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성격파탄 미스터 정 사시방해기 (12/15)

12. 성격파탄 미스터 정 사시방해기

해원은 제주도에서 올라오자마자 날 찾아와선 외쳤다.

“김수현. 고시 때려 쳐라!”

“……지랄하고 자빠졌네.”

 방금 전에 해원에게 받은 한라 봉을 도로 그에게 집어던졌다.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 찾아와서 개소리를 하는 인간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해원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무슨 부귀영화 누리겠다고 고시를 쳐? 야, 지금 법조인이 예전처럼 대접받는 시대도 아니고 가뜩이나 인구 많아져서 변호사들도 밥벌이 힘들어.”

“……그럼 검사하지 뭐.”

“야!”

“시끄러. 닥쳐.”

졸린 눈을 비비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지금 시각은 겨우 일곱 시였다. 

꼭두새벽부터 찾아와서 뭐하는 짓거린지 모르겠다. 제주도에 똥 돼지 먹다가 돼지 콜레라라도 옮은 건가?

“아침부터 왜 지랄이야? 집에 들어가서 곱게 잠이나 자.”

가뜩이나 졸려 기분도 저조한데 헛소리까지 하니 진정 밉상이다. 

도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해원은 다급히 내손을 잡는다.

“야! 어딜 들어가?”

“자러 들어간다. 왜?”

 지금 가면 십분은 더 잘 수 있다. 아홉시에 경헌이 데리러 오니까 보통 일곱 시 반까진 취침 시간이었다. 빨리 가서 이불과 사랑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두 눈은 다시 감길랑 말랑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자다 일어나 짧은 반바지 차림에 위에는 예의상 걸친 나시 티만 입고 눈도 안 뜨고 그대로 나왔다. 지금 상태는 집 앞에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다. 스르륵 다시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말 하는데 어딜 들어가?”

“……내 눈엔 당신이 사람이 아니라 똥개로 보여.”

새벽에 짖어서 잠도 못 자게 민폐 끼치는 똥개, 그런 애들 동네마나 꼭 하나씩 있다. 

지금 내게는 해원이 딱 그 짝이었다. 

붙잡는 손길을 매몰차게 쳐내고는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와 거실에 펼쳐진 이부자리에 쏙 들어갔다.

 잠을 방해하는 애인 따위는 필요 없다. 십 분의 수면이 아까운 나는 진정 고시생이었다.

기상 일곱 시 반, 세면 및 샤워 여덟시까지, 외출준비와 식사를 마치고 아홉시까진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보통은 경헌이 데리러 오곤 하는데 학교에서 만날 땐 도보 십 오 분 정도라 그냥 걸어간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준비를 다하고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해원의 차가 세워져있다.

“저 인간 안 갔네.”

“너 기다리나 본데? 그럼 나 먼저 갈게.”

 유현은 해원의 차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내 등을 툭 치더니 먼저 갔다.

 성큼성큼 차로 가보니 해원이 시트를 젖히고 자고 있었다. 졸리면 집에 가서 잘 것이지 정말 어이가 없다. 툭툭 창을 두들기니 그제야 한 쪽 눈만 뜨곤 잠에서 깨어나 날 바라본다.

 차에서 얘기하기도 뭐해서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생각해보니 그를 내 집으로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 꼴에 손님이긴 하니 식탁에 앉혀놓고 녹차를 내줬다.

“왜 안 갔어?”

“얘기 안 끝났잖아.”

“그거라면 할 얘기 없어!”

확 상을 엎어버리려다가 참았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사시 포기를 권유하는 저 심보는 대체 뭐란 말인가?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말을 잇는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봤는데?”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두긴 힘들고.”

“그래서?”

“붙을 확률이 낮은 사시를 네가 때려 쳐라.”

“……말 다했어?”

 지금 칼 있는 부엌에서 예민한 사시 생을 도발했단 말이지? 

법의 효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영광이다. 

사실 난 자기변호를 한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실험체가 되어주겠다니 사양하지 않으리. 

어둠의 포스를 마구 내뿜으며 묻자 해원은 그제야 움찔거리더니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아니, 뭐 꼭 사시를 봐야 돼? 임용고시도 있고 행정……아니 사실 둘 다 거시기한데. 야, 차라리 그냥 취직해라. 취직!”

“……진정 죽고 싶지?”

“형이 말할 때 들어. 손해 볼 거 없다니까.”

“누가 형이야 누가! 너 같은 깡패 형 둔적 없어!”

결국 열이 받은 내가 식탁을 엎어버리고 우리의 협상 같지도 않은 대화는 바로 결렬 되었다.

그러나 해원은 그걸로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회포는 풀어야지?”

“풀긴 뭘 풀어! 그리고 벨트는 왜 푸는데?”

열 받아서 씩씩 거리는 나를 덮쳐 그대로 베드인, 아침부터 두 번이나 사정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등 배기게 거실 바닥에서 말이다.

“아……아앗! 하앙……학교 가야 된 다……니까. 흐읏.”

“헉……허억……윽. 하루 빠져도 상관없잖아.”

“상관 있! 아앗!……다구……으응.”

“악!……머리카락 잡아 당기지마.”

해원은 내 다리를 자신의 어깨위에 걸쳐놓고 지퍼만 내린 채 섹스를 했다. 

내 티셔츠는 가슴팍까지 말아 올려져 있고 바지와 속옷은 한 쪽 다리에 걸친 채였다. 

그가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성기만으로도 벅찬데 한 손은 내 허벅지를 단단히 잡은 채였고 남은 손으로는 기둥을 훑으며 앞뒤로 자극 받는 바람에 반항 할 수도 없었다.

“하앗……앗! 아앙! 왜 이러는데! 앗!”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그럴 때마다 거세게 박아오는 바람에 제대로 말도 안 나왔다. 

피치를 올린 그가 흥분한 건지 상체를 숙이며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접합부가 밀착되며 구멍에 불알까지 박아 널을 태세로 세게 넣었고 내입에선 비명 같은 신음이 터졌다. 등까지 들려 몸이 꺾인 채로 그를 받느라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아앗! 하악……아! 아파! 악!……아흑.”

퍽퍽 거리는 마찰음이 살벌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가 내벽을 쑤셔대는 것만 같다. 아픔과 쾌감이 뒤섞여 뇌까지 쾅쾅 두들겼다. 눈물이 줄줄 흘렀고 아랫도리는 얼얼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대낮부터 무장 강도에게 강간당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로는 화가 나지만 몸은 쾌감에 허우적거리다 결국 울컥하고 토정을 내뿜었다. 

해원의 단단한 복근 위로 허옇고 걸쭉한 것들이 흩뿌려졌다. 해원은 승리에 찬 위풍당당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더욱 격렬하게 자신의 사정을 위해 움직였고 곧이어 내 안에 뜨거운 액체를 쏟아냈다.

“하아…….”

사정 후 여운에 절은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선 강력한 살인충동이 끓어올랐다.

 털썩 내 위로 몸을 포개며 숨을 고르는 그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아악! 켁! 갑자기 왜이래!”

“닥치고 그냥 죽어!”

구슬픈 비명소리가 울리건 말건, 오늘 이 놈 모가지 좀 따야겠다.

아무리 봐도 미친 게 틀림없다. 제발 부탁이니까, 그냥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지금 해원의 모습을 보면 사귄 것도 후회되고 만나는 것도 싫어진다.

“어떻게 인간이 갈수록 찌질 해지냐?”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해원 때문에 열이 받은 내가 짜증을 부리는 데 옆에서 유현이 한 마디 거들었다.

“그거 있잖아. 권태기 전에 오는 거. 그거 아닐까?”

“뭔데?”

“변태기.”

“뭐?”

“동물이 개체발성 과정 중에 극심한 형태변화를 거치며 성체가 되는 것, 변태한다고 하잖아. 커플들에겐 본모습을 슬슬 내보이며 그나마 붙어있던 정도 떨어지는 시기지.”

“에엥?”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부라리니 유현이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헤어지기 전에 서로 지겨울 때, 무의식중으로 될 대로 되라 하면서 막나가는 시기라는 거다. 내숭이라는 껍질 안에 있던 본 모습을 보이며 지 맘대로 훨훨 날아가는 시기라지. 한참 만만할 때니까. 뱀이 허물 벗듯이 겉치레 다 집어치우고 뺀질뺀질 거리잖아.”

 오호, 어째 맥락은 안 맞긴 하지만 그럴싸하다! 정말 그런 게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도 든다. 

머릿속으로 확신이 들랑 말랑 하는데 경헌이 참견을 해왔다.

“그런데 네 애인은 사시를 왜 그렇게 반대하는 건데?”

경헌은 해원과 내 관계를 우리가 떠들 때 옆에서 가끔 듣기만 하니 잘 모르고 있었다.

 나와 유현은 그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사실대로 말 할 수도,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그랬다.

 예전 같으면 씹으면 그만이지만 같이 스터디 하다 보니 유대관계도 나름 돈독해져 이제는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슬쩍 눈치를 보니 경헌은 역시나 특유의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궁금한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때 옆에서 유현이 나를 가리키며 해맑게 웃었다.

“이 새끼 애인 깡패잖아. 애인 손에 연행될까봐 그러지.”

“야!”

“컥!”

 이 미친놈이 누구 인생 조질라고! 

오늘 아침 해원을 골로 보낼 뻔  했던 넥 크런치를 유현이놈에게 걸어주었다. 

어디서 감히 천기누설을 하느냐! 내 너를 매우 치리라!

“깡패?…….”

“깡패가 아니라 사채업자야!”

경헌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것을 정확하게 정정해주었다. 그

러자 미묘해지는 놈의 표정, 놈은 사채업자라 다시 되새김질하더니 무언가 기억을 더듬는 것 같은 눈동자가 된다.

“사채업자라…….그러고 보니 예전에 사채업자들을 만난 기억이…….”

“뭐? 니가?”

경헌이 같이 곱게 자란 놈이 그런 치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경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예전에 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경헌은 열여덟 살 때 친족들끼리 양평에 있는 별장에서 일주일정도 휴가를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항렬 중에선 거의 막내였기에 할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막내 손자란 언제나 귀여움 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라는데, 저 무뚝뚝함을 봐선 믿을 수 없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옆 별장에도 누군가 놀러왔단다. 

산책 가던 길에 우연히 마주쳤고 마침 자신의 할아버지와 비슷해 보이는 연령대의 할아버지가 있었고 두 분은 곧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니, 이거 윤 회장님 아니십니까?’

‘아니 자네는 한 사장? 여기 웬일인가?’

‘얼마 전에 별장을 구입해서 놀러왔지요. 옆 별장이 윤 회장님 이시라더니 정말이었네요.’

서로 안면이 있던 차라 두 할아버지는 곧 의기투합해서 이런 저런 사업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경헌은 그 노인이 궁금해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저 분은 누구세요?’

‘아 명동에서 사채 놀음하는 한가라고 있단다. 급하게 현금이 필요할 때나 돈세탁할 땐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지.’

경헌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어차피 이 바닥이 다 그러려니 하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두 노인은 의기투합해서 같이 골프도 치고 어울렸다. 

그렇게 며칠 지내던 차에 한사장이 윤 회장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날도 더운데 몸보신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 사장은 정원에 윤 회장과 경헌을 앉히곤 자신의 아들도 소개시켜주었다.

‘제 아들놈입니다. 철중이라고 하지요.’

노인과 꼭 닮은 선량한 얼굴의 남자는 경헌보다 한두 살 많아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상대를 소개시켜줬는데 아들의 친구라고 했다.

‘잘 키워서 써먹으려고 하는 놈입니다. 인사드려라. 윤 회장님이시다. 삼수그룹알지?’

남자는 어디가 다친 건지 온 몸에 붕대로 감아져있다. 

한 쪽 눈은 안대로 가려졌고 얼굴도 성한 데가 없었다.

‘아니, 저 청년은 꼬라지가 왜 저럽니까?’

‘하하, 수련을 하던 중 곰을 만나서 저럽니다. 암컷 황곰 인데 덩치도 크지만 성질도 매우 사납더이다.’

노인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지며 청년에게 부탄가스를 내밀었다. 

한 사장은 빙긋 웃으며 경헌에게 물었다.

‘개 좋아하니?’

경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철중이라고 불린 남자가 하얀 개를 데리고 왔다. 

경헌은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개와 노는 데 열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 사장이 껄껄 웃었다.

‘잡종 백구인데 들이다 산이다 뛰어다녀서 고기 맛이 쫄깃할 겁니다.’

‘거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네요.’

 윤 회장도 입맛을 다셨고 경헌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노인들은 충격에 빠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붕대청년이 개를 질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곧 요란한 몽둥이질이 들렸다. 

경헌이 덜덜 떨고 있는 사이에 마사지는 끝났고 어느새 나무에 매달고는 불로 지지고 있는 철중과 붕대청년이 보였다. 한 사장은 그 모습을 보며 외쳤다.

‘철중아! 너무 태우면 안 된다! 웰던 말고 미디엄으로 해!’

어느새 시커멓게 변한 개를 다시 데리고 오는 두 청년이다. 경헌은 그 충격적인 모습에 비틀거렸다. 

붕대청년이 익숙하게 개를 가르기 시작했다. 창자를 집어 뽑는 것까지 전부 봐 버렸다.

‘하하, 이놈이 뭘 하나 가르쳐주면 참 잘합니다.’

‘장래가 기대되는데요?’

두 노인은 개고기에 침을 질질 흘렸다.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경헌은 입을 틀어막고 토기를 참아야 했다.

‘아이고, 잘 얻어먹었습니다.’

‘하하, 내일도 오세요.’

그리고 다음날은 닭이었다. 

미친 듯이 날개 짓하며 반항하는 닭의 모가지를 또각 소리가 나게 비튼 붕대청년은 닭털까지 착착 뽑아냈다.잘 키워서 써먹는다더니 요리사인가? 혹시 곰을 사냥하러 갔다가 다친 것이 아닐까?

어린 경헌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휴가 기간 내내 토끼다 사슴이다 온갖 것들을 잡아먹으며 붙어 다녔다. 

간간히 게임을 즐기기도 했는데 어느 날인가는 점당 천 만 원 으로 내기를 했다. 

자존심이 있지 쪼잔 하게는 못 논다는 이유였다.

“점당 천만 원? 고스톱을?”

얘기를 듣던 유현이 말도 안 된다며 외쳤다. 경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포커인가? 

내심 궁금했던 나도 대답을 재촉했다.

“그럼 뭐?”

“……오목.”

“…….”

“고스톱으로 하려고 했는데 두 분 다 점수 낼 줄 모르고, 장기를 하자니 우리 할아버지가 못하고, 바둑을 두자니 그 쪽이 자신 없다고 해서. 공평하게 오목으로 하셨어.”

공평하게……차라리 알까기를 했다고 해라. 

황당해하는 사이 경헌은 자신도 어이없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아무튼 참 이상한 사람들이었어. 그 붕대 맨 형은 못 잡아 오는 게 없더라고. 그 아들도 착하게 생겨서는 낚시하러 가서보니 회치는 솜씨가 일품이던데. 그리고 무를 진짜 얇게 썰어. 당근으로 꽃도 만들더라고.”

“…….”

나는 왜 붕대청년 얘기를 들으니 해원이 생각나는 거냐? 

그 인간이라면 왠지 저런 기행도 가능 할 것 같았다.

“당신 곰이랑 싸운 적 있어?”

“뭐?”

“싸운 적 없어?”

“너 공부를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니냐?”

해원은 걱정스런 눈초리로 내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도서관으로 데리러 온 김에 물어보니 미친놈 취급이다.

“아니면 온 몸에 붕대 감을 정도로 심하게 다친 적은 없어?”

“……그런 적은 많다만.”

 한두 번 찔려봤어야지 하며 해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인간 위험하다! 

스스슥 문 쪽으로 달라붙자 해원은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괜찮아. 요즘은 위험한 일도 거의 안하고 직접 뛰는 것보다 총알받이 쓰는 일이 많아서.”

“……자랑이냐? 근데 어디가?”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공부만 하느라 답답하지?”

“그거야 그렇지만.”

 왠지 가는 길이 범상치 않다. 한강을 달리는 것 까진 괜찮은데 이거 점점 서울을 벗어나는 것 같다. 

그러다 덜컥 어느 길로 진입한다.

“잠깐! 갑자기 중부고속도로는 왜 타는 건데?”

“동해가려면 이 길로 가야지.”

“이봐!”

 동해라니, 동대문도 아니고 동두천도 아니고 동사무소도 아니고 동해라니. 

순간 머릿속에서 쏴아아 소리가 나며 파도가 밀려오는 해질녘 백사장이 펼쳐졌다. 

그리고 저 멀리 물에 동동 떠내려가는 판자 떼기엔 사시합격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이 미친놈아! 당장 내려줘!”

“하하 내가 조개구이 잘 하는 집을 아는데 너도 좋아할 거다.”

“조개구이고 나발이고 당장 차 돌려!”

“며칠 푹 쉬면 공부도 더 잘 될 거야.”

해원은 하하하하 웃으며 더 세게 엑셀을 밟았다. 내 말은 콧구멍으로 안 듣는 게 분명했다.

“내려달란 말이야아아아아~!”

차안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속 120km를 밟고 있는 데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오늘 가서 요점정리도 해야 하고 동영상 강의도 봐야 되는데, 내일은 경헌이 준비한 퀴즈도 풀어야 하는데, 모래는 경헌이가 안다는 법조인한테 과외도 같이 받기로 했는데. 

조르고 졸라서 만든 기횐데 이런 염병할!

-지금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유현은 거기까지 듣다가 폴더를 닫았다. 친구의 행방은 이로써 오리무중이었다. 

어제 도서관에서 해원의 전화를 받고 조금 일찍 먼저 나갔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없다.

 아침까지 들어오겠지 했더니 오후가 다 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전화 꺼져있어.”

“……그래?”

경헌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속으론 나이스를 외쳤다. 

사실 수현이 있으면 덜 어색할 뿐이지 방해되는 건 사실이었다.

 약점을 잡은 핑계로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조르는 것도 못마땅했기에 사라져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지 애인이랑 노느라고 폰까지 끈 건가? 개념 없는 놈.”

 동해까지 질질 끌려간 수현이 들으면 나는 억울하오 외쳤겠지만 유현은 그런 사정 따윈 몰랐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연애놀음이냐? 안 그러냐?”

“……그렇지.”

경헌은 바로 맞장구를 쳤다. 

사시 라이벌 한 명 줄어들면 고마운 것이고, 유현과 둘이 있으면 지화자 좋을 뿐인 경헌에게 수현의 부재 따윈 안중에도 없다.

“이 새끼 기다리느라고 아침도 못 먹었는데. 넌 먹었냐?”

“어?……아니. 아직 안 먹었어.”

 사실은 간단하게 먹고 나왔지만 냉큼 거짓말을 하는 경헌이었다.

“잠깐 기다려봐 같이 간단하게 먹자.”

유현은 냉장고에서 반찬을 몇 가지 꺼낸 뒤 찌개를 끓였다. 어제 먹다 남긴 김치찌개였다. 

반찬은 계란말이와 감자조림 그리고 김과 김치뿐이었다. 

소박하지만 가정적인 상차림에 경헌은 조금 놀랐다.

“……네가 만든 거야?”

“아니. 수현이가 만들었어. 난 요리할 줄 몰라.”

‘그러시겠지…….’

정확히는 먹는 것 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콩깍지가 씌었어도 상황판단은 정확한 경헌이었다.

저번에 노래방에 간 이후 인식이 바뀐 건지 유현은 경헌에게 제법 마음을 여는 중이었다. 

자신의 집도 빌려주고 사시준비도 도와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생각보단 괜찮은 놈이네 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시 준비한다고 같이 다니던 동기고 나발이고 친구들과 연락 다 끊은 그의 독함을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어차피 빼앗길 시간이라면 차라리 유현에게 올인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유현은 밥을 먹으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늘 퀴즈 풀기로 한 거 어쩌지?”

“우리 둘이 해야지 뭐.”

퀴즈라고 해봤자 각자 요점정리 한 것을 보며 상대에게 질문해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이지만 경쟁심 유발에는 도움이 된다. 

모의고사가 얼마 안 남았기에 각자 돌아가면서 형법, 민법, 헌법 한 과목씩 맡아서 문제를 만들었는데 수현이 빠지면 민법부분이 펑크가 난다.

“민법은 각자 서브노트나 문제집에서 그냥 내면 않을까?”

“그럴까나?”

“어차피 우리 다 김형배서 보니까 별로 다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둘은 식사를 끝냈다. 

어차피 사시합격만 바라보고 사는 법대생들이다 보니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경헌의 집으로 향한 둘은 곧 공부를 시작했다. 도서관은 사실 불편했다. 

이왕이면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경헌의 집에서 시원하고 편하게 공부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소파에 기대있기도 하고 누워서 하기도 하고 엎드려서 뒹굴기도 하는 둥 유현은 유유자적이었다.

 그러다 경헌이 시켜 준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누워있는데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안되는데 자면 안 되는데 머리로는 반항을 했지만 누군가가 잡아당기듯 눈꺼풀은 감기고 말았다. 

어제 동영상 강의를 보느라 새벽 늦게 잤기에 잠시 쉰다고 눈을 감은 것이 낮잠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편, 경헌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거실에 뻗어있던 유현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했다. 

유현은 마치 자기 집 안방마냥 편하게 쿠션을 배고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경헌은 한숨을 내쉬며 유현을 안아들었다.

“……윽!”

그리곤 바로 비틀거렸다. 날씬한 여자도 아니고 상대는 자신보다 약간 체구의 남자였다. 

자신의 방 침대에 눕히러 가는 동안 허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그러나 유현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눕히곤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유현은 여전히 입을 헤 벌리고 자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며 웃음 짓던 경헌은 다시 공부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닫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이건 아니잖아!’

누군가가 뒷덜미를 탁 잡아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속사포처럼 속삭여 대는 이름 모를 그 무언가!

‘너 바보냐? 이대로 그냥 나가서 공부 할 거냐? 어?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겠다고?’

지금 이 집에선 둘 밖에 없고, 방해꾼인 수현은 연락두절이며 침대에선 유현이 날 잡아 잡수 하고 누워있었다. 자고로 남자라면 한번쯤 찝적거려 줘야 예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경헌의 걸음이 비디오화면 되돌아 감기처럼 문 워크 했다.

 다시 침대 맡으로 도착한 그는 아래에서 쿨쿨 자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무방비하게 잠들어서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것 같았다.

자신의 침대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누워있는데 불끈 하지 않을 남자가 있다면 그건 고자뿐이다. 

자고로 남자라면 마음이 야심과 흑심이 반반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도 있다.

 누가 했는지도 모를 불확실한 고증을 들먹여가며 경헌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손이라도 잡아보자!’

굉장히 소박한 흑심이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모텔에 가서 잠만 자다 나올 놈 같으니라고.

 팬티를 벗겨서 고무줄로 새총 만들고, 고추 꺼내서 끼우는 방법을 몰라 딸딸이만 치고 만족할 초딩만도 못한 놈아! 라는 욕이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혹은 내부의 악마가 하는 소릴 지도 모른다. 

경헌은 조용히 몸을 낮추곤 널 부러진 팔 끝에 붙어있는 손을 슬쩍 건드렸다.

 굳은살 때문에 딱딱하지만 따듯한 살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괜히 가슴이 설레고 감동이 밀려온다. 유현은 여전히 색색거리며 잘만 자고 있다.

 슬쩍 손을 움직여 머리카락을 쓸어도 깰 기색이 없었다. 자고 있는 모습은 어린 아이 같았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움직여 이마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자고 있는 상대의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댄다. 

더한 짓도 해봤으면서 스스로가 더 놀라 얼굴이 붉어져 경헌은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누군가 말했다. 연애는 타이밍이라고. 

처음 시작할 때, 사랑할 때 끝났을 때마다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지만 사랑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끝났을 때 미련이 없을 정도로.  라고 했던가. 

좋아한다고 깨달았을 때 제대로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설마설마 하다가 다가설 기회를 잃어버렸다.

 확실히 인정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대쉬해야 할지 몰라 위성처럼 주변을 뱅뱅 돌기만 할 뿐, 그 이상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에게 고백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여태껏 상대들도 자신들이 먼저 온 것이지 경헌이 원해서 누군가와 만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보다 한술 더 뜨는 바람둥이에 엽기에 가까운 성격을 소유했다.

왜 하필 이 사람일까?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아무리 봐도 내가 아까워 등등 시간을 낭비하게 했던 고민들.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상대는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휴…….”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온다. 경헌은 닿을락 말락 쓰다듬던 손길을 거두었다. 

이 이상 있다가는 또 머리 싸매고 자기비하에 빠질 것만 같았다. 

 유현이 깨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

 살짝 돌아보니 여전히 유현은 세상모른 듯 잠들어 있었다. 

경헌은 쓴웃음을 지으며 문을 살살 끌어당겼다.

조그맣게 탁 소리가 나며 방문이 닫혔다. 그리고 침대에선 여전히 낮은 숨소리만 들려온다.

 몇 초가 흐르고 고요한 방에선 여전히 유현만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시체처럼 자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움찔거렸고 곧 눈이 살며시 열렸다. 

깜빡깜빡 거리며 한동안 꿈인지 생신지 모를 표정이던 그는 천천히 실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느리게 좌우앞뒤로 데구르르 눈동자를 굴리던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퍼뜩 떴다.

 방금 전에 자신의 입술에 닿았던 것의 감촉이 생생했다.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유현은 경악에 찬 눈으로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잠이 든 건지 일어나보니 짠 내 가득한 바다였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두시였지만 24시간 횟집이 널려있었고 해원은 그 중에 한 곳을 척척 들어가더니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모듬 조개구이와 왕새우소금구이 쭈꾸미 볶음과 칼국수까지 나오는 푸짐한 메뉴였다.

“이걸 언제 다 먹어?”

“못 먹으면 남기던가.”

가뜩이나 자다 일어나서 더부룩한 내가 항의하자 해원은 뻔뻔스레 대꾸하며 스끼다시들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운전해서 배도 고프고 피곤하다며 열심히도 먹는다.

“도대체가…….”

공부해야 되는 나를 바다까지 기어코 끌고 와서는 원치도 않는 조개구이를 먹게 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 사시방해를 위해서 이젠 지방원정까지 뛰는 건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거친 젓가락질로 음식을 팍팍 집어넣었다. 그래, 어차피 온 거 다 먹어주겠어.

 둘 다 피곤에 찌들어 있었지만 배는 고픈지라 경쟁하듯 밥을 먹었다.

 그리곤 밤바다를 구경한답시고 근처를 산책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시커먼 저녁에 눈에 뵈는 게 있을 리가 없다. 기껏해야 바로 앞에 파도나 보이고 말 뿐이었다.

 해원은 싫다는 나를 물가로 가까이 끌고 간다.

“새벽에 수영하다 사이좋게 골로 가자고?”

“누가 수영 한다고 했냐? 이왕 온 거 발이라도 적셔보자는 거지.”

“……나이 먹어서 주책이십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여자랑 남자가 서로 집어던지고 꺄르르 나 잡아봐라 하는 그런 게 있던데.

 나는 해원을 헤드락 걸어 물에 빠트린 뒤 익사시키고 싶다.

 어떻게 정당방위라고 우길 자연스런 살해 방법이 없나 모색하는 중이었다. 

해원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백사장 위에 놓고 파도가 올라오는 곳까지 걸어갔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 벗은 후였다.

“……춥다.”

발목까지 넘실넘실 차오르는 물은 얼음같이 차갑기만 하다.

 게다가 둥둥 떠내려 온 미역줄거리가 발에 착착 감겨온다. 

휴가철이라 바닷가엔 온갖 쓰레기 널려있으시고, 근처엔 텐트촌까지 있어서 정말 궁상이 뚝뚝 떨어지는 풍경이다.

“아주 그냥 잠이 확 깬다. 확 깨.”

“저 쪽으로 가면 인적 없고 괜찮은 해변 가가 있어.”

해원은 다시 신발을 신고 내 팔을 잡아끌고 어디 론가 향했다. 

그러나 나는 가고 싶은 마음이 털 끝 만큼도 없었다.

“됐으니까 올라가자. 조개구이 먹었으니 됐잖아.”

“야, 내려 온 김에 하루 정돈 놀다가야 수지가 맞지.”

“수지 같은 소리하네. 수장당하기 전에 안 올라가?”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만 올라가면 잠깐 눈 붙인 뒤 다시 공부하면 되니까 상관없다. 

그러나 해원은 못들은 척 척척 앞 서 걸어간다. 내말은 안 듣겠다는 의지가 등짝에서부터 느껴졌다.

“당신 학업방해죄로 고소할거야!”

“데이트 좀 하자는 데 빡빡하게 굴지마라.”

“이게 데이트냐? 납치지! 확 신고해버린다!”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주저 없이 11을 누르고 이제 나머지 2번을 누르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해원이 핸드폰을 확 뺏어가 버린다. 그리고 곧 투수 자세를 잡더니 휙 하곤 바다로 던져버렸다. 던져지는 김에 열린 건지 순간 반짝거리는 액정화면이 마치 별이 되어 날라 가는 듯 했다.

 휘잉 하고 날라 가다 어느 순간 보이지도 않더니 풍덩 소리가 약하게 났다.

 못해도 30M는 날라 간 듯 했다.

“……이, 이 미친 인간이! 무슨 짓이야!”

 저게 얼마짜린데!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내가 외치자 그는 당당하게 외쳤다.

“나이스 샷…….”

“끄아아악! 야! 정해원 너 돌았냐?”

“뭐! 저거 내가 사줬잖아!”

“…….”

 그래 깜빡했는데 니가 사주긴 했다. 그렇다고 그걸 마음대로 던지냐? 저 안에 있는 번호들 어쩔 거야! MP3들 다 내 돈 주고 다운받았다고! 그리고 줬으면 일단 내 거잖아! 저거 없으면 어쩌라고!

“야! 너 진짜 막 나갈래? 나 공부 못하게 하려고 작정했냐?”

“아 시끄러! 씨발! 그깟 공부 하루 이틀 쉰다고 죽어?”

 내가 눈에 쌍심지를 키며 화를 내자 적반하장이라고 해원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니 이인간이 소리 지르면 단 줄 아나?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자 그는 성질을 주체 못하며  발로 모래를 퍽퍽 찬다.

“연락하면 공부해야 된다고 끊어대고 만나러가도 얼굴만 내밀었다 쏙 들어가 버리고! 주말에도 보기 힘들어서 잠깐 머리 좀 식히러 나왔더니 집에 가자는 말 밖에 안하냐? 남이 성의를 보였으면 좀 고마워  해라!”

“……이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순히 인정하기엔 어폐가 있는 말이었다.

 일단 나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고 공부 때문에 자주 못 만난다는 건 당연했다. 

사시가 물로 보이냐? 난 법대 들어온 그 순간부터 시험을 준비하고 살아왔다. 

육년 동안 공부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데 방해질을 했겠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기엔 해원이 저지른 행동은 너무 심했다.

“그렇다고 굳이 동해까지 끌고 와야 했어?”

“너 바다 좋아하잖아. 올 여름엔 못 갔으니까 데려와 준건데.”

“……장난 해?”

 바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매해 여름마다 바다를 가장 선호하긴 했지만 적어도 시험기간엔 자제 하라고!

“여행이라면 친구랑 미리 하와이 다녀왔다고!”

비록 부곡하와이였지만 말이다. 바다는 못 갈망정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 들어가기 전에 같다왔다.

 어쨌건 잘 놀다 왔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끌고 오다니 진정 민폐다.

“이 대책 없는 인간아! 바람 쐬려면 수도권에서 해결해!”

그러나 거기서 수긍하고 사과하면 정해원이 아니다. 

해원은 내 말에 표정을 구기더니 한술 더 뜨는 말을 한다.

“왜 나랑 안가고 친구랑 갔어!”

“……미친.”

 안 되겠다. 진정 이 인간은 대화가 안 통한다.

 기본적으로, 상식적으로, 정서적으로, 이성적으로 진화가 덜 돼있어. 이 크로마뇽인보다 못한 놈.

“아, 시끄러. 당신이랑 얘기하면 편두통 일어나. 닥치고 그냥 서울이나 올라가.”

“미쳤냐? 여기까지 내려와선 바로 가게?”

“그럼 뭘 하자고!”

“뭐하긴 당연히 여행 왔으니까 자고 가야지.”

 그래 니가 그 말 안하면 정해원이 아니지. 니 머릿속엔 오로지 떡칠 생각 밖에 없냐?

 아예 방앗간을 차려라! 이젠 대꾸할 기운도 없다. 그냥 몸을 돌려서 터벅터벅 차로 돌아갔다.

“야! 어디가!”

 뒤에서 해원이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향했다. 

퍽퍽 모래에 발이 빠져 걸음은 느렸지만 그래도 앞으로 씩씩하게 전진했다.

 뒤에서 해원이 큰 소리로 날 부른다.

“야! 모텔은 반대 방향이야!”

 순간 휘청해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다리에 기운이 풀려 비틀비틀 걷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한 가지, 파도에 밀려 떠내려 왔는지 바로 앞에 시푸르딩딩한 그것. 운이 좋게도 한 무더기가 있다.

“닥쳐! 이 화상아.”

 미역줄거리를 끌어 모아 그에게 냅다 집어던졌다. 마음 같아선 그를 모래사장에 확 묻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정말 저 인간을 왜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서울까지 운전하기엔 너무나 피곤하다는 해원의 배째라 주장 때문에 모텔에 오긴 왔다.

 피곤하긴 한지 해원은 나한테 지분거리다 얼마안가 잠이 들어버렸다.

 나도 잠시 눈 붙인다는 것이 무색하게 쿨쿨 잠들었고 일어나니 다음 날 정오다.

그때쯤 되니 나도 모든 걸 체념하고 제발 오늘 안에만 돌아가자는 생각뿐이었다. 

체크아웃 되기 전에 해야 한다는 해원의 말에 별로 내키지 않는 섹스를 하고, 땡기지 않는 식사를 하고 별로 원하지 않던 바다구경까지 한 뒤에 올라왔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가를 바라보며 지금쯤 망망대해 속에 가라앉았을 내 핸드폰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아이고 내 폰 어쩔껴 우는 소리를 하자 해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알았어. 서울 가서 하나 사줄게.”

“……DMB로 사줘.”

“……알았다.”

 이왕 받을 건 받고 신형 폰 장만해서 피골이 상접한 채 돌아와 보니 한 밤중이다.

 집에는 나보다 더 퀭한 유현이 있었다. 

어두운 거실에 우두커니 무릎을 모으고 앉아있는 모습이 귀신같았다.

“……왔냐?”

“……헉, 깜짝 놀랐네.”

기운이 없어 일단 내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씻기 위해 욕실로 가는 데 유현이 붙잡는다.

“전화 왜 안 받아? 계속 꺼져있고.”

“잃어버려서 새로 샀다.”

“왜 잃어버려?”

“바다에 빠졌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유현의 눈길에 조금 찔렸다. 나 혼자 놀러갔다 온 것도 아닌데.

“가고 싶어서 간 거 아냐! 나 고생 많이 했어. 내 얼굴을 봐.”

 우여곡절에 찌들린 페이스를 들이밀자 유현은 꼴도 보기 싫다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연애질 하느라 고생 많지.”

“아니야!”

 유현은 피식 비웃음으로 대답을 하곤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나저나 왜 불도 안 키고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야, 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설마 고시생들의 수렁인 시작부터 자포자기 시즌에 들어간 건가? 

내 물음에 유현은 물끄러미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쉰다.

“……아무래도.”

“응?”

“에휴…….”

유현은 대답하다 말고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한참을 말 할까 말까 망설이다 어서 말해보라는 내 닦달에 겨우 입을 연다.

“윤경헌이.”

“경헌이?”

“나 좋아하나 봐.”

“…….”

 유현은 돈이라도 잃어버린 얼굴로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나는 바로 뒤돌아서 욕실로 들어갔다.

“야! 김수현! 너 왜 듣다 말어?”

“……난 또 뭐라고.”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저 녀석도 요즘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돌아버렸나 보다.

 나 아니면 지 놈 밖에 더 있나? 경헌이 나는 아니라고 한 시점에서 깨달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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