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2)

No,702 : 프레자일  Fragile (10) 

 이소노가 기획한 가정용 컴퓨터의 판매기획안이 입찰 결과 채용되게 되었다.

 메이커도 시장에서 1∼2위를 다툴 만큼 큰 기업이고 오랜만에 따낸 큰 

일이기 때문에 사무실은 활기에 차 있었다.

 직접 들여오는 일이나 영업에서 주워오는 일에 비해, 입찰을 하는 대기업 

메이커의 일은 자사에게도 당연히 이익이 크다.

 오오코오찌가 이소노를 전면적으로 도운 결과의 승리로,

 과장에게도 <잘 했다>며 칭찬을 받았다.

 어디 그뿐인가, 부장이 주말의 에정을 묻고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청을 해온 것이다. 그 식사에는 필시 부장의 딸도 올 테고, 오오코오찌 자신

이 싱글임을 어필하고 있었던 것이 간신히 공을 세운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고 이것이 회사만의 일이라면 오오코오찌는 흡사 순풍만조였다.

 하지만 쾌조를 보이는 일과는 정반대로, 오오코오찌는 현기증 나는 머리를 

몇번이나 가로젓고 새파란 얼굴로 기획서 체크를 하고 있었다.

 최종고에도 불구하고 규격이 다른 그래프 사이즈에 초조해 하면서 빨간 선을 넣었다.

 지끈지끈거리는 것이 가라앉지 않아 책상 서랍에서 알약을 꺼냈다.

 그리고 급탕실에 가려고 의자에서 일어선 순간.

 빈혈을 일으켜 눈앞이 컴컴해져서,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만히 있자니 간신히 눈앞이 환해졌다.

 다시 일어나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걸었다.

 그리고 급탕실에서 평상시 두배 양의 감기약을 위 속에 흘려넣었다.

 점심식사도 제대로 먹지 않은 공복에 약을 먹다니, 위에 좋지 않은 것은 알

고 있어도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속에 음식을 들여두는 쪽이 좋을 것 같아,

 1시간 쯤 전에 사내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사서 마셨다.

 하지만 금새 마시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종이컵의 커피를 반도 마시기 전에 강렬한 메스꺼움에 사로잡혀 토했기 때문이다.

 급탕실의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파랗고, 광화학 스모그 탓인지 조금 

뿌옇게 흐려 있었다. 햇살은 따갑고 지난 일주일 쯤 비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7월도 중반에 접어들어 슬슬 장마철도 끝날 무렵이건만, 일기예보는 맑

은 말이 계속된다고 되풀이할 뿐 정확한 선언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오오코오찌는 가볍게 기침을 했다.

 한번 콜록거리기 시작하니 좀처럼 멎지 않아, 가슴이 아파질 만큼 계속되었다.

 2∼3일 전부터 몸 상태가 이상했다. 

 미열이 가시지 않고 몸은 나른하며 빈번히 현기증이 났다.

 여름고뿔에 걸린 것은 확실한데 약을 먹어도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정액이 뿌려진 개사료를 먹게 된 것은 1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집에 남들이 오는 일은 없었지만, 개목걸이를 차고

 알몸으로 밤을 보내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매일밤 강제적으로 개사료를 먹는 탓에 구토를 반복해서

 위의 상태도 이상해져 있었다.

 덧붙여, 지난 며칠간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캔에 든 개사료를 준비하게 되었다.

 고형보다도 비린내가 나고 맛없는 사료를 눈물을 흘리면서 먹는 오오코오찌를

 아오이케는 즐거운 듯이 웃으며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계셨습니까?"

 급탕실에 들어온 이소노는 먼저 온 손님이 있는 것에 놀란 얼굴을 했다.

 "혹시 계장님도 커피 타임이신가요?"

 이소노는 싱긋 웃고 인스턴트 커피를 컵에 담았다.

 뜨거운 물을 따르자, 커피 냄새가 주위에 충만해서 오오코오찌는 얼굴을 돌리고 입을 막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조금 야위신 것 같네요. 특히 얼굴이라든가…."

 이소노는 커피를 마시면서 물어왔다.

 "혹시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거 아닌가요?"

 이 무슨 인간다운 대화일까 생각했다.

 비록 이것이 인사치레의 말이라 해도 이게 <보통>인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말을 걸어 위로하는 이것이.

 "최근 덥기 때문에 식욕이 없어서."

 이소노는 <아아, 그렇습니다>하고 중얼거리더니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

보았다.

 맨션. 자신은 사람의 말을 쓰지 못한 채 <멍멍>이라고 짖는 것만 허용된다.

 아오이케는 잠들 때까지 사슬을 놓지 않는다.

 때문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가랑이를 손으로 가리고 <멍멍> 짖어야 하고,

 토하고 싶을 때는 입을 막고 화장실을 가리키는 등의

 그 나름대로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호소해서 만족되는 욕구는 그 둘뿐이었다.

 그저께는 머리가 가려워서 참을 수  없어 '목욕하고 싶다'고 손짓 발짓으로

호소했다. 아침에 일단 몸단장은 하도록 허락 받고  있지만 욕실에 들어가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땀이 나서 끈적거리는 살갗도  기분 나빴지만 무엇

보다도 머리를 감지 못하는 것이 신경쓰였다.

 <냄새난다>고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목욕 욕구는 그럭저럭 아오이케에게 전해져서 오오코오찌는 욕실에 이끌려 들어갔다.

 맨처음 폭행을 당했던 날의 물의 공포를 떠올렸지만,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에게 그런 의미로 손을 내미는 듯한 일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의 입욕으로 몸은 개운했다.

 하지만  뜨거운 물은 쓰게 해주지 않아, 

감은 머리도 말리긴커녕 수건으로 문지르지도 못하고 젖은 채로 방치되었다.

덧붙여 아오이케는 그 날부터 방에 냉방을 넣었다.

 덜덜 떨면서 밤을 보냈다.

 몸 상태가 결정적으로 나빠진 것은 그 뒤부터였다.

 이소노는 먼저 급탕실에서 나가고, 오오코오찌는 급탕실의 작은 창문을 열었다.

 아오이케 타쯔로오라는 남자는 마치 기생충이었다.

 자신에게 기생하고 집에 기생한 끝에 인생에까지 기생하고 있다.

 그리고 <소거>할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미열에 들떠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깨는 한밤.

 차가운 바닥의 감촉과 알몸으로 자는 현실에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사람답게 먹고 사람답게 자고 사람답게 대우 받는 그런 당연한 일을 갈망하고 있었다.

 달아나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도망간다는 말은, 지금까지 자신이 노력해온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다.

 간신히  부장의 딸도 만나게 되었는데…

 이대로 가면 회사의 간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번 더 경찰서에 갈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권총만 찾으면 녀석은 체포된다.

 하지만 여럿이서 법썩을 떤 날 이후 아오이케가 총을 갖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딘가에 감춰두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가 없다.

 밤중에도 사슬로 묶여 있는 지금 상태로는 찾을 수도 없다.

 통보해도 경찰이 권총을 찾지 못하면?  아오이케를 체포하지 못하면?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금  이상의 지옥일 것이다.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 총으로 꿰뚫려 일순으로 죽을지 모른다.

 한방의 총탄으로 자신의 인생은 어이없게 끝을 고하는 것이다.

 농담 아냐….

 오오코오찌는 강하게 자신을 타일렀다.

 자신에게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아오이케 같은 녀석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필요는 없다.

 녀석이 자신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듯이 자신도 녀석을 죽이고 싶다.

 녀석만 없으면…녀석만….

 현기증이 났다. 정말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

이 신기했다.

 오오코오찌가 사무실로 돌아간 것과 거의 동시에 여직원이 돌아보았다.

 "계장님, 3번선에 전화 와 있습니다."

 오오코오찌는 작게 기침을 하고 코를 훌쩍인 뒤에 수화기를 들었다.

 회사를 나가 5분도 걷기 전에 숨이 가빠져왔다. 낮이 지나고  나서 더욱 몸

이 나른해지고 달아오른 손 끝에  열이 올라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일찌감치 집에 돌아가서 눕는 편이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꼭 만나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속한 커피숍에 먼저 와 있던 우에다는 오오코오찌와 눈길이 마주치자

 어딘가 긴장한 얼굴로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오랜만이구나."

 걷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린 오오코오찌는 대꾸도  하지 않고 쓰러지듯이 의

자에 앉았다. 웨이트레스가 가져온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여자 같아서 부

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홍차를 주문했다.

 커피는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우에다의 빈 커피잔에서 풍기는 향기조차 코를 강하게 찔렀다.

 "만나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정직한 우에다의 말에 오오코오찌는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을 듣다니 뜻밖인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 해도 그럴듯하게 짜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떠들면서 오오코오찌는 주위에 조심스럽게 시선을 던졌다.

 회사에서 떨어진 장소에 있는 커피숍이라고 해도 같은 회사의 인간이 없다는 보장은 없다.

 우에다는 자사에서 라이벌회사로 헤드헌팅 된 남자다.

 그런 남자와 같이 있는 장면을 보여서 둘이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는다.

 "너에게는 미움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같이 일하고 있을 때는 이런 저런 말들도 했고."

 물론 우에다는 싫다. 지금도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다.  일을 잘했던 것도

부하를 능숙하게 부리던 것도 인망이 두터운 것도, 그리고 자신을 노골적으

로 경멸하고 있었던 것도 모두 화가 났다.

 "옛날 일은 이제 물에 흘려보내자구. 실은 조금 급한  일이 있어서 오래 얘

기하고 있을 수 없단 말야. 전화로는 아오이케가  어떻다든가 말하고 있었잖

아."

 몸이 안 좋고 이렇게 기분에 거슬리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려고 생각

한 이유. 그것은 우에다가 전화에서 <아오이케에 대해 묻고 싶은 일이 있다

>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론을 꺼낸 순간, 우에다는 난처한 듯이 얼굴

을 수그렸다.

 "회사를 그만둔 주제에 뻔뻔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오이케 타

쯔로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면 좋겠어서. 연락을 하고 싶어."

 평정을 위장하면서도 오오코오찌의 심장은 튀어나올 만큼 고동치고 있었다.

우에다가 연락을 취하고  싶다는 아오이케는 지금  자신의 맨션에 기생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집인냥 행동하고 남에게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개사료를 먹

이고는 기뻐하고 있다.

 "아아, 아오이케 말이군…."

 알고 있는 척해 보인 순간, 우에다가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었다.

 "알고 있나?"

 "뭐어…."

 우에다는 반색을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지만 너에게 묻길 잘했다. 같이 일하고 있던 사

람들한테 물어봐도 회사를 그만둔 뒤의 아오이케의 행선지는 아무도 몰랐단

말야."

 오오코오찌는 웨이트레스가 가져다준 홍차를 입에 댔다.

 "왜 이제와서 새삼 녀석을 찾고 있는 거야?"

 우에다는 순간 표정을 굳혔지만 바로 너스레를 떠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했다.

 "숨겨봤자 알게 될 테고 솔직하게 말하지. 난 인재를 찾고 있어. 새 회사에

옮긴 건 좋지만 일손 부족이라서. 내 한팔이 되어 일하고  전력이 되어줄 녀

석을 찾고 있어."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우에다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너한테는 기분 좋은 얘기가 아니겠지."

 만약 자신이 아오이케에게 그런 심한 꼴을 당하지만 않았다면, 우에다의 제

안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오코오찌는 자신의 눈앞에 밝은  서광이 비쳐들고 길이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 남자에 대해서는 나도  마음에 두고 있었

단 말야. 자네가 없어진 뒤 내 팀에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자네 만큼 그

를 잘 부리지 못해서. 의견의 차이라고  하면 될까나. 그래서 그는 고민하다

가 결국 회사를 그만둬버렸지. 하지만  만약 자네 회사에서 그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만 있게 된다면, 꼭 그렇게 해주길 바라네."

 우에다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웃었다.

 "기뻐,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해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실은 회사를 옮길

때, 아오이케도 데려가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단 말야.

 하지만 저쪽 회사의 체제나 방향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자신의 형편에 상대를 휘말려들게 하면 안된다고 단념하고 있었단 말야.

 반년이  지나서 간신히 안정되

고 이번에야말로 아오이케를 빼내주려고 했더니 이미  회사를 그만뒀다잖아.

솔직한 심정으로, 아주 잘 됐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서 어

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었단 말야."

 우에다의 고백 따위 무시하고 오오코오찌는 중요한 얘기를 진행시켰다.

 "그 아오이케 말인데, 지금은 여기저기를 전전하고 있어서  살 곳이 일정하

지 않아. 만약 자네의 연락처를 가르쳐 준다면 아오이케가 직접 연락을 하도

록 전하겠지만…그래도 괜찮겠어?"

 우에다는 달갑게 자신의 명함을 빼더니 뒤에 자택 전화번호와 휴대폰 번호

를 써서 오오코오찌에게 건넸다.

 "귀찮겠지만 잘 부탁한다. 아, 맞다. 뭔가 먹고 돌아갈래?"

 그런 것보다도 오오코오찌는 지금 당장 이 명함을 아오이케에게 넘기고 싶었다.

 "아, 미안. 시간이 없어서. 모처럼이지만 이만 가봐야 겠어. 그럼…."

 헤어지는 인사도 하는둥마는둥 하고  의자에서 일어선 순간,  오오코오찌는

강렬한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어질어질한  게 몸이 흔들린다.  뭔가 잡을 것

을…. 그렇게 생각하고 테이블에 손을 짚었지만 팔꿈치에 힘이 들지 않아 몸

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바닥에 쓰러질 것을 면한 것은, 우에다가 몸을 부축해 줬기 때문이었다.

 남자를 의지하고 가만히 있자, 현기증의 기척도 조금씩 멀어져갔다.

 "괜찮냐? 굉장히 뜨거운데.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거 아냐?"

 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는 조금 눈살을 찌푸렸다.

 "아아, 별 일 아냐. 고마워."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이 똑바로  서 보였다.

 이제 일각이라도  빨리 맨션에 돌아가고 싶은 일념에,

 걱정스런 표정의 남자를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나중에서야 자신 몫의 계산을 잊은 것을 떠올렸지만,

 가게로 돌아가기 귀찮아서 잊기로 했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오오코오찌는 얘기의 요점을 메모장에  쓰고 우에다

의 명함과 함께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이것을 계기로 아오이케가 우에다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그쪽으로 의식이 집중해서 자신에 대한 폭력이나 이지메도 줄어들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에다는 아오이케가 따르고  있던 상사로, 회사는 똑같은 기획회사.

 아오이케는 좋아한다고 말하던 기획 일을 전과 똑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뭔가 일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오오코오찌가 출근한 뒤에도 밖에 나갔던 흔적조차 없고 어떤 시각에 퇴근을 해도

꼭 집에 있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만 기쁨을 보이고 있는 그 남자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택시 뒷좌석에서 문에 기대다시피 하고 앉아, 오오코오찌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열 탓인지 아니면 안도감 때문인지 강렬한 졸음이 몰려와, 맨션 앞에 올 때

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질질 끌어 가까스로 집까지 도착한다.

 현관에 선 채로 오오코오찌는 방안에서 아오이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허락을 받기 전에 멋대로 복도에 들어가면 안 된다.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남자는 심기가 사나워진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는 게 쓰러질 것 같아서 벽에 기대어 섰다.

 이윽고 남자가 복도에 모습을 보였다.

 오오코오찌의 바지며 서머쉐터를 태연한 얼굴로 몸에 걸치고 있다.

 그런 무신경함에 상처입는 것에도 이미 익숙해졌다.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위아래로 회사 퇴근의 오오코오찌를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늦었군요."

 전에없이 목소리의 상태가 무뚝뚝한 것은, 퇴근이 늦어진 것에  화가 나 있

기 때문이다. 아오이케는 일방적으로 불만을 흘릴 뿐, 변명이나 반응을 원하

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곧이곧대로 듣고 섣불리 떠들면  <개 주제에>하며 화

를 내고 때린다.

 "요즘은 바쁘지 않잖습니까? 일이 끝나면 곧장 돌아오세요."

 오오코오찌는 얕게 끄덕이고 양복 윗도리에서 종이조각을 꺼내어 아오이케

앞에 내밀었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오이케는 종이를 받아들어 그

대로 호주머니 안에  찔러넣자, <벗으세요>하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읽어주길 바랐지만 말로 부탁할 수도 없어, 오오코오찌는 마지못해 윗도리에

손을 걸쳤다.

 벗을 때까지는 추운 줄  몰랐는데, 알몸이 된 순간  등줄기가 오싹오싹해졌

다. 가느다란 떨림이 멎지 않았다. 그런 오오코오찌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오

이케는 평소대로 은색 개목걸이를 목에  채우고 사슬을 난폭하게 끌면서 거

실로 향했다.

 아오이케는 소파에 천천히 걸터앉더니, 손에 들고 있던 사슬을 여유를 두고

다시 쥐었다. 네발로 기는 것도 힘들어서 카펫 위에 웅크리고 앉은 오오코오

찌는 식욕을 불러 일으키는 치즈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로우테이블 위에, 배달시킨 것으로 보이는 빈 피자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개밥그릇.

 전에없이 수북히 담겨 있는 개사료에, 오오코오찌는 먹기  전부터 속이 메스

 꺼워졌다.

 "퇴근도 늦었고 배도 고플 것 같아서 오늘은 특별히 많이 준비했습니다.

 사양 말고 먹어주세요."

 이것이 아오이케의 방식인 것이다.

 늦게 퇴근한 것을 이런 형태로 벌주는 것이다.

 음성은  부드럽지만 찌를 듯한 눈빛은 <빨리 먹어라> 하고 재촉하고 있었다.

 오오코오찌는 사료 앞까지 느릿느릿 가서  수북히 담긴 사료를 내려다보았

다.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도  속이 울렁거렸다.

 먹으면 토할 거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좀처럼 입에 담을 결심이 서지 않았다.

 "먹지 않을 겁니까?"

 남자가 초조한 듯이 말을 내뱉고 노려본다.

 이 이상 기다리게 하면, 다음에 오는 것은 때리고 걷어차는 폭력이다.

 오오코오찌는 여기에 있는 것은 참치캔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이것은 조금 싱거운 참치캔….

 냄새를 극력 맡지 않도록 하며 한입 두입 입에 담았다. 

 그리고 깨물지 않은 채 삼키고는 물로 흘려 보냈다.

 그런 식으로 다섯 번째를 삼킨 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구토감에 사로잡혔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입을 두손으로 덮고 카펫 위에서 몸부림치는 오오코오찌를 싸늘한 눈이 내

려다보았다. 토하고 싶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화장실에  보내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미 입속까지 사료는 역류해 와, 오오코오찌가 손으로 간신히 누르

고 있는 듯한 상태였다.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사슬을 철컹 소리나게 바닥  위에 내던졌다. 화장실

로 달려들어간 오오코오찌는 변기를 붙들고 매달린 채 우웩우웩 토해버렸다.

나중에는 위액밖에 나오지 않아, 게워낼 것도 남지 않았다.

 갑자기 달린 탓으로 현기증이 심해져 변기에서 떨어졌지만 거실까지 돌아

갈 수가 없어, 오오코오찌는 복도 구석에 몸을 말고 웅크리고 앉았다.

 10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자신에게 초조해졌는지  아오이케가 복도에 나와서

말없이 사슬을 잡아당겼다.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는 바람에  등이며 팔이 긁혀서 상채기가 생겼다.

 거실로 되끌려가 다시 사료가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어째서 먹지 않는 겁니까?"

 먹어도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 분노와 폭력을 각오하고 오오코오찌는 고개

를 가로저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채 아오이케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떼를 쓰면 못씁니다.  아니면 브로일러(*broiler:불고기용  영계입니다)처럼

강제적으로 먹여주길 바라는 겁니까?"

 사료 기계를 목구멍 속까지 쳐박혀서 억지로 먹는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공포로 두눈에 눈물이 고였다.

 "울어도 소용없습니다. 나쁜 건 당신이니까."

 젖은 뺨을 발바닥으로 뭉글뭉글 뭉갠다.

 아오이케는 어떻게 하면 프라이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상처입힐 수 있는지

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한숨 소리가 주위에 울렸다.

 "할 수 없군요. 오늘은 특별히 봐줄 수도 있습니다.

 단, 이걸 잘 핥을 수 있다면 얘기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

고 있던 발끝이었다.

 "이걸 핥는 것과 남은 사료를  먹는 것. 어느 쪽이 좋습니까?

 어느 쪽이든 나는 상관 없습니다만."

 구토를 반복하는 것보다도 발가락이 몇배는 낫다고 여겨졌다.

 오오코오찌는 눈앞에 있는 아오이케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깔끔하게  정돈된 발톱 모양을 빤히 쳐다보았다.

 남의 발 따위  더럽다.

 바닥을 딛고 걸어다녀서 먼지며 바이러스가 많이 묻어 있고….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망설임이 늘어간다.

 오오코오찌는 입을 벌리고 그 안에 발끝을 끌어넣었다.

 "하나 하나씩 전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정중히 핥아주세요."

 엄지발가락부터 핥았다. 상상한 맛도 냄새도  거의 없고, 사료에 비하면 불

쾌감이 적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할짝할짝 자신의  타액 소리만이 울렸다.

 아오이케의 오른발이 자신의 타액으로 미끌미끌해지기 시작한 무렵, 이

번에는 왼쪽발이 들이밀어졌다.

 왼쪽발에도 똑같이 혀를 감는다.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가 괴로워하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입안에 품고 있을 때 발가락

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콜록거리고 눈물 고인 눈으로 행위를 계속하는

 오오코오찌를 아오이케는 만족스럽게 보고 있었다.

 "당신은 고작 한달전까지만 해도, 알몸으로 내 발을 핥는  날이 올 줄은 생

각도 못했겠죠?"

 당연한 말을, 오오코오찌가 다시금 인식해 버리도록 되풀이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남의 발을 핥다니,  흡사 개의 행위입니다.

 아니면 계장님에게는 프라이드라는 말은 이제 남아 있지 않은 건가요? 뭐, 그런 게 있

다면 남앞에서 오줌을 지리는 일 따위 하지 않겠지만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말의 능욕에 등줄기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오이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혀를 감고 있는 자신이 갑자기 한심해

져, 혀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오이케의 발끝이  갑자기 빠져나간다.

 투명한 타액의 실을 끄는 그것은 무서울 만큼 음란했다.

 "계장님은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 핥는 것이 능숙하군요.

 아예 회사 따위 그만두고 이쪽을 전문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가게를 소개해 드리죠.

 지금의 일을 하는 것보다도 천성적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아오이케가 얕게 숨을 토하고 벨트 버클에 손을 걸쳤다.  찌지직 하는 소리

와 함께 지퍼가 내리고, 회색 브리프의 갈라진  틈으로 아무렇게나 페니스를

꺼냈다.

 "핥는 것이 능숙한 계장님에게, 내친김에 이쪽까지 부탁해도 될까요?"

 오오코오찌는 말을 잃었다.

 아오이케는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페니스를 핥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발

끝이라면 또 몰라도 평소 배세 행위에 쓰는 부분을 입으로 핥다니, 제정신으

로 할 짓이 아니었다.

 게다가…깨끗하게 닦은 뒤도 아닐 것이다.

 엉거주춤 허리를 빼는 오오코오찌를 재미있어 하듯이, 아오이케는 개사슬을

잡아당겼다. 허리는 뒤에 남아있어도 얼굴만은  그것에 다가간다. 끝내는 목

걸이를 붙잡혀 가랑이에 얼굴이 밀어붙여졌다. 아오이케의  페니스가 코끝과

입가에 닿고, 음모가 뺨을 스치며 싫은 소리를 냈다.

 "입을 크게 벌려주시겠습니까?"

 오오코오찌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머리를 치켜들더니 아오이케는 명령했다.

 "이제 이 정도는 당신에게 대단한 일이 아닐 텐데요."

 떨다시피 하며 고개를 가로저은 다음  순간, 왼쪽 뺨을 얻어맞았다. 오른쪽

뺨, 왼쪽 뺨 순으로 반복해서 얻어맞아 머리는 흔들목 인형처럼 흔들거렸다.

 분노 따위 치솟지 않았다. 아픔과 절대적인 힘이 오오코오찌로부터 <저항>

이라는 말을 앗아갔다.

 코를 붙잡혀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렸을 때도, 어딘가  체념과 비슷한 기분

이 있었다. 그리고 강인하게 입안에  밀어넣어진 것을, 눈물지으면서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입안에 넣기만 했는데도 그것은 분명히 질량을 늘렸다.  그것이 혐오감보다

도 질식감 쪽이 이겨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고통 따위 아랑곳하지 않

고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의 머리를 기계적으로 앞뒤로 움직였다.

 "전에…."

 낮게 갈라진 음성이 속삭였다.

 "이지메가 심해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을 능

욕할 방법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줄로 묶거나 성인  완구를 쓰거나 복수의

남자에게 레이프 당하게 하거나."

 아오이케의 손끝이, 무방비한 엉덩이의 골짜기를 스윽 쓸어내렸다.

 "남자 밑에 깔려서 울부짖으며 나에게  용서를 비는 당신의 모습은 상상하

기만 해도 짜릿해."

 입속의 아오이케가 더욱 질감을 늘렸다. 그것과 동시에 앞위로 움직이는 동

작이 격렬해졌다. 오오코오찌는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낮은 짐승같은 신음소리를 지른  뒤, 아오이케의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목속 깊숙이 풋내가 퍼진다….

 사정을 끝내자 페니스는 대뜸  빠져나갔다.

 곁에 있던 티슈로 젖은 부분을 깨끗이 닦은 아오이케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것을 바지 안에 집어넣었다.

 오오코오찌는 입속에 사정된 정액을 개사료 위에 토해냈다. 물로 헹구어 내

고는 뱉어낸다.

 "바보 같아…."

 아오이케는 풀쑥 중얼거리고 불현듯 웃기 시작했다.

 뭐가 우스운건지, 키들키들 소리 내어 웃는다.

 웃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어,

 오오코오찌는 고개를 수그리고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아오이케가 일어서는 기척이 있었다. 사슬을  끌리는 대로 기었다.

 평소 아오이케는 취침 전에 오오코오찌의 사슬을 화장실에 묶지만,

 오늘은 그 시간이 굉장히 일렀다.

 아오이케가 침실로 사라진 순간,  손끝까지 팽팽히 차 있던  긴장감이 스윽

빠졌다. 나른함이 되살아나 네발로 기고 있는 것조차 괴로워서 복도 위에 웅

크리고 앉았다. 노출된 등줄기가 오싹거리면서 굉장히 추웠다.

 오오코오찌는 미간을 찡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나고 싶지  않은데 떠올랐다.

 입안을 몇번이고 오간 그것. 뜨겁고 단단하며 기분  나쁜 남자의 성기.

 개사료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마지막은 단념하다시피 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것을 입안에 넣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풍속점의 여자처럼 자신의 입으로 아오이케를 사정하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자신은 이런 일을 하는 인간이 아닐 테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여워서 눈물이 나왔다. 그런 것을 핥고 얻어맞고  우는 자신이 불

쌍했다. 이렇게 추운데 몸에 걸칠 것  하나 주어지지 않는 자신이 비참했다.

뭐든 풍요롭게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어째서 자신만 이런 부자유하고 비참

한 생활을 강요받지 않으면 안 될까…. 모든 것은 그 남자가 원인이었다. 아

오이케 타쯔로오의 존재가…원인이었다.

 그때, 엄청난 기세로 침실  문이 열리는 바람에 오오코오찌는  놀라서 튀어

일어났다. 발소리는 소란스럽게 복도를 가로질러  거실로 사라졌다. 문이 닫

힌 탓으로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아오이케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만은 알 수 있었다.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은 필시 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뛰어들었을 때

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발걸음으로 침실에 돌아간 아오이케는 10분도 지나

기 전에 옷을 완벽히 차려입고 세컨드백을 들고 다시 복도에 모습을 나타냈다.

 어딘가 나가는 듯이, 현관 거울을  들여다보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한 아

오이케는 철문을 밀어열었다.

 금속음이 복도에 울리고 이윽고 침묵이 찾아들었다.

 아오이케는 우에다에게 연락을 취한 걸까? 지금 만나러  가는 건가, 아니면

친구에게 다시 취직을 한 보고라도  하러 가는 건가…. 어디로  갔는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런 일 아무래도 좋다.

 복도에 드러누워 눈을 감아도 오한과 몸의 떨림이 멎지 않았다. 아오이케가

돌아올 때까지, 그동안만이라도 따뜻하게 있고 싶어서 오오코오찌는 몸을 일

으켰다. 하지만 일어서려고 해도  현기증이 심해서 일어설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네발로 기었다.

 자신이 토해내는 숨결이  뜨겁다.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숨이 가빠오며 식은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슬이 미치는 범위에서는 탈의실까지밖에 갈 수 없었다. 기대를 담고 란도

리를 찾는다. 주름진 셔츠와 바지. 그것이  누가 입었던 옷인가는 지금 아무

래도 좋았다. 그것을 몸에 걸치자 아오이케의  냄새가 났다.

 마치 곁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오싹했지만,

 한번 손에 넣은 따스함을 놓을 수는 없었다.

 좁은 탈의실 안. 바스매트와 수건을  모조리 꺼내서 포갰다. 아오이케가 돌

아오기까지 잠깐의 따스함에 얼굴을  밀어붙이고 오오코오찌는 등을 둥글게

말았다.

 무서운 것에 쫓기고 있는 꿈을 꾸었다.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기어 달

아난다.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섭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

다. 그것은 어디까지고 끝없이 쫓아왔다. 울고  불고 해도 소리는 나오지 않

았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와주지 않았다.

 퍼뜩,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떠도 그것이 현실이라고

는 생각할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났는데도 여전히 필사적으로 도망다니고 있던 때와 똑같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발소리가 다가온다. 아오이케다. 아오이케가 돌아왔다. 들키기 전에 옷을 벗

지 않으면 안 된다. 허락도 얻지 않고 옷을 입은 것이 발각되는 날에는 심한

일을 당하고 만다.

 초조해서 일어나려고 한 오오코오찌는 자신의 손 끝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에 놀랐다. 손가락에 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뒤척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 있을 텐데, 눈앞의  풍경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목구멍이 타

듯이 아프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확확  달아오르고 숨결까지 뜨

거웠다. 전에도 몇번이가 심한 감기를 앓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심한 상태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죽을 것 같았다. 이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건

싫다고 생각했다. 탈의실 같은 곳에서 개줄에 묶인 채 죽고 싶지 않았다. 이

런 비참한 꼴로 죽기 싫었다.

 슬퍼서 울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조차 타는 듯이 뜨거웠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그러나 아오이케는 지저분한 옷으로 몸을  둘둘 말고 누워있는 오오코오찌

를 봐도 별로 화내는 기미가 없었다. 굉장히 기분이 좋은 듯, 가볍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있었다.

 "사…살…려줘…."

 엉뚱한 상대에게 도움을 청해 버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오오코오찌의 목소리는 들렸을 것이다. 아오이케가 돌아보았으니까. 하지만

가볍게 숨을 내쉬고 어깨만 으쓱했을 뿐, 그냥 탈의실에서 나가버렸다.

 멀어지는 발소리와는 반대로 밀물 듯이 다가오는 무엇을 예감했다. 눈을 감

자, 지금까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다 할 커다란 기복이 없는 평탄한 도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은 장해에 부딪혀 실패한 것이다.

 예상도 하지 않았던 남자에게 발목을 붙잡혀서….

 점차로 의식이 멀어졌다.

 오오코오찌의 시야에 마치 영화의 엔딩처럼 검은 막이 드리워져 갔다.

 다음이 끝입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읽었을 때보다 번역할 때가 훨씬 더 지치고…,

 도망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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