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700 : 프레자일 Fragile (9)
구역질이 가라앉은 뒤, 오오코오찌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입
을 헹구고 사타구니를 닦고 싶었지만 사슬이 짧아서 탈의실 옆에 있는 세면
대까지 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의 손 닦는 물로 입을 헹구고(*
변기 뚜껑 위에 작고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물을 내리면 그 위에 드리
워진 가는 수도관에서 물이 떨어져 구멍을 통해 변기를 채웁니다.
재활용 차원으로 손을 닦도록 한 용도인데, 그 물로 입을 헹구었다는 말입니다), 화장지
로 가랑이를 닦으면서 오오코오찌는 울었다. 자신이 비참하고 가여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 옆의 벽에 기대 앉은 채, 오오코오찌는 멍하니 복도에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어깨를 마주 안고 거실에서 나왔다. 금발 남자와 그 남
자를 무릎에 앉히고 있던 체격 좋은 남자. 둘은 오오코오찌에게 흘낏 눈길을
던진 뒤에 침실 안으로 사라졌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흘러나오는 격렬한
헐떡임 소리에 오오코오찌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자기 침대에서 낯선 남자들이 섹스를 하고 있다.
생각하기만 해도 닭살이 돋았다.
저런 침대, 이제 두 번 다시 쓸까 보냐고 생각했다.
"어이…."
그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아오이케의 목소리가 아
니었다. 오오코오찌는 무시하듯이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쪽을 보라구. 난 아무짓도 하지 않을 거니까 말야."
아무짓도 하지 않는다…는 말에 오오코오찌는 멈칫거리며 얼굴을 덮은 팔
을 치웠다.
허리를 구부리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거실에서 오오코오찌의 '그
것'을 집어들고 빈 술병을 내던진 수염난 남자였다.
"아까는 좀 취해 있어서 말야, 빈 병 같은 걸 던져서 미안해."
사과를 받았다.
회사에서 돌아온 후 일방적으로 자신이 괴롭힘 당하는 행위 속에서, 유일하
게 사람다운 말을 걸어준 순간이었다.
남자의 손끝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척에 오오코오찌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렇게 겁먹지 말라구.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나도 아오이케는
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단 말야. 아무리 당신에게 원한이 있어도…."
자신을 변호해 주는 인간의 존재.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잘못 없어."
말이 저절로 입을 열고 나왔다.
남자가 사람좋은 얼굴로 웃었다.
"아아, 당신은 잘못한 거 없어."
가까스로 내 편이 생겼다. 간신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
다.
오오코오찌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오이케는 말이지. 뭐랄까, 섬세한 녀석이란 말야. 평소는 저렇게 난폭하
게 행동하지 않고 가게에서도 하반신만 자기주장하는 녀석들에 비하면 신사
적이고. 하지만 워낙에 참을성이 강한 녀석이니까…그래서 더욱 울분이 폭발
했을 때의 갭이 엄청난 게 아닐까?
그리고 사랑이 깊은 만큼 미움도 깊다는 말도 있고 말야.
녀석은 당신을 좋아했으니까. 굉장히 자기 취향인 사람이
있지만 노말이라서 희망이 없다면서 입사한 직후에는 자주 얘기하고 있었으
니까…."
고개를 떨구는 오오코오찌의 머리에 남자의 손이 놓였다.
친한 척 내미는 손의 위화감에 고개를 세게 흔들자, 남자의 손은 스윽 떨어졌다.
하지만 상처입은 듯한 표정을 본 오오코오찌는 마치 자신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해버
린 듯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미안, 미안. 당신이 귀여워서 그만."
남자에게 당연한 듯이 <귀엽다>는 형용사를 쓰는 남자는 역시 어딘가 정
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으면 싫은가? 기분 나빠? 하지만 난 어쩔 수 없는 호모
니까, 당신은 정직히 귀엽다고 생각한단 말야."
남자가 몸을 내미는 바람에 오오코오찌는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남자가 앞으로 다가드는 속도가 더 빨라서
순식간에 남자의 팔안에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싫어…!"
바둥거리는 귓가에 속삭임이 흘러들었다.
"지켜줄게."
오오코오찌의 동작이 멈추고, 끌어안는 남자의 팔힘이 강해졌다.
"내가 지켜줄게. 아오이케가 괴롭히지 못하게, 난폭하게 굴지 못하게…."
그것은 바랄 수도 없었던, 굉장히 매력적인 말이었다.
"당신이 너무 귀여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단 말야.
아오이케 같은 녀석한테 이지메 당해서 울게 만드는 건 아까워."
남자의 수염이 오오코오찌의 뺨을 징그러운 감촉으로 스쳤다.
턱에 손끝이 걸쳐지고, 입맞춤 당할 것 같다는 싫은 예감과 함께 얼굴이 위로 끌려올라갔
다. 그리고 다음순간에는 술냄새나는 두툼한 입술이 오오코오찌의 입술을 틀
어막고 있었다. 남자의 오른손은 오오코오찌의 뒷통수를 꽉 붙잡고 있어서
달아날 수도 없었다.
"아오이케가 <좋다>고 말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래. 당신은 귀여워.
똑똑해 보이고, 그러면서 겁쟁이고…
잔뜩 겁먹고 울고 있는 얼굴은 끝내주게 <여기>에 울려."
명백히 반응하고 있는 가랑이를 배에 밀어 붙여오는 바람에, 오오코오찌는 몸소리를 쳤다.
"잠깐! …그만!"
"조금 참아."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조금쯤 내 말을 들어줘도 괜찮잖아."
남자가 오오코오찌의 귀를 깨물었다.
혀끝으로 귓구멍을 희롱 당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촉을, 그러나 <지
킨다>는 한마디만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참았다.
"정말, 정말 지켜줄 건가? 저 미친 남자로부터…정말…?"
남자의 등을 붙잡고 매달린 채 애원하듯이 되풀이해 물었다.
남자는 그런 오오코오찌를 달래듯이 이마를 쓰다듬었다.
"당신은 의심이 많군."
한번 더 술냄새나는 키스를 한 뒤 남자는 크게 뒤로 물러나더니, 갑자기 오
오코오찌의 가랑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펄쩍 튀어오른 오오코오찌의 허리는
남자의 두손에 꽉 붙잡혔다.
남자는 힘없이 늘어진 오오코오찌의 페니스를 오른손으로 잡고 살짝 핥아
올렸다.
"뭐 하는 거야! 싫어!"
"조금쯤 나한테도 서비스해줘. 나한테 당신의 맛있는 걸 맛보게 해달라구."
말하자마자, 남자는 오오코오찌의 페니스를 입에 품었다.
"우악…!"
뜨뜻미지근하고 젖은 장소. 혀는 오오코오찌 자신을 휘감고 빨아올렸다.
과거에 연인이었던 여자에게도 입으로의 애무는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을 하면 변태라며 경멸 당할 것 같아 입밖에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와도 두달 전에 헤어졌던 것이다.
부장의 딸이 올해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애무는 능숙했다. 떨림이 이는 부문을 교묘하게 공격했다.
부드럽게 조일 뿐인 점막과는 다른 느낌.
혀끝으로 농락 당하고 죄이는 감각에, 오오코오찌는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상대가 남자라는 것조차 잊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앗…하앗…!"
허리가 들썩일듯이 떨리고 쾌감에 충실한 성기가 열을 띠었다. 팽팽하게 부
풀어 오르며, 허리를 중심으로 어찌할 길 없는 짜릿함이 퍼졌다.
쾌감이 급속하게 정점을 향해 뛰어오르고, 사정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안
타까움으로 오오코오찌는 가늘게 허리를 떨었다.
그것은 생전 처음 맛보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의 격렬한 사정감이었
다.
"앗! …놔줘, 어서 빨리…!"
"가고 싶지? 괜찮아, 내 입속에 힘껏 토해내."
남자가 오오코오찌를 입에 품은 채 웅얼거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오래 참을 수 있을 만한 상태도 아니었던 오오코오찌는 자신을 붙잡은 따
뜻한 점막 안에 욕망을 뱉어냈다.
남자는 마치 오오코오찌의 페니스를 쥐어짜내다시피 하며 입술로 훑은 뒤,
일부러 오오코오찌의 눈앞에서 꿀꺽 삼켜보였다.
"끝내주게 진한데."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를 말로 능욕 당한 오오코오찌는 붉어진 얼굴을 돌려
버렸다. 남자는 작게 웃더니 오오코오찌의 넓적다리를 두손으로 크게 벌렸
다.
그대로 몸위에 덮쳐온 남자는 성급한 몸짓으로 자신의 바지를 내리고 발기
한 페니스를 오오코오찌의 음낭에 대고 문질렀다.
"무…무슨 짓을…!"
오오코오찌의 항문에 무언가가 와닿았다. 뜨거운 것이 밀어붙여지고 아픔과
함께 거기가 천천히 벌어지는 감촉에 오오코오찌는 황급히 허리를 흔들었다.
"넣고 싶어."
오오코오찌를 끌어안은 채 남자는 알기 쉬운 말을 던졌다.
"당신의 여기에 내 걸 넣고 싶어."
남자의 행위가 애널섹스를 가리키는 것임을 이때가 되어서야 오오코오찌는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아오이케로부터 보호받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행위를
강요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오이케랑 해서 조금은 익숙해져 있잖아. 금방 끝낼 테니까 조금만 참아.
나한테 보호 받고 싶지? 그런 개사료 따위 이제 먹고 싶지 않잖아?"
오오코오찌가 움직임을 멈춘 틈에 남자의 페니스 끝이 조금 파고 들어왔다.
"아파, 아파…!"
남자는 아파하는 오오코오찌를 마치 아이라도 달래듯이 머리를 쓰다듬고
키스를 하고 다시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싫어, 싫어어…!"
울면서 아우성친 순간.
그곳에 걸려 있던 페니스 끝이 쑥 빠져나갔다.
남자가 오오코오찌의 옆에 털썩 쓰러졌다.
갑자기 환하게 트인 시야 저편에서 가면같은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오
른발을 치켜든 채 서 있는 것은 아오이케였다.
"누구야! 젠장!"
성을 내며 돌아본 수염난 남자는 아오이케의 얼굴을 보자마자 거북살스러
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창 재미보는 중에 미안하게 됐다. 휴대폰이 몇번이나 울리는 바람에 시
끄러워서 말야. 너, 오늘 어디 가는지 히로유키한테 얘기하고 온 거겠지?"
수염난 남자는 아오이케에게서 휴대폰을 낚아채고 작게 혀를 차더니 탈의
실 안으로 사라져갔다.
오오코오찌는 아오이케의 무례한 시선이 두다리를 크게 벌린 채인 자신의
가랑이에 쏠려 있는 것을 알고, 마치 수줍어하는 여성처럼 떨면서 다리를 오
므리고 손으로 가렸다.
…침묵이 무서웠다.
"<개도 수컷끼리는 교미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전에 계장님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었죠?"
그 음성에는 노골적으로 조소하는 울림이 있었다.
"저건 수컷입니다. 몰랐습니까? 아니면 결국, 당신도 개 이하라는 건가요?"
…오오코오찌의 얇은 껍질에 감싸인 프라이드가 뜯겨나가고
너덜너덜해지는 것에, 그렇게 대단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