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2)
  • No,554 : 프레자일  Fragile (1) 

     <주인공: 오오코오찌, 아오이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기획안이었다.

     자신 나름대로 편집한다면 또 몰라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획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첫장을 읽고 <안 된다>고 속으로 도장을 찍은 탓인지 그 뒤를

     읽는 것이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여사원이 차를 가져다준 것을 기회로 오오코오찌 토모미는 손에 

    들고 있던 기획서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이라도 나름대로의 어드바이스는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마지막까지는 읽어두지 않으면 안된다.

     한숨을 내쉬며 머그컵을 손에 든 오오코오찌는 싸구려 커피 냄새에

     넌더리를 내면서 등뒤를 돌아보았다.

     사무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은 오후 3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무시하고 마치 해질녘처럼 어두컴컴했다.

     지난 며칠은 맑은 날이 단연코 적었다.

     6월 장마철인 까닭도 있지만 그렇다 쳐도 비가 너무 자주 내리고 있었다.

     이번달은 결혼식이 두건이나 있었다.

     외국이라면 또 몰라도 이렇게 날씨가 불안정한 시기를 골라서

     일부러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급한 볼일도 없고 오늘은 일찌감치 돌아가자…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기획서를 손에 들었을 때였다.

     "어이! 아오이케! 어디 가는 거야?!"

     주임인 이소노의 절박한 목소리에 오오코오찌는 얼굴을 들었다.

     아오이케 타쯔로오가 자신의 책상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표정은 험악하고 은테 안경 속의 눈동자는 노골적인 적의를 띠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 때문에 저렇게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걸까….

     미간에 주름을 새기고 고개를 조금 갸우뚱한 오오코오찌는 다가오는

     남자의 손에 사무용 가위가 움켜쥐어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가위.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어딘가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

     머리 속에서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내부에 치닫는 위험신호를 따라 오오코오찌는 황급히 일어섰다.

     오오코오찌는 기획서를 내던지고, 책상의 오른쪽으로 돌아오는 남자의 반대쪽으로 뛰쳐나갔다.

     복도로 나가려고 사무실 안을 가로질렀지만, 의자에 앉은 사원이

     통로에 많이 나와 있어서 마음먹은 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비…비켜! 비키라니까!"

     통로를 가로막은 사원의 어깨를 두들기다시피 해서 난폭하게 밀어제쳤다.

     불쾌해하는 여사원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 것도 일순.

     오오코오찌는 눈앞의 문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문손잡이에 손이 닿을 곳까지 온 순간.

     뒷덜미를 붙잡혀 용서없이 끌려갔다.

     목이 있는대로 졸려서 숨막힘에 <우엑>하고 집오리처럼 울었다.

     "그…그만…!"

     오오코오찌는 뒤쪽으로 끌려가다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순간 목의 구속이 느슨해졌다.

     아오이케의 손이 떨어진 기척에 오오코오찌는 개처럼 엎드린 자세로

     앞으로 나갔지만 발목을 잡혀서 순식간에 다시 끌려갔다.

     말을 타듯이 등뒤로 올라타는 아오이케에 의해 오오코오찌는 바닥 위에 엎어졌다.

     그리고 깔아뭉개진 거북이처럼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는 동안에,

     어째서 자신이 이런 부당한 꼴을 당해야 하는 걸까 하는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어이!"

     억지로 고개를 비틀어 위를 올려다본 오오코오찌의 뺨을 은색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귀 가까이에서 팍! 하는 단단한 소리가 났다.

     "꺄아악!"

     천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

     사무실 카펫에 꽂힌 스텐레스 가위.

     쓰라리며 저려오는 뺨을 만지자, 손 끝에 붉은 얼룩이 묻어나왔다.

     "으와아아아아…."

     엎드린 채 오오코오찌는 소리쳤다.

     죽는다…죽는다….

     죽음이라는 말만이 머리 속을 반복해서 뛰돌아다닌다.

     가위가 카펫에서 빼내어졌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붙잡혀

     억지로 고개를 들게 된 오오코오찌의 눈에 비친 것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귀신같은 형상으로 가위를 치켜든 아오이케의 모습이었다.

     "그만둬! 바보같은 짓 하지마!"

     아오이케의 오른손이 누구에겐가 붙잡히고 흉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를 붙잡고 있던 손가락도 떨어져나갔다.

     오오코오찌는 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를 끌어안고

     <히익…히익>하고 신음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놔! 이거 놔!"

     아오이케가 아우성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에, 등을 짓누르고 있던 무게가 스윽 사라졌다.

     "계장님, 계장님."

     목소리에 반응해서 오오코오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넋이 빠진 듯이 바닥을 쳐다보고 있자니, 시노가 두 어깨를 붙잡고 세게 뒤흔들었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의식이 돌아온다.

     끊겼던 사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코오찌는 등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오이케는 사원 몇 명에게 붙들린 채 미친 투우처럼 날뛰고 있었다.

     "너 같은 거, 죽여 주겠어! 죽여버리고 말겠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며 무시무시한 말을 뱉어내고 있는 남자가,

     겨우 30분 전까지는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남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마치 송곳니를 드러낸 짐승 같아서, 누군가가 손을 떼면

     그대로 자신에게 덤벼들 것만 같았다.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무서워서 오오코오찌는 얼굴을 돌렸다.

     그러다가 문득, 언제까지나 바닥에 앉은 채인 보기흉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오오코오찌는 일어섰다.

     넘어졌을 때 부딪힌 허리도 아팠고 셔츠로 졸렸던 목의 위화감도 사라지지 않았다.

     비틀린 옷깃과 넥타이를 고치려고 손을 댔지만 떨려서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시노군, 경찰을 불러줄 수 없을까?"

     무슨 일이든 시키면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시노가 드물게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겨…경찰 말입니까?"

     "계장님, 아무리 뭐해도 그건…."

     아오이케를 붙잡고 있는, 자신보다 연상의 사원인 미네기시가 미간을 찡그리고 중얼거렸다.

     오오코오찌는 외국인 같은 요란한 몸짓으로 두 팔을 벌렸다.

     "너무 법썩댄다고 말하고 싶나? 하지만 자네들이 말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큰 부상…어쩌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너 같은 거 죽어버려!"

     광견의 노호에 오오코오찌는 등줄기를 움찔 떨었다.

     "그만두지 못할까!"

     미네기시가 질타를 해도 아오이케의 폭언은 그칠 줄을 몰랐다.

     "밖에서 이 녀석과 잠깐 얘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미네기시를 포함한 몇사람에 의해 짐승은 복도로 질질 끌려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마디마디 들리더니,

     이윽고 그것도 멀리 작아져갔다.

     사무실에 침묵이 돌아온 순간.

     오오코오찌는 전신이 근질거리는 듯한 거북함을 느꼈다.

     사무실 전원이 일손을 멈추고 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오코오찌는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 모두 자기 일로 돌아가줘>라고 말을 건 뒤에,

     어색함으로부터 달아나듯이 복도로 나왔다.

     화장실로 가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가위에 긁힌 자국이 보였다.

     손수건을 물에 적셔서 피로 얼룩진 뺨을 닦아내니, 생각한 것보다 상처는 작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뺨의 한가운데를 횡단하는

     붉고 길다란 상처자국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에서 나온 순간.

     오오코오찌는 아오이케를 붙잡아 말려준 남자사원 몇 명과 딱 마주쳤다.

     "계장님, 다친 곳은 괜찮습니까?"

     걱정하는 사원의 목소리에 애매하게 끄덕이면서 오오코오찌는

     집단 속에 광견의 모습이 없는가를 확인했다.

     "모두, 폐 끼쳐서 미안하다. 그나저나…그 아오이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오오코오찌의 정면에 서 있던 사원이 어색한 듯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회의실에 있습니다. 아직 흥분해 있는 상태라, 미네기시 상이 설득해 주고 있습니다만."

     상사로서 아오이케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나면 다시 덤벼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망설이면서도 회의실 앞까지 가기는 갔으나, 크림색 문을 노크할 수는 없었다.

     귀를 귀울여 봐도 문 저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작게 숨을 들이쉬고 문 맞은편 벽에 기대어 선 오오코오찌는

     아오이케 타쯔로오라는 남자를 다시금 회상했다.

     얌전한 남자였다.

     올해 31살이 되는 자신보다 네 살 연하인데, 키 크고 안경을

     쓰고 있는 것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용모도 아니었다.

     주어진 일은 예민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게 해치우고

     기대 이상의 기획안을 넘겨주었다.

     깔끔한 성격은 물론이고 곁에서 봐도 분명한 재능은, 오오코오찌에게 흡사 눈엣가시였다.

     무슨 잔소리를 해도 말대꾸도 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는 것을 기회로,

     오오코오찌는 아오이케에게 특히 엄하게 접해 왔다.

     유달리 야단치고, 유능한 것을 알면서도 중요한 일은 일절 주지 않았다.

     자각 있는 이지메가 아오이케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은,

     늘 위장약을 휴대하고 위궤양이니 위에 구멍이 뚤렸느니 하며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알 수는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폭발하는 남자일 줄은 몰랐다.

     그런 흉폭한 남자와는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 없다.

     이 일은 상사에게 꼭 보고하고 아오이케에게 책임을 돌리자….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회의실 문이 열렸다.

     갑작스런 일에 놀란 오오코오찌였지만 안에서 나온 것은 미네기시 혼자였다.

     "아아, 계장님. 와 계셨군요."

     오오코오찌의 모습을 보자마자 미네기시는 애매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오이케는…?"

     "안에 있습니다. 좀더 혼자서 머리를 식히겠다는군요.

     똑똑한 남자라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계장님은 아직 만나시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견제를 받고도 안에 들어갈 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럼 미안하지만……이번 일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조치를 받게 하겠다는 것과,

     감정이 진정되면 오늘은 집에 돌아가도록 전해주지 않겠나?"

     미네기시는 얕게 끄덕이고 다시 회의실 안으로 사라졌다.

     오오코오찌는 발길을 돌려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뺨의 상처가 이제와서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그 남자를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때문에, 각별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상사에게는

     그 흉폭성을 강조해서 이번의 사건을 보고할 작정이었다.

     비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에 오오코오찌는 문득 얼굴을 들었다.

     복도 막다른 곳에 있는 유리창이,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에 잿빛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게걸스럽고 탐욕스럽게 읽어치운 소설, 「프레자일」.

     코노하라 나리세라는 작가에게 다시 한번 기염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