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2)
  • No,648 : 프레자일  Fragile (5)  

     회계과의 코스게는 수수한 남자였다.

     동기인 까닭에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 그렇지 않았다면

     기억에 정착되지 않을 부류의 남자였다.

     눈에 띄게 일을 잘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이 회사에서는 

    회계과라는 시점에서 이미 그가 도달할 곳은 훤히 보였다.

     나이 30을 넘기면 저절로 그 인간의 방향이라는 것이 보이게 된다. 

    평생 일벌로 끝날 지 많은 벌들을 부리는 쪽이 될 지. 그리고 코스

    게는 틀림없이 일벌로 끝날 타입의 남자였다.

     점심시간.

     사용하고 있지 않은 빈 회의실로 불러냈을 때, 하얀 피부에 체구가 

    작은 남자는 오오코오찌의 앞에서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한테 무슨 볼 일이야?"

     오오코오찌는 자신이 불러낸 남자에게 의자를 권하지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아오이케와 사귀고 있지?"

     코스게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꺼내는 거야?"

     부정하는 말을 배반하듯이 코스게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애꿎게 맞부비는  손의 약지에는 기혼을  나타내는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뻔한 내용의 대화를  언제까지고 계속할 맘이 없는 오오코오찌는 

    가라앉는 공기를 일소하듯이 회의실의 긴 테이블을 세게 두드렸다.

     "별로 숨길 필요는 없어. 난 결혼한 몸이면서 남자를 연인으로 두는

     네 모럴없음을 탓할 마음은 없단 말야. 그저 아오이케의  행선지

    를 알고 싶을 뿐이야. 아파트도 이사를 가버려서 지금 어디에 있는

    지 몰라.

     연인인 너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묻는 거야."

     코스게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5분쯤 오오코오찌를 초조하게 만든  뒤에야 코스게는 가까

    스로 얼굴을 들고 의아하다는 눈으로 빤히 응시해 왔다.

     "난 몰라."

     "모를 리 없잖아! 너희들은 행길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키스

    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대들다시피 소리를 지르는 오오코오찌와 반대로, 코스게는  처음에

    허둥대고 있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냉정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요즘 시대에 초등학생들도 키스 정도는 하잖아. 그리고 어째서

     아오이케가 있는 곳을 알고 싶어하는 거야? 벌써 회사도 그만둔 남자잖아."

     머리 속을 아오이케의 폭행이 스쳐갔다. 그 모든 것을 정직하게 얘

    기를 할 필요는 없다.

     오오코오찌는 의식적으로 심각한 음성으로 대답을 했다.

     "여기에서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그는 사건에 관련되어 있

    을 가능성이 짙단 말야. 경찰도 그를 찾고 있고…이건 보통 일이 아

    니라구."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코스게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같잖게 얕보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자신을 깔보는 듯한 태도로 나

    오는 바람에 오오코오찌는 갑자기 불쾌해졌다.

     "뭐, 뭐가 그렇게 우스워?"

     코스게는 눈꼬리에 스며나온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냈다.

     "그 사건이라는 게…혹시 아오이케가 네 머리에 소변을 봤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코스게가 그걸 알고 있는 걸까?

     창백해져서 말을 잃는 오오코오찌를 재미있어 하듯이 코스게는 눈

    을 스윽 가늘게 좁혀 뜨고 심술궂은 표정을 떠올렸다.

     "어제 아오이케가 가게에서 얘기를 하더군.

     죽여주고 싶을 만큼 미운 남자의 머리에 오줌을 갈겨줬다고 말야.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고…, 섹스보다도 훨씬 큰 쾌감이었다면서 자랑하더군."

     범용한 남자가 변모한다.

     회의실의 의자를 끌어내 당당히 앉아 이쪽을 보는 남자는,  자신감

    에 찬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 기묘한 생물이 되었다.

     "난 생각했지. 용케 그 정도의 플레이로 끝났구나 하고 말야. 그토

    록 성실한 남자를 지독하게 몰아세워 화나게 한 끝에, 고작해야  뺨

    을 가위로 살짝 긁힌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 <상해 사건>이라며 법

    썩을 떨어 퇴직까지 시켰으니까. 요즘은 녀석과 만날 때마다 늘 너

    에 대한 넋두리로 <죽여주겠다>는 말을 들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거든."

     "넌 그런 미친놈의 편을 드는 거냐?"

     코스게는 너스레 떨듯이 어깨를 슬쩍 으쓱했다.

     "편이고 나발이고…. 아오이케는 미친 놈이 아니고, 누구든지 그렇

    게 심한 괴롭힘을 당하면 원한을 품고 앙갚음 한둘 정도는

     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오오코오찌는 눈앞의 남자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그것

    을 참기 위해서 두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심한 꼴을 당했건만,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아픔이나 굴욕과 공포가 당연한 것일 리가 없었다.

     그런 건 이상했다.

     "슬슬 돌아가야겠는데.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코스게는 느긋한 몸짓으로 회의실의 시계를 올려다보더니,  이쪽이

    <응>이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일어섰다.

     회의실을 나가려고 하는 남자를 오오코오찌는 황급히  불러세웠다.

    그러자 코스게가 귀찮다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오이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하다못해 잘 알고 지내는 

     인간의 주소나 전화번호라도 가르쳐줘."

     코스게는 시선을 돌리고 생각하는 척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까 얘기한 대로 난 아오이케와 사귀고 있었던 게 아냐.

     그 장소의 분위기에 흘러 키스한 적은 있지만. 그냥 얼굴을 잘 알고 지낸다는 정돌까.

     결국, 교제 관계를 전혀 모른단 말야. 그리고 그  남자는

    몸가짐이 단정해서 특별히 정한 상대하고만 자고. 지금은 프리일 테

    지만, 이사를 갔다면 정말로 어디에 있는지 난 몰라."

     코스게를 만나기만 하면 아오이케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오오코오찌를 절망시켰다.

     아오이케가 어디에 있는 지 모른다. 경찰도 체포할 구실이  없다고 한다.

     녀석은 검게 번쩍거리는 권총을 손에 들고 언제 또

     자신의 앞에 모습을 나타낼 지도 모르는데.

     오오코오찌는 자신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오오코오찌는 자리로 돌아갔다.

     찾아낼 실마리를 잃은 아오이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

    만 사무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기획영업과  앞이 몹시 시끄러워서

    목소리가 복도에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점심시간도 끝났는데 뭘 저렇게 떠들어대고  있는 걸까 궁금

    해 하며 문을 열었다.

     오오코오찌가 안에 들어간 순간.

     벌집을 들쑤신 듯한 소란스러움은 갑자기 뚝 그쳤다. 게다가, 모두

    의 시선이 오오코오찌의 일거일동에 집중되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

    런 시선의 까닭도 신경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오이케의 일로  머

    리 속의 태반이 점령당해 있던 오오코오찌는 기묘한 시선도 휴지조

    각처럼 사소한 것으로밖에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휘감기는 시선들의 기척은 오오코오찌가 데스크에 돌아가

    서 의자에 앉은 뒤에도 지속되었다.

     모습이 어딘가 이상한 걸까 하고 수트 소매며 자락과 옷깃을 가다

    듬어 봤지만, 주목을 끌 만큼 흐트러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신경 끄자며, 오오코오찌는 평소처럼 스케줄 수첩을 펴고 오후  예

    정을 확인했다.

     오후 3시부터 거래처의 담당과 만날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그저께

    에 <시간을 변경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었다. 그것이 30분 뒤로 미

    뤄졌는지 앞당겨졌는지, 오오코오찌는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소노군."

     결국 오오코오찌는 평소 아끼던 부하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 같으면 날 듯이 곁으로 달려올 텐데 오늘의 이소노는 어딘가

    서먹서먹한 동작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오후에 르포사와의 약속이 있는데…."

     얘기를 시작해도 이소노의 시선이 허공을 떠돌아다녔다.

     그 불성실한 태도가 신경에 거슬렸지만 혼을 낼 기력도 없는 오오

    코오찌는 아예 주의를 주지 않았다.

     거래처와의 약속은 30분 뒤로 미뤄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이동하는 시간도 생각해서 1시간 뒤 회사를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재빨리 데스크로 돌아가고 싶어하

    는 이소노를 오오코오찌는 불러세웠다.

     "어째서 아까는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거지?"

     이소노는 오오코오찌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에에, 에에…>하며 

    허둥대듯이 짧은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건가?"

     이소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오코오찌의 안색을 살피듯이 몇번이나 힐끔힐끔 훔쳐본 뒤에

     가까스로 무거운 입을 열었다.

     "메일이…낮에 부서의 전원에게 똑같은 내용의  장난 메일이 왔습

    니다. 그걸 보고 모두 떠들썩해져서…."

     고작 장난 메일 하나로 그렇게 법썩을 떨고  있었나 싶자 맥이 풀렸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날아온  무례한 시선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평소와 달리 서먹서먹한 이소노의 태도도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개운치 않은 의문은 있었지만, 그것을 캐물어봤자 큰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

     오오코오찌는 한숨을 내쉬고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일을 하는 신발  메이커의 프레젠테이션 일

    정을 확인하고 내친김에 메일 박스를 확인했다.

     세통의 메일이 새로 와 있었다. 둘은 사내의 업무연락이었지만  나

    머지 하나는 처음 보는 메일 주소였다.

     필시 이것이 모두들 법썩을 떨고 있던 장난 메일일 것이다.

     오오코오찌는 열어보지 않고 그대로 버릴 작정으로 <삭제>에 커

    서를 옮기다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

     모두들 그토록 소란을 떨고 있던 장난 메일. 

     그 내용을 자신도 한번 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오오코오찌는 정체모를 메일을 클릭했다.

     필시 여성의 누드 같은 음란한 화상일 것이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첨부 파일은 없이 직접화상이 메일 화면에 떠올랐다.

     입자가 조잡한 화면이 서서히 뚜렷해진다.  살색이 강해지고, 그것

    은 서서히 사람의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다.

     역시 외설적인 화상인가 하고 어깨를 으쓱한 순간.

     화상은 깨끗한 모습으로 오오코오찌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한 채 오오코오찌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남자의 전신 사진이었다.

     남자는 가느다란 줄로 온 몸이  휘감겨 있었는데, 줄이 살에  깊이

    파고들 만큼 꽉 묶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심한 상황에서도  페

    니스는 발기하여 있는 것이,  분명히 그런 상황을 기뻐하는  종류의

    남자 사진이었다.

     오오코오찌는 마우스를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에로 영상이라면 에로 영화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남자의

    목 위 부분이 그대로 자신의 얼굴로 바꿔쳐져 있는 것일까?

     그제서야 비로소 오오코오찌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해 있

    던 의미를 이해했다.

     목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진 듯한 서툰 합성이라 한눈에도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렇다쳐도 최악의 

    저질적인 장난이었다.

     오오코오찌는 신경질적으로 힘껏 클릭해서 꺼림칙한 메일을 삭제했다.

     자기 혼자만이라면 또 몰라도 부서의 전원에게 이런 사진을 보낼 비상식적인 인간….

     오오코오찌가 아는 한, 짚이는 인물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코노하라가 밀어넣는 SM의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게다가 치밀한 외길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견딜 수 없는 분은 다른 길로 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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