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합니다."
큭큭거리며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비웃은 남자는 그 여운을 품은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우습지 않습니까?"
남자는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는데요…."
<프레자일>을 읽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갑자기.
왜 우는지, 뭐가 슬픈지, 누가 불쌍해서 우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2.
이 소설의 제목 <프레자일>은 전혀 반대의 개념인 듯한
<총>과 같은 의미를 띤 동의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총>은,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신념이나 가치관을 상징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박살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대하다고 여겼던 <총>은
아주 어이없게 덧없이 부서지고 말았지요….
3.
소설 초반에 아오이케가 오오코오찌를 총으로 위협하고 쏘았을 때와
소설 마지막에 오오코오찌가 아오이케를 총으로 쏘았을 때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오이케는 총이 가짜임을 알고 쏘았습니다.
하지만 오오코오찌는 진짜라고 믿고 쏘았습니다.
이 점을 봐도 아오이케는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총이 가짜였기에 발사 되지 않았고 때문에 피도 튀지 않았지만,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오오코오찌에게 살해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4.
그리고 <개>.
오오코오찌를 개로 격하시키고 있던 아오이케는
짝사랑하는 오오코오찌로부터 게이인 자신의 정체성을
발정난 수캐처럼 경멸 당한 것이 가장 괴로웠던 게 아닐까요?
5.
대화와 상황으로 보아 오오코오찌가 홀어머니 밑의 외아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오코오찌 그가 비열할 정도로 출세에 집착하는 이유를 납득하게 하며,
끝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측은한 작은 요소이기도 합니다.
6.
이 <프레자일>은 잡지에 실렸을 때도
일본 독자로부터 둘이 행복해지는 뒷 이야기를 보여 달라는 청을 많이 받았답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둘이 너무 불쌍하다고요.
하지만 저는 이 둘이 행복해졌다면 그보다 더한 통속적 야오이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결과가 더 좋습니다.
어쨌든,
<프레자일>을 괜히 봤다며 분노를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작은 가능성을 품고 소설 마지막 장면의 아픔을 눌러 참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픔이라면 앞으로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주인공이 둘 다 살아 있으니까요.
주인공 중의 하나가 나머지 하나에게
"평생 가축으로 기르다 죽여주겠다"고 하니까요.
p.s>
프레자일 번역을 끝낸 지금 기분은…,
큰 짐을 벗어버린 것처럼 후련하면서도 허탈하고
뭔가 꺼내야 할 중요한 물건이 있는데 그냥 뚜껑을 닫아버리는 그런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