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2)

No,703 : 프레자일  Fragile (11)  - END -  

 후둑후둑 부슬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가끔 섞이는 사람의 음성과 소란스런 발소리.

 각성으로 다가가는 수면 속에서 그것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반복했다.

 편안하고 상쾌한 온기 속에서 눈을 떴을 때는,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의 내용 따위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데,

 꿈을 꾸고 있었다는 감각만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크림색 커튼으로 에워싸인 좁은 장소.

 하얀 천장.

 왼손을 움직인 순간, 팔에 바늘로 쿡 찔리는 듯한 아픔이 치달았다.

 머리맡에 있는 가느다란 막대에는 링겔이 매달려 있고

 거기로 엷은 복숭아색 액체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하얀 시트와 청결한 잠옷, 약품 냄새.

 필시 여기는 병원이고 자신은 살아난 것이다.

 오오코오찌는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연이어 흘러넘치는 기쁨에 오오코오찌는 꼴사납게 눈물을 흘렸다.

 살아있는 것이 기뻤다.

 몸은 여전히 나른했지만, 탈의실에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됐을 때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두손을 깍지 끼고 앞으로 힘차게 내뻗었다.

 잠옷 소매가 스르륵 흘러내려 드러난 자신의 두 팔은 놀랄 만큼 가늘고 빈약했다.

 지난 1주일간을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한 데다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토했다.

 야위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지만, 보기에도 가련한 상태였다.

 그때, 발소리가 다가오고 커튼 너머로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실례합니다."

 밝은 목소리와 함께 커튼을 걷은 것은 나이어린 간호사였다.

 그녀는 첫대면일 오오코오찌를 향해 살갑게 생긋 미소를 건넸다. 

 "정신이 드신 것 같군요. 몸은 어떠세요? 기분은 나쁘지 않으신가요?"

 듣고 있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간호사는 오오코오찌의 맥박과 혈압을 쟀다.

 전자체온계가 삐삐 소리를 낸다.

 간호사가 빼내기 전에 본 자신의 체온은 37.5도. 

 "저어…."

 말을 걸자, 간호사는 메모용지에서 얼굴을 들었다.

 "내가 언제 이 병원에 실려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오코오찌의 고백에 간호사는 살짝 쓴웃음 지었다.

 "어제 점심 전에 구급차로 실려 오셔서 다음날 저녁…지금까지

 줄곧 주무시고 계셨으니까, 기억이 없으셔도 무리가 아니죠.

 어제는 고열과 심한 탈수증상으로 의식이 없으셔서,

 한때는 생명도 위험할지 모른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으세요' 하며 간호사는 믿음직스럽게 웃었다.

 "푹 쉬시고 영양을 섭취하시면 금방 좋아지실 거예요."

 그리고 탁상의 혈압계를 치우던 간호사는

 뭔가를 떠올린 듯이 <앗>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오오코오찌상의 어머님은 어디로 가신 거죠?"

 "어머니가 와 계신가요?"

 당황해서 되물었다.

 오오코오찌가 모르고 있는 것에 간호사 쪽이 오히려 더 놀라고 있었다.

 "네. 구급차로 실려오신 그 날부터 줄곧 곁에 붙어 계셨어요."

 "도대체 누가 연락을…."

 질문을 한 것이 아닌데 간호사는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같이 살고 계신 남자분이 아닐까요?

 구급차를 부른 것도 그 분이라고 들었으니까.

 여기에 도착했을 때도 쓰러질 것 같을 만큼 창백한 낯빛으로,

 <아무리 불러도 전혀 대꾸를 하지 않는단 말야, 어떻게든 해줘!> 하면서

 난리를 피우고…. 내과 선생님에게 호되게 혼나셨답니다.

 <같이 살고 있었다면 어째서 더 빨리 병원에 데려오지 않았냐, 

 조금만 더 지났으면 죽을 참이었다>며 화를 내셔서 꽤 풀이 죽어 있었어요."

 남을 벌거벗기고 개처럼 취급하며 망설임없이 권총을 들이대는 남자가

 그렇게 허둥거리며 법썩을 떨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는 데려다 준 것이다.

 어디서 분 바람일까…하고 의아해하다가, 기분이 좋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에다와 연락이 되어 직장도 결정되고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남자에게 동정을 할 마음이 내킨 것이다.

 그 남자에게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피할만한 양식이 있었다는 걸까? 

 "어머님이 오시면 한번 너스 스테이션에 와주시도록 전해 주시겠어요?

 입원계약서 건으로 조금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간호사는 가볍게 머리숙여 인사하고 병실에서 나갔다.

 오오코오찌는 누운 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여기에 데려온 아오이케를 생각했다.

 그렇게 <죽인다, 죽인다>며 자신을 위협하고 있던 남자.

 막판에 가서 자신을 병원에 데려오다니, 

 그 거만한 태도 치고는 훨씬 더 마음이 여린 남자인지도 모른다. 

 묘하게 떠들썩한 발소리가 울리고, 싫은 예감이 스쳤다.

 커튼이 기세좋게 젖혀지고 뭔가를 담은 쇼핑 봉투를 가슴에 안은 모친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모친은 눈에 눈물을 그렁거렸다.

 "토모미…."

 봉투도 떨어뜨린 채 침대에 매달리다시피 하고 울기 시작한다.

 검은 머리칼에 하얀 것이 많이 섞인 연로한 가는 등에,

 어딘가 참을 수 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별 일 아니니까…."

 "네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나를 두고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정말이지, 너라는 애는 도대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니?"

 변명의 말은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고 모친은 계속 오오코오찌를 나무랐다. 

아들의 몸을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나를 남기고>의 부분은 

오오코오찌를 참을 수 없이 음울하게 만들었다.

 귀한집 외동딸로 자라 고생 따위는 한 적도 없는 모친은 언제까지고

 소녀처럼 순진무구하고 그리고 무신경했다.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건 내 몸이 아니라 

 장래 당신을 돌봐줄 인간의 상실이 아닙니까?' 하고 

 심술궂게 묻고 싶어지고 만다.

 잠시후, 한바탕 울고 진정이 된 모친은 흐트러진 머리칼과

 눈물로 지워진 화장을 신경 쓰듯이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 참. 회사 쪽에는 내가 연락을 해뒀단다.

 그리고 토모미. 너 친구하고 같이 살고 있다는 말,

 이 엄마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니.

 이번 일도 친구가 있었으니까 망정이지 만약 너 혼자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니?"

 이렇게 된 원인이 바로 그 남자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창피한 일을 당하고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이 계속됨에 따라 쌓여가는 울분에 오오코오찌는 세게 손끝을 움켜잡았다.

 "아오이케상 말이다, 정말 느낌 좋은 사람이더구나. 이 엄마 맘에 들었단다. 

토모미 네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몇번이나 나한테 사과했단다.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더구나."

 믿어지지 않는 단어들이 눈앞에 줄을 선다.

 "퇴원한 뒤에는 책임을 지고 자기가 돌보겠다고까지 말해줬단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오이케상이 있어준다면 엄마도 걱정없단다."

 그 남자가 선인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라는 걸 어머니는 모른다.

 진심으로 믿고 있다…그것이 무섭다.

 아들의 심중도 모르고 모친은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하고 같이 사는 것도 좋지만, 하루라도 빨리 널 돌봐줄 참한 신부를 

찾아서 날 안심시켜다오."

 시각은 오후 10시가 지났고 병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평소는 12시 넘어서 까지 깨어 있는 데다 낮에 잠을 잔 탓으로

 그다지 졸리지 않아, 오오코오찌는 병원의 좁은 침대 위에서 몇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오오코오찌가 있는 병실은 큰 병실이었지만 지금은 입원환자가 둘밖에 없었다.

 비스듬히 맞은편에는 80세를 넘긴 듯한 노인이 소등 전부터 코고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는 해질녁 쯤에 그치고, 구름이 걷혀 황혼의 오렌지빛이 들여다 보이고 있었다.

 <병실 안은 에어컨이 돌고 있어서 시원하지만 바깥은 굉장히 덥다>고

 모친은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간호제라 환자 옆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는 이유로

 모친은 면회시간이 끝난 오후 7시에 오오코오찌의 맨션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결국 시간이 남아 돌아 TV를 보았지만 그것도 지루해서 바로 꺼버렸다.

 하지만 자려고 침대에 드러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감고 있던 오오코오찌의 귀에, 그 대화소리는 들려왔다.

 "틀림없이 주무시고 계실 거예요."

 여성의 목소리였다.

 "간호사 아가씨,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무리를 말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낮에는 회사 일 때문에 이 시간밖에 올 수 없었습니다.

 얼굴만 잠깐 보고 돌아갈 테니까요.

 안 그러면 걱정이 되서 집에 돌아가도 잠들지 못할 겁니다."

 아오이케의 목소리.

 오오코오찌는 머리까지 시트를 뒤집어썼다.

 몸이 조건반사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짧은 침묵 뒤에 가느다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정말 잠깐이에요? 얼굴만 보고 나와 주세요.

 그리고 돌아가실 때는 너스스테이션에 알려주시구요."

 "고맙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대화는 끊기고 조심스런 발소리가 다가왔다.

 오오코오찌는 잠든 척하고 눈을 감았다.

 커튼이 걷혀지고 의자가 삐걱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트 너머로 어루만져지는 감촉.

 그 행위가 무엇을 꾀하고 있는 것인지 무서웠다.

 여기에서 벌거벗으라고 명령을 받아도 필시 자신은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한숨소리가 들렸다.

 시트가 흔들리고 그 안으로 숨어들어온 남자의 손에

 오오코오찌는 무심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입술을 세게 깨물고 참았다.

 오른손이 남자에게 붙잡혀 시트 밖으로 끌려나간다.

 무슨 짓을 당할까 조마조마 했지만, 남자는 오오코오찌의 손을 꽉 움켜쥘 뿐이었다. 

 손바닥에 촉촉한 감촉이 느껴진 뒤, 오오코오찌의 오른손은

 시트 안으로 다시 되돌려지고 남자의 기척도 사라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체험한 적이 없는 기묘한 행위였다.

 흉폭함은 없고 마치 충성을 나타내는 듯한 손바닥의 키스는

 어느 의미로 아오이케의 반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눈부신 예감에 오오코오찌는 가슴이 떨렸다.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가 죽을 뻔하게 될 때까지

 몸을 망가뜨린 일로 자신의 행위를 반성했다.

 …는 말은, 개를 다루는 듯한 그런 심한 행위를 고칠지도 모른다는 얘기.

 권총으로 협박하는 일도 그만두고 맨션에서 나갈지도 모른다.

 기뻐서 환성이 터져나올 것 같은 것을 '여기는 병원'이라고 자신을 타이르고 참았다.

 나는 해방 되는 것이다.

 그 남자로부터 간신히 풀려나는 것이다.

 밤이 새고 아침이 오는 것이 기다려졌다.

 아오이케가 없는 내일과 일상을 기다리고 있던 오오코오찌는

 <퇴원한 뒤는 책임을 지고 돌보겠다>고 모친이 전해 주었던

 아오이케의 말 따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입원하고 나서 4일째 되는 날의 오후에 오오코오찌는 퇴원했다.

 열이 내리고 탈수증상이 개선되자 몸은 거짓말처럼 편해졌다.

 이제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모친은 맨션에 돌아갈 때까지 곁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가 무섭게 소파에 드러눕는 오오코오찌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모친은 재빨리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몫의 요리를 만들고

 신칸센 마지막 기차 시간에 맞는 오후 7시가 다 될 때까지 맨션에 있었다.

 모친이 돌아가고 나서야 간신히 혼자가 된 오오코오찌는

 들어가지 않는 쪽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깨끗하게 말리고 나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일찌감치 시트 속에 파고들었다.

 지난 2주일쯤 올라가는 것을 허락 받지 못했던 침대.

 그런 자신만의 안락한 장소에서 아오이케의 냄새가 났다.

 당장 시트를 벗겨내어 세탁기 안에 쑤셔넣고 새 시트를 꺼냈다.

 그 남자는 이제 여기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오오코오찌가 아오이케의 존재를 가깝게 느낀 것은 밤중에 병원으로 찾아왔던 그때뿐.

 그 뒤로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은, 반성한 남자가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그만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침대 안에 들어가서 가까스로 졸기 시작한 무렵,

 희망을 때려부수는 인터컴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신경질적으로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 되었다.

 '설마' 싶어서 처음은 못 들은 척을 했다.

 그것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 것은, 되풀이되는 그 소리가 무서워졌기 때문이었다.

 복도로 나가니, 인터컴뿐만이 아니라 문까지 격렬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체인을 걸고 있는 탓에 문이 미처 다 열리지 못해, 몇번이나 도중에 저지 되어 

 찰캉찰캉 하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문 틈으로 내다보이는 남자의 모습.

 지금 생각하면 어째서 그렇듯 자신있게

 <남자는 이제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하고 있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남자가 이쪽의 기척을 깨닫고, 마치 체인을 벗기라는 듯이 문을 닫았다.

 무언의 명령에 거역하지도 못하고 오오코오찌는 체인로크를 풀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절망'.

 결국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이다.

 이 집에 오오코오찌가 돌아오는 한 그 지옥은 계속되는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를 종말의 그날까지.

 "굉장한 '환영'이로군요."

 비아냥거림으로 가득한 목소리.

 수트 차림의 아오이케는 가방을 바닥에 툭 내던지고 앞머리칼을 성가신 듯이 쓸어올렸다.

 "그리고 누가 멋대로 옷을 입어도 된다고 말했습니까?"

 노려보는 성난 눈빛에 등줄기가 떨렸다.

 오오코오찌는 황급히 잠옷을 벗고 복도에 네발 자세로 엎드렸다.

 감기는 거의 다 나았고, 밤이 되어도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

 공기는 후덥지근했으니까 옷을 벗어도 춥지는 않았다.

 어쩌면 집안은 거꾸로 무더울 정도였는지도 모르지만, 오오코오찌는 잘 알 수 없었다.

 불현듯 콧속이 간질간질해져 오오코오찌는 재채기를 했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느라 먼지라도 들이마셨는지도 몰랐다.

 "그대로 침실까지 가세요."

 엄한 목소리에 오오코오찌는 달리듯이 침실까지 기어갔다.

 아오이케도 뒤를 쫓아왔다.

 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남자를 올려다본다.

 열린 옷장에서 싫은 소리가 들렸다.

 스치는 쇠사슬의 소리. 목에 걸치고 구속하여 자유를 빼앗았다.

 그리고 불의의 그림자.

 처음은 뭔가가 떨어졌는 줄 알았다. 

 너무 무서워서 마구 쥐어뜯듯이 뿌리쳤지만, 그것은 전혀 무서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면 모포였으니까.

 머리카락을 붙잡혀 얼굴이 치켜올라갔다.

 입안에 강제로 뭔가 밀려들어와 황급히 뱉어낸 오오코오찌는

 바닥 위에 구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오이케는 혀를 차고 그것을 집어들더니 자신의 셔츠로 가볍게 닦고 나서 

 다시 오오코오찌의 입안에 밀어넣었다.

 이번에는 뱉어내지 않고 오오코오찌도 체온계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삐삐 하는 짧은 전자음과 함께 남자는 체온계를 빼냈다.

 37도라 표시되어 있는 것이 흘낏 보였다.

 아오이케는 모포를 다시 오오코오찌의 등에 걸쳐주더니

 개줄 끝을 침대 다리에 묶고 침실을 나갔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망연히 지켜본 뒤 오오코오찌는

 등의 모포를 자신의 몸에 둘둘 말았다.

 아오이케의 너무나 인간다운 태도에 놀랄 따름이었다.

 벌거벗으라고 하거나 사슬로 묶거나…, 개 취급은 변함 없었지만

 전 같은 엄격함은 엷어져 있었다.

 그 아오이케도 사람을 죽일 뻔한 것은 역시 난처했나 보구나…하고

 태도가 완화된 것에 쓴웃음 지었지만, 그 지경이 되지 않았으면

 자신에 대한 심한 태도를 뒤돌아볼 일이 없었나 생각하니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바닥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자니 다시 문이 열렸다.

 아오이케는 곧장 오오코오찌에게 다가오자 손에 들고 있던

 은색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오오코오찌의 이마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다시 입안에 밀어넣어지는 체온계.

 열이 재어지길 기다리면서 은쟁반에 개밥 그릇이 놓여 있는 것을 깨달았다.

 또 그건가….

 생각하기만 해도 위가 심하게 땡기며 아파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개사료의 갈색과 달리 하얗고 묽은 것이었다.

 열을 다 재자, 아오이케는 쟁반을 오오코오찌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한쪽은 물이고 다른 한쪽은 아무래도 죽 같았다.

 아오이케가 이 집에 온 뒤로 개사료가 아닌 인간의 음식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이걸 먹어도 되는 건지 반신반의로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모포와 똑같이

 그 나름대로 몸을 걱정해 주고 있는 듯 싶었다.

 "저녁식사는 뭐 좀 먹었습니까?"

 오오코오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먹어주세요."

 눈앞에서 김을 내고 있는 죽은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죽 안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한 심한 것이 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렇다 해도 결국에는 먹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지고 오오코오찌는 그릇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뜨거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살며시 혀를 내밀었다.

 핥아올리느라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죽이 뜨거워서

 오오코오찌는 <앗, 뜨거>하며 소리를 지르고 뒤로 물러났다.

 그게 우스웠는지 아오이케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웃게 만든 것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자세히 보니 쟁반 위에는 숫가락이 놓여 있었다.

 있다는 말은 써도 된다는 것일까?

 주춤거리며 숫가락에 손을 뻗자, 마치 잘못을 한 아이처럼 손등을 얻어맞았다.

 숫가락이 쟁반안에 떨어지며 딸그락 소리를 냈다.

 갑작스런 난폭한 행동에 단숨에 위축되는 오오코오찌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오이케는 쟁반의 숫가락을 손에 들고 천천히 개 밥그릇 안을 저었다.

 그리고 숫가락으로 죽을 떴다.

 아오이케는 후후 불어 식힌 뒤 오오코오찌의 입술에 갖다 댔다.

 먹으라는 뜻임이 명확했다.

 오오코오찌는 살며시 입을 벌렸다.

 딱 알맞은 온도로 식은 죽이 혀 위에 남았다.

 쭈뼛거리며 씹어삼킨다.

 그것은 놀랄 만큼 맛있었다.

 다시국물인가 뭔가로 끓였는지 조금 간이배어 흰죽보다도 훨씬 먹기 쉽게 되어 있었다.

 아오이케는 한숫가락 떠올려 식힌 뒤에 오오코오찌의 입가에 날랐다.

 그런 단순하고 귀찮은 작업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직접 떠먹겠다고 말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어, 오오코오찌는 남의 손으로 식사를하게 됐다.

 그것은 굉장히 기묘한 감각이었다.

 가까스로 접시가 비자, 쟁반을 옆에 끌어당기고

 아오이케는 침대 다리에 묶여 있던 개줄을 풀었다.

 우선 화장실에 이끌려 가서 명령하는 대로 강제로 일을 보았다.

 다음은 세면대에서 이를 닦였다.

 그것이 끝나자 다시 침실로 되끌려가 침대 다리에 사슬이 묶였다.

 그리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으려 한 순간,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의 허리를 가볍게 걷어차서 침대 위로 몰아넣었다.

 침대 위에 주저앉는 오오코오찌의 등에 아까의 면 모포를 걸쳐주고

 아오이케는 침실을 나갔다.

 다정한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한 애매한 태도.

 하지만 확실히 아오이케의 분노는 사그라들어 있었다.

 <정말, 정말로 해방될 날도 멀지 않았다>

 오오코오찌는 확신했다.

 얼마나 그 날을 고대했던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잃는 일 없이 저 미친 인간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날을.

 배도 부르고 따뜻한 속에서 희망에 찬 행복한 기분으로 오오코오찌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아오이케가 파고든다. 세미더블 침대.

 남자 둘이 눕자 갑자기 좁게 느껴졌다.

 방심하면 몸의 어딘가가 닿아버릴 것 같았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닿게 되면 그대로 아오이케의 분노로 이어질 것 같아서

 오오코오찌는 침대 가장자리에 누워 몸을 잔뜩 오그렸다.

 옆의 남자는 몇번인가 몸을 뒤척이더니 침대 끝에 있는 오오코오찌의 등뒤로 바싹 붙었다.

 밀착되는 살은 따뜻했지만, 남자와 찰싹 붙어서 자봤자 위화감밖에 없었다.

 <기분 나쁘니까 떨어져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몸을 굳힌 채

 오오코오찌는 아오이케가 다시 몸을 뒤척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오이케는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참고 기다리는 동안 어느샌가 오오코오찌도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해가 졌는데도 찌는 듯이 무더운 밤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한곳에 서 있기만 해도 불쾌한 땀이 솟았다.

 오오코오찌는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요즘 줄곧 피하고 있던 접대에

 오늘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만류하는 대로 남아서, 깨닫고 보니 시계는 12시가 넘어 있었다.

 손목시계가 조금 늦게 가는 탓으로, 탈 수 있을 줄 알았던

 마지막 전철을 놓쳐서 하는 수 없이 역앞의 택시 승강장에 가보니

 자신과 똑같은 경우의 샐러리맨과 O.L들이 열사람 정도의 줄을 서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줄의 뒤에 선 오오코오찌는 후덥지근함에 넌더리를 내며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때 문득 앞에 서 있는 샐러리맨의 뒷모습이 낯익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굴까…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남자가 주위를 살피듯이 둘러보았다.

 그 시선과 마주친다.

 상대 남자도 오오코오찌의 존재를 깨닫고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에는 결코 볼 수 없었을

 호감 가는 살가운 얼굴로 미소를 건네왔다.

 "오랜만이구나. 이런 시간까지 무슨 일이야? 접댄가?"

 그렇다고 대답한 오오코오찌가 <자네는?>하고 되묻자,

 우에다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쓴웃음 지었다.

 "내일 있을 입찰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하는 영업부하고 최종 회의를 하느라 늦어졌어.

 좀처럼 이쪽의 포인트라는 걸 알아주질 않아서 말야."

 힘들었던 듯, 우에다는 떨떠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오오코오찌가 무심코 뒷걸음칠 만큼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요전에 만났을 때는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이제 괜찮은 것 같구나."

 우에다까지 걱정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던 오오코오찌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이튿날에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고는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다.

 "아, 참. 그 날은 몸이 좋지 않았는데 불러내서 미안했다.

 하지만 네가 연락을 해준 덕분에 아오이케를

 우리 회사로 부를 수가 있어서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역시 아오이케는 우에다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확인은 하지 않았었다.

 맨션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고 아오이케도

 우에다의 회사에 취직했다고  일부러 오오코오찌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침이 되면 수트 차림으로 나갔다가 밤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착실히 일하고 있구나' 하고 이쪽이 추측하는 정도였다.

 "얼마 전에 가까스로 녀석이 자백했단 말이야.

 너희 둘이 같이 살고 있다며?"

 오오코오찌는 놀라서 숨을 삼켰다.

 동요가 표정에 나타났는지 우에다는 오오코오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웃었다.

 "별로 그게 어떻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야.

 아오이케 녀석에게 긴급시 연락용으로 필요하다고 자택 전화번호를 물었었는데,

 보니까 네 집 전화번호하고 똑같잖아.

 이상하다 싶어서 추궁했더니 같이 살고 있다고 자백하더라.

 그래서 나도 너희들의 관계를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할까나.

 아오이케는 전의 회사에 있었을 때부터 그런 녀석인 줄 알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우에다의 태도가 오오코오찌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자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냐?

 확실히 우리는 같이 살고 있지만 말 그대로 <동거>란 말야.

 그리고 녀석은 내 승낙도 얻지 않고 멋대로 들이닥쳐서 눌러 살고 있는 것뿐이란 말야."

 남자끼리 연애관계에 있다고 오해 받는 것이 참을 수 없어 부정했다.

 아오이케가 비록 자신에 대해 호의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그 편린도 없다.

 때문에 연애 같은 관계로는 도저히 될 수 없다.

 그것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며 말하고 있는데,

 우에다는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아오이케는 직장에서도 기쁜 듯이 네 얘기를 하고 있었어."

 오오코오찌는 창백해졌다.

 도대체 직장에서 아오이케는 우에다에게 어떤 식으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알몸에 개목걸이만 차게 하고 개처럼 대하며 놀고 있다는 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들고 있는 걸까?

 "손님, 타지 않으실 겁니까?"

 택시 운전사가 초조한 목소리로 외쳤다.

 깨닫고 보니 우에다까지 차례가 와 있었다.

 사과하면서 택시에 올라탄 우에다는 오오코오찌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후속 택시에 오오코오찌도 올라탔지만, 우에다의 얘기가

 머리 구석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오이케의 변화는 오오코오찌도 깨닫고 있었다. 

 변함없이 자신을 개처럼 취급하고 매일밤의 개목걸이는

 빼놓지 않고 있어도 그 변화는 확실했다.

 그토록 격렬했던 자신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입원을 계기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사라졌다면 사라진 대로 소멸해 버리면 좋은데,

 아오이케의 벡터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쪽이 당혹스러울 만큼 노골적으로 휘감기는 듯한 시선.

 아오이케의 분노가 사그라들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증오와는 다른 사슬로 아오이케는 다시 오오코오찌를 묶으려 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오오코오찌는 우에다의 말이 마음에 걸려 맨션 현관에 멈춰섰다.

 하지만 마냥 거기에 서 있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오오코오찌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만으로 아오이케는 현관까지 나왔다.

 회사에서 퇴근해 귀가하는 시간은 아오이케보다 오오코오찌 쪽이 늦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아오이케는 반드시 자신을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

 비록 그것이 오늘 같은 한밤중이 되어도.

 "많이 늦었군요."

 돌아오기가 무섭게 불평을 한다.

 늦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무례한 시선으로 지도 받는 대로 오오코오찌는 현관에서 옷을 벗었다.

 알몸으로 서자, 마치 의식처럼 엄격하게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에게 개목걸이를 채웠다.

 "오늘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재촉 받고 천천히 <걸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이틀째가 되던 날, 플로링 바닥의

 잘게 째어진 부분에 무릎이 까진 뒤로는 바닥을 기며

 걸으라는 말은 듣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개사슬을 붙잡혀 끌려가는 것은,

 개보다도 연행 당하는 죄수 같은 기분이었다.

 거실로 들어서니, 그곳에는 모스그린의 침착한 톤의 새 소파 세트가 있었다. 

 소파를 모두 갈아치운 것 같았다.

 왜 바꾼 걸까 하고 오오코오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가슴에 떠오른 의문을 마치 들여다본 것처럼 아오이케가 대답했다.

 "전에 있던 건 작아서 새로 산 겁니다.

 집의 분위기에 굉장히 잘 어울리죠?"

 먼저 자신이 앉아 보이고 나서 아오이케는 옆자리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여기에 앉아'라는 의미일까?

 오오코오찌는 지시 받은 위치보다도 훨씬 오른쪽,

 아오이케로부터 떨어진 장소에 걸터앉았다.

 소파는 굉장히 폭신폭신해서 부드럽게 폭 파묻히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이 기분 좋아서 몇번이고 살짝 일어났다 앉았다 하고 있자,

 옆에서 눌러죽인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어린애같은 행동을 깨닫고 얼굴을 붉힌 오오코오찌는 고개를 돌렸다.

 소파가 희미하게 삐걱였다.

 긴 침묵이 흘러,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흘낏 시선을 주었더니,

 아오이케는 소파 팔걸이에 기댄 채 오오코오찌를 보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핥듯이 바라본다.

 자신의 어디를 그렇게 보고 있는 건지,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오오코오찌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도록 슬며시 손으로

 가랑이를 가릴 작정이었는데, 작은 실소를 샀다.

 그것으로 자신이 의식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들키고 만 것을 깨닫고

 난처해져서 더욱 고개를 수그렸다.

 차르르 하는 사슬 소리가 났다.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느슨해진 사슬.

 이 무슨 이상한 광경일까 생각했다.

 한밤중인 시각, 하나의 소파 양쪽 끝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말하는 일도 없이 시선만이 오고 간다.

 상대의 안색을 보며 살피다가 뒤엉키는 시선을 외면하는, 그런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식사는 하고 왔겠죠?"

 남자의 질문에 오오코오찌는 얕게 끄덕였다.

 "그만 잘까요. 샤워는 내일 아침에 시켜 주겠습니다."

 현실이 아닌 듯한 공간 속에서 현실의 말이 날아왔다.

 사슬을 끌려 침실로 걷는다.

 여름의 습기가 밴 눅눅한 복도 바닥에, 맨발바닥이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아오이케는 매일밤 침실의 침대 다리에 오오코오찌의 사슬을 묶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의 밤의 광경이었다.

 아오이케는 오른쪽에서 침대 속으로 파고 들고,

 오오코오찌도 반대쪽의 시트를 들치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시트 안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듯, 조금 초조했다.

 머리맡의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전 2시.

 잠을 자두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힘들 것은 알고 있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침대 안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동안에,

 오늘 하루의 일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낮에 부장이 오오코오찌에게 다음에 식사를 같이 하자고 청했다.

 지난번 입원하게 되는 바람에 그냥 흘러가 버렸던 부장 딸 얘기.

 이번에야말로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대답을 하는데 조금 망설여졌다.

 잠깐의 침묵에 아오이케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까지 그 남자에게 좌지우지 당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결국은 <꼭 함께 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대답했으나,

 이 일을 아오이케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서 택시 승강장에서 들었던 우에다의 말.

 기쁜 듯이 얘기하고 있었다지만, 도대체 그 남자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얘기를 우에다에게 한 걸까?

 맨션의 생활에 제대로 된 부분 따위는 하나도 없을 텐데,

 그것의 어디가 <기쁜 듯이>라고 할 만한 부분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새 소파에 기묘한 거리감.

 야릇한 시선.

 가까운 듯해도 먼 거리.

 아오이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한다. 

 이 남자는 남자를 연애대상으로 보는 남자니까.

 하지만 <죽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증오하고 있던 자신을

 쉽사리 <좋아한다>로 변환할 수 있는 머리는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걸까?

 잠이 오지 않는 데다가 목이 말랐다.

 술을 마신 탓임에 틀림없었다.

 침대 위에서 윗몸을 일으키자 목의 사슬이 차르륵 소리를 냈다.

 커튼 틈으로 어두침침한 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외등 불빛.

 차광 커튼 사이를 비집고 숨어든 그 빛은,

 천장에 가느다랗고 희미한 빛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것을 바라보다 별 생각없이 옆으로 시선을 던진 오오코오찌는,

 이쪽을  보고 있는 고양이 같은 눈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응시 당하고 있는 줄은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오이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거리를 스윽 좁혀왔다.

 오오코오찌는 황급히 몸의 방향을 틀었지만, 달아날 수 있을 만한 공간은

 등뒤에 남겨져 있지 않았다.

 몸이 떨렸다.

 "내가 무섭습니까?"

 밤에 녹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옛날처럼 무작정 무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가 발치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일거일동이 자신에게 뭔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가

 상상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저녁식사로 개사료는 나오지 않게 되었고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해도,

 벌거벗고 사슬에 묶이는 행위가 계속되는 이상…,

 남자가 자신의 곁에 기묘한 형태로 계속 눌러 앉아 있는 이상,

 자신은 이 남자를 이해하고 싶다고도 이해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오이케가 사슬을 잡아당겼다.

 반동으로 오오코오찌의 턱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그 턱을 붙잡고 마치 키스라도 할 듯이 남자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사랑합니다."

 속삭인 뒤에 손가락은 떨어지고 남자도 멀어졌다.

 그리고 큭큭거리며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비웃은 남자는

 여운을 품은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우습지 않습니까?"

 남자는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는데요…."

 몇번이나 몰래 돌아보았다.

 남자는 마침내 잠들었는지, 시계처럼 규칙적인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오오코오찌는 침대를 슬며시 빠져나왔건만,

 침대 다리에 묶인 사슬은 너무 짧아서 침실 문에도 손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치 넘을 수 없는 울타리를 앞에 두고 발버둥치는 개처럼

 오오코오찌는 바닥을 손톱으로 박박 긁고 있었다.

 그러다가, 혹시나 자신이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꼴불견인 모습을 저 남자가 비웃으며 보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당황해서 돌아보았다.

 하지만 베개에 파묻힌 남자의 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태어난 이래 그토록 무섭게 느껴진 말은 없었다.

 보통 인간이 아닌 저 남자의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기만 해도 등줄기가 부들부들 떨렸다.

 저 남자는 자신에게 도대체 무엇을 구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자신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남자끼리의 연애감정인가, 아니면 섹스인가?

 어느 쪽이든 정상이 아니었다.

 성적 기호에 관해서 말하자면 오오코오찌는 극히 노말이었다.

 끌어안고 섹스하는 것은 여성 말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남자끼리 사랑을 속삭이는 그런 오싹 소름끼치는 장면은 상상하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웠다.

 하지만 <기분 나쁘다>고 아오이케에게 말할 수 있을까?

 한번 화가 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그런 남자에게

 <나를 좋아하지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저 남자는 차츰차츰 나에게 침투해 올 것이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대의명분 하에 나를 유린할 수도 있다.

 지금은 거리가 있어도 언젠가 그 울타리가 짓밟히고 허물어져

 내 의사 따위는 무시 당한 채, 바라지 않는 최악의 형태로

 저 남자의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싫다, 싫어, 죽어도 싫다.

 소리없이 외치고 오오코오찌는 머리를 끌어안았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달아나자.

 저 남자에게 잡혀서 물어뜯기기 전에 달아나는 거다.

 하지만 어디로 달아나면 저 남자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까?

 도망쳐도 저건 나를 쫓아오지 않을까?

 처음에 원한을 풀려고 했을 때의 그 집념으로

 찾고 찾고 또 찾아…끝내 나를 붙잡지는 않을까?

 그렇다.

 나는 남자와 연애할 시간 따위 없다.

 주말이 되면 부장이 그의 딸을 소개해줄 거다.

 어떤 용모의 여자든, 부장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여자는 내 옆에 있을 가치가…, 아내로 삼을 의미가 있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한다면 그 여자하고 할 거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상상이 된다.

 저 남자의 손이 나를 만지고 키스하고…아아, 기분 나빠.

 토할 것 같다.

 이제 저 남자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 

 눈길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오오코오찌는 침대 다리로 달려가서 사슬을 잡아당겼다.

 이것만 풀면 달아날 수 있다.

 이제 배부른 소리는 하지 않겠다.

 여기에서…녀석에게서 달아날 수만 있다면 불평은 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오오코오찌의 바램도 허무하게, 튼튼한 사슬은

 아무리 잡아당겨도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만 긁혀서 열을 띠고 쓰라리며 아팠다.

 시계가 째깍째깍 시간을 새기고 있다.

 이제 곧 밤이 새고 아침을 기다리면…회사에 출근하는 척하고 그대로 달아나면….

 그러는 편이 얼마나 현명한지 모른다.

 알고 있는데, 리스크가 높은 지금 당장 달아나고 싶다는

 초조한 감정이 행동을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초조가 정점에 달한 오오코오찌는 사슬을 난폭하게 내던졌다.

 비록 그 소리에 아오이케가 잠을 깨도 상관없다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고 멈칫멈칫

 남자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침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이 솟구친 오오코오찌는

 침대를 등지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어디에도 갈 수 없고 달아날 수도 없는 자신이

 딱딱한 바닥 위에서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슬을 차르르 끌어당겼다.

 그리고 사슬 하나 하나의 어딘가에 균열이나 갈라진 틈이 없는지

 손끝으로 만지고 확인하는 동안에, 침대 아래에 거무스름한 것이

 비어져 나와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 사슬을 내던졌을 때 일부분이 침대 아래에 들어갔었는데,

 잡아당길 때 침대 아래의 쓰레기까지 같이 끌어당겨버린 걸까?

 별 생각없이 그 거무스름한 것을 가까이 끌어당긴 오오코오찌는

 눈앞에 나타난 그 전모에 경악했다.

 떨리는 두손으로 움켜올리듯이 그것을 손에 잡았다.

 상상보다도 훨씬 가볍고…차갑다.

 자신을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능욕하며

 개같은 행위를 강요한 강대한 위력을 지닌 흉기.

 오오코오찌는 천천히 오른손에 권총을 잡았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처음으로 손에 잡는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을 만큼 손가락에 착 달라붙었다.

 절대적인 위력을 지닌 것을 손에 들고 오오코오찌는 훌쩍 일어섰다.

 그리고 침대를 빙 돌아, 잠든 남자의 앞에 섰다.

 총구를 남자의 이마에 겨눈다.

 이 방아쇠만 당기면 나는 자유로워지고 원래대로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악몽은 일순으로 끝난다. 간단한 일이다.

 갑자기 무서워진 오오코오찌는 오른손을 축 늘어뜨렸다.

 자신이 무서웠다. 

 방아쇠를 당겨버릴 것 같은 자신이 참을 수 없이 두려웠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다.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을 죽일 그 어떤 정당한 이유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나에게 제대로 된 인생은 남겨져 있지 않은 것이다.

 궁지로 몰려 침식 당해서 썩어 갈 뿐인 것이다.

 오오코오찌는 가늘게 숨을 내쉬고 다시금 총구를 남자의 이마에 겨누었다. 

 그러나 오른손이 덜덜 떨려서 조준이 맞지 않았다.

 오른손을 지탱하려고 왼손으로 누르니, 이번에는 두 무릎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전신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그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오오코오찌는 자신의 일부가 된 듯한 총을 손에 들고 침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위에 떡 버티고 선 채 아오이케의 정면에서 내려다보며

 위에서 이마를 겨누었다.

 그래도 몸이 떨려서 오오코오찌는 무릎을 꿇었다.

 자세를 낮추는 것으로 안정감이 늘었다.

 손끝이 떨려도 이거라면 틀림없이 한방으로 이마를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오이케의 배에 올라타는 듯한 자세로 오오코오찌는

 남자의 미간에 닿을까 말까한 거리까지 총구를 가까이 댔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

 쿵쾅쿵쾅, 자신의 고동소리만이 아플 만큼 귀에 울렸다.

 어두운 방안에서 작은 권총만이 엄청나게 큰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만약 이걸로 남자를 쏘았다고 치자.

 그 뒤는 어떻게 하지? 자수하다니, 싫다.

 이 남자 때문에 형무소에 들어가다니 싫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듯하게 사체를 숨길 수가 있을까?

 문득 아오이케가 전에 말했던 살인계획을 떠올렸다.

 억지로 듣게 된 자신의 살해 방법.

 욕실로 운반해 뼈를 토막내는 것.

 이마는 쇠망치로 때리고 살덩이는 바다에 던지는 것….

 쇠망치도 톱도 사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오이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인간은 아주 극소수다.

 우에다와 어머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그 정도다.

 누군가가 찾으러 오면 갑자기 나갔다고 말하자.

 아아,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빨리 하지 않으면 아오이케가 잠을 깨고 만다.

 잔혹한 말로(末路)와 뒤처리의 상상조차,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지나지 않았다.

 도망가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수그린 오오코오찌는,

 크게 떠져 있는 검은 눈동자에 <우왁!>하며 비명을 질렀다.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남자가 이쪽을 빤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아오이케의 눈은 마치 야행성 동물처럼 크게 뜨여 있었다.

 그리고…자신이 죽임을 당할 상황에 놓인 것을 파악하고 있을 텐데,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자신의 이마에 있는 총과 그것을 겨눈 남자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렇게 떨고 있어서야 제대로 쏠 수 있겠습니까?"

 냉정한 목소리에, 오오코오찌의 등줄기에 땀이 솟아났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우위의 입장에 있는데, 이렇게 절대적인 흉기를 들고 있는데.

 무기도 몸에 지니지 않고 있는 남자에게 압도 당하고 있었다.

 "마음이 약한 주제에 사람을 쏘다니 정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도발하듯이 아오이케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여기도 이렇게 작아져 있는데."

 아오이케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비참하게 쪼그라든

 오오코오찌의 페니스를 마치 물건인냥 움켜쥐어 올렸다.

 오오코오찌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남자와 있으면 자신이 인간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개>라고 불리고 있었다.

 혹시 이 남자가 말하는 대로 자신이 개라면,

 인간의 죽음에 죄의식 따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걸까?

 허락되는 일일까?

 "으아아아악…!"

 공기가 진동하도록 드높게 소리지르고 오오코오찌는 방아쇠를 당겼다.

 허무한 소리는 찰칵찰칵 하며 울렸다.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들리는 것은 헛방아쇠가 당겨지는 단조로운 소리였다.

 아오이케는 이제 웃고 있지 않았다.

 그저 신경질적으로 몇번이고 몇번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오오코오찌를 메마른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그리고 불현듯 절대적인 흉기를 오오코오찌에게서 빼앗아

 그대로 맞은편 벽에 내동댕이쳤다.

 깨지는 소리.

 사방으로 튀는 파편.

 절대적인 것인줄 알았던 흉기의 너무나도 무르고 약하고 조잡함….

 "어린애 장난감은 재미있었습니까?"

 놀랄 만큼 가벼웠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가짜였던 것이다.

 자신은 장난감 권총을 진짜라고 믿고 울부짖으며

 꼴불견을 연기하고 지금까지 농락 당해온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아오이케는 자신의 배 위에서 돌처럼 굳은 채 신음하는 오오코오찌를

 거칠게 침대 위에 쓰러뜨리고 그 등뒤에 올라탔다.

 엉덩이를 물리고 오오코오찌는 비명을 질렀다.

 물어뜯기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사납게 깨물리고, 너무나 아파서 몸부림치며 발버둥쳤다.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의 엉덩이를 깨문 채 페니스를 손톱으로 마구 쥐어뜯었다.

 그리고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음낭을 세게 잡아당겼다.

 "으악, 악…!"

 넓적다리며 종아리.

 조금이라도 살이 붙어 있는 부분은 용서없이 깨물리고 피가 스며나올 만큼 쥐어뜯겼다.

 아오이케의 폭행이 그친 뒤에도, 지속되는 아픔에 오오코오찌의 몸은 가늘게 경련했다.

 반듯이 드러누운 오오코오찌의 배.

 내출혈을 일으켜서 보랏빛의 잇자국이 남은 부분을

 더욱 손가락으로 꼬집고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의 귓전에 속삭였다.

 "평생 가축처럼 기르다 죽여주겠어."

 커튼으로 스며드는 빛 속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픔 속에 매몰되어 오오코오찌는 눈을 감고 떨었다.

 공포 끝에는 절망.

 그 끝에는…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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