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 웬만해선 그놈을 꼬실 수 없다 (11/15)

11. 웬만해선 그놈을 꼬실 수 없다

한풀 더위가 꺾여 제법 선선해진 날씨였다. 

이젠 바깥에 나와도 되겠다 싶어 셋은 오랜만에 점심을 야외에서 먹기로 했다. 

배달된 음식을 다 먹은 후에 담배를 피우며 수현이 경헌에게 물었다.

“너 남자 많지 않았냐?”

요즘 들어 궁금했던 점이었다. 분명 복학 후에 알고 지내긴 했지만 경헌은 늘 남자가 끊이질 않았다. 

같이 클럽에 가도 남자가 달라붙곤 했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은 해원과의 문제로 바빴기 때문에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유현은 담배 사러 가서 마침 자리에 없었다고 경헌은 그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랬었나?”

“자기 일인데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수현은 경헌의 반응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타박을 한다. 경헌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너 꽤 바람둥이 아니었어?”

“누가 바람둥이야?”

 방금 전까지 모습과는 달리 이번엔 정색을 하며 부정한다.

“그냥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았지. 내가 먼저 대쉬한 적 없어.”

“잘났다.”

 차라리 대놓고 자랑을 해라. 수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등나무에 몸을 기댔다. 

그들이 자주 휴식을 취하러 오는 벤치였다. 음식점에도 법도 앞 벤치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다. 

나무 테이블도 있어서 이곳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 짱개를 시켜먹어 테이블 위엔 그릇이 쌓여있다. 

수현은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떼어내며 연기를 뱉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던 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경헌을 손짓한다.

“근데 유현이도 남자 많은 건 알아?”

“……알아.”

 수현은 해원을 만나면서 정리를 했지만 유현은 여전히 수많은 섹스파트너들을 거느리고 있다.

 섹파 겸 친구 겸 해서 데이트 메이트만 수현이 아는 게 열 명이 넘었다.

“지금은 사시공부 하느라 떨거지들은 접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아. 어디보자……강인이, 동완이, 지원이형이랑 

정민이랑 현중이랑 윤호랑 그리고 또 누구더라? 아 그래, 기범이도 있구나. 얘는 조만간 군대 간다고 자주 만나던데. 

그리고 정혁이 형도 있고. 요즘 규종이는 안 만난다고 했나? 또 유학 간 누구 있는데 걔 이름이 뭐였더라.”

수현이 놀리듯 숫자를 세며 일일이 이름을 말하자 경헌은 인상을 구기며 정정해주었다.

“최동욱 그리고 김태평이 빠졌잖아.”

“……아, 그렇지. 근데 태평이 형은 일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서 안 만 난지 꽤 됐어. 근데 너 잘 안다?”

“……후우.”

경헌은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수현은 킬킬거리며 비웃는다. 

확실히 유현은 벅차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경헌이 삽질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너무 재미있기만 한 그다. 

경헌은 대놓고 비웃는 수현의 모습에 울컥 화를 낸다.

“웃지 마.”

“그럼 웃기질 말든가.”

 둘이 싸우는 틈에 유현이 찾아왔다. 

입에 담배를 문채 껄렁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경헌은 잽싸게 수현을 쥐어박으려던 주먹을 거두었다. 

유현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중이었다.

“알았어. 조금 이따 봐. 응, 가서 전화할게.”

간단하게 용건을 전한 뒤 폴더를 닫는다. 곧 그는 수현에게 담배를 건넸다.

“자.”

“오, 감사.”

수현은 지금 피는 돛대밖에 남지 않아 유현이 사러간 김에 자신의 것도 부탁했다. 

거스름돈도 주고 유현은 인사를 건넸다.

“나 그만 가볼게. 수현아. 내 가방 좀 챙겨서 집에 가라.”

“어딜?”

“일이 있어서.”

“그래? 근데 그냥 가도 돼?”

 대충 손을 흔들며 유현은 가뿐하게 떠났다. 

핸드폰과 담배, 지갑만 있으면 된다며 가방까지 맡기고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마도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겠지, 경헌은 티 안 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에 수현도 전화가 왔다.

“왜 또 전화질? ……응? 지금 밥 먹고 다시 공부하러 들어가려고……누구랑 있냐고? 친구들이지 누구야. 

말 하면 니가 아냐?……왜 또 시비야? 아, 시끄러. 끊어. 왜 반말이냐고? 꼬우면 와서 치든가. 예, 예. 와서 죽이시든가요. 

무서워 죽겠네…… 아, 진짜 공부한다니까 그러네. 끊어!”

해원이 제주도에서 전화를 걸어 온 모양이다. 애인이 아니라 말썽많은 부모와 자식의 대화 같았다. 

혹은 배째라는 식의 변제자와 사채업자의 통화 같기도 하다. 공부한다를 돈 없다로 바꾸면 완벽했다.

군 제대 후 복학 후였다. 

어쩔 수없이 그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경헌은 처음엔 그들의 뻔뻔함에 놀랐고 두 번째로 유현의 남성편력에 놀랐다. 

도무지 기준이란 게 없는 인간이 바로 김유현이었다.그 날도 어김없이 뜯기던 중이었다. 

경헌은 왜 자신이 이들에게 물주노릇을 해야 하는가 싶었지만 마구잡이로 삥을 뜯으니 당할 재간이 없었다. 

어거지 반 협박 반으로 툭하면 술 사줘 밥 사줘 요구하는 둘과 함께 호프집에 있는데 유현의 전화가 울렸다.

‘어, 지금? 괜찮아. 나갈게. 야, 나 먼저 간다.’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나가는 그를 보며 황당해하는 데 수현이 옆에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쟤는 먹을 땐 건들면 안 돼.’

‘먹을 때?’

‘응, 밥 먹을 때랑 남자 먹을 때.’

남자와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김유현, 다양한 메뉴로 과식을 생활화하는 사나이였다. 

외모에 대해서도, 체격에 대해서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수현이 바텀 쪽을 더 선호한다면 유현은 올라운드 멀티 플레이어였다.

‘내가 쟤 이해 안가는 게 딱 한 가지가 있는데 자기보다 덩치 큰 남자 까는 걸 재밌어 한다는 거야.’

‘…….’

‘게다가 호기심은 어찌나 왕성한지 정기적으로 청계천 러브샵 순회 가야한다니까. 그리고 산 건 꼭 써먹어야 돼. 

그리고 어찌나 위험한 것들이 많은지 쟤 방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

가벼운 SM은 물론이고 심지어 3P까지도 허용한다는 말에 처음엔 비틀했었다. 

만약 나중에 사시 합격이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 머리가 아찔했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저딴 게 활동한다니,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수현은 안색이 창백해진 경헌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지껄이며 방긋방긋 웃었다.

‘그래도 남자는 없는데 꼴릴 때면 유현이 로터나 바이브 빌려 쓰니까 편하고 좋더라. 성능 어찌나 좋은지 그것만 있어도 

애인 필요 없겠던데? 너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잘하면 빌려 줄 거야.’

……그런 얘길 왜 나한테 하는 건데? 그리고 내가 그걸 왜 빌려 써?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남의 영업장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현의 남자들은 종종 학교로 찾아오기도 하고, 술자리에 놀러오기도 하고 클럽에 가면 널려있었다. 

성격, 외모 천차만별이었다. 

유현은 자신이 내키면 잠시 나갔다 오기도 하고 경헌이나 수현 앞에서 간단한 페팅을 나누기도 했다. 

수현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 또한 여러 남자들과 어울렸다. 해원과 사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술 마시고 노는 정도라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자신도 순결한 편은 아니지만 이들에 비해선 티 없이 맑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경헌은 어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클럽에서 남자를 구하지 않는 수현과 붙어 있다 보니 오해를 하는 건지 남자들이 다가오는 일도 줄어들었다. 겉보기엔 나름 어울리는 커플이던 탓이다.

수현은 입만 다물면 순진해 보이는 미남이었다.

경헌은 그보다 4cm정도 큰 체격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성격 있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수현은 원래 웃음이 헤픈 편이고 경헌은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편이라 남들 눈엔 둘이 사이가 좋아 보였다. 비주얼상으론 커플 같으니 다가오는 남자가 없었다. 

스테디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고 유현은 나름 남자 사냥에 바빠서 수현과 같이 있는 시간이 늘었다.

어차피 그들 옆에 있자니 별로 있지도 않던 남자에 대한 환상이 박살나고, 사귀고 싶은 의욕이 확 가라앉은 상태라 경헌은 작업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경헌이 그렇게 자포자기해서 술을 마시는데 유현은 구석에서 열심히 본분에 충실 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남자는 그의 섹스파트너 중의 한 명이었고 유현은 얇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어딘가 작위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서로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는 은근슬쩍 중심을 비비는 것이 어두운 공간이지만 훤히 보였다. 

남자가 유현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입 꼬리만 올려서 피식 웃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다. 

남자가 유현의 목을 혀로 핥아대며 장난을 치자 유현은 개가 재롱을 부리는 것을 바라보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차가웠다. 그 순간 수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음식, 유현에게 남자는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된다. 

간식, 분식, 정식, 특식으로 분류하고 단순히 섭취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어딘가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유현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유현을 벽에 밀어붙이고 키스를 하던 중이었다. 

유현은 남자와 키스하면서도 실눈을 뜬 채 경헌을 째려봤다. 뭘 봐 이 자식아? 하는 눈빛이다. 

경헌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릴까 했지만 흘끗 바라보던 시선은 도로 거두고 유현도 눈을 감았다. 

어두운 클럽 안에서 스테이지의 싸이키 조명도 닿지 않는 한 구석에서 남자와 진하게 딥 키스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경헌은 그런 모습을 본 게 한두 번도 아니지만 자신이 창피해졌다. 

고개를 돌리며 옆에서 다른 남자들과 노가리를 까던 수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훔쳐 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쯤부터 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다. 

수현과 유현은 키나 외모는 달라도 성격은 고만고만하게 보였지만 확실하게 달랐다. 

기본적으로 둘은 비슷한 성향이지만 수현은 말이 조금 더 많고 알고 보면 진지한 편이고 대하기 편하다. 유현은 조금 더 시니컬하고 냉정하며 속내를 알기 힘들었다. 

구분이 되기 시작하자 한 쪽으로 신경이 쏠린다. 확실히 유현이 신경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제나 비틀린 미소만 짓고, 정조관념도 없고, 대놓고 재수 없는 그 남자가 자꾸 눈에 밟혔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을까? 왜 저러고 살까? 한심하기만 했는데 이젠 그 이유가 알고 싶어진다. 

왜 하필이면 단점부터 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시작된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나 다음날도 셋은 모여서 공부를 했다. 일어나서 밥 먹고 공부하고 다시 밥 먹고 공부하고 자고 다시 일어나 밥 먹고 공부하는 하루하루였다. 사시 공부는 밑 빠진 항아리에 물붓기라더니 정말이었다. 

경헌의 집에서 또 미친 듯이 책을 파고 있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가 났다.

 유현의 샤프와 연습장과의 애무에서 삑사리 난 탓이었다.

“……스트레스 쌓여.”

“여기서 안 쌓인 사람 없어.”

수현이 냉정하게 대답하자 유현은 아악 소리를 내며 머리를 잡아 뜯었다.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염원을 담은 말을 정확히 4옥타브로, 목동이 소 몰고 나물 캐러 가는 창법으로,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질렀다. 물론 자체 에코는 필수요소였다.

“노래방 가고싶어어어어어어억!”

 그러나 가래가 끓어 뒷마무리가 적절치 못하다. 수현은 그런 친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참아. 경헌이가 맛있는 거 사 줄 거야. 먹으면 기분이 풀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봐.”

“아니야! 이번엔 먹을 걸로는 안 돼! 아악! 노래방! 노래방에 안가면 나 죽는 병 걸렸어!”

경헌은 그런 병이 어디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론 낼 수 없었다.

“맥주 마시면서 노래방에서 광란의 스테이지를 벌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으윽 간호사! 나 진정제 좀! 허억허억, 눈에서 검은자가 사라질 것 같아!”

“미치신 분아, 정신 차리고 공부하세요.”

수현은 주저 없이 유현의 이마에 샤프를 박아 넣었다. 그나마 자비롭게 심은 없었다.

“악!”

이마를 부여잡은 채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데굴데굴 구르는 유현을 내버려두고 수현은 다시 책을 폈다.

“자자, 공부하자.”

 그러나 경헌은 이미 책을 덮은 후였다.

“가자.”

“뭐?”

“노래방 가자고.”

“진짜아아?”

 경헌이 벌떡 일어났다. 

바닥에 널 부러져 있던 유현은 만세를 불러댔고 수현은 미친 새끼들이라고 중얼거리며 자신도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결국 경헌의 집 근처 노래방에 자리를 잡았다. 금영은 즐이셈. 우린 무조건 질러벨이셈. 

노래방에서도 태진을 강력히 주장하는 그들이었다. 

유현은 급격히 화색이 돌며 시간도 넣어주기 전부터 탬버린을 들고 설쳤다. 

수현은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아 샹, 난 진짜 가기 싫은데 너희들 때문에 억지로 온 거다.”

“책이나 내려놓고 그런 말 해.”

“에헤헤헹…….”

경헌이 한 마디 하자 수현은 자신도 찔리는지 바보처럼 웃었다. 

유현은 책도 보지 않고 바로 번호를 눌러 곡을 예약했다. 

수현은 예약된 곡목을 보더니 마이크를 덥석 잡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BB의 ‘하늘 땅 별 땅’ 이었다.

“오오! 김유현 굿 잡!”

“시작은 쌍큼하게 가야지.”

 찡긋 한쪽 눈을 감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유현이었다.

 곧 경박한 디스코 음악이 방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니가 마른 남잘 좋아한다 해서 힘든 다이어트 참아왔는데에에에엑! 니가 긴 생머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태껏 길러 왔는데엑! 꺄울!”

“헌데 그러면 뭘해! 아무 소용 없잖아아아아!”

 한 소절씩 불러대며 탬버린을 들고 오두방정을 떨어대는 둘이었다.

“오! 붸이베! 땅 끝 땅 끝도 하늘 별 끝 별 끝도 난 너를 따라갈 준비 뒈이써어어어! 이 짜식아아!”

“돌아 봣! 가까운 곳에 그렇게 니가 원하던 너만을 그런 남자 있잖아악! 안 보이냐? 안 보여?”

마음대로 가사 바꾸지 말아줄래?……게다가 명령형 어조, 거의 샤우팅 수준으로 질러대는 바람에 경헌은 귀를 막아야 했다. 

여자들도 소화하기 힘든 고음을 남자가 불러대려니 힘든 건 이해하지만 이건 거의 고문 수준의 소음공해다. 스피커를 피해 제일 구석자리로 가며 경헌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데시벨 측정하면 바로 고소 들어가도 되겠는데?”

그들과 노래방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바짝 기합이 들어가 있어 괜히 왔다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현과 유현은 어느새 컨츄리 꼬꼬의 ‘Gimme Gimme’를 열창하고 있었다.

 한참을 탬버린을 흔들며 휘청거리던 둘은 헉헉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야, 넌 왜 안 불러?”

“난 됐어.”

 경헌은 노래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히 못 부르지도 잘 부르지도 않는데다 음악도 즐기지 않으니 관심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래도 부르라며 경헌 앞에 수현이 책을 밀어 넣는다. 됐거든 하고 사양하지만 수현은 막무가내다. 

둘이 그렇게 툭탁 거릴 동안 맥주를 마시고 어느새 HP를 회복한 유현이 또 노래 한곡을 예약했다. 

박진영의 ‘난 여자가 있는데’ 였다.

“저거 유현이 18번이다 저거 가사 잘 들어 봐.”

수현이 노래 명을 보자 풉하고 입을 가리며 웃었다.

“왜?”

“들어보면 알아.”

 그러는 사이에 유현이 간주점프를 눌렀고 곧 노래가 시작되었다.

니가 오기 전까지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

세상 누구보다도 잘 나가는 놈팽이였어

 시작부터 무언가 삐끗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헌은 혹시 방금 전의 일로 자신이 귀가 먹었나 싶었다. 

그러는 사이 수현도 마이크를 들고 어느새 코러스를 넣고 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작업을 방해 할 수는 없다고 믿고 있었어

하지만 이젠 너를 만난 후엔

개인기였던 뻐꾸기 완전히 무너지고 (좆같네 그려~)

니가 없이는 난 하루도 살수가 없을 것 같은데

난 남자가 많은데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망할, 너만 보면 난 자꾸 마음이 흔들려

내가 남자가 많은 게 자꾸만 후회가 돼

옘병, 너만 내 곁에 오면

난 그렇게 돼

씨이발 어떡해 어떡해

전화벨이 울리면

영계가 곁에 있는데도

너이기를 바라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어떻게

내가 이렇게 너를 그리워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이래선 안 된다고

이놈을 기필코 따먹어야 한다고

다짐을 해봐도 널 향한

마음은 커져만 가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

숨을 쉴수가 없고 (심부전증인가봐아아)

앞이 보이질 않아 (라식 좀 시켜줘어어어)

너무나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유현과 옆에서 간간이 추임새를 넣어 노래를 망치고 있는 수현이 보인다. 

좋은 노랜데, 바람피우는 남자의 절절한 심정을 애틋하게 그린 명곡인데 그들이 개사를 해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감정몰입으로, 그럴싸한 가창력으로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저 분위기는 뭔데!  그리고 김수현, 쟁반 내려놔! 왜 거기서 쟁반 춤이 나와! 김유현, 너도 노래 끝났으면 꺼! 

점수 확인은 왜 하는 건데!  라고 경헌은 외치고 싶어졌다. 누가 자기 대신 저 둘을 말려주면 좋겠다. 

경헌은 오랜만에 부처님을 찾았다. 그야말로 불심으로 현실도피였다.

마지막으로 수현이 모나리자를 열창하며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났다. 

 ‘어젯밤 이야기’ 를 부를 때 보인 화려한 관절 꺾기에 이어 심각한 다리 떨기까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서불안을 유도하는 동작들이다. 유현은 피토를 할 지경까지 불러 소파에 드러누운 채 반쯤 기절해있다. 혼백이 탈출할 것 같이 창백한 인상이다. 도우미 오빠 불러, 술 더 가져와! 

어이 총각 자네도 한 곡 때리게! 하며 아저씨들 같은 꼬장에 시달리며 덜덜 떨던 경헌은 드디어 안도했다.

“으하하하하! 상쾌하다!”

밖에 나오자 유현은 맥주를 한 손에 든 채 기지개를 켰다. 

세 시간이나 불러 재꼈으니 피곤하고 목이 쉴 만도 한데 생생하기만 하다. 

노래방을 나와 앞서가는 수현과 장난을 치면서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그것을 보는 경헌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힘든 사시준비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역시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귀에겐 못할 짓이었지만 말이다. 아직도 고막이 얼얼하고 지끈거린다.

“아아, 공부하기 싫다.”

“합격해도 평생 법전이랑 판시사항이나 뒤적이며 살아야 할 거 아냐. 우울해. 온갖 추잡한 사건들 뒤치다꺼리나 해야 되고.”

수현과 투덜거리며 대화를 하던 유현은 다 먹은 캔을 쓰레기통에  넣다가 마침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길에다 딱지도 안 붙여진 장롱을 버려놨어?”

“이거 이거 명백히 불법이야.”

 누가 법대생 아니랄까봐 티를 꼭 내는 둘이다. 

뒤에서 그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는데 흘낏 고개를 돌리던 수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씨익 웃더니 유현을 툭툭쳤다.

“수현아, 착.한 경헌이가 네 생.각.해.서 특.별.히 데려와 줬는데 감사인사는 해야지?”

“아, 그렇지. 고맙다. 윤경헌. 덕분에 잘 놀았어.”

유현은 그제야 경헌을 돌아보며 헤벌레 웃었다. 

그리고 옆에선 수현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경헌을 바라보고 있다.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오케인지 돈 내놔 인지 알 수 없는 수신호를 보낸다.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어쩌라고 라는 눈빛을 보내자 수현은 히죽 웃었다.

 손가락은 세 개를 피고 있다. 경헌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삼 만원? 왜 이리 비싸. 한 장으로 해.’

경헌이 손가락 하나를 피자 수현이 고개를 흔들며 엑스자로 팔을 포갠다.

‘어허,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노래방 값도 맥주 값도 내가냈어.’

‘그건 니 사정이고.’

 한 손으론 노래방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 맥주를 그리며 경헌이 반박했다. 

그러자 수현이 손가락질로 경헌을 가리키더니 혀를 삐쭉 내민다. 경헌의 이마에 핏대가 솟는다.

‘이 날도둑!’

‘손님, 이러시면 다음부터 서비스 없어요.’

둘은 어느새 수신호와 눈빛만으로 흥정하고 있었다. 

유현은 자신이 제물이 된 줄은 까맣게 모르고 희희낙락 앞장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아이스 바는 여전히 맛이 없었다. 색소첨가로 겉보기에만 그럴듯하다. 

싸구려 맛이라고 생각하며 해원은 아작아작 깨물어 먹었다. 

수하를 시켜서 일부러 슈퍼까지 가서 사오라고 시켰는데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투숙중인 스위트룸 응접실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며 하드를 먹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해원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상대는 그것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여전히 싸가지라곤 없는 애송이였다.

“뭐 먹냐?”

“보면 모르십니까?”

다정하게 생긴 노인이 묻자 해원은 딱딱하게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잡지에 고정된 채다.

“그걸 왜 먹는 거냐?”

“…….”

 노인의 물음에 해원이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수박 맛이 나나 해서요.”

“…농담이냐 아니면 미친 거냐?”

노인은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해원의 인상은 바싹 구겨졌다. 

역시나 입이 재수 없는 노인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철중이 도착했다. 

그 역시 골프웨어를 입은 채였다. 두 부자는 골프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철중은 덥다며 샤워부터 하러갔고 노인은 그것마저 귀찮은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재밌으셨어요?”

예의상 묻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늘그막에 얻은 취민데 재미라도 있어야 돈 값을 하지.”

“확실히 돈 많은 영감 같은 취미긴 하죠.”

“하여간 넌 입이 방정이야.”

“별말씀을.”

해원은 픽 웃으며 잡지를 옆으로 밀었다. 노인은 내년이면 칠순잔치를 벌이는 것 치곤 혈색이 좋았다. 

중견 탤런트처럼 생긴 외모에 눈이 쳐져 인심 좋은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외모와 성격이 전혀 딴판인 게 이 노인이었다.

“너도 좀 배워 두지 그러냐?”

“전 지루해서 싫어요.”

해원은 노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원체 골프가 취향이 아니기도 했지만 철중처럼 필드에 끌려 다니기도 싫었다. 

해원은 수박 바를 마저 다 먹고 쓰레기통에 막대를 던졌다. 

노인은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입을 달싹거렸지만 잔소리해봤자 듣지도 않을 테니 그냥 포기했다. 시키는 일이나 잘하면 된다고, 해원의 버릇을 고치는 것은 체념한지 오래였다.

“조 씨 일은 어떻게 됐어?”

“장기 다 떼니 본전은 찾겠던데요.”

“죽였냐?”

“떼면 지가 별수 있나요 뭐.”

“그놈 하나갖고 본전 찾기 힘든데?”

“가족은 폼으로 있나요. 뗄 건 떼고 죄다 팔았어요.”

해원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불량식품을 먹은 듯 입 속이 까끌거려 불쾌했다. 

이딴 걸 무슨 맛으로 먹나 궁금할 따름이다. 앞에 있는 물 잔을 들어 입안을 헹구자 조금 나아졌다.

“근데 왜 저한테 시켜요. 귀찮게.”

“왜? 또 그만둔다는 헛소리하려고?”

“진짜라니까요.”

노인이 비웃는 얼굴로 묻자 해원은 인상을 구겼다. 

안 그래도 깡패 소리 듣기 싫어 죽겠는데 노인이 요즘 따라 자꾸 귀찮은 일만 시켜댄다. 

친구인 철중의 소개로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일이 이젠 너무 지겨웠다.

“그런 건 이제 다른 애들 시키시고 전 내버려주세요.”

“그만두면? 그 조그만 사무실에서 일수놀이 따위나 하시겠다고?”

“남이야 노가다를 뛰건, 일수를 놓건. 아무튼 이제 안 해요.”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노인은 말 안 듣는 손자를 보는 시선으로 해원을 바라봤다. 

새파랗게 어릴 때부터 본 아이가 이젠 완연한 남자가 돼서는 강짜를 부리고 있다. 

귀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 느껴졌다. 

철중에게 듣자하니 요즘 목매는 애인이 생겼다는 데 그 탓인가 싶기도 했다. 

정이 없는 게 장점인 놈이었는데 그것도 나이가 드니 녹슨 모양이다.

“여자 때문에 그러는 가 본데 결혼 시켜줄 테니까 그냥 해.”

“예?”

 노인은 제 딴엔 신경써준답시고 말했지만 해원의 표정이 구겨졌다. 

웨딩드레스 입은 수현, 집에서 살림하는 수현,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곧이어 바로 떠오르는 이혼 소송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죽어도 너랑은 못 살아! 

바가지를 박박 긁으며 너무 도장 찍으라는 모습은 안 봐도 DMB였다.

“결혼하라고. 너 지금 여자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냐?”

“하! 여자는 무슨.”

미친 소리 말라고 하고 싶지만 상대는 친구 아버지이자 오너였다. 

해원은 목구멍까지 끓어오르는 욕을 참으며 손 사례를 쳤다. 남

자라고 말하면 저 꼬장꼬장한 성격에 잔소리만 길어질 것이 뻔했다.

“네가 지금 어려서 뭘 모르는 모양인데 그만 두면 뭘 할 건데? 그리고 이제 와서 네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사지 멀쩡한데 왜요?”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살아야지.”

“비유를 해도 꼭. 누군 태어날 때부터 이랬나?”

 노인의 말에 꼭 대거리를 다는 해원이었다. 그는 어느새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야 이놈아! 어른 앞에서.”

“아! 왜 때려요! 언제는 마음대로 피우라면서!”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이 마치 사이 안 좋은 부자지간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온 철중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하하 또 시작이네.”

 저 문제로만 벌써 몇 번째 다툼인지 모른다.

 해원은 작년부터 노인과의 관계를 끊고 싶어 했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해원을 중학교 때부터 노렸던 철중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켰고 강제적으로 대학에도 보냈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이류 사 년제에 제대로 학교를 나간적도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수하로 부려먹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싸가지는 없어도 일은 잘해서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발을 빼려하니 섭섭함에 노인은 절대 허락해주지 않고 있었다. 어쨌거나 양자입적까지 고려할 정도로 아끼는 부하인 것이다. 

그리고 해원이 빠지면 철중도 곤란하니 방관 중이었다. 

지금 하는 일이야 예행연습으로 하는 것이고 나중엔 자신도 아버지 뒤를 이어야하니 해원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제 그냥 포기하지? 다 너 잘되라고…”

“넌 또 뭐야! 닥쳐!”

철중은 노인에게 잔소리를 얻어맞은 친구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그러나 하악 거리며 오히려 성질을 부리는 해원이다.

“잘 되긴 개뿔이! 하여간 니네 부자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다. 

저 성질을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며 철중은 민망함에 또 헐헐 거리며 웃었다. 

십년 넘게 친구이니 익숙한 것이다. 때리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아 저 망할놈의 노인네 죽지도 않네.”

 남의 아버지에게 마음대로 악담을 하는 해원이었다. 

한참동안 씩씩거리며 화를 내더니 곧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빨대를 꽂아 마시기 시작했다.

 아까 전 수하에게 수박 바 사오라고 시킬 때 미리 가져다 둔 것이었다.

“야, 빨대는 왜 꽂아?”

 철중이 묻자 해원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 마지 못하는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이렇게 먹으면 맛있나 싶어서.”

그럴 리가 없잖아.……오히려 흡수가 많이 되 일찍 취하기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성깔 부릴까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철중이 해원을 처음 만난 건 중 1때였다. 철중은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고 모범생에 가까웠다. 

그러나 하필이면 짝이 된 것이 해원이었다. 그때부터 키가 어른과 비슷하고 난폭했던 그였다. 

쌈박질은 하루 일과에 꼭 끼었다. 알고 보니 부모도 없어 고아원에 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철중이 보기엔 저 놈 커서 딱 깡패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가업을 생각하자니 남 말 할 처지도 못되고 덕분에 친구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집안사정상 납치를 당할까봐 늘 교문 앞에 보디가드들을 대동하고 다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것이다. 담임은 처치 곤란한 둘을 쌍으로 묶어버렸다. 

깡패아들과 준비된 깡패라니 어쩌면 환상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해원은 학교에 와서 잠만 자고 거의 오지도 않았다. 철중 만이 혼자 남아 수업을 듣기 일쑤였다. 둘 다 지독히도 고독한 학교생활을 보냈으나 서로에게 일절 간섭 하지 않았다.

 당시 철중에겐 해원은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상대였고 해원은 원래 사람을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보디가드들이 데리러오는 길에 접촉 사고를 내 철중 혼자 집에 가다가 재수 없게 고삐리 양아치에게 걸린 것이다. 

당시에도 무술을 배우긴 했지만 혼자 다섯 명을 해치우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것 같아 어쩔까 고민하는 중에 지나가던 해원을 봤다. 해원은 철중을 보더니 어라 소리를 내며 길가에 섰다. 

그러나 곧 나몰라하고는 다시 걸어가는 것이다.

‘야! 정해원 제발 도와 줘!’

 아무리 안 친해도 일단은 같은 학교에 같은 반에 짝이었다.

 그러나 해원은 생판 남의 일인 양 해원은 모른 척이었다.

‘야! 왜 그냥 가! 도와줘야지!’

까짓 돈이야 뺏기면 그만이지만 이들이 돈만 빼앗지 않을 건 유치원생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미 철중의 앞에 디밀어진 칼이 있는 것이다. 

집에 쌓인 장도들에 비하면 장난감이지만 찔리면 아픈 건 당연지사였다.

‘야, 쟤 그냥 가는데?’

‘킥. 불쌍하네.’

‘아무튼 이 새끼 돈 좀 있어 보이는데 뒤져보자.’

불량배들은 애원하는 철중을 보며 비웃었다. 해원은 잠시 멈춰서더니 철중과 그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었다. 철중은 속으론 열불이 났지만 이때다 싶어 애절하게 외쳤다.

‘야! 내가 이놈들한테 뺏길 거 그냥 너 줄게! 세 놈, 아니 두 놈만 맡아줘!’

 그 말에 해원의 귀가 쫑긋했다. 그리곤 터벅터벅 다가와선 묻는 말이 이것이었다.

‘얼마 줄 건데?’

눈까지 빛내며 묻는 걸 보니 진심이었다.

‘……10만원 준다.’

니가 인간이냐! 

철중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은 살고 보자는 생각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 10만원이면 중학생에겐 나름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나중에 걸리면? 나 합의금 물 돈 없어.’

‘그것도 내가 처리해줄게.’

해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입 닦고 나르면 알지?’

근처에 굴러다니던 돌맹이를 하나 주우며 해원이 말했고 철중은 더욱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량배들은 그들의 행각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더니 두 명이 해원에게 다가갔다.

‘이것들이 뭐하는 거야?’

‘야, 이게 장난 같냐?’

칼 든 불량배가 더욱 가까이 대려는 찰나였다. 철중이 불시에 들고있던 가방으로 그의 면상을 구타했다. 그리고는 냅다 정강이를 찬 뒤에 바로 반사적으로 숙여진 상체를 올려 찼다.

‘억!’

비명을 지르며 한 명이 주저앉았고 나머지 한명이 당황하는 사이 바로 몸을 낮게 해 발을 걷어찼다. 

엎어진 상대를 찍어 내린 뒤 철중은 주위를 살폈다. 해원은 어느새 두 명 째 때려눕히던 중이었다.

 좀 전에 주웠던 돌맹이를 던졌는지 엎어진 한 놈의 이마에선 철철 흐르고 있다.

‘으아아아악! 이 좆만한 자식들이!’

 남은 한 놈이 철중 에게 덤벼들었지만 바로 뒤돌려 차기를 먹였다. 

비틀거리는 상대에게 급소인 명치를 연달아 가격하자 바로 K.o였다.

‘오 꽤 하는데? 샌님인 줄 알았더니.’

해원은 그 모습을 보며 짝짝 박수를 쳤다. 어느새 해치웠는지 드러누운 상대를 발로 밟은 채였다.

‘이익! 지금 한가하게 그럴 때냐?’

 철중은 해원의 팔을 붙잡고 냅다 달렸다.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인 것이다. 

게다가 둘 다 교복차림이었다. 신고라도 당하면 둘 다 쪽박 차는 것이었다.

해원의 팔을 다짜고짜 잡아끌고 철중은 택시를 탔다.

‘어디 가?’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치료부터 하자.’

철중은 불량배들이 그를 만만하게 본데다 불시에 습격을 해서 상처가 별로 없었지만 해원은 몇 군데 자잘하게 상처가 보였다. 하지만 해원은 침을 슥 바르기만 할 뿐이었다.

‘이 까짓 거 그냥 약 바르면 나아.’

‘웃기지마. 제대로 안하면 파상풍 걸린다고.’

‘그건 또 뭐야?’

그것도 모르냐?……철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보다 멍청하고 어이없는 놈이었다. 

집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속대로 십 만원을 주었다.

‘아무튼 고마웠다.’

‘하하, 뭐 이런 걸 다.’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잽싸게 채가는 해원이었다. 

학교에서는 뭐 씹은 얼굴로 불쾌한 듯 앉아만 있어 몰랐는데 웃으니까 보통 애들 같았다.

‘그럼 나 간다.’

‘야. 그냥 가게?’

철중은 그냥 가려는 해원을 붙잡았다.

‘우리 집 차 타고가. 기사아저씨가 데려다 줄 거야.’

‘켁, 기사도 있어?’너희 집 진짜 부자구나?’

 해원은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넓은 단독주택이긴 했다. 

게다가 기사도 있고 어린 것이 십만 원짜리를 들고 다니다니. 해원은 부러워하며 말했다.

‘……재수 없어.’

‘…….’

두 눈에 가득 담긴 적의는 진심이란 걸 알 수 있었다.아무튼 그렇게 그들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친구가 없던 둘은 그 사건으로 말을 트게 됐고 서로의 박복한 팔자를 위로하진 않고 갈구며 지냈다. 

고등학생이 돼서 수험에 열중하기 위해 철중이 독립하자 해원도 고아원을 나와 얹혀살기 시작했고 어느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절친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노력보다는 세월의 의도해 만들어진 우정이긴 하지만, 친구는 친구였다.

 물론 떳떳하고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서로를 믿고 일한 시간이 있었다.

“꼭 그만둬야겠냐?”

철중은 해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해원은 대답하지 않은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당연한 건 묻지도 말라는 태도였다. 철중은 에휴 한숨을 내쉬며 해원의 옆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그 여자한테 사시를 그만두라고 해.”

“…걔가 내가 말 한다고 들으면 진작 그랬지! 그리고 왜 자꾸 여자라고 하는 거냐?”

그제야 해원의 입이 뚫렸다. 철중은 그의 까칠한 반응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남자냐?”

“…….”

“…….”

 둘 사이에 미묘하고도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철중은 설마 하다가 해원이 침묵을 지키자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해원은 또 다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해원 너 미쳤냐아아!”

철중에 입에서 괴상한 함성이 터졌다.

 …젠장, 괜히 말했다 해원이 입가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년이 그놈이었냐? 언제부터냐? 미친 거 아니냐? 

철중이 닦달하는 소리를 애써 씹으며 해원은 자신의 방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끈질기게 쫓아와서 어서 실토하라며 바람피운 남편 닦달하듯이 소리쳐대는 철중을 떼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이쿠! 이 대책 없는 자식아! 너 어쩌려고 그래?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살겠다! 언제부터 그런 거야?”

 나중엔 말썽 많은 자식을 다그치는 어머니 버젼이 되기도 했다.

 학창 시절 해원의 뒤치다꺼리만 해왔던 철중에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아, 남이사! 냅둬! 그래서 내가 뭐 너한테 피해줬어? 니미, 왜 난리 법석이야?”

 그러나 폭군남편처럼, 혹은 패륜아처럼 지가 잘못해놓고 큰소리만 치는 해원이었다. 

어찌 보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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