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소연호의 감시
호텔로 하루 늦은 귀가를 한 두 사람을 보고도 연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둘이 연락도 되지 않고 늦자‘당장 둘을 찾아오지 않으면 선생님들의 모든 기록을 다 뒤져서 평생 교도소에만 있게 만들어주겠습니다.’라고 협박을 했다던 것과는 전혀 상반되는 태도였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치고 말았으니 사과는 하는 게 옳은 일인 것 같아 형욱은 연우에게 먼저 씻으라고 하고, 그 사이 연호의 방에 혼자 찾아갔다.
“저희 왔어요, 큰 형님.”
“아아.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희 때문에 걱정하셨던데, 죄송합니다. 걱정 끼쳐서.”
정중하게 허리까지 숙여 사과하는 것을 보고 연호의 표정에 수만가지 표정이 지나갔다. 처음엔 욱해서 뭔가를 말하려 했다가도 갑자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씁쓸하게 입을 다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사람은 또 연우랑은 다른 의미로 생각이 많네.
생각 외로 다양한 표정을 노출시키는 바람에 본인도 피곤한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나직히‘별 거 아니야.’하고 서둘러 이야기를 정리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혹시 어디 안 좋으신 거라면 연우를….”
따지고 보면 갑자기 사라진 연우 때문에 무리하게 시간을 내서 왔으니 피로 같은 게 쌓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연호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연우를 부르러 방을 나가려던 형욱을 급히 붙잡았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에.”
물에 빠진 사람처럼 간절하게 물어와서 형욱은 얼결에 대답했다.
“정말, 연우가 섭니까?”
“……선다, 안 선다로 본다면 분명히 섭니다.”
“뭔가 또 있는 거군요. 역시 서는 데에 비밀이….”
손을 내민 사람을 붙잡고 같이 물에 빠지려는 것처럼 허우적댔기 때문에 형욱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아무리 연우의 큰 형이라고 해도, 어떻게 알아낸 방법인데. 공유는 말도 안 될 소리지.
“그럼 피곤해보이시는데 편히 쉬세요. 방해해서 죄송했습니다.”
깍뜻하게 인사까지 마치고 나간 형욱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연호의 표정이 어딘지 흉흉했다.
“누가, 포기할 줄 알고….”
연우가 남들처럼 발기가 된다는 것을 안 이상, 큰 형으로써 어떻게든 발기를 시킨 방법에 대해 알아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그를 고취시켰다.
“큰 형님 사람 참 이상하시네….”
생긴 건 멀쩡하구만.
좀전까지 연호에게 붙잡혀 있던 팔을 만지작거리며 복도를 걸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느닷없이 피형욱은 걸음을 멈췄다.
“설마….”
뭔가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한 모양인지 낯빛이 창백했다.
걸어왔던 방향을 뒤돌아본 그는 거의 확신에 가득찬 얼굴을 굳혔다.
“아아. 야단났네 이거….”
“뭐가 야단나요?”
난감하게 턱을 만지며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막 욕실에서 나온 연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끈따끈한 온수에 상기된 얼굴이 보기 좋다.
금세 헤, 벌어진 입을 하고 두꺼운 목욕 가운을 입고 있는 채로 와락 끌어안은 형욱이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에 촉촉, 입을 맞췄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연우만 왜 또 이러나, 하면서도 내버려둘 뿐.
“그런데 어디 다녀오신 겁니까? 씻지도 않고….”
“우리 연우가 나랑 같이 샤워 안해서 삐졌구나?”
“전 피형욱씨가 아닙니다.”
아아. 노골적으로 상심한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도 몸을 안은 팔은 놓지 않았다. 그래놓고서는 머리를 말리려던 수건을 도중에 낚아채더니 꽤 여러 번 해본 듯한 솜씨로 능숙하게 연우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잘 하시네요.”
“아아. 전에 미장원에서 알바한 적 있었거든.”
“미장원에서요? 형욱씨가?”
전혀 상상이 안 된다. 수건을 든 조폭이라니.
머리 한번 말려달라고 했다가 그대로 수건에 목 졸려 비명횡사하게 만드는 곳 아닌가…….
생각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곳이라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소름이 돋은 것을 보고 형욱은 멋대로 목욕을 하고 나와서 추위를 느끼는 모양이라며 이불을 잔뜩 끌어다 덮어주었다. 덕분에 머리만 빼꼼 나와있는 형태지만 이건 꼭….
“땅에 묻힌 시체 같은데.”
“응? 못 들었어. 뭐라고?”
“아닙니다.”
분명히 무슨 말을 했는지 안다면 자신의 성의를 고작 그런 식으로 밖에 보지 못하냐며 길길이 날뛸 것이 불 보듯 자명한 일이라 연우는 현명하게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 미장원 알바 같은 건 왜하신 겁니까?”
보아하니 형욱은 딱히 돈이 궁할 정도로 가난한 조직의 사람이 아니었다. 비뇨기과에서도 항상 현금으로 결제했고 절대 외상을 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조폭답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치도 못했다. 미장원 알바라니.
자꾸만 피형욱이 몸에 착 피트되는 길고 검은 미장원 용 앞치마를 두르고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미장원을 바삐 누비는 모습을 연상하자 왠지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사진 같은 거 없을까. 고민하며 만나는 상대의 과거의 모습까지 궁금해 하는 연우의 모습은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확실히 연우답지 않은 집요한 추궁에 싫지 않은 듯하면서도 말을 고르던 형욱이 음―, 하고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 와중에도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은 하얀 수건과 함께 착실하게 머리카락을 탈탈 터는 중이었다.
“내가 전에 있었던 일 같은 건 이야길 안했구나. 그러고 보니까.”
“아, 하기 싫은 이야기라면 안하셔도….”
그의 말대로 형욱은 연우에게 아직까지 옛날이야기에 대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일전에 연한에게 얼핏 들은 바에 따르면 일부분인데도 그다지 좋았던 추억은 없었겠구나. 대충 갈피가 잡혔다.
어쩌면 아직 마음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그런 걸 괜히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리려 하는 작은 머리통을 꼭 붙잡고 형욱은 헤어 드라이어의 스위치를 올렸다. 위잉―, 부드러운 송풍과 투박하지만 꼼꼼한 손길이 머리를 헤집자 간단히 졸음이 몰려왔다. 어젠 형욱에게 내내 시달리느라 잠을 자지 못했던 탓도 컸다.
“전에 판사 형님이 말하신 게 있지? 그건 좀 과장된 면이 있긴 한데. 어쨌든 부모님 모두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고, 조직이 분열됐어. 형제들은 많았는데 딱히 뒤를 이을 사람은 없었지.”
그때를 떠올리는 듯 손길에도 허망하고 혼돈스러운 기색이 실렸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라.
지금 그의 나이도 갓 성인을 넘긴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분명 아직 미성년자일 때 겪었던 일일 것이다. 연우야 태어나면서부터 부친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으니 알지 못하겠지만 또 계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건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어쩌면 아직, 적어도 어릴 때만이라도 부친이 살아계셔 함께 지났다면 이런 무심한 성격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 걸 뻔히 알면서도‘키티’라는 태명을 지어주셨던 분이라고 하니까.
피형욱을 보면 그런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의 과거에 대해 연우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저런 밝음은 함부로 가장한다고 나타날 수 있는 류의 아니라는 것을. 물론 밝다 못해 천연 상태의 바보 같은 모습도 종종 보이곤 하지만, 여하튼 그의 모습을 보면 양친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구나. 하는 감상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랑을 받았던 만큼 양친이 사고로 급작스레 떠난 데에 대한 충격은 더 컸겠지.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어도.
“그때 좀 떠돌아다녀야 했어. 그러면서 끝까지 곁을 지켜준 게 쌍칼이랑 도끼였지. 추적을 피하려고, 쌍칼이 아는 형네 가게를 빌려서 미장원을 했어.”
“미장원을요?”
알바 정도가 아니라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미성년자의 나이에?
평범한 일반인인 연우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그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어쩌면 피형욱의 첫 사업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냥 조그만 동네 미장원이었어.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았어야 했으니까. 명목상으로 도끼를 원장으로 세웠지. 그래봬도 녀석, 학교에서 미용사 자격증을 땄었거든.”
대머리가 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보다 손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실력에 신뢰가 가지 않을 것 같은데.
하긴, 그 미장원에서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던가 하며 클레임을 거는 날엔 바로 회반죽이 떠져 어딘가에 묻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간단히 납득됐다.
“아냐, 아냐. 녀석 꽤 잘했어. 큭큭. 연우가 그렇게 생각한 거 알면 엄청 서운해할걸. 나름 자부심도 갖고 있다고, 거기에.”
맞은편의 화장대에 있는 거울로 연우의 생각 변화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었는지 머리를 말리던 형욱이 장난스럽게 웃자 조금 무안해졌다.
“도끼씨에겐, 제가 나중에 사과할게요. 꼭.”
“됐어. 어차피 모를 텐데 뭐. 쓸데없는 일에 힘 빼지마. 아무튼 그때 녀석의 옆에서 조금 도왔던 거야. 꼴에 지가 원장이라고 얼마나 유세 떨던지. 그게 실제 상황도 아니고, 더 오래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니까. 그렇지 않았거나, 그 상황이 조금만 더 길게 갔었어도 놈은 나한테 죽었어.”
꾹. 힘껏 이마를 누르며 온갖 원한과 짜증을 발산하는 것이 전달됐는지, 옆방에서 다른 조직원들과 포커를 나누고 있던 쌍칼은 느닷없이 원인도 모르는 소름을 느껴야했다.
“자―. 다 끝났다.”
미장원에서 알바했다는 게 거짓이 아닌 듯 완벽하게 건조된 건 기본이고 중간중간 지압을 해줘서 무척 개운해졌다. 머리 하나 말린 것뿐인데 사람 기분이 달라지다니.
하긴, 이 남자가 연우에게 거짓을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긴 거나 분위기를 보면 껄렁껄렁 농담 따먹기나 좋아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것 같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남자라는 걸 그동안 잘 알게 됐다.
‘조금 더, 알고 싶다.’
마음속에서 이 남자에 대한 희미한 욕심이 생겼다.
그것은 여태껏 다른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생소한 감정이었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하기보다는 오히려 설레고 기뻤다.
타올 드라이가 다 끝났는데도 연우가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자 이상함을 감지한 형욱은 당황해서 연신 주위를 맴돌았다.
“왜 그래? 설마 내가 상처라도 건드린….”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아닌데?
말을 늘이는 게 영 불안한지 형욱의 시선이 입가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이런 시선도 평소라면 부담스럽다던가, 내지는 싫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아, 날 걱정해주고 있구나. 싶어서.
물론 겉으론 전혀 티가 나지 않겠지만.
“그, 옛날이야기 같은 거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듣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말한‘듣고 싶은데….’는 정말 땅을 파고 내려갔다. 왜냐하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피형욱의 표정이 점점 변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거엔 연우도 쫄거나 하지 않지만 이번엔 정말 무서웠다. 아니, 무섭다고 해야 할까. 괴이했다.
“정 하고 싶지 않으시면 굳이 하지 않으셔도….”
싫어하는 기색인가 싶어 철회하려고 했는데
“그럼 나중에 할게.”
설마 진짜 거절할 줄은 몰랐다.
“계속 비밀로 하려는 건 아냐. 그냥,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이런 곳에 와서까지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저도 좀 머쓱했던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놨다.
“옛 이야기 같은 거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한 적 없어. 알고 있는 애들끼리도 잘 얘기하지 않는걸.”
“저도 함부로 퍼트리지 않겠습니다.”
쓸데없이 진지한 점이 참 소연우답다.
조금 마음이 풀린 듯, 그럼 누워볼까 하고 옆에 천연덕스럽게 누우려다가 연우의 손에 턱 가로막혔다.
“그런데 씻지도 않고 누우실 겁니까?”
“그냥 누울래. 다 귀찮아.”
“요새 세균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어서 가서 우선 씻고 오시죠.”
버팅기던 형욱의 등을 밀어낸 연우가 제법 엄한 표정까지 지었다.
“이럴 때면 영락없이 의사 선생이란 말이야….”
“의사 맞습니다.”
“네, 네.”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시키는 대로 욕실로 가더니 이내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어린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연우는 그가 말해줄 준비가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로 했다. 깍두기도 하는 것을 그라고 못할 리가 없었다.
“어흐~. 시원하다.”
그렇게 안하겠다고 버티더니 막상 하고 나니까 개운한 모양이다. 연우처럼 바스 가운을 걸치지 않고, 커다란 타올로 하반신만 두르고 나와 요란하게 몸을 말렸다. 저 모습을 보니 이제야 좀 조폭의 이미지와 맞았다.
피형욱은 연우가 남몰래 유기농 블랙 깍두기라는 별칭을 지어줄 정도로 조폭 치고는 잘 생긴 얼굴과 몸을 갖고 있었다. 하물며 가장 은밀한 거기까지도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이 남자는 적어도 험악한 정장만 벗어던져도 또래들이랑 비슷해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벗고, 바꿔도 버릴 수 없는 조폭의 악질적인 습성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요란한 목욕법이었다. 생긴 거에 맞지 않게 불량배 아저씨들처럼 커다란 소리를 내고, 이따금 제 몸도 팡팡 치며 근육 자랑을 해서 함께 목욕을 하기라도 하면 무척 시끄러웠다.
‘아마 어릴 때 만났더라면 분명히 한 소리 했을 거야,’
그리고 조폭 아들인 줄도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한 연우는 목욕탕에서 돌아오던 길에 괴한에 의해 암매장을 당했을 지도.
비극적인 결말을 상상하느라 연우는 그가 옆에 앉는 줄도 몰랐다. 목욕을 마치고 난 뒤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입고 있던 가운 틈으로 따끈따끈해진 손이 들어왔다. 어디 딴데로 새지도 않고 바로 젖꼭지를 꾹꾹 누르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설마 또 하실 겁니까?”
그렇게 해놓고?
어제 하루 종일 시달려 기운이 없는 연우와 달리 형욱은 도리어 더 팔팔했다.
‘저 놈의 음낭에는 무슨 우주라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원망스럽게 빤히 아랫도리만 쳐다보고 있는데 당당하게 하체를 오픈하는 바람에 시선에 발기당한 성기와 마주 인사를 하게 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강가를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를 낚아채는 날렵한 불곰처럼 침대 위에서 도망가려는 연우를 반대방향으로 던지고 그 위로 뛰어올랐다.
“오, 오늘은!!”
“괜찮아. 괜찮아. 살살 하면 되잖아.”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에요!”
살살하건 세게 하건 더 하면 죽을 것 같은데 지금 강도가 문젠가!
연우는 필사적으로 반항했지만 그만큼 형욱도 만만치 않았다. 벌어진 바스 가운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가슴을 빨며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가 손을 대기 전부터 몸은 예상하고 있었던 듯, 손이 가는 데마다 이미 죄다 서있었다.
이래놓고선 뭘 안한다고.
날렵한 입매를 핥으며 허리를 묶고 있는 끈을 풀자 새하얀 밥상이 눈앞에 차려졌다. 최근 피형욱에 의해 개발을 당하기 시작한 소연우는 그야말로 진미가 따로 없었다. 처음엔 어설프기만하던 조임도 이젠 언제 풀고 조여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키스를 하면 번번이 피하기에 급급했던 혀도 제법 얽을 줄 알았다.
‘이거 봐.’
게다가 조금씩 할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스스로 허벅지로 허리를 감기도 했다. 물론 형욱이 여태 안아왔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한없이 소극적인 자세였지만 그 작은 행위들에 참기 힘들 정도로 큰 흥분을 느낀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은 어쩌면 분통을 터뜨릴 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은 몇 시간을 봉사해야 남자를 조금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을 연우는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 해냈으니까.
“연우야….”
피형욱이 연우의 사소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연우도 그런 게 좋았다. 이를 테면 지금처럼 귓가에 낮게 속삭여주는 거라던가, 장난을 치는 어린애 같은 모습도 좋았고 때로는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기댈 수 있을 만큼 믿음직스러운 모습도 좋았다. 물론 마지막 모습은 잘 보기가 어렵긴 하지만.
목을 더 바싹 끌어안고 얼굴에 마주 비비자 닿아있는 피부 너머로 형욱이 피식, 웃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자신도 마치 따라하듯이 연우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이번엔 연우가 웃었다.
“자, 이제 어린이 관람가는 여기서 끝내고 성인용으로 넘어가볼까?”
이것도 이미 한계 상태인 것 같고.
형욱의 손이 쥐고 있는 것은 발기된 연우의 성기였다. 그동안 경험이 부족했던 만큼 그의 성기는 작은 삽입에도 금방 고개를 들 정도로 예민해졌다.
한껏 고개를 든 걸 자랑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손가락으로 툭 치고 형욱은 망설임 없이 성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자세를 바꿔 연우의 입에 아랫도리를 밀어붙였다.
“내 거도 빨아줘.”
이제 할 줄 알잖아?
상대는 여유 있게 말했지만 이제 막 펠라 초급 코스를 뗀 초보에게 69자세는 너무 과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눈앞에서 그네를 타는 성기를 조심히 잡고 입을 대려고 했지만 위치가 높아 여의치 않았다.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연우의 손이 마치 소젖을 짤 때처럼 성기를 밑으로 쭉 잡아 내렸다.
“끄악!”
끔찍한 비명이 형욱의 입에서 터졌다. 깜짝 놀라 손을 놓았지만 이미 씻을 수 없는 아픔이 아랫도리에서 폭죽처럼 작렬했다.
어떡하지.
설마 이렇게 아파할 줄은 몰랐다. 남자니까 당기면 당연히 아픈 건 당연하지만 힘 조절이 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괘, 괜찮아요, 형욱씨?”
“내가, 지금 괜찮게! 윽! 어떻게 좀 해봐. 비뇨기과 의사잖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지금 69 자세 중에 밑에 있던 상대가 성기를 잡아당겼을 때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는 건가.
그런 게 교본에 있을 리가 없지만 연우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나 죽겠네. 형욱이 고추를 잡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는 욕심에 연우는 더 고민하지 않았다.
“…….”
“…호오…, 호오….”
“……연우야.”
“호오…, 호오…. 좀, 괜찮아졌어요?”
“…불만 쑤시고 있는데.”
“불이요?”
멍청하게 들린 고개에 형욱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부지불식간에 습격을 당한 연우의 몸이 뒤로 밀리며 매트리스로 다시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성기가 목젖을 찔렀다. 하마터면 도중에 컥, 하고 구토를 할 뻔 했지만 다행히 형욱이 잽싸게 허리를 뒤로 물려,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이미 불상사는 좀 전의 것만으로 충분했다.
“잘하고 있어….”
처음엔 생각지도 못했다. 그 도도하고 무심하던 의사 선생이 이렇게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성기를 빨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흐음….”
사정감이 임박했는지, 형욱이 가늘게 눈을 접으며 몸을 떨었다.
“연우도 해줄게.”
“아뇨, 저는….”
좀 전의 69자세를 또 하려나 싶어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려던 연우의 발목이 붙잡혀 그대로 아래로 끌려갔다.
괜찮아. 그거 말고 평소 좋아하는 식으로 할 테니까. 달콤한 말로 구슬리자 이미 여시 같이 익을 대로 익어 시어빠진 피형욱 표 블랙 깍두기의 맛에 길들어진 연우는 순순히 얌전해졌다.
“봐봐. 이거 싫어하지 않지?”
“예. 아….”
성기를 빨며 손가락으로 안을 적당히 헤집어주자 하얀 얼굴이 바로 붉게 상기됐다. 이불 위에 흐트러진 몸을 시선으로 탐하며 입으로는 성기를, 애널을 찌르고 있는 손 외에 다른 것은 시커멓게 일어선 형욱 자신의 성기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춥춥거리는 습한 소리를 내며 귀두 부분이 음경의 피부 주름 사이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번복했다. 핏줄까지 돋아날 정도로 가득 흥분한 그것이 내뱉고 있는 쿠퍼액 외에도 바로 방금 전까지 연우가 물고 빠는 바람에 그의 타액도 포함돼 함께 움직임을 도왔다.
충분히 성기와 안이 흥분한 것을 확인한 형욱이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았다.
“넣을게.”
주사기의 피스톨을 누르듯 침입자가 지척까지 온 것을 알아채고 오므리고 있는 주름에 꾸욱 힘 있게 성기를 잡고 짓눌렀다. 신음을 참기위해 깨물고 있는 입술을 다독여 힘을 풀어낸 손이 침대 위를 더듬었다. 매트리스를 아무렇게나 싸돌아다니고 있던 젤을 빡빡한 구멍 사이에서 빼낸 성기에 듬뿍 뿌리고 다시 안으로 파고 들었다.
“힘을 빼봐, 연우야.”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굵고 딱딱한 남자의 성기를 품고 있었던 연우의 안은 아직 촉촉하게 젖어있었지만 붉게 부어있어 삽입이 쉽지가 않았다. 진입에 어려움을 겪느라 형욱의 몸에도 땀이 가득 맺혔다.
“하으…. 형, 욱씨….”
하지만 아파하며 아래에서 비틀리는 몸을 보니 피를 부르는 단사파 보스 피형욱이라고 해도 가슴이 찡하기도 한 반면, 미칠 것처럼 사랑스럽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이런 건가. 여지껏 몸을 겹쳤던 다른 상대에게선 느낄 수 없는 생소한 감정이 가슴을 어지럽혔다.
아파하는 연우를 품에 보듬어 안고, 쉴 새 없이 괜찮다고 속삭이며 입을 맞추고 끈질기게 애무했다. 그러자 초반엔 긴장을 했던 몸이 조금씩 힘이 풀리며 한층 삽입이 수월해졌다. 성기가 안으로 파고들 적마다 넘어갈 듯이 급히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연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지금 안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하겠다는 것처럼.
마침내 여러 난관을 뚫고 성기가 다 들어갔을 즈음엔 연우의 것도 팽팽하게 흥분을 주장하고 있었다.
“후훗. 흥분하고 있어.”
“이제 알았으니까 그만 말하세요.”
“남잔데 흥분하는 건 당연하지. 아니면 여기로 흥분하는 게 아직도 부끄러워?”
“자랑스러울 리는 없잖습니까.”
짖궂게 놀리는 남자를 눈으로 흘기는 성미 고약한 애인을 벌주듯 형욱은 허리를 움직였다. 한껏 표독한 기운을 뿜고 있던 몸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유혹적인 향을 뿜었다.
탁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빠짐없이 그것을 담는 형욱의 몸도 점차 힘을 얻었다. 부드러운 움직임 따윈 집어치우고 당장이라도 상대의 뼈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거칠게 장악하는 남자의 아래에 깔린 연우도 더 이상은 얄미운 잔소리를 늘어놓지 못하고 어깨에만 간신히 매달렸다.
“아―, 아아! 이제, 그만…!”
“무슨 소리야. 아직 멀었다고.”
누구 멋대로 토깽이처럼 벌써 싸려고 해.
야수처럼 목을 울려 위협한 손이 성기를 힘껏 움켜쥐었다. 막 발사 준비를 바쳤던 연우의 성기가 당황해서 벌겋게 달아올랐다.
“놔…줘! 놔…!”
반말을 하는 것을 보니 미치겠는 모양이다.
한계에 다다랐는데 싸지도 못하니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한 쾌락이 지금쯤이면 아마 온 몸을 기어다니며 간질이고 있을 것이다.
형욱은 위로는 품안에서 엉망으로 흐트러지며 울고 있는 연인을 자상하게 달랬지만 아래로는 여전히 험악하게 허릿짓을 했다. 아마도 연우 본인은 지금 울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내의 허리에 음탕하게 다리를 감고 사정을 조르며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지 않았을 테니까.
‘비디오로 찍어둘걸.’
아마도 연우가 알기라도 하는 날엔 기겁할만한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하며 형욱도 슬슬 오르가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준비를 했다.
“이 자식 여기서 뭐하는 짓이야!”
갑자기 쾅하며 문이 벌컥 열리지 않았더라면.
갑작스런 침입에 놀란 침대 위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를 향했다.
“큰 형님….”
“아, 흐으윽!!!”
몸을 일으킨 연우의 아래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형욱을 조였다. 그 바람에 절정에 다다라버린 형욱이 안에 질펀하게 싸고, 내벽이 뜨겁게 젖는 느낌에 열기가 식을 틈을 놓친 연우의 것도 절정에 다다라버렸다.
바닥에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있는 것은 놀랍게도 소연호였다. 그 자신도 지금의 상황이 무척 꼴사납다는 인식은 있는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내려간 안경을 치켜 올렸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던 형욱이 거칠게 땀을 닦으며 제길, 욕을 지껄였다. 사정이라는 게 그렇게 한번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문이나 닫아.”
위협적으로 뇌까리는 목소리에 조직원들이 후다닥 문을 닫고 나갔다. 그들이 나간 뒤에도 아예 연우의 허벅지를 잡아 벌리고 남은 정액을 모두 토해낼 때까지 허리를 움직였다.
“형욱, 그만…!”
“가만히 있어. 어차피 이대론 끝내지도 못해.”
이왕 이렇게 된 거, 형욱은 하던 짓을 마저 끝내기로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까발려질 일. 그게 좀 빨리 왔을 뿐이다.
반면에 연우는 형에게 가장 수치스런 모습을 보여지는 것을 참을 수 없는지 필사적으로 몸을 숨기려 했지만 번번이 형욱에게 붙잡혀 고개를 들렸다. 혼란에 허덕이는 눈이 평소처럼 마주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 못마땅해 쯧, 혀를 찾아 소리를 쫓아 눈이 맞닿았다. 그러나 시선이 닿기 무섭게 축축하게 젖는 눈을 보고 형욱은 싸늘하게 열기가 식는 것을 느꼈다.
“덮고 있어.”
휙 빼내자 배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연우는 형욱이 덮어준 바스 가운으로 주섬주섬 몸을 가리기에 바빴다. 등을 지고 있는 탓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들어와서는.
행여나 간신히 고쳐놓은 발기 부전이 다시 재발하게 될까봐 형욱은 신경 쓰였다. 기껏 느끼는 기쁨을 알려주고 의사 선생답게 빠르게 그것을 습득해가고 있었는데 하필 형이라는 인간이 그 순간을 방해할 건 뭐란 말인가.
하긴 형제 덮밥으로 번번이 방해를 하는구만.
일전에도 편의점에서 연한에 의해 기록으로 남을 뻔했던 하루를 짓밟혀진 경험을 떠올린 형욱이 흉악하게 이를 갈았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목적도 없이 훔쳐보고 있었던 거라면 정말 가만두지 않으리.
흉흉하게 빛나는 눈빛이 연호를 향해 경고장을 보냈다. 지지 않고 그 시선을 응수하며 연호는 안경을 다시 들어올렸다.
“그거야. 피형욱씨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뭘요.”
“연우가 발기하는 방법.”
“…….”
“…….”
“…….”
“하. 내가 지금 뭔 소리를 들었나―.”
귀를 후벼 파는 꼴을 보아하니 다시 건들건들 블랙 모드 발동이라 연우는 급히 바스 가운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어났다. 다리 사이로 뭔가 흐른 것 같았지만 지금은 둘 사이를 뜯어말리는 게 중요했다. 형욱도 조직을 이끄는 보스다 보니 총 놓고 하는 몸싸움도 잘 했지만, 연호도 태권도 검은 띠에 검도 5단의 실력자였다.
‘아마 둘이 붙게 되는 날엔 둘 다 무사하진 못할 거야.’
최악의 경우에 수틀린 피형욱이 총을 들 소지도 있었다.
“두 사람 다 무슨 추태에요.”
일단 분위기부터 차분하게 조정해보려고 한 거였는데 날선 시선이 닿았다. 볼 것도 없이 블랙 깍두기다.
“선생 지금 얘기 못 들었어? 선생이 발기하는 방법이 궁금하시다잖아, 큰 형님께서.”
나왔다. 선생.
최고로 기분이 안 좋을 때만 등장하는 호칭이라 연우는 바짝 긴장했다. 재수 없으면 그라고 해도 좋게 끝나기 어려울 여지가 다분했다.
“그건 제 형님이시니까….”
“형님. 형님이면 동생의 프라이빗한 사정을 알아내려고 붕가붕가하고 있는 현장 훔쳐봐도 되나?”
“잠깐. 붕가붕가가 뭡니까?”
갑자기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들어온 연호를 칵! 돌아보자 이거, 손까지 들고 질문하고 있다.
“붕가붕가란, 방금 보신 게 그겁니다. 큰 형님.”
“아아. 그렇습니까.”
새로운 걸 알았다는 표정이다.
내가 왜 이런 짓을…….
궁시렁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은 형욱은 다시 분노 모드로 어렵게 돌아왔다. 화를 내는 데에 이렇게 많은 집중력을 요하기는 처음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소연우 판박이가 둘이나 있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무척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은 냄새가 풀풀 풍긴다.
“상식적으로는 보통 그런 짓 안하는 거 알잖아?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건 우리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봤다는 것도 그렇지만, 왜 굳이 발기 방법을 궁금해 하냐는 거야. 발기가 된다는 것만 알면 됐지, 왜 방법을 궁금해 하냐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형욱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자고로 붕가붕가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요, 둘이 함께 하는 것이니 둘의 그런 모습을 엿본 것도 당연히 화가 나는 부분이지만,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방법을 알려고 하는 저의였다.
정말 형의 입장에서 동생의 오랜 고자 상태를 벗어난 것을 확인하려는 순수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피형욱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방법만 알아내서 악용하려는 여지가 있어 농후해 보인다. 이 뜻이었다.
“둘 다 잘나신 사짜 직함을 갖고 계시니 그런 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괜히 말 뺑뺑 돌리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큰 형님.”
유독 큰 형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형욱만의 착각은 아니다. 처음부터 연호가 큰 형님이라는 호칭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건 바보도 아니고 충분히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도 그걸 고수한 건 단지 연우처럼 그도 순순히 연호를 존경하고 있다는 나름의 성의 표현이었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해도.
어서 말해보시라니까요.
다시 다그치는 폼이 똑같은 말을 또 하게 만들었다간 가만 안둘 기세다. 일단 수습이라도 하고 보자, 싶어 연우가 입을 뗐다.
“피형욱씨가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다?”
“그렇습니다.”
건조한 대꾸에 형욱이 미간을 문질렀다. 신기하게도 그는 조금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하하. 진짜. 형제들끼리 진짜 판박이처럼 시크하다. 남의 가슴이라고 아주 사정없이 후벼 파내, 막.”
“형욱씨….”
“그래서.”
당장이라도 심장이 뜯긴 사람처럼 가슴을 문지를 땐 언제고 다시 들린 고개엔 예의 날카로운 유리의 끝처럼 뾰쪽하게 날이 서있다.
“큰 형님께선 그 방법을 알아내셨습니까?”
“…예.”
“정말?”
“그렇습니다.”
“뭔데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으니 대놓고 물었다.
어차피 동생이 남자랑 연애질 뿐 아니라 섹스하는 모습도 들켰겠다, 상대가 조폭 보스라는 것도 알았겠다 거리낄 게 없었다.
하지만 연호는 대답을 하기 전, 연우를 보며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입술이 달싹거리기만 하고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그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동생인 연우도 처음 보는 낯선 것이었다.
“그건….”
“그건?”
형욱이 독촉했다.
연호가 그 부추김에 못 이겨 말로 내뱉게 되면 그의 안에서 반 이상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그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멀쩡하던 막내 동생이, 사실은 남자의 성기를 품어야만 느끼는 체질이라고. 그렇게 몇 년을 애먹어도 이유를 알 수 없던 발기의 비결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동생의 성적 취향을 떠나 여태껏 연호와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모든 가치관을 바꾸게 만드는 말이었다.
단순하지만, 그랬다.
“모르시나 보네.”
잘 못 보셨나봐.
다행이지 않냐며 형욱이 연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큰 형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지금 연호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연우에게 집착했던 만큼 기대도 컸다. 동생이 어떻게 해야 발기하는 지를 말하게 되는 건, 동생이 남자랑 연애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 거랑은 또 사실이 달랐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거였으니까. 연애만 하는 거라면 다른 길로도 갈 수 있었지만, 남자에게 박혀야만 느낀다는 건 적어도 그걸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내내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거니까.
질끈 부여감은 연호의 눈앞에 친척 식구들과 어머니, 동생 연한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막내를, 부탁한다.’
부친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연우는―,”
일단 연우를 욕실로 들여 보내려고 했던 형욱이 뒤돌아봤다.
연호가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도 그들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내 동생은, 연우는,”
거기까지 말해놓고 그는 다시 숨을 골랐다. 어쩌면 말을 고르는 지도 몰랐다.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고지식하고 남들이 정해준 대로만 살아왔다. 일탈을 모르는 헛똑똑이인 반면 그만큼 순진했다. 연호의 눈이 다시 질끈 감겼다.
“남자로, 느낍니다.”
“…….”
끝내 연우는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지금 이 순간,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연우는 남자의 성기가… 삽입, 되야 발기가 됩니다. 그게 제가 본 동생의 발기 방법입니다.”
평소처럼 큰 형님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연호와의 사이에 마치 커다란 강이 가로막은 것 같았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연우를 보고 형욱은 조용히 그를 욕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금방 이야기 끝나고 들어갈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나도….”
휙 돌아서려던 얼굴을 힘 있게 붙잡았다. 흔들리고 있던 눈이 커다래졌다.
“내 말 들어. 지금 너 큰 형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잖아.”
“……하지만,”
“걱정하지마. 선생이 걱정할 일 따위 안해.”
그러니까 여기서 허튼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가볍게 뺨을 도닥이며 돌아서려던 맨살에 온기가 닿았다.
“미안, 해요.”
한동안 형욱은 아무 말 없었다. 그러다 하, 하고 피식 웃으며 거칠게 머리를 쓸었다.
“정말. 형제가 쌍으로 비참하게 구네. 미안하다니….”
씁쓸한 표정이 형욱의 얼굴을 감돌았다.
돌아보는 움직임에 등에 이마를 대고 있던 연우가 고개를 들다가 멈칫했다.
“진짜, 비참해….”
형욱이 슬프게 웃고 있었다.
“여기 있어.”
다시 붙잡고 싶었지만 욕실 문은 이미 굳게 닫혀버리고 말았다. 불투명한 욕실 유리문의 실루엣에 커다란 남자의 인형이 비춰지자 연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가슴이, 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슬프게 울었다.