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42번 냉동고
“교수님! 경기 남부 교도소에서 이송된 환자, DOA 상태로 도착했습니다.”
지호가 응급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따라붙은 치프가 차트를 전달했다. 이전 내원 기록을 확인하자 역시나, 그때 그 심낭압전 환자가 맞다. 사고 난 차량에서 남태주가 꺼내 온 걸 자신이 응급 처치했던.
“환자는 지금 어디 있죠?”
“13번 베드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고개를 들자 13번 베드에 사람이 몰려 있는 게 보인다. 그들 중 하나가 기척을 느끼곤 손을 흔들었다. 서둘러 그쪽으로 다가갔다.
“남 부장님! 여기요!”
“심 교도님!”
사망한 환자의 계호를 맡은 심 교도였다. 손톱을 물어뜯던 그는 아는 사람을 보자 좀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태주가 어깨를 다독여 주며 물었다.
“왜 혼자 있습니까? 다른 교도관이랑 수용자는요?”
“다들 속이 안 좋다고 화장실에 갔어요. 초응급이라 엄청나게 달렸거든요. 수용자는 구급차에서 사망했고요.”
“사망한 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사인은요?”
“사망한 지는 15분 정도 지났고, 사인은 아직 모릅니다. 목을 조른 흔적이 있긴 한데 기도가 눌리진 않았답니다.”
“그럼 질식사가 아니라는 겁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부검해 봐야 원인을 알 것 같대요.”
“질식사가 아니면 대체 뭐 때문에 죽은 거지?”
“이송 중에 갑자기 쇼크가 온 것처럼 몸을 막 덜덜 떨었거든요? 발도 까딱까딱, 양옆으로 이렇게 움직였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사망했어요. 그냥 갑자기, 숨이 뚝.”
심 교도는 손을 뻗어 양옆으로 마구 흔들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끔찍한 광경이라도 본 것처럼 표정이 좋지 못했다. 태주가 커튼으로 가려진 베드를 가리켰다.
“이쪽 베드에 있는 겁니까?”
“예, 그런데 확인은 하지 않으시는 게….”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튼이 걷어졌다. 화들짝 놀란 심 교도가 눈을 질끈 감았다.
호기심을 못 이긴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 커튼을 붙잡은 채 멈칫한 지호가 가장 먼저 보였다.
“선생님?”
환자라면 숱하게 봤을 그조차 조금 충격받은 얼굴이다. 대체 저 안에 어떤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지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태주가 베드 가까이 다가갈 때였다.
“태주 씨!”
급히 돌아선 지호가 앞을 막았다. 보지 않는 게 좋겠다며 심 교도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평소 봤던 시신과 많이 다를 거예요. 보지 말아요.”
“그래도 저희 사동 재소자잖습니까. 저도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태주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단단히 마음먹은 듯 똑바로 마주하는 눈이 올곧았다. 어떻게 회유해도 그 고집을 꺾기는 힘들어 보였다.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쉰 지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잘 들어요, 태주 씨. 이 안에 있는 사망 환자, 그러니까 태주 씨 담당이라는 저 재소자.”
“….”
“예전에 내가 구급차 안에서 응급 시술했던 심낭압전 환자예요.”
“심낭압전이면….”
“네, 그때 그 교통사고요. 어제 이감된 재소자라 태주 씨는 아직 본 적이 없다면서요. 이 커튼 열고 확인하기 전에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시신 상태가 보기 힘들 정도로 좋지 않아요. 그래도 확인할래요? 괜찮겠어요?”
넌지시 묻는 목소리가 귓가에 둥둥 떠다닌다. 잠시 굳어 있던 태주가 긴장을 내리눌렀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도 꼭 봐야겠습니다.”
커튼 자락을 붙잡은 손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숨을 길게 내쉰 뒤, 표정을 정돈했다.
지나치게 학습된 모습이다. 자신의 감정은 배제한 채 오로지 사실만을 보는 눈. 타고난 관찰자의 자세.
지호는 가만히 태주를 주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들이닥친 무리에 고개를 돌렸다.
“당장 베드에서 떨어져, 이 새끼야!”
순식간에 달려든 손이 지호의 멱살을 붙잡았다. 놀란 태주가 말리려 손을 뻗었지만, 지호가 빠르게 그 손을 붙잡았다. 나서지 말라는 신호였다.
“너, 내가 이 병원에 붙어 있고 싶으면 처신 똑바로 하라고 했지! 의사 관두고 싶어? 어?”
응급실에 있던 모든 이의 이목이 쏠렸다. 센터장이 문가에 선 외상외과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이 새끼 당장 끌어내!”
하지만 어떻게 같은 진료과의 교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수련의들이 머뭇거렸다. 결국에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박 교수가 나섰다.
“저기, 센터장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다른 진료과에서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조심스럽게 속삭이자, 센터장의 화가 조금 가라앉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지호의 멱살을 놓지 않고 붙잡아 끌고 나갔다.
끌려 나가는 지호의 모습은 익숙한 듯 덤덤했다. 이를 보는 태주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손을 말아 쥐었다.
* * *
“그러니까, 예전에 남 부장이 사고 현장에서 구한 그 남자가 5762라고?”
“네, 그때 강간하고 도주하다 사고가 났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에 남 부장님이 계셨던 거죠.”
“뭐 이런 거지 같은 우연이 다 있대?”
“아무튼 남 부장님이 걱정이에요. 저녁에 김치볶음밥이랑 감잣국 맛있게 먹긴 하시던데.”
휴게실에 모인 1사동 교도관들의 화제는 5762였다. 이감되자마자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여 의무 사동으로 옮겨진 재소자로, 수건에 목이 졸린 채 사동 도우미에게 발견되었다.
“야, 심. 네가 5762 계호했잖아. 병원에서 남 부장님 어땠어?”
“어떻긴. 그냥 좀 놀라고 말았지, 뭐. 남 부장님이라고 더 특별할 게 있겠어?”
“그래도 좀 그렇잖아. 내가 열심히 살린 인간이 알고 보니 강간범이었고, 그 강간범이 내가 교도관으로 있는 교도소에 왔어. 그런데 오자마자 바로 죽어서 나갔네? 아무리 내 잘못이 아니어도 기분 좀 이상해지지 않겠냐?”
“그래서. 넌 남 부장님이 자책하고, 우울해하고, 어? 그러길 바라냐?”
“당연히 아니지! 그냥 난 남 부장님이 괜찮은 척하면서 뒤에서 힘들어하실까 봐….”
“후우,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안 그러는 척해도 속으로는 신경 쓰고 계실걸?”
“이러다 남 부장님 교도관 관두시는 거 아냐? 아, 관두시면 안 되는데…. 남 부장님 없으면 우리끼리 1사동 관리 어떻게 하냐? 오메가 수용동에 있는 아기는 또 어떡하고?”
종이컵을 입에 문 채 늘어진 오 교도가 으어으으, 이상한 신음을 흘렸다. 옆에 앉은 심 교도가 그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정말로 사람을 걱정하는 인간들이 맞는지 시끌시끌 장난질이다.
“어휴, 남 부장 없으면 저것들을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하냐?”
맞은편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이 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 귀중한 저녁 시간에 저것들을 눈에 담고 있어야 하는지.
달달한 밀크커피를 호로록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TV 속 전경이 참 익숙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들의 일터다.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조금 떨리는 기자의 목소리가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경기 남부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사망에 이르는 일이 발생했는데요. 잇따라 일어나는 재소자의 사망에 법무부는 비상 대책에 나섰습니다.
“아이고야, 소장님 또 예민해지시겠네.”
하여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어, 하루도. 한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태주는 별 감흥 없는 눈으로 책장을 넘겼다. 요즘 짬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는 PTSD 치료 관련 서적이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 뭐 하러 꾸역꾸역 들여다보고 있어요?”
관구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 부장이 가관이라며 혀를 찼다. 휴게실은 시끄러운 두 놈 때문에 정신이 사납고, 관구실은 넋 나간 한 놈 때문에 신경이 사납다. 그는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젖히는 태주에게 넌지시 물었다.
“남 부장 괜찮아요?”
그러자 책으로 얼굴을 폭 덮는다. 멍하니 얼이 빠져 있던 표정이 쏙 감춰졌다. 태주는 한참 후에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가요? 5762요?”
“뭐, 5762도 그렇고, 이래저래.”
“이래저래가 뭔데요?”
“아, 그 왜, 시신도 봤다면서요. 그렇게 비위 좋은 심 교도도 오후 내내 넋 놓다가 이제 정신 차렸잖아. 시신 꼴이 말이 아니었다며.”
“아아, 표정이 좀 묘하긴 했습니다. 얼굴 근육이 죄다 일그러질 정도로 웃고 있었….”
“….”
“아니다. 웃는 표정이 아니었나? 웃는 것 치고는 좀 괴로워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그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며 웃으라고 협박한 건가 싶을 정도다. 온 얼굴 근육이 웃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고, 그 모습은 여태껏 봤던 재소자의 시신 중 가장 끔찍했다.
“웃는 얼굴로 사망을 해?”
아무리 상상해 봐도 잘 그려지지 않는 듯 이 부장이 미간을 접었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것도 아닌데, 끔찍해 봤자 얼마나 끔찍하겠나 싶은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사망했길래 다들 이래? 진짜 이상하네. 사망 원인은 뭐래요?”
“모릅니다.”
“병원에서도 모르겠대요?”
“네. 부검을 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호자가 반대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답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도 남의 삶을 죽인 놈의 사연은 알고 싶지 않다나?”
“아휴,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그죠. 보호자가 거절했으니까요.”
사망한 재소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떠나서, 부검해 보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다른 교도소에서 나온 사망자 또한 이런 식으로 죽었던 걸까. 앞으로 재소자가 얼마나 더 죽어 나갈지 알 수 없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침묵이 가라앉은 관구실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얼굴에 얹은 책을 내린 태주가 자세를 바로 했다.
한참 후에야 이 부장이 먼저 정적을 깼다.
“아무튼, 힘들면 괜히 애쓰지 말고 김 주임이나 이 과장한테 얘기해요. 그 강도 사건 겪은 지 석 달도 안 됐잖아. 아직 안정이 필요한 때라고. 심 교도랑 오 교도가 남 부장 관둘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야.”
“제가 이런 일로 관두겠습니까? 재소자 사망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하여튼 귀엽다니까? 또 소란스럽게 투닥거리고 있을 두 사람을 떠올리며 태주가 웃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얼굴에 다시 근심이 내려앉았다.
“전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선생님이 걱정이죠.”
“선생님? 그 혜성대 병원 의사?”
“네.”
“그 사람이 왜? 무슨 일 있었어요?”
당연히 5762의 일로 심란한 줄 알았거늘. 이 부장이 의아한 눈빛으로 태주를 보았다.
다시 보니 5762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연지호라는 인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 늘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 사람한텐 늘 일이 있어요.”
안타까움이 묻은 목소리가 관구실에 울려 퍼졌다.
태주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지호를 떠올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센터장에게 붙잡혀 끌려 나간 지호의 모습을.
* * *
“내가 웬만하면 동료 의사한테 이런 소리 안 하는데….”
“그럼 하지 마세요.”
듣지도 않고 차단하는 단호함에 박 교수는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 테이블에 앉은 지호가 지친 얼굴로 누워 버렸다.
이른 아침까지만 해도 깨끗했던 가운이 여기저기 주름진 채 지저분해져 있었다. 또 센터장이 한바탕 난리를 친 모양이다.
팔로 눈을 가린 지호를 보며 박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말 안 하고 못 배기겠다.
“연 교수, 너 그냥 병원 옮기면….”
“안 돼요. 안 가요. 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다 뱉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들어 보지도 않고 거절이다.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그 꼴을 하고도 괜찮단 소리가 나오나?
“지금 네 꼴을 봐라. 그게 괜찮은 사람의 자세냐? 센터장은 왜 갑자기 와서 너 끌고 나간 거래? 오늘은 별다른 수술 일정도 없잖아, 어?”
“뭘 또 따지고 그래요. 센터장이 저 괴롭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문제지. 그 인간은 왜 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저를 무서워해서 그래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거죠.”
“참 나, 그 인간이 널 무서워해? 무서운 게 아니라 우스운 거겠지.”
“우스웠다면 곁에 끼고 수족으로 부려 먹지 않았을까요?”
오래 봐서 아시잖아요. 그런 사람인 거. 그다지 웃을 만한 말이 오간 적도 없는데, 입술을 달싹인 지호가 작게 웃는다. 박 교수가 골치 아프다며 이마를 짚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그럼 울까요?”
“야, 연 교수. 너 솔직히 말해 봐. 센터장이랑 뭐 있지?”
센터장이 원래 사람이 좀 못됐긴 했지만, 연 교수한텐 유독 못된 게 아무래도 이상해.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 것도 힘들다며 인상을 팍 쓴다.
슬쩍 팔을 거둔 지호가 눈동자만 굴려 박 교수를 보았다.
“있긴 뭐가 있어요? 내가 센터장이랑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말씀하시네?”
“나 지금 장난하자는 거 아니거든? 너 분명, 이 병원 오기 전부터 센터장 알고 있었어. 아니야?”
다른 사람 눈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인다는 눈빛이 온몸을 콕콕 찌른다. 지호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긴 한숨과 함께 말을 흘렸다.
“네,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이 병원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
“역시. 그런데 센터장은 왜 그렇게 널 싫어하는 거야?”
“소중한 친구가 죽었는데, 그게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친구가 죽어?”
“네.”
“그런데 그게 왜 연 교수 때문이야?”
“제가 살리지 못했으니까요.”
“수술 중에 실수라도 한 거야?”
“글쎄요.”
실수인가? 작게 중얼거린 지호가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에서 내려와 어딘지 모를 허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제가 그곳에 있던 것 자체가 실수 아니었을까요?”
“뭐?”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묘하게 흐려져 있다. 맑은 날에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보는 것 같다. 덤덤해 보이지만 어딘가 무거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사가 되고 싶으면 다른 건 하지 말고 수술만 하라고 했어요.”
“….”
“시키는 대로 수술만 하는 기계가 되라고 했어요.”
“….”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러는 거예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서. 그 사람은 제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거든요.”
가운을 툭툭 턴 지호가 먼저 가 보겠다며 문을 열고 나갔다. 끝끝내 하지 못한 말을 안으로 삼키면서였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가끔은 나도 내가 의심스럽고 헷갈린다고.
* * *
“이 병원엔 수술할 의사가 그놈밖에 없어? 재수가 없어서, 원!”
호통치는 소리가 병원 본관에 울려 퍼졌다. 스테이션을 지키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가 쩔쩔매며 환자를 말렸다. 조금 후에는 외과 과장까지 허겁지겁 달려와 그들을 거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지호는 멀찍이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진정하시고, 수술 전에 이렇게 무리하시면 안 좋습니다.”
“진정? 내가 지금 진정을 하게 생겼어? 당장 담당 의사 바꿔! 알아들어?”
“일주일 뒤에 중요한 일정 있으시다면서요. 연 교수가 그나마 시간도 되고 실력도 좋습니다. VIP 아니면 평소에 스케줄 잡기도 힘들어요.”
“실력이 좋아? 아아, 실력이 좋아서 여태 제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살렸어? 선량한 사람은 죽이고, 범죄자만 골라 살리는 놈이라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디에서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오해입니다.”
범죄자만 골라 살리는 놈? 그제야 누구한테 뭘 듣고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센터장이 또 환자한테 헛소리를 한 모양이다. 그의 심기를 건드린 데 대한 보복 같은 것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걸음을 돌렸다. 범죄자만 골라 살린다라….
“뭐, 반은 맞나?”
첫 집도 때 맡은 환자는 무려 살인자였다. 그 이후로는 중증 외상 환자만 맡았던 탓에 사는 걸 보는 게 손에 꼽을 정도였고.
“어렵다, 살리는 거.”
무덤덤하게 혼잣말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지친 것을 감추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오늘따라 비상구 문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호는 문손잡이를 잡아 돌린 뒤 온몸으로 문을 밀었다. 쿵, 문 뒤편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아으….”
“태주 씨?”
놀란 목소리로 부르자 무릎을 짚고 있던 태주가 고개를 들었다. 찡그리고 있던 표정이 지호를 마주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졌다.
“어? 선생님. 아직 병원에 계셨습니까? 퇴근하신 줄 알았습니다.”
“오늘따라 할 일이 좀 많아서요. 그러는 태주 씨는 이제 퇴근하고 온 거예요?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저희 사동 재소자가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부검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보호자 분도 설득할 겸 온 겁니다.”
“하긴, 이상한 부분이 좀 많긴 했죠.”
“예?”
이상한 부분이 많아? 태주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많다니요? 뭐가 더 있는 겁니까?”
그때 응급실을 가장 먼저 나간 건 센터장에게 끌려간 연지호였다. 5762를 제대로 볼 틈도 없을 정도로 그가 머무른 시간은 아주 짧았다.
뭘 더 봤기에 이상한 부분이 많단 얘기를 하는 걸까.
“5762의 시신에서 뭐가 더 나온 겁니까?”
어쩌면 동료 의사에게 전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태주는 낮에 보았던 시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손목 안쪽에 열꽃처럼 보이는 붉은 반점이 있었어요. 이전 교통사고 때는 보지 못했던 거라 좀 이상하다 싶었죠. 원래부터 있던 건 아닐 테니까요.”
“그렇지만 몸에 열꽃이 생길 정도면 이감됐을 때 바로 알았을 겁니다. 새로 들어오는 수용자의 건강 체크는 필수니까요. 그런데 어제는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특이점이 없었다….”
별다른 증상 없이 갑자기 사망했다? 미간을 좁힌 지호가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뭔가 떠올랐는지 태주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 붉은 반점 말입니다. 시반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아뇨, 시반은 아닐 거예요. 시반은 중력에 의해 시신 아래쪽에서부터 생겨요. 구급차에서 이송 중 사망했다면 환자가 계속 누운 채로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등이나 목덜미에도 똑같은 반응이 나타났어야 해요.”
“하지만 등은 옷에 가려져서 안 보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살필 경황도 없었고요.”
“태주 씨 오기 전에 CCTV로 상태 확인했어요. 응급실 베드에 시신이 옮겨질 때까지 시반은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그 붉은 반점이, 사망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아, 너무 어렵습니다. 부검 딱 해 보면 좋을 텐데.”
시반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심 교도한테 듣기로는 재소자가 식사도 하지 않아서 뭘 먹고 죽었을 일은 없을 거란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죽었을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답답해 한숨을 폭 내쉴 때였다.
“그러니까 이감된 당시에는 열도 없었고, 정서적인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는 거죠?”
“네.”
“흐음….”
역시 좀 의심스럽네.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지호가 미간을 접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뭔가 더 얻는 게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쉽네요.”
“그래도 그만큼 본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시간이 워낙 짧지 않았습니까. 그 센터장이란 사람만 없었어도….”
아.
넋 놓고 말을 뱉다가 선을 넘어 버렸다. 입을 합 다문 태주가 눈치를 보았다.
“좀 더 살펴볼 시간이 있었겠죠.”
끊어진 뒷말은 지호가 이었다. 그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일단 가면서 얘기할까요? 본관은 지금 좀 소란스러우니까 살짝 돌아서 가는 게 좋겠어요.”
구겨진 하얀 가운이 유독 눈에 띈다. 태주는 느릿느릿 그 뒤를 따르며 가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고 있으니 왠지 조금 후회가 된다.
먼저 괜찮냐고 물어볼 걸 그랬나? 교수가 동료 의료진 앞에서 그렇게 끌려 나가는 거, 많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내가 미움받고 있는 거 병원 사람들 다 아니까. 전에는 뺨도 맞았는데, 뭐. 별로 아무렇지 않아요.”
지호는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태주의 표정을 알겠다는 듯 말했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을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편안했다.
“그래도 태주 씨 앞에선 그런 모습 보이면 안 됐던 건데, 그때 많이 놀랐죠? 미안해요.”
“그게 왜 선생님이 미안해할 문제입니까? 선생님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그제야 태주는 서둘러 지호와 걸음을 맞췄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선생님도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었습니까?”
“아뇨, 연구실에 놓고 온 게 있어서 가던 길이었어요.”
“어? 그럼 왜 저랑 같이 가시는 겁니까?”
“태주 씨가 부검 허가받으러 간다고 하니까 흥미가 생겨서요. 저도 그 사람 사인이 궁금하거든요.”
한 층을 내려가 비상구 출입문을 열었다. 텅 빈 식당을 가로질렀다.
아주 짧게 지호의 시선이 뒤쪽 어딘가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옆에서 걷던 태주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낄 때였다.
“이 병원에 오기 전에 한국대 법의학 연구실에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보면 늘 궁금해요.”
“법의학 연구실이요?”
그러니까, 외과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거지?
“그런데 어떻게 외상외과 교수가 되셨습니까?”
원래 교수 자리는 10년 이상 버텨야 앉을 기회라도 생기는 게 아닌가? 그 전에 법의학을 연구하다가 옮긴 거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남자는 그만한 세월을 버틴 얼굴이 아니다. 제 또래로 보일 만큼 무척 젊다. 어떻게 이런 젊은 나이에 교수직을….
“낙하산이에요.”
“예?”
“낙하산이 아니면 제가 어떻게 마흔도 안 돼서 조교수가 됐겠어요.”
“아.”
낙하산. 참 간단명료하다.
또 남태주 안의 연지호가 와장창 깨진다.
태주는 얼빠진 표정으로 지호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막, 남이 태워 주는 낙하산에 탈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닌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불륜까지 저지르는 사람이 뭘 더 못할까 싶다.
은근히 검은 조력자가 많구나, 이 인간.
정말로 이 남자와 거리를 둬야 하는 건지, 또 한 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니면 확! 직업 정신을 살려서 한번 교화해 봐?
생각이 많아진다. 개차반의 삶을 살도록 두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마스크를 가지고 있어서.
* * *
“당장 다 빼! 저놈이 내 아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아수라장을 피해 조금 멀리 돌아왔거늘. 아수라장은 병원 본관뿐만이 아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선 지호와 태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멈칫했다.
“저놈은 장례식 치를 자격도 없는 쓰레기야! 어?”
“저기, 선생님. 선생님 마음은 잘 알지만, 여기서 이러시면….”
“이거 놔! 당신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아는데! 내 새끼가 지금 어떤지 알아? 사람 손길만 닿아도 벌벌 떨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어!”
병원 사람은 물론, 상조 회사 직원까지 몸싸움 중인 두 여자를 뜯어말렸다. 울분을 토하는 여자의 우악스러운 손에 머리카락이 잔뜩 쥐여 있었다. 처음부터 상황을 보지 않았어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쥐어뜯긴 여자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날카롭게 지르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어깨가 움찔 떨렸다.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들었는지, 얼마 안 가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다.
“나도 끔찍해! 저런 게 내 자식이라는 게 너무 끔찍해!”
“….”
“미안해요. 당신하고 당신 아이한텐 정말 미안한데, 미안해요. 어쩌다 저런 괴물이 된 건지 나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내가 괴물을 낳은 걸지도 몰라요. 그 생각만 하면 너무 끔찍해.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으윽, 흑….”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예상과 달리 상황은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눈물에 삼켜진 것처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태주는 덤덤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마음을 애써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감췄다.
교도관이 된 후, 이런 광경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흔했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재소자의 죽음보다도 더.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싶다. 지금 상황에서 담당 교도관을 만나는 건 별로 달갑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걸음을 돌릴 때였다.
“선생님?”
왜인지 멍하니 선 지호가 움직이지 않는다.
“선생님!”
“네? 네, 태주 씨.”
소매를 붙잡고 흔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눈을 깜빡인 지호가 고개를 돌려 태주를 마주했다.
“왜 그러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아, 미안해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괜찮으시면 됐습니다. 그것보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요. 태주 씨는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안 가십니까?”
“저는….”
옅게 미련이 스민 눈이 5762의 방으로 향한다. 태주는 붙잡고 있던 소매를 조금 더 당겼다.
“내일 다시 오죠. 지금은 설득해도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습니다.”
“잠시만요. 그래도 저대로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소매에 붙은 손을 떼어 낸 지호가 바닥에 쓰러진 여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넌지시 묻자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초점을 잃은 멍한 두 눈에 지호가 비쳤다. 천천히, 미간이 일그러졌다.
“혹시….”
잔뜩 갈라져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멀찍이 서서 지켜보던 태주는 순간 알 수 없는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표정을 일그러뜨린 여자는 힘주어 지호의 가운 자락을 붙잡았다. 시선이 잠시 아래로 향했다가 다시 올라왔다. 목에 걸고 있는 ID 카드를 확인한 듯했다.
“선생님이죠. 그때 우리 애 살렸던 게.”
그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언제를 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태주가 더는 안 되겠다는 듯 나서려고 할 때였다.
“그때 왜 우리 애 살렸어요?”
차라리 죽게 놔두지, 왜 살렸어요? 태주의 걸음보다 여자의 말이 먼저였다. 일으켜 주기 위해 내밀었던 손이 멈칫했다.
“왜, 하필 그때 선생님이 그곳에 있던 거예요.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
“그럼 그 악마 같은 놈, 하루라도 더 빨리 죽었을 텐데.”
지호의 목울대가 힘겹게 오르내렸다. 터져 나오려는 무언가를 꾹 참는 듯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결국 보안 요원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지호와 태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 *
살리는 게 업인 사람한테 왜 살렸냐니. 너무 가혹한 질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왜 죽였냐는 물음보다 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질문이 아닐까.
태주는 계속해서 지호의 눈치를 보았다. 표정은 덤덤하지만 아무 말이 없는 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료실이나 연구실 쪽 방향인가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으슥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말없이 걷던 지호는 조금 후 주위를 살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비품실 옆에 붙어 있는 문으로, 아무런 표시가 없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행동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걸 봐선 떳떳한 일 같지 않다. 결국 참다못한 태주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
“쉬이.”
하지만 입술을 떼기 무섭게 제지당했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오라는 속삭임에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다가 발을 들이밀었다
온통 까맣기만 하다.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야 겨우 안이 보였다. 올라가는 계단은 없고, 내려가는 계단만 있는 비상구였다.
지호가 뒤따라 들어오고 문이 닫혔다. 그나마 있던 빛마저 사라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후, 작은 기척과 함께 반짝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진 비상구는 고요했다. 어디인지는 몰라도 조용한 걸 보면 다른 사람은 없는 듯하다. 이제는 좀 말해도 되겠지 싶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여기가 대체 어딥니까?”
순간 묘한 냄새가 났다. 뭔가를 덮으려고 하는 듯, 조금 자극적인 향이.
“영안실이에요.”
역시. 행동력 끝내주는 이 남자가 일을 뒤로 미룰 리가 없다.
금세 한 층을 내려간 지호가 영안실 문을 열었다. 태주의 근심 어린 표정이 그에게 닿았다. 이 사람이 병원에서 미움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주 조금은.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당연히 안 되니까 태주 씨한테도 조용히 들어오라고 한 거죠.”
“뭘 하시려는 겁니까? 선생님께서 직접 5762 부검이라도 하시려고 이러는 겁니까?”
“보호자 동의도 못 받았는데 배를 가를 순 없겠죠.”
“그럼 보호자 동의부터 받고 오는 게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좋겠지만, 동의를 못 받으면 큰일이잖아요. 화장할 거라고 하던데. 다 태운 다음에는 확인하고 싶어도 못 할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건….”
보호자 허가 없이 시신을 건드리는 건 범죄였다.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사람으로서 역시 이런 짓은 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지호를 말리려고 할 때였다.
“태주 씨는 궁금하지 않아요?”
“예? 뭘 말입니까?”
“5762요. 자살인지, 타살인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잠시 대한민국과 법무부를 잊고 동참하고 싶어지긴 합니다만.
하필이면 가장 이기기 힘들어하는 호기심을 건드릴 게 뭔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듯 태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미 영안실 안으로 들어간 지호는 벌써 냉동고를 살피는 중이다. 고민할 시간이 얼마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에는 영안실 문턱을 넘었다. 차근차근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냉동고가 늘어져 있는 것 외에 딱히 볼 건 없었다. 문에 사망자의 이름이 붙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번호가 각인된 금속 스티커만 붙어 있을 뿐이다.
이거, 하나하나 전부 열어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
대충 봐도 20개는 되어 보이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시신을 20번이나 확인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린 태주가 다시 영안실을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파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건가?”
작게 중얼거리며 다가갔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펼치자 수기로 작성된 목록이 보였다. 사망자의 정보와 위치를 적어 놓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온도에 민감한 공간이다 보니, 컴퓨터를 두지 않고 이렇게 하는 모양이다.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1번이 아닌 21번부터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아, 찾았다.
다행히 5762의 위치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21번 냉동고. 가장 첫 줄이자, 지금 서 있는 곳 바로 앞이다. 위치를 확인한 태주가 지호를 부르려 고개를 들었다.
“아….”
하지만 저 끝에 멍하니 선 지호를 보는 순간, 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누가 있는지 모를 냉동고 앞에서 속으로 기도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태주는 조용히 다시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42번이…. 연교진?
연교진이 누구지? 아는 사이인 건가? 파일을 덮고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갔다. 불러도 못 들을 것 같아 손끝으로 톡톡 어깨를 두드렸다.
“아, 태주 씨. 저 불렀어요?”
흠칫 놀란 지호가 어색하게 돌아섰다. 평소 자기감정을 잘 감추는 사람이, 갑자기 빈틈을 보이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21번 냉동고를 가리켰다.
“뭘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5762 시신은 저쪽입니다.”
“그래요?”
“얼른 확인하고 나갑시다. 이러다 들킬까 봐 겁납니다.”
두 사람은 21번 냉동고 앞에 섰다. 손잡이를 꼭 잡은 태주가 망설임 없이 힘주어 당겼다. 덜컹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냉동고의 문이 열렸다.
“다행히 아직 시신을 닦은 것 같진 않네요.”
지호는 곧장 천을 거두고 시신을 살폈다. 정말로 법의학 연구소에 있던 게 맞는지 시신을 대하는 자세가 자연스럽다. 목과 등, 다리 뒷부분에 형성된 갈색의 시반을 확인한 뒤, 소매를 걷어 손목을 확인했다. 왜인지 응급실에서 봤다던 붉은 반점이 없다.
“아무것도 없이 깨끗합니다. 정말로 이 자리에 붉은 반점이 있던 겁니까?”
“사망한 지 열두 시간이 지났으니까 인체에 다른 변화가 생겼을지도 몰라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장갑을 꺼내 낀 지호가 5762의 팔을 잡아 들었다. 신중하게 살펴보던 그는 이내 엄지로 어느 한 부분을 문질렀다. 작은 점이 있는 자리였다.
손끝으로 살살 긁자 흔적도 없이 떨어져 나갔다. 점이 아니라 피가 굳어 있던 것이었다. 반대쪽 팔까지 걷어 살피자, 팔이 바늘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이전에 어느 교도소에 있다가 이감된 거라고 했죠?”
“대전 동부 교도소라고 들었습니다.”
“그쪽 교도소 의무실 기록은 살펴봤나요?”
“네, 해열제를 처방받은 기록이 있긴 한데 두 번 정도였고, 그 외에 특별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주사로 약물을 투여했단 내용은 없어서 이런 흔적이 남을 수가 없는데?”
“오래되지 않은 흉터예요. 이감 전이나 이감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이감 때 그쪽 교도관 연락처를 받아 둔 게 있습니다.”
“잘됐네요.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이전에 함께 생활했던 재소자 정보도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몰래 시신을 살핀 만큼 진전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마음속에 뭉쳐 있던 걱정이 한결 느슨해졌다. 잔뜩 긴장한 듯 굳어 있던 태주의 어깨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 특별히 이상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기괴하다시피 일그러진 얼굴을 가장 나중에 살폈다.
12시간이 넘게 지났는데도 얼굴만큼은 여전하다. 응급실에서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눈을 가늘게 뜬 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뭐가 말입니까?”
“여기, 얼굴이요.”
목과 턱, 그리고 양 볼을 차례로 만지던 손이 동작을 멈춘다. 지호는 시신을 빤히 보며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태주조차도 눈살을 찌푸린 그 얼굴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고 살폈다.
“사후경직은 사망 직후에 바로 나타나지 않아요. 적어도 두세 시간은 지나야 강직이 시작되죠. 그런데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사망한 사람이,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숨이 끊긴 것과 동시에 근육이 굳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사망 전부터 근육이 수축하면서 탄력을 잃기 시작한 걸로 보여요.”
지호의 손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입매로 향했다. 검지 끝이 치아 사이를 파고들려 했지만 실패했다. 경직된 턱 근육 때문에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눈으로 살피는 것뿐이다. 턱 주변만 한참 살펴보던 지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갑을 벗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인 것 같네요.”
뒤집혀 벗겨진 장갑은 손수건에 싸여 가운 주머니에 들어갔다. 입 안은 확인하지 않을 거냐는 태주의 물음에,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어렵다며 벌어진 죄수복을 다시 여몄다.
“턱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 있어요. 억지로 벌리면 찢어질 거예요.”
“그렇지만, 조금 전에 시신의 팔은 들어 올리지 않았습니까.”
“몸이 굳은 것과는 정도가 달라요. 머리 쪽은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어요. 고개도 돌아가지 않고, 안구도 돌처럼 딱딱해요.”
“사후경직과 상관없이, 사망 전 굳은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점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전에 죽은 다른 재소자 또한 이런 해괴한 모습으로 사망했던 걸까?
역시 대충 치워 버리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이렇게 사망하는 재소자가 또 나타날 수 있다.
“대체 뭘까요? 뭘 어떻게 해야 갑자기 얼굴 근육이 굳는 걸까요?”
그것도 웃는 건지, 괴로워하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답답함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작게 한숨을 내뱉는 태주에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내야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어요. 사인 없는 죽음도 없고요. 상식적으로 갑자기 근육이 굳었을 리 없잖아요. 분명 전조증상이 있었을 거예요. 일단 그것부터 찾아봐요, 우리.”
“전조증상….”
파킨슨병, 루게릭병, 다발성 경화증…. 머릿속으로 몸이 굳는 증상을 가진 질환을 아는 대로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5762의 증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이 질환들은 어느 정도 기간을 거친 뒤에 서서히 증상이 나타난다. 5762가 겪은 것처럼 순간적으로 근육이 굳는 병이 아니다.
그럼 이 외에는 또 뭐가 있을까? 0.0000001%가 겪는 희소 질환, 뭐 이런 걸까?
그런데 갑자기 근육이 굳는 질환이,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나?
당장이라도 온갖 논문을 들여다보고 싶다. 지식이 부족하니 머리를 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여기서 더는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았다.
태주는 굳게 닫힌 냉동고를 바라보았다. 방금 지호가 정리를 마친, 5762의 시신이 있는 자리였다.
미련 짙은 눈으로 그 자리를 빤히 보았다. 이제 나가자는 지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 * *
찬바람을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다가 나온 거지? 넋 나간 얼굴로 방금 나온 장례식장 전경을 바라보았다.
아, 연지호한테 휘둘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궁금증이 한풀 꺾이고 나니, 뒤늦게 이성이 돌아오면서 후회가 됐다.
유족의 허락도 없이 시신을 건드리다니. 대체 무슨 정신과 용기로 그런 짓을 한 걸까. 교도관 정복을 벗게 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긴 한숨과 함께 기운이 쭉 빠졌다. 태주는 조금 피곤이 묻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눈가가 묵직하다. 손으로 꾹 눌렀다 떼자, 느릿느릿 앞서 걷는 지호의 등이 보였다. 어느 냉동고 앞에 얌전히 서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는 사람의 시신이기라도 했던 걸까?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봤을까?
신기한 건, 무방비하게 넋을 놓고 보는데도 그 눈빛과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게 습관이 된 사람 같았다.
감정이라든가, 그가 가진 생각과 신념 같은 게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약간 지쳐 있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다.
흐음, 이럴 땐 알콜이 좀 들어가야 틈을 보이려나?
눈을 가늘게 뜬 채 앞서가는 하얀 등을 주시했다. 조금 후, 걸음을 멈춘 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아.
눈이 마주쳤다. 태주는 곧장 의심의 눈빛을 거두고 태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멀어져 있던 간격이 점점 가까워졌다.
“선생님은 오늘도 퇴근 안 하시는 겁니까?”
“희재 상태 한 번만 더 확인하고 퇴근하려고요. 왜요?”
“아니, 그냥 뭐…. 안 바쁘시면 술이나 한잔할까 해서 말입니다.”
“술이요?”
“많이 바쁘십니까? 바쁘시면 뭐, 어쩔 수 없고요.”
두근두근. 이게 뭐라고. 딱히 실례가 되는 제안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이 민망한 손은 뇌가 명령하기도 전에 목덜미로 향했다.
이러면 더 이상해 보일 걸 아는데도 막을 수가 없었다. 굴러간 눈동자가 멀리 있는 가로등으로 향했다.
지호는 그런 태주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영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영안실이 그렇게 무서웠어요? 긴장을 많이 했었나 봐요?”
“예?”
“많이 무서우면 오늘 밤은 내가 같이 자 줄까요?”
아니, 근데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누가 뭘 무서워한다고?
순간 당황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길게 뻗은 하얀 팔이 어깨를 감싸왔다.
“장난이에요. 마침 술 생각났는데 잘됐네요.”
태주의 어깨를 감싼 지호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말로 술 생각이 났던 건지, 전보다 걸음이 살짝 더 가볍다.
태주는 함께 나아가는 두 발과 미소 지은 지호의 옆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여전히 근사하고 끝내주는 미소였지만, 힘겹게 끌어올린 듯한 입꼬리가 눈에 거슬렸다.
* * *
어디 가서 내가 술로 먼저 쓰러진 적은 없는데.
반쯤 풀린 눈을 바로 뜬 태주가 정신을 바짝 붙잡았다. 여유롭게 술을 따르는 지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들유들하게 생겨서 한두 잔이면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생긴 것과 달리, 소주 세 병을 훌렁 마시고도 멀쩡하다.
태주는 서비스로 나온 청포도를 입에 와르르 쏟아 넣었다. 눈가에 잔뜩 힘을 실었다.
안 되겠다. 여기서 더 마시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될 것 같다.
“전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아직 더 들어가십니까?”
“어? 태주 씨는 벌써 취한 거예요?”
“아뇨. 아직 취한 건 아닙니다.”
지호가 든 술잔에 잔만 맞부딪쳐 주고 내려놓았다.
“취한 건 아닌데, 취하기 직전입니다. 지금 좀 사고가 느려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보기에는 아직 멀쩡한 것 같은데?”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저 지금 앉은키 커진 거 안 보이십니까? 허리에 엄청나게 힘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자세가 평소보다 곧네요?”
작게 웃은 지호가 보란 듯이 잔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술병을 집어 들었다. 잘하면 재밌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다며 눈을 빛냈다.
“와, 너무하네.”
분명 술은 함께 마셨는데, 왜 연지호만 마시지 않은 듯 멀쩡한 걸까. 심지어는 얼굴도 안 붉어진다. 정말이지, 불륜남이 아닌 것만 빼면 완벽한 인간이다.
술 대신 물을 따른 태주가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지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선생님은 말이죠.”
“네, 태주 씨.”
“알면 알수록 참 짓궂으십니다.”
“음, 맞아요. 태주 씨가 날 제대로 봤네요?”
“그죠? 맞죠?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제가 어디 가서 막 쉽게 놀림당하고 그런 타입은 아니거든요?”
“정말요?”
“….”
“….”
“물론, 어쩌다 한 번씩 당하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막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부장님만 아니었어도 양심에 찔리진 않았을 텐데. 괜히 찔려서 말을 보태다가 결국엔 더 우스운 모습만 보였다.
태주는 테이블 밑으로 내린 손을 꽉 말아 쥐었다.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다시 화제를 되돌렸다.
“아무튼, 선생님한텐 왠지 모르게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그래서 실망했어요?”
“아뇨. 실망 안 했습니다.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
“이렇게 잘난 사람도 결국엔 나랑 같은 인간이구나 싶어서 다행이었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주 놀리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히죽 웃었다. 결국 술기운을 이기지 못했다. 안면근육이 올라오는 텐션을 누르지 못하고 멋대로 좋아했다.
태주는 반도 못 비운 자신의 술잔을 빤히 보다가 천천히 다시 입을 뗐다.
“선생님.”
“네, 태주 씨.”
“저 사실, 선생님의 빈틈을 보고 싶어서 같이 술 먹자고 했습니다.”
“그랬어요?”
“근데 그건 왠지 힘들 것 같으니까 살짝 노선을 좀 변경하겠습니다.”
“그 말은, 술 말고 다른 걸로 내 빈틈을 찾아보겠다는 걸까요?”
“아뇨. 한번 해 보니까 그런 건 제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
“그냥 좀, 뭐 좀 물읍시다?”
다시 고개를 든 태주가 미간을 잔뜩 구겼다. 양아치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한껏 불량한 표정이 지호의 눈에 담겼다.
난데없는 불량한 모습에 당황스럽다가도, 웃기고 귀여웠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쪽도 썩 적성에 맞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무서워서 다 대답해 줘야겠네. 뭐가 그렇게 궁금했을까요, 우리 태주 씨는?”
턱을 괴고 목소리에 집중해 주었다. 상체를 기울인 태주가 얼굴을 조금 가까이했다. 그렇게 빤히 눈을 맞추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흘렸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한 질문을 할 거구나.”
“궁금한 것도 궁금한 거지만, 선생님을 믿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뭐든 대답해 줘야 할 것 같고.”
“저를 살리려고 애썼던 선생님의 손길과 목소리가 진짜인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내 대답에 실망할까 봐 슬슬 겁도 좀 나려고 하네요.”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달리 지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상하는 듯했다.
“선생님.”
“네, 태주 씨.”
“예전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십니까?”
“….”
“선생님의 아버지를, 선생님이 죽였습니까?”
태주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또렷했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건넨 질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지호는 슬쩍 시선을 피해 술잔을 비웠다.
입을 열지 않고 시간을 끄는 이유가 있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면 괜찮다고 해 주길 바라서였다. 그런데 평소에는 눈치 빠른 남태주가 이번만큼은 그 눈치를 발휘하지 않는다. 대답을 꼭 듣기로 작정하고 꺼낸 질문 같다.
“선생님.”
한참을 말없이 있자 대답을 재촉하는 부름이 이어졌다. 결국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흩어지는 한숨과 함께 입술을 뗐다.
“내가 어떤 대답을 내놓아도, 태주 씨는 날 믿어 줄 건가요? 그게 어려우면 난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그다지 보인 적 없는 서늘한 표정 때문일까. 아니면 믿어 줄 수 있냐는 물음 때문일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태주가 몸을 굳혔다. 천천히 시선이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조금 후, 고개를 기울인 그가 미간을 접었다. 지호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좀 더 어려운 조건을 거실 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해서든 5762의 부검을 허가받아 오라고 한다든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
“선생님은 얼마나 주변에 사람이 없었으면, 자신을 믿어 주는 걸로 충분한 겁니까?”
낙하산이래서 주변에 조력자가 많은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라며 태주가 웃었다. 가늘게 접힌 눈에 색색의 빛이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지호가 조금 놀란 눈으로 태주를 보았다.
“그런 걸 원한다면 상대를 잘 찾으셨습니다.”
알면 알수록 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다. 원래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다 이런가? 상대가 뭘 원하든 쉽게 꺼내 줄 수 있다는 표정이다. 재물이건, 마음이건, 모두를 내어 줘도 아깝지 않은 것처럼.
“저한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거든요.”
“….”
“선생님을 믿습니다. 믿고 싶기도 하고요.”
올곧기만 한 태주의 말과 표정에, 지호는 어쩐지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 * *
“어우, 씨! 돌겠네, 진짜!”
내가 연지호랑 또 술을 먹으면 남태주가 아니다! 남…. 남…. 남 뭐 있지? 아무튼! 아주 남이 되어 버린다, 내가!
지호를 부축한 태주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늘어진 사람을 옮기는 건 정신이 멀쩡한 사람을 옮기는 것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쩜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을까. 남태주가 겨우 술기운을 깨고 정신 차리니, 이번엔 연지호가 술기운을 못 이기고 쓰러져 버렸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럴 땐 보통 고즈넉한 공원 산책로를 홀로 걷지 않던가. 감성에 잔뜩 젖어서 생각에 잠기는 게 원칙 아닌가?
아, 연지호 이 남자가 그토록 힘겨운 과거를 살아왔구나!
이 남자를 온전히 믿어 줄 수 있는 건 나뿐이구나!
가여운 우리 선생님!
어? 이렇게 좀! 나에게 이런 감성에 젖을 시간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 여러 의미로 어메이징한 남자다! 잘생기면 다냐? 물론, 다는 아니어도 인생의 대부분이 편안하긴 하겠지! 내가 차마 이 인간을 술집에 버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니까!
“아오! 선생님! 우리 좀, 오른발, 왼발, 착착착. 예쁘게 좀 걸어 봅시다, 예?”
열심히 한 발짝씩 내디디며 바르게 걷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미 인사불성이 된 연지호의 다리는 틀려먹었다.
“후우, 이 공원만 지나면 평화가 찾아온다. 이 공원만 지나면….”
훅훅 거친 숨을 내쉰 태주가 공원 건너편을 간절히 보았다. 여기만 지나면 오피스텔 입구가 코앞이었다.
그러나 더 걷지 못하고 공원 끝자락에서 두 발을 멈춰 섰다. 아, 도저히 안 되겠다. 가로등 옆 벤치에 지호를 내팽개치듯 앉혀 놓았다.
“어후, 그동안 운동 좀 소홀히 했다고. 벌써 힘드네.”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르다 얄미운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세상모르고 자는 것 봐. 왠지 한 대 때려도 모를 것 같다.
진짜 때릴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해탈한 표정으로 그 옆에 앉았다.
“됐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때리는데.”
게다가 지금은 때릴 기운까지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
별 하나 없는 도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절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질 때였다.
툭. 왼쪽 어깨에 묵직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슬쩍 눈을 굴려 쳐다보자, 길게 뻗은 지호의 콧대가 살짝 보였다.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멋대로 주차한 한 머리를 밀까 하다가,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주었다. 조금 전, 술집에서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죽인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다’나 ‘아니다’로 분명하게 갈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지호의 대답은 예상과 달리 애매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른다’가 그의 대답이었다.
‘태주 씨, 난 말이죠.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잘 몰라요. 부모님이 의무대 군의관이었거든요. 전장에서 만나서 사랑을 하고, 나를 낳았어요. 다른 의사들은 살면서 한 번 갈까 말까 한 걸, 내 부모는 왜 세 번이나 자원해서 갔는지 모르겠어요.’
지호는 어딘지도 모르는 그런 곳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를 그곳에서 떠나보냈다고 했다. 태주는 그의 말에 어떤 대꾸도, 호응도 해 줄 수가 없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라서.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종종 미사일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매일같이 화생방 경보가 울려서, 방독면을 핸드폰처럼 곁에 두고 지낼 수밖에 없었죠.’
‘….’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몸이 반 토막이 돼서 의무대로 온 환자예요. 나머지 반의 몸은 그 사람의 동료가 천인지 가죽인지 모를 거에 싸서 왔는데, 그게 참 충격이었어요.’
누가 들어도 말문이 턱 막힐 수밖에 없는 과거였다. 어딜 봐도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라,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고 의사가 되었을 것 같은 사람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막 한가운데, 그것도 전장 안에서 태어났으며, 다친 사람과 죽는 사람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단다.
당연히 그런 곳에 또래라고 할 만한 아이가 있었을 리 없다. 유일하게 또래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때는 대민 진료를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 나갈 때뿐이었다.
하지만 이때마저도 그는 또래 아이들과 대화를 하거나, 교감을 나누는 행위 따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탓이다.
‘아이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광산이었어요. 그래서 대민 진료 때마다 아버지가 주로 가는 곳도 광산이었고요.’
‘….’
‘그곳엔 말라리아나 규폐증을 앓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아버지도 그런 곳만 다니다 보니 결국엔 폐에 돌가루가 쌓여서 규폐증에 걸렸는데, 그게 나중에는 폐결핵의 원인이 됐죠.’
‘….’
‘늘 검은 기침을 달고 살았어요. 마스크가 까맣게 물들 정도로요.’
연지호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덴 이유가 있었다. 사고는…. 아니, 어쩌면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 그 일은 그렇게 부족하고, 어렵고, 아픈 곳에서 일어났다. 그가 진짜로 자신의 부친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탓하기가 힘들 정도로.
‘어릴 때부터 인체의 잘린 단면이라든가, 장기라든가, 그런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럴까요? 환경이 워낙 열악해서 진료실과 수술실의 구분도 없었으니까요.’
‘….’
‘아무튼 그런 걸 보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속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됐어요. 어떤 병에 무슨 처방을 해야 하는지, 응급처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어요.’
‘….’
‘결핵으로 인한 기흉이었어요.’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연지호의 표정이 일그러진 건 그때부터였다.
‘그날이 아마, 도심에 있는 병원으로 피를 확보하러 간 날이었을 거예요. 아이스박스에 피를 챙겨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치면서 소리쳤어요. 전쟁이 시작됐다고. 의무대로 돌아가는 데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까 챙기라면서 구호 물품을 잔뜩 주더라고요.’
지호의 아버지는 의무대로 돌아가던 중에 사망했다. 흉강에 찬 공기만 제거하면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아 사망할 수밖에 없던 것 같다. 함께 있던 부친의 동료 의사가 패닉에 빠져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어려웠던 탓이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직전에 근처에서 지뢰가 터졌거든요. 흔히 있는 일이었어요. 전장이니까요. 아마 그때 죽은 군인의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겁니까?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어 가는 걸 볼 수밖에 없던 겁니까?’
‘….’
‘그럼 그건 선생님이 죽인 게 아니지 않….’
‘아뇨.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내가 보고만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태주 씨.’
‘선생님….’
‘내가 직접 피부를 절개하고 흉관을 박아 넣었어요. 기억으로는 분명 흉벽을 제대로 뚫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땐 아버지가 사망한 지 이틀이나 지나 있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아버지를 죽인 거라고 했고요.’
‘….’
‘왜…. 왜 죽었을까요?’
분명 제대로 했는데, 왜 죽은 걸까요?
그 이후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신은 분명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했는데 왜 죽은 건지 모르겠다고.
그때 연지호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이었다고 한다.
열여섯밖에 안 된 아이가 정말로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하지만 연지호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정말로 자신의 감과 실력을 믿는 것처럼.
부검 결과, 연지호의 아버지는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론이 났다. 구호 물품으로 받은 식품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호 물품이라면 다른 사람도 같은 것을 받았을 텐데, 그의 아버지 것만 문제가 있었다는 건 좀 이상했다. 게다가 그는 더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느라 구호 물품엔 거의 입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도 부검 결과를 믿지 않았다고 했을까.
‘무엇보다 부검 과정에서 허술한 부분이 많았어요. 어린아이의 눈으로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요. 국가 기관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인을 알아내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
‘부검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몰래 아버지의 시신을 살펴보러 갔죠. 시신은 근처 보건소 냉동고 안에 구겨진 채로 들어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의 시신이었어요.’
왜인지 모르겠으나 시신이 뒤바뀌어 있었다. 문서에 기록된 사인도, 아버지의 사망 원인이 아닌 정체 모를 동양인의 사망 원인이었다. 검은 비닐에 시신과 함께 위액이 담긴 병이 있었다고 한다.
전부 조작된 것이었다. 국가 기관에서 보내 왔다던 그들이 한 사람의 죽음을 감춰 버렸다.
대체 왜? 왜 감춰야 했을까?
연지호의 잘못으로 죽은 거라면 굳이 일을 조작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보호자를 죽인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 같은 건 없었을 테니까.
혜성대 병원의 의사가 되기 전까지 그의 삶은 오직 아버지를 찾는 것뿐이었다고 했다. 법의학자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으셨습니까?’
‘네, 찾았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장소에서요.’
‘의외의 장소요?’
‘궁금하면 같이 보러 갈래요? 별로 멀지 않은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지호는 쓰러졌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된 것이다.
“연, 교진….”
작게 읊조린 태주가 손을 들어 지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굳이 듣지 않아도, 그의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별로 멀지 않은 의외의 장소.
연지호와 같은 성의 남자.
냉동고를 가만히 바라보던 연지호의 시선.
이 모든 것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연교진이 바로 연지호의 부친이라는 걸.
하지만 왜 여전히 그 시신은 냉동고에 갇혀 있는 걸까? 어째서 연지호는 시신을 찾았음에도 얌전히 있는 것일까?
“아, 모르겠다.”
뭐 이렇게 힘든 인생이 다 있을까. 지금까지 버텨온 연지호에게 잘 살아왔다고 칭찬해 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동안 살아온 게 기특해서 내가 재워주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우스갯소리를 툭 내뱉으며 미소 지었다. 다시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호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다시 힘내서 가 봅시다.”
잠시 앉아서 쉬어 가는 게 효과가 좀 있긴 한가 보다. 아까는 질질 끌려오다시피 하던 다리가 이제는 어설프게나마 움직인다. 두 사람은 한 발짝씩 서로의 걸음을 맞춰 나갔다.
공원을 빠져나와 교차로에 다다랐을 때, 태주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열여섯의 지호가 어떤 심정으로 칼을 쥐었을지.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어 가는 가족을 눈앞에 둔 기분이란 어떤 것인지.
나라도. 내가 연지호였더라도 내 아버지의 흉부에 흉관을 박아 넣었을 것이다.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괴로울 것 같아서.
“타임머신은 언제 개발되나 몰라.”
지금 시대에 있었으면 당장 열여섯 연지호에게 달려가 안아 줬을 텐데.
[20] DOA (Dead On Arrival) 도착 전 사망.
[21] 말라리아 (malaria) 학질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 원충에 의한 전염병. 간헐적이고 발작적인 고열이 나며, 빈혈 및 황달을 일으키는 수가 많음.
[22] 규폐증 (硅肺症) 광산 등의 공기 유통이 나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규산류의 먼지를 오랫동안 마셔서 생기는 폐병《숨이 차고 얼굴빛이 검어지면서 부종이 생기고 식욕이 없어짐》.
[23] 기흉 (氣胸) 결핵·폐렴 등의 원인으로 폐의 표면에 구멍이 생겨, 흉막강 안에 공기 또는 가스가 찬 상태. 이때 폐는 수축되며 호흡 곤란을 일으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