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발기해서 생긴 일 (7/15)

7.발기해서 생긴 일

해원은 다짜고짜 나를 벽으로 밀어 붙이고선 목을 콱 깨물어 왔다. 

놀란 내가 꽥 비명을 지르는 사이 셔츠를 파헤치며 들어온 손가락이 가슴 부분을 압박하듯 눌러온다.

“아! 아파!…….”

엄지로 긁어내듯이 쓸었다가 다시 검지를 써선 꼬집고 비틀고, 남의 젖꼭지 가지고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원망스럽게 바라봤지만 그는 내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넥타이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스륵 벗겨지는 그 얇고 긴 천 떼기를 중요한 것 마냥 바라보다 픽 웃음을 흘린다.

“이제 보니 교복 같군.”

“…….”

사실 교복 맞다. 설마 모르는 건가? 

당황해서 굳은 나는 해원이 넥타이를 뒤로 가져가는 것도 모른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이 휙 돌려졌고 벽에 얼굴을 쳐 박고 말았다.

“악!”

벽면에 코가 세게 부딪혀서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내 잘생긴 코 부러지겠네. 그 와중에 팔이 꺾인다. 

이번엔 또 뭔데! 휙 뒤를 돌아보니 넥타이로 내 팔을 휙휙 감고 있는 해원이 보였다.

“뭐, 뭐하는 거야!”

 지금 이거 묶는 거 맞지? 잠깐, 설마 내가 상상하는 그런 거 아니지? 

야동에서 흔히 나오는 강간 플레이가 머릿속으로 휙휙 지나간다. 누가 보면 프론 줄 알겠다. 

줄 묶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어느새 다 묶어놓고선 만족스런 웃음을 짓는 해원이 보였다. 

우스스 소름이 쫙 돋았다. 즐기는 거냐? 어? 경악한 눈길로 바라보자 해원이 더욱 농밀한 웃음을 짓는다.

“가만히 있어. 그러다 다쳐.”

이미 즐기고 있네.……갓 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하도 단단하게 옭아매서 발버둥을 쳐도 빠지지가 않는다. 비틀고 당기고 온갖 수단을 다 써도 도무지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서서 지렁이 댄스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풀어야 돼, 풀 거야!

 해원은 내가 그렇게 용트림을 하는 동안 여유 있게 바지를 벗겼다. 

순식간에 벨트를 푸르고 버클을 열어 한 번에 쫙 내렸다.

“허억!”

시원해진 하체에 화들짝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놀랄 틈도 없이 브리프 안으로 침범해온 커다란 손에 또 다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으아아악!”

“……귀신 봤을 때 지르는 수준이네.”

“끄엑!”

부레끼! 어딜 만져! 덕분에 전혀 섹시하지 않은 허스키한 샤우팅까지 튀어나왔다. 

해원은 그게 더 맘에 안 드는지 내 페니스를 꽉 잡아온다. 

발기가 되지 않은 내 것을 손안에 넣고 주물 주물대자 곧 내 입에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흐읏…….”

아프다! 젠장. 하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쾌감이 솟구쳐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제길, 손이라도 자유로웠다면 벽이라도 긁을 텐데. 

오줌 마려울 때처럼 안절부절, 뱃속이 간질간질해서 미치겠다.

“하아……아……읏.”

기둥을 쓸어대는 손길에 점점 크기를 더해가는 내 것이 눈에 보였다. 

귀두부분을 살살 간질이듯 약 올리고 고환을 새끼손가락으로 건드리자 밭은 숨이 절로 나온다. 

벽에 머리를 박은 채 헉헉 거리고 있자니 진짜 스타일 제대로 구긴다. 

목에서 뜨거운 숨이 느껴지더니 곧 데일 것처럼 뜨거운 혀가 귓불을 씹는다. 

질겅거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더니 귓바퀴에 혀를 넣어 굴리고 입술점막이 슬슬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깨를 지나 쇄골을 내려오는 입술, 오른 손으로는 내 사타구니는 마구 문질러대고 다른 손으론 옆구리를 쓰다듬는다.

“윽……그만, 해.”

몸이 뜨거워질수록 머리에도 열이 오른다. 이러다 홀랑 먹혀버릴 게 분명하다. 

막아야 하는데 묶인 바람에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뒤돌아 있는 상태라서 발도 쓸수 없다. 

앞에 있었다면 니 킥을 먹이기라도 할 텐데. 해원의 손이 내 중심을 자극할 때마다 오금이 저렸다.

밭은 숨이 새어나온다. 

끙끙거리며 몸을 숙이자 해원이 다리 아래에 허벅지를 넣어 고정시키고 배를 잡고 일으켰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차라리 더 낫겠지만 아무 말도 없이 오로지 행동으로 보여주니 오싹했다. 

그러고 보니 침대에서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필요한 대화 외엔 조용해서 좋아했는데, 그것이 지금은 무섭기만 하다.

“읏, 하아……앗.”

  이젠 더 이상 커질 수도 없게 발기한 페니스가 해원의 손에 잡혀서 위아래로 쓸리자 아래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쾌감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정감이 몰려왔다.

“이런 짓 하려고 간 거 아니었어?”

 해원이 귓가에 대고 중얼거렸다. 게이 바에 간 이유를 추궁하는 것 같다.

 아니 그럼, 게이가 게이 바에 가지 그럼 어딜 가? 그 순간 속에서 욱하고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씨발, 야! 이거 풀어!”

그리고 남이사 씹질을 하든 입질을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개를 돌려 해원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입 꼬리를 올린 채 재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저 망할 인간이 누굴 자위 기곈 줄 아나. 지 멋대로 쑤셔 박으려는 심보에 화가 솟구친다.

“할 테니까 이거 풀라고!”

 버럭 외치자 해원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살핀다. ‘그 거짓말 진짜냐?’ 하는 의심이 물씬 느껴졌다.

“한 입으로 두말 안 할 테니까 풀어!”

내가 내숭은 떨지언정 사기는 안친다. 

큰소리로 외치자 해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몇 박자 늦게 대답을 한다.

“싫은데?”

“…….”  

“이게 더 편해.”

 얘 지금 뭐래? 황당무계한 얼굴로 쳐다보자 해원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 SM좋아하냐? 묶고 때리고 그런 거 원츄해?

“당신 변태야?”

질린 얼굴로 묻자 해원은 픽 웃었다.

“가끔 그런 것도 재밌지.”

 ……진심이냐?

“……저질.”

“네 말처럼 남의 등쳐먹는 깡패새끼라서 그런가보지. 망할 사채업자는 원래 다 그래.”

상큼한 미소를 날리며 뿌리 깊은 원한을 담은 말까지 나불거린다. 

그리고 내가 언제 남의 등 쳐먹는다 그랬어? 억울해 미치겠는데 해원은 다시 손을 슬금슬금 움직였다.

“근데 여긴 좀 불편하긴 하네.”

 그리고 내 허리를 덥썩 잡더니 어깨위에 얹혔다.

“으악!”

 시야가 뒤집히고 피가 거꾸로 쏠려서 순간 어질했다. 

그러나 해원은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했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내 몸은 나몰라한다.

몇 초 뒤엔 어느 방으로 들어가더니 침대위에 나를 털썩 던져버렸다.

 무릎까지 내려온 바지와 언제 내린 건지 모를 속옷 때문에 훤히 엉덩이를 내밀고 푹 고꾸라졌다.

“악!”

푸른색의 커버가 씌어진 쿠션에 얼굴이 쳐 박혔다. 머리가 빙빙 돈다. 

정신이 깐따삐야 상태가 되어있는데 해원이 천천히 침대 옆으로 돌아왔다. 

입고 있던 셔츠를 벗는 것이 보인다. 느릿하게 단추를 하나하나 푸르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게 질문을 한다.

“분명히 한다고 했다?”

 씨익 웃는 폼이 악마가 따로 없다. 싸악하고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언제? 증거 있어?”

얄밉게 쏘아대자 그는 헐 소리를 내며 기가 찬웃음을 내뱉는다. 

증거불충분은 불기소처분내지 수사 불가라는 거 알랑가 모르겄네. 

흥 콧방귀를 뀌자 잠시 굳어있던 해원이 피식 웃었다.

“여기엔 너랑 나밖에 없는데 증거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헉!.”

 아뿔싸! 잠시 잊고 있었다. 이놈의 직업병,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모양이다. 

현실감각을 잊어버린 걸 보니. 그나저나 우리나라 경찰들은 뭐하는 거냐? 저 성 추행범 안 잡아가고!

 민중의 지팡이는 개뿔, 이 국민연금보다 도움 안 되는 것들아! 

마음속으로 국가권력을 욕하고 있는데 해원이 셔츠를 벗어 내던지며 서랍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때는 내가 환장하도록 좋아했던 갑빠찬란한 몸매가 보인다.

 187cm의 큰 키에 마른 것 같지만 벗겨놓으면 근육이 보기 좋게 붙어있고 단단한 복근이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 내가 헤어지면서도 무척이나 저걸 아쉬워했지. 

근데 저게 헬스장에서 다진 게 아니란 걸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김수현.”

그가 내 이름을 부르자 몸이 자동으로 움츠려졌다. 

목소리 자체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묶인 상태로 침대에 널부러져 있다보니 앞으로 닥칠 상황은 뻔한 것이다. 대답하지 않고 빤히 바라만 보자 그가 바지에 손을 댄다. 벨트를 푸는 게 보인다. 

철컥 소리가 나자 간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설마…….”

“음?”

“그걸로 날 때리진 않을 거지?”

“…….”

놀라서 묻자 그는 멈칫하더니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 거 좋아해?”

내가 미쳤냐! 

머리가 떨어질 정도로 강하게 도리질을 하자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더니 내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너 변태야?”

“…….”

살인 충동이 끓어오른다.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노려보자 해원은 이제 바지까지 벗는다. 

속옷도 훌렁 벗어 던져버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왔다. 사타구니 사이에 발기한 그의 상징이 보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오묘한 기분이 든다. 

저걸로 나 여러 번 죽였었지, 예전엔 그렇게 사랑스럽더니 오늘은 흉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움찔거리며 엉덩이를 빼려고 하다 그에게 허리를 붙잡혔다.

“강간은 범죄야!”

꽥 소리를 내며 그에게 사정했지만 해원은 빙긋 웃으며 뻔뻔스레 대꾸했다.

“화간은 무죄지.”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이게 어딜 봐서 화간이야! 

억울해서 숨도 못 쉴 지경인데 복장 뒤집는 소리만 한다. 

이미 다 풀어헤쳐진 셔츠는 상위를 다 내놓았고 하체도 보여줄 건 다 보이는 상태다.

 그는 귀찮은 듯 내 바지와 속옷을 끌어내렸다. 그리곤 양 다리를 잡아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버둥거렸지만 억센 힘에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이게 어떻게 화간이야!”

혹시 니가 말하는 화간은 화끈한 강간의 줄임말이냐? 후덜덜 떨고 있는데 해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두고 봐. 삼십분 내로 울면서 사정하게 만들어 줄 테니.”

그 사정이 그 사정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인지 모르겠다.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기절한 듯 굳어있는데 그의 입술이 내 입을 덮쳤다.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야 이 개새끼야!……살려만 주세요!’

삼십분은 무슨 삼 초 만에 사정하게 생겼다.

처음에 해원과 잤을 때 든 생각은 이것이다.

‘이놈 씹질이 제대로 착하구나!’

어찌나 상냥하고 적절한 테크닉을 구사하시는지 하는 내내 헤롱헤롱거렸다. 

그러나 내숭은 필수, 절대 끼를 들켜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얌전하게 받아들이느라 죽을 맛이었다. 허리가 자연스레 휘어지고, 조급함에 보채려는 엉덩이를 후장에 힘 딱 주고 막아냈다.

 해원은 그 모습을 경험이 적은 걸로 착각하곤 허리를 쓰다듬으며 힘 빼라고 속삭였었다. 

황당한 나는 ‘나도 알아. 병신아!’ 냅다 소리를 지를려다 겨우 겨우 참아야 했다.

포인트를 제대로 찌르는 격렬한 동작에 난생처음 오르가즘을 몇 차례나 느꼈다. 

받아들이는 쪽은 언제나 힘들기 마련이지만 그와 할 때는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몰입했었고 세 번인가 뒹굴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절대 이놈이랑 안 헤어진다. 

그렇게 결심했을 만큼 완벽한 속궁합이었던 것이다. 

한동안은 해원만 보면 몸 달아서 자빠트리곤 올라타고 싶기도 했다. 

그 때는 머릿속이 핫 핑크로 물들어가지고는 헤벌레 했는데 ……지금은 올 블랙이다.

 새까맣다 못해 아주 칠흑같이 검은 터널로 들어온 기분이다. 

갑자기 군대 시절 죽여 버리고 싶었던 고참의 행동이 생각났다.

‘눈 감아봐. 뭐가 보이냐?’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눈을 감고 있으니 고참이 뭐가 보이냐 물었다. 

미친놈아! 이 상태에서 뭐가 보이겠냐.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바짝 군기가 들어선 이등병 시절이라 낭랑하게 대답하니 고참이 실실 쪼개며 대답한다.

‘그래. 그게 니 앞날이야.’

‘…….’

개새끼, 그놈은 제대하는 그 날까지 날 갈궜다. 

나중에 찾아가서 확 조져놓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창창한 앞날을 위해 살인충동을 억눌렀다. 

그때의 기분이 만약 분노게이지 80%이라면 지금은 거의 맥시멈을 뚫고 상층 권을 뚫을 지경이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널 부러져 있던 나는 그 원인을 바라봤다.

“……후우.”

 해원은 침대 맡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등짝이 보인다. 

노곤한 듯 어깨를 주무르며 맛있게도 피운다. 

두 눈에 쌍심지를 키고 노려보자 그는 나를 흘끗 보더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빠득, 절로 이가 갈린다.

웃어? 지금이 나와? 사람 하나 완전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잘하는 짓이다. 

어느새 셔츠도 벗고 넥타이도 풀렸지만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맛본 쾌락에 넉 다운 되어 거의 송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은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꼬라지를 보자니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저놈은 진정 악질이다.방금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맨 정신에 그렇게 질펀하게 뒹구른 건 처음이었다. 

약 십 분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매달려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삼십분도 안 되서 사정하고 또 다른 사정 까지 했다. 그 빌어먹을 테크닉 때문에!

처음에 해원은 숨이 끊어놓을 듯이 키스를 시작했다. 

마구 혀를 잡아당기고 입술을 물어뜯는 바람에 놀란 나는 그저 어버버 거릴 수밖에 없었다. 

입을 틀어막고는 마구 휘저어 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렇게 오 분 여쯤 입술에 피멍이 들도록 씹어대고, 호흡곤란의 상태로 다다를 때쯤 겨우 입은 떨어졌다. 

그러나 바로 온몸을 주무르는 손이 느껴졌다. 

등과 엉덩이를 오가는 손길이 간지러워 몸을 뒤트는데 목가에 그의 입이 다가오더니 쇄골 선을 따라 혀가 쭉 훑어 내려간다.

그리고 그 혀는 가슴 쪽에 한동안 머무르며 내 유두를 신나게 빨아댔다. 

닳을 정도로 아프게 씹어대고 빨아대는 바람에 생리적인 눈물이 나왔다.

‘아파! 하지 마.’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으나 여전히 해원은 무시, 그러다 지겨운지 내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펠라를 시작했다.

처음엔 기겁했지만 예전엔 신물 나게 했던 짓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까짓 거 사정밖에 더하겠어? 

이런 심정이었달까? 게다가 움직이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기둥을 혀로 핥으며 입술로 강하게 빨아들이는 힘에 약하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놔라 이놈아!’ 를 연신 외쳤다. 

물론 해원은 초지일관 내말은 씹어댔다. 

밀려오는 자극에 내 물건은 솔직하게도 발기했고 그의 혀 놀림에 온 몸이 흐물흐물 녹아났다.

‘아……읏.’

참으려고 했지만 끙끙 거리는 소리가 계속 튀어나왔다. 주둥아리를 콱 막고 싶었지만 막을 것도 없다. 

결국 쿠션에 얼굴을 쳐 박았다. 

숨이 막혔지만 입에서 계속 민망한 소리가 흘러나와 더욱 깊게 쑤셔 박았다. 

뒤로 묶인 손 때문에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있는데 허벅지를 주무르던 해원의 손이 엉덩이 쪽까지 올라왔다. 

슬금슬금 손가락이 가운데 쪽으로 향한다. 생살에 손가락 닿는 느낌이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입에는 아직 내 것을 머금은 채 였다. 흘낏 밑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빙긋 웃는 모습에 흠칫 놀라자 그가 불시에 손가락으로 내 구멍을 뚫었다.

‘으학!’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나도 모르게 펄쩍 뛰며 구멍을 조였다. 그의 입안에 있던 내 물건도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무릎으로 그의 얼굴을 쳐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

‘아…….’

당황한 나머지 망연자실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고개를 숙인채로 뺨을 쓰다듬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인상을 쓰고 날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래, 안다.’

비굴하게 변명을 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직 내 구멍엔 그의 손가락이 있었다. 그 손가락이 조금 더 깊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헉!’

젤도 없이 적시지도 않고 무조건 박아 넣기부터 하다니 이런 개 매너. 

빡빡한 그 곳을 넓히려는지 부지런히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한다. 

아래쪽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한 개 더 늘어나고 본격적으로 안을 쑤셔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곧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아앗, 아!’

연속적으로 커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립선을 제대로 건드린 탓이었다. 

이미 내 몸에 대해선 빠삭한 그가 모를 리가 없는 곳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자 그가 바싹 다가와선 무릎을 꿇고 엎드리게 했다. 

그 뒤엔 아까 전 서랍에서 꺼낸 물건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젤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물건에다 바르기 시작했다. 삽입 하려는 목적이 확연하게 드러나 바짝 쫄았다.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지만 잽싸게 잡아채서는 엉덩이를 들어 다시 벌려 놨다.

‘가만히 좀 있어라.’

그가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곧 자신의 것을 내 입구에 갖다 댄다.

 아직 다 풀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밀어 넣고 보자는 수작이라니!

‘넣지 마!’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입구를 쿡쿡 찔러대는 살덩어리의 감촉이, 곧 귀두부분이 입구를 뚫고 들어왔다.

‘앗!’

젤을 잔뜩 쳐 바른 성기가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미끌미끌한 감촉이 엉덩이 사이에서 느껴졌다.

‘아, 하앗, 아아……아!.’

찢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아팠다. 

절대 살살할 속셈은 아닌 모양인지 해원은 초반부터 끝까지 밀어붙였다. 

숨넘어갈 것 같은 신음을 내뱉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그의 페니스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해원의 입에서도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를 받아들일 노력을 하지 않는 나 때문에 꽤나 힘에 부쳤는지 앓는 소리를 흘린다. 

그러나 절대 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더 괘씸했다.

나쁜 놈, 망할 놈, 썩을 놈. 속으로 욕을 하는데 해원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젤이 묻은 내벽과 성기가 쓸리자 쿨쩍거리는 소리가 민망하게 방안에 울렸다. 

그 소리와 행위에 흠칫 놀라자 그가 내 등을 쓸었다. 부드러운 쓸림이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 아파. 아! 아앗, 하아 ……앗!’

입에서는 연신 죽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움직임이 조금씩 더 빨라지고 있었다. 

꽉 들어찬 성기가 앞뒤로 마구 비벼졌다.

‘아 그만, 윽, 하앗 ……앗.’

그의 성기가 깊숙이 꽂힐 때마다 고환도 같이 살에 철썩거리며 부딪혔다. 

허리를 빠르게 움직여 때리듯이 박아오는 행위에 맞춰 몸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하도 어지러워서 그 와중에 손이 풀린 지도 몰랐다. 

해원이 몸을 굽혀 내 목을 깨물었고 약하게 비명을 지르는데 그의 손이 앞에 있는 내 페니스를 주물렀다.

앞뒤로 강렬한 자극이 몰리자  뇌까지 얼얼한 지경이었다. 

잡아당기듯 손바닥으로 주물럭거리다 비틀듯 용두질을 해오자 아프면서도 강한 쾌감에 고개가 꺾였다. 

손가락이 내 페니스 기둥을 쓸어 올리며 귀두를 꾹 누르자 숨이 헐떡거렸다. 

그것뿐이면 모르겠는데 뒤로는 페니스로 내벽 안 어느 지점을 쿡쿡 찔러 대서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어느새 나도 그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 하악……읏……으응.’

이성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가 버렸다. 

바로 몇 주 전까지 몸을 섞던 상대가 주는 새로운 방식의 쾌락에 몸이 점령당했다.

 그러나 흥분에 겨웠던 것도 잠시, 해원이 또 불시에 자신의 것을 빼버렸다. 

의아함에 뒤를 돌아보자 그가 숨을 몰아쉬며 나를 똑바로 눕혔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흥분에 절어 눈만 껌뻑이며 그를 쳐다보는데 그가 내 위에 겹치듯 누웠다. 

눌린 사타구니 사이로 그와 내 것이 겹쳐졌다. 

잔뜩 흥분한 두 개의 성기가 서로에 것에 닿자 고환이 서로 부딪혀 아팠다. 

꽉 눌려 답답했지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기분 좋기도 했다. 

왜 넣지 않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해원에게 눈빛으로 대답을 촉구했다. 

그는 대답하지는 않고 슬쩍 허리를 움직였다. 

뜨겁고 단단한 성기가 내 것과 비벼지는 느낌에 헉 소리가 나왔다.  물론 그것도 좋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단 방금 전까지처럼 그가 내 안에 있기를 원했다. 

뜨거운 열기가 하복부에 집중적으로 몰리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슬쩍 째려봤다. 해원은 여유만만 한 미소를 지었다.

‘……윽.’

 이 자식, 목적이 그거였던 것이다. 그 사정은 역시 이 사정이었다. 말 안 해도 뻔히 보였다. 

해원은 내가 애원하면 삽입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단 맛보기만 보여준 것이고, 지금은 감질나게 자극하고 있었다. 

황당해서 바라보다 그는 더욱 격렬하게 허리 짓을 하며 날 도발했다. 

게다가 유두까지 혀로 굴리기도 하고 이빨로 깨물어 댔다. 

벌어진 다리를 최대한 벌리게 하고선 허벅지 안쪽을 살살 문질러댄다. 몸 달아서 죽게 할 생각인가?

 황당해서 바라보자 그는 눈웃음까지 쳐댄다. 이젠 약도 올리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몸은 정직해서 이성적으론 화가 나는데 몸은 점점 더 온도를 높여가며 그의 행위에 길들여진다. 

참으려고 했지만 견딜 수가 없다.빌어먹을!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온 몸을 훑는 그의 손길과 한 몸처럼 달라붙어 움직이고 있는 중심이주는 강한 자극에 또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한다 그냥 이대로 사정하고 말자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성은 본능을 어길 수가 없는 법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해원이 머리를 잡아당겼다. 난데없이 머리채를 휘어 잡히자 해원은 화들짝 놀랐다.

‘야!’

그러나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내가 머리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보자 말이 안 나왔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보고 있는 그에게 차마 ‘넣어주세요.’ 따위의 말을 지껄이기엔 내 프라이드는 너무 높았던 것이다.

‘…….’

‘…….’

썰렁한 침묵이 흘렀다. 해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고 나는 입만 달싹거렸다. 

일단 지르긴 했는데 이걸 어쩐다? 

잘 나가다 난데없이 브레이크를 걸어 흥분이 식으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결국 어쩔 수 없다. 

해원의 어깨를 잡고 휙 옆으로 밀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해원이 비틀거렸고 그대로 빙글 위치를 바꿔 올라탔다. 원래 남자는 행동이랬다.

해원의 성기를 잡아 내 안에 넣었다. 방금 전까지 들락거린 탓에 삽입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압박은 장난 아니었다. 끼워 맞추는 것도 꽤 힘들었고. 황당하게 날 바라보는 해원이 보인다. 

흥, 이럴 줄은 몰랐을 거다. 

의기양양하게 비웃어주곤……그 뒤엔 뭐, 내가 허리를 움직이자 해원도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정사의 쾌감에 머리의 퓨즈가 나가버렸고 온몸의 관절이 삐거덕거리도록 박아댄 것이다.

“……으이구.”

덕분에 한 시간 뒤에 죽도록 후회하는 나였다. 

그 유혹을 못 견뎌서 결국 올라타고 질펀하게 일을 치르다니. 

헤어지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강간을 화간 만들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쪽팔릴 순 없었다. 

침대 한구석에서 벽보고 쪼그려 누운 채 울먹이는데 해원이 말을 건다.

“샤워 안 해?”

 대답안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 같은 놈은 씻을 자격도 없다. 

하지만 해원이 내가 덥고 있던 이불을 확 걷어가는 바람에 순식간에 노출되어 버렸고 놀란 틈에 또 어깨에 메였다.

“악! 왜 또!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렇게 괴롭혔으면 됐지. 해원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따지자 그는 풋 하고 웃는다. 

어쭈? 웃어?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콘돔 안하고 해서 씻어야 돼.”

해원은 그 말을 내뱉은 뒤 그대로 욕실로 직행했다. 

나이 먹어서 다른 남자 어깨에 쌀자루마냥 얹혀져있다니 굴욕적이다. 

온몸이 땀투성이라 찝찝하긴 하지만 온 몸이 피로에 푹 쩔어 움직이기도 귀찮다. 

욕조에 기대앉아있자 해원은 그런 나를 보더니 재수 없게 웃으며 샤워기로 물을 뿌려대기 시작한다. 

예전에도 같이 씻은 적은 몇 번 있어 어색하진 않았다. 

그가 스펀지로 내 몸을 닦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자꾸 민망하고 울컥하고 여러 가지로 뒤죽박죽 섞인 속이 답답해서 괜히 신경질을 부렸다.

“당신이 차로 데려다 줘! 피곤해서 못 걷겠어.”

“그래. 알았어.”

그러나 해원은 시원하게 대답하며 여전히 웃었다. 뭐가 웃기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제길 이 꼴이 뭔가 싶어 부글부글 끓는다. 궁시렁 거리며 얌전히 씻김을 당했다. 

해원은 그 와중에도 키득거렸다.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바라봐줬음에도 그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내가 째려보자 그는 흘낏 눈치를 보더니 웃음을 거뒀지만 구린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온 몸이 바디 클렌져 거품이 휩싸인다. 해원의 손이 엉덩이로 내려갔다. 

내벽에서 정액을 긁어내는 손길에 인상을 찡그리자 그는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나를 보더니 난데없이 이마에 입술을 박는다. 물에 젖은 이마가 입술에 닿자 뽁 소리가 욕실에 울린다. 

당황해서 말도 못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데 다시 입술에다가 버드키스까지 날린다. 

이거 지금 후희랍시고 하는 짓인가? 어이없다 진짜.

 철중은 친구의 말에 표정을 찡그렸다. 

사무를 보던 중에 난데없이 찾아와서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해원 때문이었다.

‘뭐? 다시 말해봐.’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믿을 수 없다는 그 표정을 바라보며 해원은 급격히 불쾌해졌다.

‘법인 하나만 차려달라고.’

‘에엥?’

‘합법적인 회사 하나만 차려달라고! 귓구녕이 썩었냐?’

곧 해원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쳤다. 그제야 철중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만은 구겨진 상태다. 듣긴 들었는데 대체 자신이 옳게 들은 건지 모르겠다. 

성질 급한 친구의 성격을 알기에 다시 물으면 주먹이 날라 올 지도 모르니 되물을 수도 없었다.

‘뭐에 쓰려고?’

일단은 접수한 내용에 맞게 묻자 해원은 잠시 고민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차마 말하기 곤란한 모양이다. 그러나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철중은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떤 용돈지 알아야 차려주든 말든 할 거 아냐. 설마 네가 옷 장사나 슈퍼 할 것도 아니고. 업종을 알아야 신청을 하지.’

이치에 맞게 설명을 하자 해원은 표정을 구겼다. 귀찮다는 티가 역력했다. 

그는 다시 인상을 구기며 무언가 생각하더니 곧 짜증스럽게 대꾸한다.

‘지금 하는 일 비슷한 거, 나 다른 건 몰라.’

어릴 때부터 주먹질을 해왔고 지금은 사채업을 하고 있으니 그것밖에 재주라곤 없다. 

철중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원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업으로 하는 거 아니야?’

음식점이나 술집 같은 것을 부업으로 하는 것은 이 업계 사람들이 종종 벌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지금 하는 일을 또 하게 해달라니 도대체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다. 

해원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철중을 바라보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직업이 필요해. 그럴 싸 한 걸로.’

‘왜?’

 직업이라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왜 또 필요한 걸까? 철중이 묻자 해원은 끙 소리를 냈다.

‘쪽팔려서.’

‘뭐?’

‘깡패 같은 직업은 쪽 팔린다고.’

 저게 미쳤냐? 그 말에 철중이 경악한 얼굴이 된다. 

여태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던 해원이 난데없이 정상인의 사고방식 같은 말을 하다니 언빌리버블! 철중은 혹시 자신이 귀가 진정 썩었나 의심이 들었다. 해원은 황당해하는 친구를 보며 덧붙여 말했다.

‘그러니까 하나 만들어 줘. 이왕이면 좀 번듯하게.’

‘……야, 이게 무슨 부르마블도 아니고 갑자기 막 생길 리가.’

‘닥치고 만들어.’

‘…….’

‘반년 안에. 알겠냐?’

그 말만 내뱉고 해원은 휙 돌아서 나갔다. 

남겨진 철중만이 벙쩌서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굳어있을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이년 반 전, 명동의 본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자고갈래?”

수현은 말이 끝나자마자 황당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째려본다. 해원은 그 표정에 또 픽 웃음을 흘렸다.

“피곤하다며?”

연이어 묻자 수현은 더욱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상대하기도 싫다는 표정이다.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이다.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시건방진 건지 해원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수현의 머리를 말려주는 중이었다. 예전부터 정사 후에 이러는 것은 자주 있던 일이다. 

수현은 다른 건 깔끔하면서 수건으로 대충 털고 나오는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버려두면 말라.’

얼마 전에 자신의 집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변명처럼 내뱉은 말이 떠오른다. 참으로 뻔뻔한 성격이었다.

예전에 조용하고 쿨 하던 것은 전부 연기가 맞는 모양이다. 

본모습이라  생각되는 모습들은 너무나 파격적이라 해원은 이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하녀처럼 샤워시키는데 쓰질 않나, 그 후엔 배고프다며 투정을 부리기에 야식까지 시킨 참이었다. 이제 곧 치킨이 올 것이다.

 왜 빨리 안 오냐며 입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리는 것이 귀여워 해원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뭐가 웃겨. 내가 우습냐?”

건들거리며 시비 거는 것처럼 묻는 모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결국 해원은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이 인간이 쳐 돌았나?”

수현은 그게 더 불만인지 해원이 씌웠던 수건까지 던지며 성질을 부렸다. 

샤워가운을 입은 채였던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성큼 성큼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해원은 웃다가 급히 따라 들어갔다. 뭐하나 했더니 수현은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있었다. 

소매부분이 잘려나가고 없는 배지가 달린 흰 셔츠와 진회색의 바지였다. 아무리 봐도 교복 같았다. 

요즘 저런 것이 유행이었나 잠시 고민하던 해원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넥타이를 주워 수현에게 건넸다. 

그러자 못마땅하게 쳐다보다 휙 낚아챘고 곧 불만스럽게 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놈의 치킨, 닭을 키워서 오나!”

아까부터 입만 열면 치킨 타령이다.

“하아.”

해원의 입에서 한 숨이 흘러나왔다. 도무지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저 언행불일치. 

혹시 이중인격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러나 그게 또 어느 면으로는 웃겨서 화도 낼 수 없는 상황인 게 문제다.

그 와중에 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단 한명 뿐이다.

“치킨이다!”

수현은 해원을 제치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근래 들어 처음 본 해맑은 웃음이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데 곧 앙칼진 음성이 들렸다.

“야! 정해원! 빨리 나와서 계산 안 해?”

“…….”

섹스 할 땐 수줍어하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것이며, 대한민국 보통 남자의 위장을 가진 남자는 또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다. 

단정하고 심플한 옷을 입던 취향도 모두 거짓말 같았다.

해원이 아는 수현은 매사에 신중했었다. 침대에서도 절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보통 자신이 리드하면 알아서 맞춰주곤 했다.

 간혹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 자신의 연인과 똑같은 얼굴과 이름을 가진 남자는 전혀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위로 올라타는 과감한 남자였다. 

그런 그와 자고나니 여태까지의 모든 잠자리가 거짓말인 것 같았다. 정말 다른 상대와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수현 과의 오늘 정사는 임팩트가 컸다.

그리고 걸핏하면 욕을 하고 큰 소릴 친다. 게다가 식탐도 많다.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닭 한 마리를 거덜 낸 수현을 보며 해원은 자신도 배가 고팠지만 왠지 식욕이 없어 쉽사리 손을 올릴 

수가 없었다. 

하나라도 뺏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닭을 먹고 있는 수현의 눈길 때문이다.

먹으면 죽일 거야, 하나라도 양보할 수 없어. 눈빛으로 압박하니 도무지 건드릴 수가 없다. 

굳이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아 조용히 앉아있자 수현의 눈길이 누그러졌다. 어차피 치킨도 다 먹은 참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목을 시큰둥하게 쳐다보더니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 수현은 주머니를 뒤진다. 

담배를 꺼내 한 대 꺼내고는 남의 집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피우기 시작했다.

수현의 머리는 샤워를 해서 리젠트 머리가 아닌 평소의 헤어스타일로 돌아와 있다. 

담배를 꼬나 문채로 오만방자하게 앉은 그는 귀찮은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러고 있으니 불량청소년의 각이 나온다. 태도가 건들건들한 것이 학창시절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지만 해원은 그래도 자신은 조신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삼년이면 습관이 바뀐다. 예전에 쓰던 버릇들 같은 것은 고치려고 노력했다. 

툭하면 욕부터 나오는 버릇은 혹시나 수현 앞에서 튀어나올까 언어순화하는데 힘쓴 탓이다.

처음엔 턱이 어긋날 것 같았다. 안 어울리는 표준어와 완곡한 표현 등에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완벽한 사전언어를 구사하는 수현 앞에서 차마 육두문자와 업계용어를 쓸 수가 없었다. 

혹시나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피해서 받은 것도 그 이유였다.

 수현 앞에서 그 씨발 새끼 확 묻어버려 등등의 말을 뱉을 순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전부 삽질임이 밝혀졌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다. 

해원은 눈동자만 움직여 자신의 서재를 흘낏 바라봤다. 

그곳 책상 서랍에는 눈앞에 있는 상대의 조사내용이 들어있다. 

그 곳에 쓰여 진 내용대로라면 눈앞에 남자는 자신이 애인이던 김수현이 맞았다. 

단지 저것이 본 모습일 뿐이지. 

그가 단골로 다니던 게이 바와 학교생활까지 모두 밝혀져 있는 보고서엔 수현의 교우관계까지 다 나와 있었다. 

치사한 짓이긴 하지만 당시엔 꽤나 혼란스럽던 탓에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닐까도 의심했다. 

그만큼 해원에겐 수현의 행동이 충격이었다.

유현이라는 친구와 같이 사는 건 알고 있었다. 학교도 맞고 법대생인거도 확실하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수현은 게이 바에선 꽤 유명했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 많이 얌전해졌지만 초기에는 이태원 쪽에선 친구와 함께 꽤 누비고 다닌 모양이다. 

남자관계 또한 매우 복잡했으나 지금은 한 사람과 끈질기게 교제중이라는 증언도 있다.

복잡, 그 단어를 읽다가 용지를 확 찢어발길 뻔 했다. 

다행히 단순한 섹스 파트너 관계이자 친구일 뿐, 진지한 관계는 없던 것 같음이란 말에 겨우겨우 참았다. 

사실 그것도 열 받았지만 몇 년 전의 일 가지고 화를 내면 너무 병적으로 보이니 참은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수현이 식탁을 두들긴다.

“뭐해? 안 데려다주고.”

뻔뻔하게 먹은 것을 치우지도 않고 거만하게 묻는 그를 보며 해원은 잠시 멍한 기분이었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다. 

드라마에서 순애보연기를 하던 연예인이 난데없이 살인마로 분하는 그런 영화를 보는 기분, 

엄청난 갭에 놀라면서도 연기니까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는 착각까지 일 정도였다. 

아직도 오락가락하는 이미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해원이었다.

하지만 몸은 오히려 알기 쉬웠다. 

방금 전까지 몸을 맞대던 상대는 분명히 익숙한 향과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던 성감대에 흥분하고 신음을 흘리던 자신의 애인이 맞았다. 

다른 건 좀 더 입이 험해지고, 행동은 격해졌다는 것. 그것을 깨닫자 다시 사랑스럽게 보였다. 

욕실에서 씻길 때만해도 되찾은 것 같았는데 또 다시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해원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투에 쓰레기를 한꺼번에 쓸어 담고 손을 닦은 뒤 수현이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나갔다. 

앉아서 신발을 신고 있던 그가 고개를 올려 해원을 바라본다.

“뭐하느라 늦어.”

겨우 일분 여 정도의 시간을 기다린 것 치곤 지나치게 강한 태도로 따지고 드는 수현이다.

그 태도에 울컥했지만 마치 같이 살면서 외출하는 사이 같아 화도 가라앉는다.

 자신의 집에 있는 그의 존재가 은근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혹여 무언가 들킬까봐 데려올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뭐가 두려울까 싶어 마음대로 행동하니 그건 편했다.

왠지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해원은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덧붙여 한마디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자고 가도 상관없는데.”

수현은 그 말에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나 고시생이거든?”

 내일도 도서관에 가서 공부해야하는 사시준비생의 험악한 목소리가 현관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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