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2)

No,652 : 프레자일  Fragile (6)   

     

 그 후.

 메일이 회사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급기야 오오코오찌는 상사에게 불려갔다.

 결국 일이 끝난 뒤, 약속이 있다면서 내키지 않아 하는

 이소노를 데리고 술을 마시러 갔다.

 오늘도 역시 실처럼 가느다란 안개비가 내려서

 오오코오찌를 공연히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주 가는 일본주를 파는 바에서 오오코오찌는 술을 물마시듯 들이켜고,

 그녀와의 데이트가 취소 되서 기분이 언짢은 얼굴의 이소노를 상대로 술주정을 부렸다.

 "그 장난 메일을 회사 전원에게 보낸 건 아오이케란 말야.

 난 피해자라구. 그런데 위에서는 나를 불러내서

 <이런 일이 계속되면 회사의 책임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으니까,

 후배를 접하는 태도에는 충분히 주의하도록>이라면서 주의를 줬단 말야.

 물론 나는 사과했지. 

했지만! 어째서 아오이케 때문에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너무 부당해서 참을 수 없었단 말야∼!"

 가게 주인이 걱정스러운 듯이 그리고 조금 귀찮은 듯이,

 큰소리를 내는 단골 손님을 보고 있었다.

 평소는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데 오늘만은 점잖게 체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위로받기 위해 데려온 이소노도 적당히 맞장구만 칠 뿐 전혀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주정뱅이의 실없는 소리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차가운 태도도 오늘은 사무치게 아팠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신은 이소노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니까.

 순종적이고 그럭저럭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옆에 두고 기르고 있을 뿐.

 이소노 정도의 플래너 따위는 쓸어담을 만큼 넘치고 있고,

 걸리적거리면 언제든지 잘라내 버릴 작정이었다.

 무슨 일이든 결과가 전부인 회사 속에서 이해관계 없이 사람과 사귈 수는 없었다.

 "부장님은 나보고 주의를 주라고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남자한테 

무슨 수로 주의를 줄 수가 있다는 거냐구."

 낮에 만났던 코스게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오이케가 있는 곳은 전혀 모른다고 잘라 말한 모럴 없는 남자의 얼굴….

 "그 남자는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

 또 이상한 메일을 보내올지도 모른다.

 맨션에 돌아가면 현관 앞에 그 남자가 기다리고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지옥은 계속될까?

 아오이케의 성이 찰 때까지…, 이쪽의 신경이

 너덜너덜하게 닳아 헤질 때까지 그런 일은 계속될까?

 이런 식으로 가면 주위와의 신뢰관계까지 자신은 잃고 말지도 모른다.

 맨션 같은 곳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집에 돌아가기 무섭다고 해봤자,

 다 큰 성인을 따라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감정과 취기를 번갈아가며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점차 의식이 드문드문 끊기게 되었다.

 가벼운 진동을 느끼고 오오코오찌는 기분좋은 잠에서 갑자기 깨었다.

 "이 사람, 니시하루 방향입니다. 코고메역 근처에 있는 사테라이쯔 

맨션에 살고 있습니다. 모르겠으면 본인을 깨워서 물어주세요."

 마치 짐짝처럼 자신을 택시 안에 쑤셔넣은 것은 이소노였다.

 취해 있는 탓인지 헤어질 때의 인사도 생략되었다. 귀찮은 짐을 처리하고

 안도하는 이소노의 얼굴을 허무한 기분으로 맛보았다.

 하지만 그런 애틋함도 눈을 뜨고 있는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

 운전사가 거칠게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보니, 이미 맨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돈을 내고 밖으로 나가자 발치에서 찰박찰박 하는 소리가 났다.

 몸을 때리는 비가 차가웠지만 술기운으로 달아오른 뺨에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서,

 오오코오찌는 위를 올려다본 채 천천히 걸었다.

 엔트런스에 들어서서 비의 기척이 사라진 순간, 뒷덜미를 타고  흘

러내린 물방울이 양복 속으로 숨어들어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렇듯 무섭게 느껴졌던 자신의 맨션이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아오이케조차 무섭지 않았다.

 올 테면 와 봐라….

 싸울 작정으로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 남자는 회사를 퇴직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겼다>.

 패배한 개가 아무리 짖어대 봤자, 뭐가 어떻게 될 것도 없는 것이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벽에  기대어 선 채  오오코오찌는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다.

 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담담한 부유감 뒤에 끊기는 듯한 정지. 

 구역질이 치미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오오코오찌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가 계단

구석으로 달려가서 토했다.

 공중도덕이 어떻고 저떻고 할 만한 여유는 없었고 집의 화장실까지도 버틸 수가 없었다.

 욱욱거리며 모조리 게워내자 가슴의 불쾌감도 엷어졌다.

 자신이 만든 구토물에서 눈을 돌린 오오코오찌는

 우선 집으로 들어가려고 통로로 발길을 향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뜻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다리에 걸려 요란하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충격이 느껴지고, 아픔의 감각은 몇초 뒤늦게 찾아왔다.

 신음소리가 터진 것은 더 뒤였다.

 축축하게 젖은 콘크리트 바닥에 뺨을 대고 누워 있자니,

 젖은 흙냄새와 비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워야 할 콘크리트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일어서는 것도 귀찮아진 오오코오찌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바닥에 쓰러져있는 자신의 몸이 천천히 끌어올려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소노…."

 차 속에 밀어넣어버린 뒤에 불안해진 부하가 끝까지 자신을 돌보러 돌아온 것이리라.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 안도감으로 오오코오찌는 순순히 등에 업혀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열쇠는 어디에 있습니까?"

 문 앞에서 이소노가 물어왔다.

 "지갑…속…."

 이소노는 가방을 뒤져서 열쇠를 꺼냈다.

 문이 열리고 복도에 불이 켜진다.

 눈부심에 두눈을 꽉 감는 순간, <신을 벗어주세요>라는 말소리가 들렸었다.

 시키는 대로 구두를 벗자, 이소노는 오오코오찌를 업은 채 그대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천천히 눕혀졌다.

 넥타이 매듭이 느슨해지고 셔츠 단추가 풀린다.

 몸이 옷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상쾌함으로

 오오코오찌의 몸은 천천히 이완되어 갔다.

 평소 같으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은 심하게 추웠기 때문이다.

 잠들 뻔했다가는 몇번이나 재채기를 되풀이하고 코를 훌쩍였다.

 그런 식으로, 어깨를 끌어안고 무의식중에 손으로 몸을 문지르고 

있는 동안에 잠이 완전히 깼다.

 우선 어째서 자신이 아무것도 몸에 걸치고 있지 않는지 신기하게 생각했다.

 옷을 벗겨준 듯한 기억은 있었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머리가 아파와서, 일단 뭔가 몸에 걸칠 것을 찾아 

오오코오찌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순간, 목에 묵직한 충격이 치달았다.

 차르륵 하며 가슴 언저리에서 소리가 났다.

 목 주위를 만져보니, 단단하고 차가운 쇠의―마치 개목걸이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게다가 거기에는 사슬이 붙어  있었다.

 어디에 묶여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잡아당겨 보니,

 키친 앞의 다이닝 테이블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어째서 이런 이상한 것을 목에 차고 사슬에  묶여 테이블 같은 것

에 구속당해 있지 않으면 안되는가.

 오오코오찌는 패닉에 빠졌다.

 개목걸이 같은 것과 목 사이로 손가락을 찔러넣어 풀려고 해도 자

신의 목만 아플 뿐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슬도 굵고 튼튼하여, 잡아당기는 정도로는 끊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사슬 끝은 다이닝 테이블에 칭칭 휘감겨서

 그 끝과 휘 감은 부분이 돈주머니 모양의 작은 자물쇠로 고정되어 있었다.

 자물쇠까지 쓰는 철저함에 오오코오찌는 두려워졌다.

 어째서 이런 개 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걸까?

 개….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단어에 오오코오찌는 흠칫했다.

 그저께 밤, 아오이케가 자신을 향해 내뱉었던 말.

 『당신을 길러도 되겠습니까?』

 이것은 흡사 그 상황이 아닌가?

 싫은 예감에 가슴 속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통로에서 넘어진 자신을 방까지 옮겨준 것은 누구였을까?

 이소노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이소노였을까?

 자신은 너무도 무서운 착각을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소노는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

 어쨌든 이것부터 풀자.

 그 일념으로 오오코오찌는 거실에 있는 사이드  보드의 서랍을 뒤

졌다. 그 안에서 스텐레스 가위를 찾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봐도  사

슬보다 약해보였다.

 오오코오찌는 가위로 사슬을 두드리고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자르

려고 시험했다. 하지만 가위의 날만 빠졌을 뿐 정작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이 빨개질 만큼 사슬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런 시도에 지쳐서 문득 옆을 보니, TV의 검은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벌거벗은 알몸에 개목걸이와 사슬을 단 자신은  어떻게 봐도 이상

했다.

 그때.

 복도를 걷는 발소리가 들렸다.

 전류가 치달은 듯이 몸이 굳고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천천히 열린 문으로  나타난 인물을  본 순간,  오오코오찌는 <히

익!>하며 작은 비명을 지르고 소파 뒤로 달아났다.

 "소리가 나길래 혹시나 하고 보러 온 겁니다. 아침까지는  깨지 않

을 줄 알았는데, 기분은 어떻습니까?"

 점차 다가오는 목소리의  울림에 오오코오찌는 웅크리고  앉은 채

두 귀를 막았다.

 "어째서 그런 데로 도망가는 겁니까? 나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

었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게 아닙니까?"

 소파 스프링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구석에 숨지 말고 나와요."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내려오는 동시에 목이 흔들렸다.

 강한 힘으로 사슬을 잡아당긴 것이다.

 저항하려고 했지만 목이  아파서 버티지 못한  오오코오찌는 소파

뒤에서 질질 끌려나갔다.

 "변함없이 겁쟁이로군요. 그래, 내가 보낸 메일은 보셨습니까? 꽤 

재미있었죠? 그건 친구가 만들어 준 겁니다. 합성인지 아닌지 알 수 

없도록 완벽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뭐 그런 건 <게임>이니까요."

 그런 <게임> 때문에 자신은  상사에게 호출을 당해  주의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검은 바지에 검은 윗도리.

 온통 검게 차려입은 채  웃고 있는 아오이케는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보였다.

 "더 재밌는 걸 보여드릴까요?"

 아오이케는 셔츠 호주머니에서 장방형의 종이조각을 꺼냈다.

 "폴라로이드입니다만, 이쪽은 합성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그것은 오오코오찌가 개목걸이를 차고 사슬을 맨  채 다리를 크게

벌리고 잠들어 있는 사진이었다.

 오오코오찌는 정신없이 아오이케의 손에 달려들어  사진을 낚아챘

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뭐가 뭔지 잘 모르도록 잘게 찢어버렸다.

 그런 행동을 아오이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못된 장난을 좋아하는 개로군요."

 한숨을 내쉬고 아오이케는 자신의 웃옷 가슴  포켓 언저리에 손가

락을 댔다.

 또 나오는 똑같은 앵글의 사진.

 이번에는 뺏을 수 없었다. 아오이케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기  때문

이다. 그래도 빼앗으려고 앞으로 나가자, 아오이케도 똑같이 뒷걸음

질을 쳤다.

 하지만 오오코오찌가 쫓아갈 수 있었던 것도 문앞까지. 그  이상은

사슬 때문에 앞으로 더 나갈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나비처럼 팔랑팔랑  흔들리는 사진을 이를  악물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놀리는 아오이케는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폴라로이드 필름 말인데요. 바보처럼 많이 써버렸단 말입니다. 전

신상 말고 국소적인 것도 있습니다. 보고 싶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꺼내 보인 것은 성기가  클로즈 업된 폴라로이드였다.

 페니스와 음낭밖에 찍혀 있지 않은 그로테스크한 사진.

 그것만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찍혀 있는 것은 오오코오찌의 것과 똑같이 작은 음낭.

 가늘고 빈약한 가성포경의 페니스였다.

 "그리고 보통은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흥미 있죠?"

 즐거운 어조와 함께 들이밀어진 것.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오므라든 곳이 엷은 핑크색이라 굉장히 예뻤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사진으로 찍는 신경이 믿기지 않았다.

 "버려! 그런 거 버리란 말야!"

 오오코오찌의 말 따위 무시하고 아오이케는 엷게 핑크색이 감도는

부분을 야릇한 손놀림으로 쓸어내렸다.

 아오이케가 정말로 그곳을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에, 오오코오찌는

자신의 항문이 꼭 조여듬과 동시에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는 녀석 중에 이런 사진을 수집하는 아마츄어가 있습니다. 팔면

좋은 용돈거리가 될 것 같은데요. 녀석은 인터넷으로 자신의 콜렉션

을 유료로 공개하고 있거든요."

 국소만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꼴사나운 부분이 네트  상에 떠서 어

디의 누구인지도 모를 인간의 눈앞에 드러난다.

 혐오감에 등줄기가 떨렸다.

 "뭣하면 목걸이를 맨 전신 사진을 이름과 주소까지 첨부해서 공개

해 드릴까요? 계장님이라면 <만나보고 싶다>, <한번 자보고 싶다>

는 남자가 쇄도할 것 같은데."

 오오코오찌는 개목걸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눈물 고인 눈으로 소

리쳤다.

 "어째서 이런 심한 짓을 하는 거야! 너는 제정신이 아냐! 정상인이

라면 이런 일 할 리가…."

 아오이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서워져서 오오코오찌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아오이케는 느린 동작으로 굽어진 사슬을 집어들더니 난폭하게 끌

어당겼다.

 목이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고개가 거칠게  뒤로 젖혀진

오오코오찌는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등을 용서없이 짓밟혀, 압박

당한 가슴에 숨이 막혀서 오오코오찌는 얕게 헐떡였다.

 "버릇 없는 개에게는 <교육>이 필요하죠."

 "나는 개가…."

 머리칼을 붙잡혀 난폭하게 끌려올라갔다. 희미하게 웃는  아오이케

의 얼굴이 보인 것도 잠깐. 다음 순간에는 플로링 바닥에 얼굴을 가

차없이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똑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반복한

다.

 아픔보다도, 폭행을 당하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오오코오찌는 고통

의 신음조차 입밖에 내지 못했다.

 "개는 사람의 말을 하지 않아. 기본은 <멍멍!>일 텐데요."

 머리를 움켜잡은 손가락의 기척이 사라짐과 동시에 <자, 앉아!>하

며 명령이 떨어졌다. (*개에게 하는 그 명령입니다)

 "앉아."

 다시 엄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하지만 오오코오찌는 멍하니 몸을 일으킬 뿐 명령을 듣지 않은 채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렸다.

 머리카락을 붙잡혀 고개가 쳐들린다.

 이마에 뭔가가 밀어붙여지고, 검게 빛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함

과 동시에 오오코오찌는 <우왓!>하고 비명을 질렀다.

 "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오이케는 권총을 오오코오찌의 이마에 세게 밀어붙인 채,

 마치 내일 날씨 얘기라도 하듯이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의사인 친구가 얘기해준 적이 있는데, 사람의 뇌는 두부하고 감촉이

비슷하다더군요. 이 방아쇠를 당기면, 계장님의 머리도 두부처럼 으

깨져서 사방으로 튀겠지요?"

 아오이케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쳐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신을 치달아 오오코오찌는 덜덜덜 떨었다.

 공포를 옅게 해줄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솟구치는 눈물로 눈앞의 풍경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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