니다.”

“얼른 좀 받아 줘요. 나 지금 손가락이 안 움직여요. 팔로 겨우 받치고 있다고요.”

“네, 이리 주세요.”

얼른 아이를 안아 든 태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의 끔찍한 광경 그대로다. 액정이 깨진 핸드폰은 통화가 끊어진 모양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턱 끝까지 올라오는 불안감을 힘겹게 내리눌렀다. 아무리 정신이 부서질 것 같아도 견디지 않으면 안 됐다.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며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혀끝에 비릿한 향이 스칠 때였다.

“와악! 깜짝이야! 어우, 선생님? 괜찮아요?”

구급차 운전석을 연 차영이 쓰러지는 응급구조사를 받았다. 안면 열상이 심한 데다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는 더듬더듬 불안하게 걷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봐요. 선생님! 선생님?”

쓰러진 응급구조사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결국에는 눈꺼풀을 내렸다. 다행히 숨도 규칙적으로 쉬며, 특별히 심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차영은 그를 갓길에 눕혀둔 뒤, 다시 운전석으로 가 119에 연락했다.

태주는 그사이 다시 구급차에 올랐다. 함께 뒷좌석에 있었던 응급구조사가 필요한 것을 찾아 챙기고 있었다.

“뭘 찾으시는 겁니까?”

“교도관님, 이 베드 좀 빼 줄래요? 물건이 죄다 이 밑으로 들어가서요.”

“아, 네. 잠시만요.”

좌석에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태주가 차에서 베드를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재빨리 가까운 사고 차량으로 달려가 창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이봐요? 괜찮습니까?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소리쳐 부르니 조금씩 반응이 보였다. 눈가를 움찔거린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지금 문이 잠겨 있는데, 열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태주가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한참 뒤에야 느릿느릿 움직인 여자는 잠긴 문을 열어 주었다. 때마침 119와 연락을 마치고 온 차영과 여자를 들것에 실어 갓길로 옮겼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어디 불편한 데 있어요?”

“괜찮, 아요. 발목이 좀, 아픈 것만 빼면…. 그런데 너무 놀라서, 정신이 없어요….”

띄엄띄엄 말을 뱉은 여자가 울먹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엉망인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저 맨 앞에 있는 차가, 갑자기…. 갑자기 역주행했어요.”

“역주행이요?”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 가장 앞쪽에, 뒤를 보고 있는 회색 승용차가 옆으로 누운 채 있었다.

곧장 그 차로 달려갔다. 마침 장비를 챙긴 응급구조사가 차 문을 뜯고 있었다. 문을 뜯어내고 안에서 환자를 발견한 그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차에서 떨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아, 아아….”

말을 잇지 못한 그는 충격에 몸을 덜덜 떨었다. 어디에서 긁힌 건지 손에서 피가 새고 있는데도 아픈 줄을 모른다.

“이, 익스파이어…. 아니, 사망한 환잡니다. 일단 두고, 다른 사람부터 살피죠. 그리고 교도관님 핸드폰이요. 모서리가 계속 번쩍거리는데요.”

그러더니 벌떡 일어난 응급구조사는 다른 사람을 살피겠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옮겼다.

뭐지? 사망 환자를 처음 보시는 건가?

태주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핸드폰에서 정말로 불빛이 나고 있었다. 화면이 망가진 탓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양옆의 버튼을 눌렀다. 지호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태주 씨. 태주 씨예요?

“선생님….”

-태주 씨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 별로 안 다쳤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지금 상황은 어때요?

“사망자 한 명에, 의식이 있는 경환자 두 명, 그리고 의식이 없고, 출혈이 심한 중환자가 네 명입니다.”

-나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구급차도 곧 도착할 거예요. 그때까지 환자 체온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해야 돼요. 할 수 있겠어요?

“네, 하겠습니다.”

침착하게 대답한 태주가 구급차로 향했다. 그 앞에는 상태가 가장 심한 환자만 베드에 누워 있고, 나머지는 담요나 겉옷을 벗어 깐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구급차에 올랐다. 곳곳을 뒤져 담요와 핫팩을 있는 대로 꺼냈다. 아이가 무사히 있는지 살핀 뒤, 차에서 내렸다. 다행히 더는 경련하지 않고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담요와 핫팩을 들고 내린 태주는 그중 몇 개를 갓길에 있는 환자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 담요를 덮어 주는데….

“잘하다가 왜 이래요? 급해 죽겠건만.”

“아이씨, 기다려 봐요. 너무 좁아서 그래요. 무슨 의사가 인튜베이션도 할 줄 몰라서 응급구조사를 부려 먹어요?”

“부려 먹다뇨. 와이어 꺾고, 튜브 소독하고. 그리고 인공호흡기 연결에 고정까지. 이것도 인튜베이션의 한 과정이거든요?”

“아오, 시끄럽고 고정이나 잘해요.”

난데없이 등 뒤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후두경을 쥔 응급구조사가 낑낑대며 몇 번이나 시야 확보를 시도했다. 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기도는 확보되지 않았고, 환자의 안색은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아이씨, 어떡하죠? 이거 기관 삽관은 어렵겠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태주가 두 사람 곁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핸드폰은 음량을 최대로 키우고 정복 주머니에 넣었다.

“목이 꽉 막혔어요. 엄청나게 부어서 튜브가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응급구조사가 난감하단 투로 말했다. 초조한 듯 덜덜 떠는 손은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피가 줄줄 흘렀다. 조금 전에 다친 상처가 꽤 심각한 모양이다.

“일단 손부터 치료하세요. 피가 계속 샙니다. 여기는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장갑을 꺼내 낀 태주가 환자의 머리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졸지에 자리를 내어 준 응급구조사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교도관님이요? 기관 삽관할 줄 알아요?”

“배운 적이 있긴 합니다. 그동안 공부도 많이 했고요.”

삽관을 직접 하지는 않고 살펴보기만 할 거라며 후두경을 손에 쥐었다. 딸깍, 버튼을 눌러 불빛이 들어오는지 확인한 후, 환자의 입 안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잠시 애를 먹긴 했지만 금세 그 안이 보였다.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자세를 더 낮췄다. 순간 코끝으로 훅 끼치는 악취에 미간이 일그러졌다.

-태주 씨, 내 목소리 들려요?

“아, 선생님!”

때마침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상황에서 가장 믿을만한 전문가인데, 환자에게 집중하느라 잠시 잊었다. 태주는 얼른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환자의 목이 심하게 부어서 기관 삽관이 어렵습니다. 현재 맥은 짚이는데 숨을 쉬지 않는 상태고, 입에서 악취가 나는데, 이 악취가 목이 부은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그런 거라면 감염으로 목이 부었을 수도 있어요. 혹시 목 안쪽에 상처나 이물질이 보여요?

“잠시만요.”

다시 한번 입 안을 들여다본 태주가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가 꽉 막혀서 틈이 전혀 없습니다. 하얀색 이물질 같은 것만 가끔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합니다.”

-…그런데 태주 씨가 직접 보는 거예요? 후두경 볼 줄 알아요?

“예전에 법무부에서 배웠습니다. 그, 보건복지부랑 같이 했던 거요.”

-음, 태주 씨. 그 상태면 아마 기관 삽관은 어려울 거예요. 환자가 숨을 아예 못 쉰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소아 환자인가요?

“아뇨, 성인입니다.”

-후두가 손상된 건 아니죠?

“네, 눈으로 보기엔 일단 멀쩡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걸….”

어째 슬금슬금 불안한 기운이 밀려든다. 설마? 후두경을 거두고 잠시 숨을 멈췄다.

-기관을 직접 절개해서 튜브를 삽입하는 수밖에 없어요.

“크리코사이로토미,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가 들어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와, 태주 씨 크리코도 알아요?

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태주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 놓았다.

“지금 저보고, 그걸 하라는 건 아니죠?”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니까 태주 씨가 해도 될 것 같은데?

“어렵지 않다니요. 기관을 절개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3년 전에 이론으로만 배운 겁니다. 심지어 실제로 시행할 확률은 5퍼센트도 안 된다면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요.”

-이론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정말 어렵지 않아요. 내가 도착할 때까진 환자가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래요. 아니면 의무실 선생님께 부탁해 볼래요?

“의무실 선생님이요?”

지호의 말에 고개를 돌린 태주가 차영을 보았다. 그는 환자의 다리에 부목을 댄 뒤, 붕대로 고정하고 있었다. 한쪽 팔이 부러진 탓에 한 손으로만 붕대를 감는데, 잘 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주로 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었다.

아무래도 저 사람에게 맡기는 건 안 될 듯하다. 보니까 기관 삽관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데.

그다음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응급구조사를 보았다. 환자의 응급처치를 마친 그는 가장 심한 중증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하고 있었다. 다친 손은 붕대로 대충 감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피가 샜다.

망했다. 멀쩡한 사람이 없다.

망연자실한 태주가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파랗게 변한 환자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몸에 손을 가져다 대 보자, 체온이 떨어진 게 느껴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선생님,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지금 손이 멀쩡한 사람이 저밖에 없습니다.”

-일단 환자 목을 뒤로 젖히고, 목 밑에 뭔가 받쳐주면 좋아요.

뭔가를 받쳐? 가만 생각하다가 점퍼를 벗어 둘둘 말았다.

“네, 받쳤습니다.”

-일단 필요한 것부터 얘기할게요. 니들은 14게이지 이상이면 돼요. 없으면 C라인 키트도 괜찮고요

그리고 메스, 거즈, 튜브…. 지호의 지시대로 필요한 것을 얼른 찾아 쥐었다. 마지막으로 국소마취제를 찾는데, 아무리 뒤져도 찾기가 힘들어 응급구조사의 도움을 받았다.

“리도카인은 어디 있습니까?”

“리도카인이요? 그걸 교도관님이 왜요?”

그러나 이내 그 뜻을 이해했는지, 놀란 응급구조사가 벌떡 일어났다.

“안 돼요! 교도관님 의사 면허도 없으시잖아요! 이거 의료법 위반이에요!”

“지금 사람이 죽는데 그런 걸 따질 때입니까? 뭐라도 해야죠!”

“아이씨, 구급차는 왜 안 오는 거야! 차라리 제가!”

앞쪽 수납함을 향해 뻗은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여전히 피가 멎지 않는 손을 말아쥐었다. 잠시 지켜보던 태주가 그를 대신해 수납함을 열었다. 마취제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교도관님! 교도관님!”

뒤따라 내린 응급구조사가 태주를 말렸다. 하지만 태주는 이미 마음을 먹은 듯 환자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 준비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태주 씨. 무슨 일 생기면 책임은 내가 져요. 내가 지시한 거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겁니다.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할 거니까요.”

태주의 표정이 진지했다. 이제 더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응급구조사가 환자의 목을 향해 뻗는 손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목을 젖히면 굴곡이 보일 거예요. 위쪽이 갑상연골, 아래쪽이 윤상 연골이에요. 위치 알겠어요?

“네.”

-그럼 엄지랑 중지로 위쪽을 잡아 봐요.

“…했습니다.”

-그다음엔 마취할 거예요.

“네.”

“여기요.”

마취제를 잰 주사기가 불쑥 태주의 앞에 나타났다. 주사를 건넨 응급구조사는 손으로 바늘이 들어가야 할 위치를 짚어 주었다.

“아, 된 것 같습니다.”

-잘했어요. 이제 메스로 기관을 절개해서 튜브만 삽입하면 돼요. 메스 잡을 수 있겠어요?

불쑥. 메스가 눈앞에 놓였다. 태주는 주사기를 받을 때와 달리 잠시 망설였다. 작지만 예리한 날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태주 씨, 괜찮아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태주 씨는 날 믿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할 거니까.

보지 않아도 지호는 다 안다는 듯 태주를 다독였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몇 번이든 태주 씨 구할 거니까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

-태주야, 난 너 조금도 아프게 안 해.

입술을 꾹 깨문 태주가 손을 꽉 말아 쥐었다가 놓았다.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단단히 마음먹은 듯 눈을 바로 떴다.

주변은 너무나도 엉망이지만, 머리와 마음은 깨끗해졌다. 더는 심장이 빠르게 뛰지도, 눈앞이 갑자기 몽롱해지면서 정신이 사나워지지도 않았다. 전과 달리 차분한 얼굴로 메스를 잡았다.

“선생님, 메스 잡았습니다. 어디를 절개하면 될까요?”

-중앙에 있는 윤상갑상근의 막을 뚫고 기관까지 도달할 거예요. 너무 깊게 찌르지 않게 조심해요.

태주는 신중하게 지호의 지시대로 손을 움직였다. 튜브를 삽입하고, 기관을 깨끗이 한 뒤, 환자가 숨을 쉬는 것까지 확인했다. 곁에서 거든 응급구조사가 청진해 보고는 활짝 웃었다.

“됐어요! 와! 와아!”

다친 손을 생각 못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고통에 바닥을 굴렀지만, 그래도 좋다고 드러누웠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느니, 과하게 기쁨을 만끽하다가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호가 도착하고, 환자들을 차례로 다시 살폈다. 고관절이 탈구된 환자를 단숨에 고치고, 부목이 잘 고정되지 않은 환자의 붕대를 다시 감은 뒤, 아이의 상태까지 살폈다.

외상 때문에 빌빌거린 셋보다 멀쩡한 연지호 하나가 훨씬 많은 일을 했다. 상태가 심각한 환자 순으로 구급차에 태워 보낸 그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태주를 바라보았다.

얇은 정복 셔츠 차림에, 곳곳에 피와 먼지가 묻어 있다. 게다가 또 머리카락은 얼마나 헝클어져 있는지, 늘 그가 품고 있던 반듯한 잘생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야, 멋있네. 남태주.”

장난 같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지호는 태주의 그런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를 향해 미소 지으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타요.”

발을 뗀 태주가 말없이 걸어왔다. 조수석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이를 좌석에 내려놓았다. 그래 놓고 자신은 타지 않는다.

뭐지?

알 수 없는 행동에 지호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부담스러운 일을 시켜서 화가 난 건지, 안 타냐고 묻는데도 요지부동이다.

더는 그냥 볼 수가 없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조심스레 뒤로 둘러 어깨에 걸쳐 주었다.

“선생님.”

그때였다. 드디어 입을 뗀 태주가 지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깨가 젖어 드는 느낌에 지호는 깜짝 놀랐다.

“태주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차마 마주 안아 주지 못하고 그대로 굳은 채 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웃을 수밖에 없는 대답이 샜다. 지호는 환하게 웃으며 태주를 꼭 끌어안았다.

“개 무서웠다고요, 선생님….”

“알았어요. 미안해요, 태주 씨. 그리고 너무 잘 해줘서 고마워요.”

추위에 얼어붙은 태주의 몸이 온기를 되찾을 때까지,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 * *

-남 부장님 괜찮아요? 아, 그러게 제가 간다니까!

심 교도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나왔다. 원격 진료용 컴퓨터로 이러면 안 되지만, 무사한지 꼭 봐야겠다는 교도소 사람들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컴퓨터를 빌렸다.

“전 괜찮습니다. 그냥 머리에 혹 좀 나고, 몇 군데 멍든 거 외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래도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아이는 괜찮습니까?

“네, 아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때에 경련을 겪으면, 나중에도 발생할 확률이 높다니까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3274에게도 걱정하지 말란 말을 전해달라며 일방적으로 먼저 통화를 끝냈다. 계속 받아줬다간 몇 시간이나 질질 끌 게 뻔했다.

통화를 마치고 진료실에서 나온 태주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하루 동안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에, 병원에서 가까운 지호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스테이션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자 지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가볍게 뛰자, 기척을 느낀 건지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태주를 보는 건 지호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본 적 없는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태주 씨.”

지호가 나지막이 태주를 불렀다. 목소리만 들어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에 있던 두 남자가 한 발짝 다가와 섰다.

“남태주 씨 맞습니까?”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연락을 여러 번 했는데도 안 받으셔서요. 사고로 여기 와 있단 얘기 듣고 온 겁니다. 며칠 전에 염상훈 씨랑 연락 주고받으셨죠?”

염상훈?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이쯤 되니 이들이 누군지 알 것도 같았다. 불안한 눈으로 보자 그들이 경찰 신분증을 내밀었다.

“은성서 강력 1팀 형사입니다. 염상훈 씨 사망 사건을 담당하고 있고요.”

“염상훈 씨 사망 사건이요?”

“남태주 씨를 만나기로 한 날에 행방불명이 됐다가, 오늘 낮에 왕산 지하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거든요.”

그 말에 놀란 태주가 지호를 보았다. 지호 또한 예상하지 못한 듯 놀란 눈치였다. 조사를 위해 동행해 달라는 말에, 두 사람은 원래의 목적지에서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5] 패혈증(敗血症) 화농균이 혈관으로 들어가 심한 중독 증상이나 급성 염증을 일으키는 병.

[16] 크리코사이로토미 (Cricothyroidotomy) 윤상갑상연골 절개술.

[17] C라인 Central venous line 중심정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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