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2)
  • >No,687 : 프레자일  Fragil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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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RNING *

     1. 통신체

     2. 제목 및 작가와 주인공 이름 개명

     3. '빨리빨리' 등의 간단하고 무신경한 어택

     4. 무허가 불펌

     위의 네가지는 탐미동 활성법에 뚜렷이 저촉될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뇌에는 <제발 번역하지 말아주세요>로 즉시 입력되는 사항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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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이 멀어지고,

     아오이케의 손도 머리에서 떨어졌다.

     오오코오찌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자, 앉아."

     저항할 기력을 송두리째 빼앗긴 오오코오찌는 프라이드라는 말도 

    어딘가에 내던지고 명령에 따르기 위해 바닥 위에 앉았다.

     "그게 개가 앉는 자세입니까?"

     불만스럽게 말해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번이나 다시 고쳐앉은 끝에, 쪼그리고 앉아 다리를 벌리고  정면

    에 손바닥을 짚는 포즈로 아오이케는 만족한 것 같았다.

     "다음은 발."

     아오이케가 눈앞에 내미는 손바닥을 오오코오찌는 무서운 걸 보듯

    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오른손을 조심조심 내밀어 아오

    이케의 손위에 살짝 얹었다.

     "좋았어, 착하지. 잘했어. 그럼 칭칭(*개가 앉은 채 앞발을 들고 몸

    을 똑바로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을 할까요?"

     개의 <칭칭>이 상상이 되지 않아 오오코오찌는 동작을 멈추었다.

     아오이케의 시선이 마치 재촉하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마음을 졸이는 오오코오찌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오오코오찌는 애매한 기억을 의지하여, 개처럼 앉은 채 두손을  가

    슴 앞에서 늘어뜨리고 몸을 상하로 흔들었다.

     "아주 그럴 듯하군요. '됐다'고 할 때까지 그대로 계속해 주세요."

     아오이케는 방에서 나가더니 카메라를 한손에 들고 돌아왔다.

     이 흉한 꼴을 사진 찍을 작정인 것이다.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두면 틀림없이 혼이 날 것이다.

     혼이 나는 정도로  끝난다면 그래도 낫다.

     저 남자는 검은 바지의 허리춤에 아직도 권총을  찔러넣고 있는 것이다.

     섣불리 화나게 했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너무 한심한 나머지 오오코오찌는 눈물을 흘리면서 <칭칭>을 계속했다.

     카메라의 플레쉬가 몇번이나 터졌다. 

     가까스로 그만하는 것을 허락 받았을 때는  탈력해서 소리도 없이

    앞발을 세우고 앉았다.

     "다 좋은 사진들뿐이군요. 다음에는 이걸 컴퓨터에 입력해서 회사

    의 모든 사람들에게 메일링을 할까요? 그렇게 하면, 계장님은 이런 

    것이 취미라고 다들 생각하겠죠?"

     바닥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주워들고 아오이케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부탁이니까 그것만은 하지 말아줘!"

     호소한 순간, 오오코오찌는 어깨를  걷어차여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개는 <멍멍>거리는 거라고 가르쳐 드렸을 텐데요."

     아오이케는 사진에 가볍게 입맞춤한 뒤에 엷게 미소를 떠올리면서

    오오코오찌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군요, 계장님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메일링 하는 걸  다시 생

    각할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떨군 오오코오찌의 앞에서 아오이케는 무릎을 구부렸다.

     "밤에 계장님이 순종적인 나의 개가 되겠다고 약속한다면 낮의 생

    활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매일 회사에도 보내  드릴 거고, 당신이

    곤란해할 만한 메일도 보내지 않겠습니다."

     눈앞에 권총이 어른거리게 하면서 대답을 강요한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오코오찌는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문자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순순히 말을 듣는 척하고 방심시킨 다음에  틈을 봐서 경찰에 고발하면 된다.

     자신에 대한 악질적인 장난만으로는 무리라 해도

     총기법위반으로 체포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아, 참. 당신에게 주의를 해둘 것이 있는데…. 금후, 경찰에 나

    를 고발하면 그때는 당신의 장래도 없다고 생각해 주세요.

     벌거벗은 누드 사진을 회사에 보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 상에서 모두 공개할 겁니다. 

     당신의 가족과 회사에는 하루에 몇백건이나 H한 전화나 메일이 가겠죠.

     나는 체포  당해도 틀림없이 곧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때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나체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까지 파헤쳐지는 듯한  기

    분이 들었다.

     "전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 마음대로 해도 괜찮습니다만."

     마지막 말은 낮게, 노려보는 듯한 시선과 함께 떨어져내렸다.

     뱀 앞에서 얼어붙은 개구리처럼 오오코오찌는 덜덜 떨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맑게 갠 아침이었다.

     비내음이 멀어지자마자, 태양은  7월이라는 계절을 떠올린  것처럼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오코오찌는 등줄기에 불쾌한 땀을 흘리면서 출근했다.  맨션에서

    역까지 걸었을 뿐이고 역에서 회사까지는 고작해야 15분 정도의 거

    리였는데도, 여름의 기척은 확실히 살갗 아래에 휘감기고 있었다.

     엇갈려 스쳐지나는 부하나 상사와 아침인사를  나눈 오오코오찌가

    데스크에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저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어제는 도중까지밖에 바래다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소노가 난처한 듯한 얼굴로 사과했다. 술에 취한 상사를 택시 안

    에 던져 넣은 채 혼자 돌아가버린 것을 역시 미안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택시 안에 물건처럼 내던져진 것은 불쾌했지만 화를 낼 만한

    일도 아니었다. 오오코오찌도 어제의 자신같은 주정뱅이는 비록  상

    사라 해도 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만약  이소노가 맨션까지 데려다주었다면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른 의미로 인정머리

    없는 부하가 원망스러웠다.

     "됐어. 맘에 두고 있지 않으니까."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지만 말꼬리는 냉담했다.

     상사가 결코 기분이 좋지 않음을 민감하게  눈치챘는지 이후 이소

    노는 용건이 없는 한 오오코오찌에게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오오코오찌는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신입사원의 기획서를  체크

    한 뒤 돌려주고 이소노가 제출한  샘플의 완성도를 확인했다.

     잠시 후 하품을 깨물고 있는 것을 봤는지, 부탁한 커피를 가져다준  여사

    원이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피곤하세요?'하고 물어왔다.

     피곤이고 나발이고 어제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맨션에 돌아가면 오늘도 그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일순, 이대로 모두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충동은 충동인 채로 곧 사라졌다.

     어젯밤 개처럼 칭칭을 한 오오코오찌의 사진을 찍은 뒤,  아오이케

    는 사슬을 다이닝 테이블에서 이번에는 화장실 변기로 옮겨 고정했다.

     그리고 짧게 고정된 탓으로 여유가 없어진 사슬 때문에  오오코

    오찌는 화장실에서 4∼5미터 정도의 거리밖에 돌아다닐 수 없게 되

    고 말았다.

     그 후, 아오이케는 샤워를 하고 <안녕히 주무세요>라며  오오코오

    찌에게 말을 걸더니 복도와 방의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벽을 등지고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던 오오코오찌는 복도가 어두

    워진 후에야 자신이 벌거벗은 채 바닥 위에서 밤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도에는 아무것도 깔린 것이 없고 바닥은 딱딱한 플로링.

     한번 누워봤지만 등이 아파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금새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7월이라고 해도 알몸으로 밤을 보내기에는 조금 쌀쌀해서, 

    오오코오찌는 두 어깨를 끌어안다시피 하고 웅크렸다.

     잠들지 못하는 머리로 끈임없이 아오이케를 저주했다.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남자를 나이프로 찌르고,  낭떠러지

    밑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차로 치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수없이 죽였다.

     공포로 일그러지는 표정, 용서해 달라며 발밑에 무릎꿇고 애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만이 비참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밤이 지나고 주위의 어둠이 서서히 엷어

    질 무렵.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복도에  스며들고, 맨션밖에서 들리

    는 일상의 소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때, 침실 문이 딸각  소리

    를 내며 열렸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잔뜩 웅크리는 오오코오찌의 머리를 난폭하게 헝클 듯이 쓰다듬고 

    나서 아오이케는 사슬을 화장실에서 풀었다.

     "출근 준비를 하실까요."

     사슬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무심코 일어선 순간,  <개는 두발로 걷

    지 않을 텐데요>하며 매몰찬 말이 날아왔다.

     결국 개처럼 네발로 기어 아오이케의 뒤를  따라 세면대에 끌려간

    오오코오찌는 다음으로 <앉아>라는 명령을 받았다.

     개처럼 앉아 있자니, 아오이케가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쓱쓱  닦아주었다.

     그리고 이도 닦아주고 엷은 수염까지 깨끗하게 깎아주었다.

    머리카락도 아오이케의 손에 의해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라인으

    로 정돈되었다.

     완벽하게 몸단장이 끝난  뒤 오오코오찌는 침실로  끌려가서 옷을

    갈아입도록 명령 받았다. 바지와 셔츠 그리고 양말이라는 당연한 것

    을 몸에 걸치는 것에 이만큼  기쁨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수트를 갈아입자, 아오이케는 오오코오찌를 밤새 플로링 바닥 위에

    묶어두었던 목걸이를 풀어주었다.

     서류가방을 한손에 들고 구두를 신는다. 

     돌아보니, 아오이케가 복도에서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었다.

     "일이 끝나면 딴 데 들르지 말고 곧장 돌아오는 겁니다? 밤놀이하

    고 귀가가 늦어지면 벌을 줄 테니까요."

     맨션 문을 열자, 그곳에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파란 하늘과  부

    산한 차 소리. 자신의 <일상>이 거기에 있었다.

     굴욕의 한계를 맛본 밤이 있었던  만큼, 자신이 지금 이렇게 남을 

    부리는 입장에 있다는 현실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벌거벗고 사슬에 묶여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던 자신이 수트를 입고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일상이니까.

     오오코오찌는 여태까지 일을 그다지 즐겁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종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까닭도 있지만,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의 하나이지 오락과는 다르다고 구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일이 정말로 즐거웠다.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주는 인간의 집단이 기뻤다.

     이대로 줄곧 일을 하길 바라며 규칙바른 초침에

     <제발 모쪼록 더 천천히 움직여줘>하고 바보같은 소원을

     진심으로 빌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허무하게, 시간은 오노코오찌에게도 평등하게 지나갔다.

     오오코오찌는 퇴근시간이 지나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아도 될 잡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예 일이 바빠서 돌아갈 수 없다고 전화로 거짓말을 할까 생각까지 했었다.

     회사 일이 이유라면 그 남자도 <하는 수 없다>고 납득해줄 것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안(名案)도 오후 7시가 지날 무렵이 되자 불안으로 바뀌었다.

     이유야 어떻든 맨션에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그 남자가  자신

    을 꾸짖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 거짓말임을 들킬 것 같으면….

     돌아가기 싫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그 남자의 신경을 거슬리

    지 않고 끝날지도 모른다. 용서 받을지도 모른다.

     돌아갈까 어쩔까 하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맞다투어, 망설이며 몇번이나

     가방을 손에 들고 문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데스크로 돌아왔다.

     그렇게 똑같은 일을 몇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오오코오찌는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돌아가겠다고 결정하니 일각이라도 빨리 돌아가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지하철 정액권이 있는데도 일부러 회사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여태까지 회사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주제에,

     운전사에게는 <서둘러 주세요>하며 재촉했다.

     맨션 문 앞에 멈춰서서 오오코오찌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각오를 하고 문을 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현관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몇켤레

    인지도 모를 구두들. 그리고 쿵쿵 울리는 중저음이 들려왔다.

     그 볼륨을 높인 스테레오 음에 섞여 들리는 소란스러운 사람들 목소리. 

     복도가 뿌옇게 자욱할 정도의 담배 냄새.

     "당신, 누구?"

     거실에서 복도로 나온 한 남자가 오오코오찌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누구냐고 묻고 싶은 것은 오오코오찌 쪽이었다.

     왼쪽 귀에 피어스를 많이 단 갈색머리 남자 따위, 지금까지 만난

    적도 없지만 얘기한 적도 없다.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가 불현듯 <아아> 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혹시 당신이 오오코오찌?"

     자신보다 어린 20대 전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성(姓)만이라고 해도

     마구 불리는 것은 불쾌했다.

     "어이, 아오이케상! 당신의 개가 돌아온 것 같아."

     남자가 거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곧바로 아오이케가 복도로 나왔지만, 그 모습을 보기  싫어

    서 오오코오찌는 얼굴을 숙였다.

     가까이에 와서 선 아오이케에게서는 술과 담배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어서 오세요. 산보는 즐거웠습니까?" (*개의 <산보>를 뜻하는 것

    입니다)

     다정하게 중얼거린 아오이케는 손에 들고 있던 개목걸이를 오오코

    오찌의 목에 씌우고 찰칵 채웠다.

     "옷을 벗어주세요."

     아오이케의 등뒤에서는 젊은 남자가 싱글거리면서 이쪽을 보고 있

    었다.

     단둘만 있다면 또 몰라도 남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저항감이 있었다.

     명령을 거역할 마음은 없었지만 쉽사리 벗을  결심도 서지 않아서

    오오코오찌는 두손을 움켜쥔 채 현관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구두들

    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오이케가 갑자기 난폭하게  사슬을

    잡아당겼다. 상체만 앞으로 끌려 균형을 잃은 오오코오찌는  복도에

    엎어지고 말았다.

     양복 윗도리가 등뒤에서  거칠게 벗겨져 나가고  셔츠도 강인하게

    잡아당겨진 탓으로 앞이 찢어져 단추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다음 순간 가랑이로 뻗어온 손이 아무렇게나  벨트를 풀고 단숨에

    팬티째 바지를 벗겨버렸다.

     하반신이 써늘해졌다.

     벌거벗겨진 수치심에 등을 구부리는 오오코오찌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아오이케는 사슬을 거칠게 콱콱 잡아당겼다. 결국 그 빠른  속

    도에 따라 가지 못하고 오오코오찌는 거의  질질 끌려가는 듯한 상

    태로 걸어야 했다. 난폭하게 잡아당기면 목걸이의 금속 부분이 살갗

    을 스쳐서 아팠지만, 그만해 달라며 인간의 말로 호소할 수도  없었

    다.

     오오코오찌를 끌어 거실 안으로 집어넣은 뒤에야 아오이케는 걸음

    을 멈추었다.

     순간. 그토록 소란스러웠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오오코오찌가  방안

    에 들어감과 동시에 뚝 그쳤다.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저음만이

    방안을 채우며 울리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온 오오코오찌에게

     "산보는 즐거웠습니까?" 라고 묻다니.

     아오이케, 너무 철저하게 몰입해 있군요….

     전 요즘,          

     코노하라 나리세가 유명하지 않았던 몇 년 전이 그립습니다.

     옛날에는 혼자 알고 있기에 안타까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번역해 올렸었지만,

     이제는 일부러 번역해서 소개할 필요도 없이 모두들 정열적으로 찾아읽고

     제가 아니라도 그녀의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죠.

     정말 아이러니하고 우습네요.

     저보다 더욱 열렬히 코노하라 나리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은근히 서운하고 허전하기까지 하다니….

     마치, 제 연인에 대해서 남들이 더 잘 알고 있고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어디까지나 짝사랑이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저의 연인을 빼앗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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